성추행 지적은 선거용 언론플레이? 뉴질랜드에 따질 건 따진다는 외교부

  • 기자명 김준일 기자
  • 기사승인 2020.08.04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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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는 3일 뉴질랜드 근무 당시 현지 남자 직원을 성추행 한 의혹을 받는 외교관에게 귀임을 지시했습니다. 이 외교관은 2017년말 뉴질랜드 한국 대사관 근무 당시 현지 남성 직원의 신체를 세 차례 만져 성추행한 혐의를 받았습니다. 이 외교관은 가볍게 툭 쳤을 뿐이라고 주장했고 20181월 한국에 돌아온 뒤 외교부로부터 감봉 1개월 처분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뉴질랜드 법원은 올해 2월 이 외교관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했습니다. 지난달 25일 뉴질랜드 방송이 이 사건을 방송한 뒤 크게 화제가 됐고 지난달 28일에는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가 문재인 대통령과의 정상 통화중에 이 사건을 언급하며 해결해 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외교부는 뉴질랜드 정부가 요청하는 당사자 조사를 가능하게 하기 위한 조치로 정당한 면책특권을 포기하지 않는 선에서 범죄인 인도 요청 등 뉴질랜드 요구에 협조할 방침입니다. 성추행 의혹 외교관 귀임 조치한 외교부, 이 뉴스의 행간을 살펴보겠습니다.

1. 여론 악화에 적극적 조치

정부가 해당 외교관을 즉각적으로 귀임조치시킨 것은 잇따른 성추행 의혹으로 인해 더 이상 여론이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함입니다. 최근 여권은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습니다. 어제 국회에 출석한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은 박원순과 오거돈 시장 사건은 전형적인 권력형 성범죄가 맞느냐는 야당측의 질문에 대해 아직 수사중인 사건이라며 답변을 피해 기사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외교부 성추행 의혹 사건까지 더해지면서 문재인 정부가 성추행 대응에 미온적인 것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지는 상황입니다.

뉴질랜드측의 항의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뉴질랜드 외교부는 지난 2한국정부에 외교관 면책 특권 포기를 요청했으나 거부했다. 실망스러운 결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윈스턴 피터스 뉴질랜드 부총리 겸 외교부 장관은 지난 2일 언론에 나와 한국 정부가 그에게 외교관 면책 특권을 포기하게 하고 뉴질랜드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닷새동안 뉴질랜드 총리, 부총리, 외교부 대변인이 돌아가며 문재인 대통령과 강경화 장관 및 한국정부에 성범죄 사건을 따진 겁니다.

 

2. 따질 건 따지겠다는 정부

외교부가 적극적 태도로 선회한 것은, 뉴질랜드 정부가 외교적·법적으로 부당한 요구를 하는 것에 대해서는 적절히 대응해야 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입니다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3일 기자들과 만나 뉴질랜드 측이 제기하는 문제의 올바른 해결 방식은 공식적인 사법 절차에 의한 것이라며 뉴질랜드 측이 공식적으로 요청하면 형사 사법 공조와 범죄인인도 등 절차에 따라 우리는 협조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뉴질랜드 정부가 범죄인 인도요청 등 법적 근거를 갖추지 않고 한국 정부가 조사에 협조하지 않는다고 압박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의미입니다.

뉴질랜드 경찰이 한국 공관의 폐쇄회로(CC)TV 등 기록물을 열람하고 관계자를 소환조사하겠다는 요구에 대해서는 특권면제를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공관 기록물 열람이나 외교관 소환 조사 같은 요구를 수용하는 것은 전례도 없고 뉴질랜드 측의 무리한 요구고 자료제출과 서면조사로 대신하자는 한국의 제안은 정당하다는 겁니다. 사태악화를 막기 위해 협조할 것은 협조하되 뉴질랜드 측의 무리한 요구에는 선을 긋겠다는 겁니다.

외교부는 3일 필립 터너 주한 뉴질랜드 대사를 불러 "뉴질랜드 정부가 공식 요청 없이 언론을 통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전달했습니다. 언론플레이를 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또 아던 총리가 문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이 문제를 제기한 것에 대해서도 "외교 관례상 매우 이례적"이라는 우리 측 입장도 전달했습니다.

 

3. 총선용 언론플레이 의심

뉴질랜드에선 다음달 19일 총선이 실시됩니다. 저신다 아던 총리는 노동당 소속으로 201738세 나이에 대표에 취임한 뒤 바로 총리직에 올라 당시 세계 최연소 총리가 됐습니다. 20186월에는 뉴질랜드 처음으로 재임 중 출산을 하고 6주만에 복귀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저신다 아던은 뉴질랜드를 코로나 청정국으로 만든 리더로 국민들로부터 큰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지난 4월 여론조사에서 아던 총리는 60%에 육박하는 지지율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지난달 제1야당 국민당이 6선 여성 의원인 주디스 콜린스를 대표로 내세우면서 전열을 정비했습니다. 콜린스 대표는 국민당 집권 시 교정장관, 경찰장관, 법무장관 등을 두루 역임한 대표적 보수여성 정치인입니다.

아던 총리가 한국과의 정상통화에서 성추행 문제를 꺼낸 것은 다분히 총선을 의식한 것이란 분석이 나옵니다. 한국에 대한 현지 여론이 악화된 상황에서 성추행문제에 대해 단호한 모습을 보임으로서 국민들에게 자국민을 보호하는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주기 위해서입니다. 한국이 뉴질랜드 외교부의 언론플레이를 지적하는 것도 뉴질랜드측의 강경한 태도가 사실은 정치적 이유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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