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터보이즈>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그 배우, 사랑의 <레드>로 돌아오다

  • 기자명 홍상현
  • 기사승인 2020.09.02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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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마부키 사토시 배우의 팬들은 강산이 두 번 바뀌는 세월 가까이를 그와 함께해 온 내력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총 60편이 넘는 출연작 가운데 무려 30 여 편이 국내에서 개봉했다. 여간한 국내 영화배우보다 많은 편수다. 사진제공: (C)2020 RED Film Partners
츠마부키 사토시 배우의 팬들은 강산이 두 번 바뀌는 세월 가까이를 그와 함께해 온 내력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총 60편이 넘는 출연작 가운데 무려 30 여 편이 국내에서 개봉했다. 여간한 국내 영화배우보다 많은 편수다. 사진제공: (C)2020 RED Film Partners

“정말 섭섭해요.”

그의 이야기를 하는 동안 그녀는 ‘현역 연기자’에서 ‘그 시절 소녀팬’으로 돌아갔다. 객리단길에서 만난 어느 단편독립영화의 주연배우. 80년대에 태어난 그녀는 무려 14년 전 개봉한 <오늘의 사건사고>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밖에도 <봄의 눈>, <69 식스티 나인>,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혹은 <워터보이즈> 같은 영화들을 언급하는 경우가 있는데, 가깝게는 15년 전, 멀게는 19년 전 작품들이다. 팬으로서도 거의 강산이 두 번 바뀌는 세월 가까이 함께해 온 내력을 가지고 있는 것. 물론 기억의 고리가 끊어진 일도 없다. 총 60편이 넘는 출연작 가운데 무려 30 여 편이 국내에서 개봉했으니까. 여간한 국내 영화배우보다 많은 편수다.

이쯤 되면 슬슬 '아!'하고 탄성을 지르는 독자가 계시지 않을까. 그렇다. 위에서 말하는 ‘그’란 바로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초청작 <레드>(미시마 유키코 감독)의 츠마부키 사토시 배우다. 그녀와의 대화에서 필자가 느낀 감정은 두 가지다. 아쉬움과 자랑스러움.

먼저, 아쉬움은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의 프로그램 어드바이저로서. 그가 주연한 <레드>를 추천하면서 방한도 함께 추진했었다. 가능한 이야기였다. 현지 공개된 뒤 한참이 지난 작품일 지라도 한국 관객이 만나고 싶어 하면 신작촬영 스케줄조차 미루고 달려오는 그였으니까. 하지만 이번만은 쉽지 않았다. 코로니 19 사태로 도리가 없었다.

다음으로, 자랑스러움은 친구로서. 실은 그에게서 시종일관 느끼온 감정이다. 자신의 ‘일’로써 누군가의 인생에 커다란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일분일초를 허투루 살지 않으려 스스로를 다잡는 사람. 앳된 얼굴의 하이틴스타로 쇼 비즈니스 업계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 오랜 세월에 걸쳐 성장을 이어갔고, 급기야 2015년 출연한 허우 샤오시엔 감독의 <자객 섭은낭>으로 칸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하면서 ‘칸의 남자’가 되었다.

그리고 오늘, 올 12월 마흔 번째 생일을 맡게 될 그와의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한 가지 첨언해두고 싶은 것이 있다.

이 지면의 그는 특유의 장난기어린 미소로 대표되는 이미지와 조금 다른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인형의 집』의 주인공 노라처럼 살아가던 <레드>의 주인공(스구리 토코, 카호 분)에게 ‘자기 앞의 생(La vie devant soi)’을 일깨워주는 옛사랑(구라타 아키히코)에 더 가깝다고 할까.

물론 의미에 좀 차이가 있을 뿐 ‘즐거움’의 크기에는 차이가 없을 것이다. 먼 사람에게든 가까운 사람에게든 일관되게 예의바르고, 어떤 주제에 대해서든 충분한 고민을 거친 후에 입을 떼지만, 또한 그것이 무척 차분하고 정중하여, 결코 얼버무림이 없는, 그리고 그런 가운데서도 결코 따듯함을 잃지 않는 한 사내의 모습과 마주하게 될 테니까.

앳된 얼굴의 하이틴스타로 쇼 비즈니스 업계에 발을 들여놓은 츠마부키 사토시 배우는 오랜 세월에 걸쳐 배우로서의 성장을 이어간 끝에 2015년 허우 샤오시엔의 「자객 섭은낭」으로 ‘칸의 남자’가 되었다. 사진제공: (C)2015 The Assassin
앳된 얼굴의 하이틴스타로 쇼 비즈니스 업계에 발을 들여놓은 츠마부키 사토시 배우는 오랜 세월에 걸쳐 배우로서의 성장을 이어간 끝에 2015년 허우 샤오시엔의 「자객 섭은낭」으로 ‘칸의 남자’가 되었다. 사진제공: (C)2015 The Assassin

홍상현

만으로 마흔 살이 되시는 해, <레드>로 전주국제영화제에 오셨습니다. 2014년 넷팩상을 수상한 야마다 요지 감독의 <동경가족> 이후 두 번째이신데요.

츠마부키 사토시

네. 제게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특별한 해에 이렇게 다시 제 출연작을 초청해 주시니 뭐라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덧 제 나이도 마흔. 돌아보면 정말 쉼 없이 달려온 세월이었습니다. 그동안의 수많은 만남과 경험이 오늘의 저를 지탱해주고 있어요. 40대에는 어떤 제가 기다리고 있을지, 벌써부터 기대가됩니다.

 

홍상현

처음 주연을 맡으신 <워터보이즈>를 아직 기억하고 계신 분들이 많습니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초청작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경우, 한국의 영화잡지 《무비패밀리》가 조사한 “내 인생 잊지 못할 사랑영화 1위”이기도 하고요. 처음으로 개막식에 참석하신 국제영화제도 부산국제영화제(<봄의 눈>)였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한국에서 이토록 크게 사랑받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츠마부키 사토시

한국의 많은 분들께서 출연작들을 기억해주신다는 건, 제게 너무나 행복한 일입니다. 제가 발 딛고 선 공간을 넘어, 아시아를 무대로 활동하고 싶다는 생각을 20대 시절부터 쭉 가지고 있었는데, 실은 그런 생각을 된 것이 한국에 가게 되면서 부터였거든요.

그래요. 말씀하신 것처럼 부산국제영화제 때였습니다.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의 <봄의 눈>으로 초청을 받았어요. 한국 분들께서 저를 아실 리 없다고 생각했는데 공항에서부터 100명이 넘는 팬 분들께서 반겨주셨어요. 얼마나 반갑고 놀라웠는지 모릅니다. 한 해 전에 개봉한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 히트했다는 다는 소식은 이미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까지 반갑게 맞아주실 줄 몰랐기에 더더욱 감동이 컸습니다. 또한 한국 분들이 정말 순수하게 영화를 사랑하고 계신다는 확신도 얻었고요. 한편의 영화에서 아름다움이나 기쁨을 느끼는 일에 국경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크나큰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영화에 대한 애정과 순수한 마음. 한국 분들께서는 저를 그렇게 사랑해주고 계셨습니다.

일상에서의 츠마부키 사토시 배우는 먼 사람에게든 가까운 사람에게든 일관되게 예의바르고, 어떤 주제에 대해서든 충분한 고민을 거친 후에 입을 떼지만, 또한 그것이 무척 차분하고 정중하여, 결코 얼버무림이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가운데서도 결코 따듯함을 잃지 않는다. 사진제공: (C)2020 RED Film Partners
일상에서의 츠마부키 사토시 배우는 먼 사람에게든 가까운 사람에게든 일관되게 예의바르고, 어떤 주제에 대해서든 충분한 고민을 거친 후에 입을 떼지만, 또한 그것이 무척 차분하고 정중하여, 결코 얼버무림이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가운데서도 결코 따듯함을 잃지 않는다. 사진제공: (C)2020 RED Film Partners

홍상현

지난 3월 말 <온다>가, 그리고 지난해에는 <우행록: 어리석은 자의 기록>이 공개되었습니다.

예전보다 한국에 오시는 빈도는 줄었지만 주연하신 작품이 베니스국제영화제에 초청(<우행록: 어리석은 자의 기록>)되고 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하는 등 낭보가 줄을 이었는데요. 다만, ‘세계무대에서의 활동으로 너무 바빠져, 한국에서 만나기 힘들어지는 거 아니냐’고 염려하시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츠마부키 사토시

(잠시 수줍게 웃고 나서) 만약 제가 바라는 일이 뭐든 이루어질 수 있다면, 매년 한국의 영화제에 방문할 수 있게 해달라고 빌고 싶습니다.

처음 참석했던 부산국제영화제 애프터파티에서 한국과 중국의 감독님들, 프로듀서님들, 그리고 배우님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며 술잔을 기울이던 추억이 아직도 새록새록 합니다. 또한 그런 행복한 순간의 기억이 제 가장 큰 재산이기도 하고요.

부디 ‘하나 된 아시아’가 어떤 것인지 어렴풋이나마 가늠할 수 있었던 기회가 다시 한 번 주어지기 바랍니다. 오랜 시간이 흘렀으니 영화에 대해서도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네요.

 

홍상현

1998년 이래 월요일 9시 프라임타임 드라마와 대하드라마 주연까지 맡으면서 활약하셨지만, 영화에 대한 특별한 애정은 늘 변함없으시다는 느낌입니다. 본인이 생각하시는 영화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츠마부키 사토시

문득, 제가 매체의 매력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 배우로서 성숙한 사람인가 하는 의문이 드는데요. (웃음)

개인적으로 저 자신 영화를 사랑하고, 맡은 역할을 통해 사랑받음으로써 연기에 있어서 보다 성숙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재미있으실지 모르겠지만 이 대목에서 ‘영화’를 사람에 비유해 보고 싶은데요. 예컨대 영화에 대한 욕심이 애정보다 앞서게 되면 거짓된 연기를 하게 되니, 영화로부터 미움을 사게 되겠지요. 그런 면에서 영화를 향한 마음은 연애와 무척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매력을 느끼는데 딱히 구체적인 이유를 꼽기 어렵다는 면에서도 그렇고요. 그런 면에서 저는 정말 ‘영화와 사랑에 빠져있다’고 할 수 있겠네요.

“만약 제가 바라는 일이 뭐든 이루어질 수 있다면, 매년 한국의 영화제에 방문할 수 있게 해달라고 빌고 싶습니다.” 츠마부키 사토시 배우의 말이다. 사진제공: (C)2020 RED Film Partners
“만약 제가 바라는 일이 뭐든 이루어질 수 있다면, 매년 한국의 영화제에 방문할 수 있게 해달라고 빌고 싶습니다.” 츠마부키 사토시 배우의 말이다. 사진제공: (C)2020 RED Film Partners

홍상현

제게 평소 접하는 츠마부키 씨의 모습은 ‘스타’가 아니라 연구원 시절의 동료에 가깝습니다. 모든 일을 깊이 있고 진지한 태도로 접하며, 어떤 상황이라도 연락을 하면 항상 답을 주시고, 게다가 항상 뭔가 공부하고 계시잖아요. 스트레스도 적지 않으시리라는 생각이 드는데, 어떻게 해소하시나요.

츠마부키 사토시

사람과의 만남입니다.

예컨대 김영남 감독의 한ㆍ일 합작영화 <보트>에 출연하면서 하정우 씨라는 멋진 배우를 만났습니다. 처음으로 해외에 생긴 친한 친구인데요. 매우 유머 있고, 뜨거운 마음을 가진 배우이며, 무엇보다 정이 많고, 상냥합니다. 인간적 강인함 또한 갖고 있고. 거기에 친구간의 유대를 중요하게 생각하지요. 저는 그런 그가 정말 좋습니다. 그와 다시 공연(共演)할 기회를 얻는 게 제 꿈이기도 하고요. 만남은 사람을 강하게 만들지요. 앞으로의 제 삶에서도 이처럼 다양한, 좋은 만남이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홍상현

다음 주제와 관련해서는 <존 말코비치 되기>라는 영화가 떠오릅니다만, <우행록: 어리석은 자의 기록>의 이시카와 케이 감독에게 들었던 츠마부키 씨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감독과의 충분한 소통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기자로서 취재를 하는 장면을 촬영할 때 녹음기 방향을 어느 쪽으로 놓을 것인지에 대해서까지 준비를 해 오셨다던데요.

츠마부키 사토시

늘 느끼지만 연기를 한다는 건, 참 만만찮은 일입니다. 저라는 사람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상황에서, 또한 ‘남’이 되어야 하니까요. ‘테크닉’만으로 전할 수 없는 것도 많지요.

이와 관련해서 연기를 잘 하느냐, 혹은 못하느냐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자신이 맡은 배역, 즉, ‘그 인간으로서 존재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하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따라서 저는 항상 촬영에 들어가기 전부터 제가 연기하는 인물 그 자체가 되기 위해 노력해요. 예컨대 잠깐 동안이라도 실제로 같은 직업을 가져본다든가, 같은 장소에서 자고, 식사하고. 그러다 보면 굳이 의식을 해서가 아니라 우연한 행동을 통해서도 이런저런 것들이 나타나게 되거든요.

물론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아니, 실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지요. 저의 모든 것을 쏟아 부어야 하니까. 하지만 그렇게 자기가 맡은 배역에 애정을 갖다 보면 분명 바람직한 결과를 얻게 되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츠마부키 사토시 배우는 영화에 대한 자신의 사랑에 구체적인 이유를 들기 어렵다고 말한다. 사랑을 느끼는 데는 이유가 없으니까. 그 어떤 영화이론가보다 설득력 있는 설명이다. 사진제공: (C)2020 RED Film Partners
츠마부키 사토시 배우는 영화에 대한 자신의 사랑에 구체적인 이유를 들기 어렵다고 말한다. 사랑을 느끼는 데는 이유가 없으니까. 그 어떤 영화이론가보다 설득력 있는 설명이다. 사진제공: (C)2020 RED Film Partners

홍상현

일단 마음을 움직이는 작품이라면 역할의 비중이나 캐릭터(히어로ㆍ안티히어로)를 가리지 않는 걸로도 유명하십니다.

츠마부키 사토시

젊은 시절 “개성이 없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고민도 했고요. 하지만 이제는 “개성이 없다”는 게 제 개성이 되었어요. 어떤 색깔이든 표현해 보여드릴 수 있으니까요. 검은색은 강렬하지만 다른 색을 받아들일 수 없지요. 하지만 흰색은 어떤가요.

늘 멈추지 않고 저 자신의 가능성을 찾아보고 싶습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저는 무척 욕심이 큰 배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홍상현

그럼 이제부터 ‘불륜남’(웃음)으로 분한 <레드>에 대해 이야기해볼까요. (웃음)

나오키 상 수상 작가 원작이기도 하지만, 단지 그것만이 출연을 결정하신 계기는 아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츠마부키 사토시

30대의 마지막에 ‘청년세대 아닌 사람들의 사랑이야기’를 접해보는 게 좋은 경험이 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아직 제게 40대는 미지의 세계이니까요. 막연하게나마 40대가 한 남자로서 성숙기에 접어드는 연령대 아닐까 하는 이미지가 있었던 정도이고. 또, 시나리오와 연출을 맡으신 미시마 유키코 감독님의 작품을 좋아했는데 이번 캐스팅이 기회가 되어주었습니다.

「레드」의 주인공, 구라타 아키히코의 캐릭터 분석과 관련해서 츠마부키 사토시 배우는 다음과 같이 코멘트했다. “일상 속에서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수많은 규칙에 묶인 채로 살아가지요. 하지만 그에게는 더 이상 그런 규칙이 필요 없어요. 사랑한다는 것, 오직 그 하나뿐이니까요.” 사진제공: (C)2020 RED Film Partners
「레드」의 주인공, 구라타 아키히코의 캐릭터 분석과 관련해서 츠마부키 사토시 배우는 다음과 같이 코멘트했다. “일상 속에서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수많은 규칙에 묶인 채로 살아가지요. 하지만 그에게는 더 이상 그런 규칙이 필요 없어요. 사랑한다는 것, 오직 그 하나뿐이니까요.” 사진제공: (C)2020 RED Film Partners

홍상현

구라타라는 캐릭터를 분석하면서 찾아낸 포인트는 무엇이었나요.

츠마부키 사토시

욕(慾).

구라타는 삶 자체에 대한 기쁨이나 희망, 슬픔이 아니라 오직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고 싶다고 생각으로 가득한 사람입니다. 일상 속에서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수많은 규칙에 묶인 채로 살아가지요. 하지만 그에게는 더 이상 그런 규칙이 필요 없어요. 사랑한다는 것, 오직 그 하나뿐이니까요.

 

홍상현

촬영이 이루어지는 동안 츠마부키 씨가 준비한 구라타의 이미지를 영화의 전체적인 흐름과 조화시키기 위해 미시마 감독과 어떤 식으로 협업을 해 나가셨는지 궁금합니다.

츠마부키 사토시

말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보다 제가 시나리오에 없는 장면을 연습해 현장에서 실연해본다든가 하면서 서로의 감각을 맞춰갔다는 게 더 정확할 겁니다. 미시마 감독은 세세한 설명이라든가 지시를 잘 하지 않으세요. 연기자 스스로 각자의 느낌에 근거해 캐릭터를 받아들이고, 연기로 표현해 내기를 기대하는 분이시죠.

츠마부키 사토시 배우는 항상 촬영에 들어가기 전부터 그가 연기하는 인물 그 자체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다 보면 굳이 의식을 해서가 아니라 우연한 행동을 통해서도 이런저런 것들이 나타나게 되기 때문이다. 사진제공: (C)2020 RED Film Partners
츠마부키 사토시 배우는 항상 촬영에 들어가기 전부터 그가 연기하는 인물 그 자체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다 보면 굳이 의식을 해서가 아니라 우연한 행동을 통해서도 이런저런 것들이 나타나게 되기 때문이다. 사진제공: (C)2020 RED Film Partners

홍상현

실은 <레드>가 제작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살짝 걱정했었습니다. 히로인인 카호 배우에 관한 것인데요. 아무래도 하이틴스타의 인상이 강하기 때문인지 복잡한 내면 연기를 잘 해내실 수 있을까 싶더군요. 이 경우, 상대 배우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한데요.

츠마부키 사토시

꼭 방금 말씀하신 내용이 아니더라도 예컨대 카호 배우가 결혼을 하지 않았고, 아이도 없다는 점을 언급하시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게다가 워낙 ‘청순ㆍ발랄 이미지’가 강하잖아요. 하지만, 저는 오히려 바로 그런 점이 메리트로 작용할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뭔가 새로운 것에 스스로를 던져 도전할 때는 상당한 각오가 필요하죠. 그런 각오를 하는 순간 사람은 굉장히 강해집니다. 핀치는 찬스니까요. 저는 카호 배우가 반드시 잘 해내시리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카호 배우의 곁을 지키며 끊임없는 지지를 보내드리기 위해 노력했고요. 그런 제게 고마울 때도, 혹은 부담스러울 때도 있겠지만요. (웃음) 하지만 늘 저를 보면서 혼자가 아니라고 느껴주셨으면 했습니다. 또한 그 마음이 반드시 전해졌으리라 믿고 있고요.

 

홍상현

미시마 감독의 대화에서 “<레드>를 하나의 건축물에 비유했을 때, 츠마부키 씨는 그 전체상을 보여주는 역할을 하셨던 거 아닐까 한다”는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결과도 무척 성공적이었고요. 그렇지만 구라타를 연기하면서 당연히 어려움도 있으셨을 것 같은데요.

츠마부키 사토시

<레드>는 대사가 별로 많지 않아요.

그런 까닭에 연기를 하는데 있어서도 표정이나 상황연출을 통한 표현에 집중하고, 그 안에서 서로의 감정이나 서사의 전개에 대해 인식하는 방식으로 촬영해 임했습니다. 설명적이 되거나 기호화해서도 안 되었기 때문에 주안점을 둔 것은 ‘마음과 마음을 어떻게 이어지게 할 수 있을까’인데요. 감정과 감정이 서로 부딪침으로써 생겨나는 온도나 냄새를 하나하나 오롯이 받아들이는 과정을 통해 공감(sympathy)이 이루어질 수 있을 거라 판단했습니다.

카호 배우와의 공연을 맞아. 츠마부키 사토시 배우는 그녀에게 끊임없는 지지를 보내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사진제공: (C)2020 RED Film Partners
카호 배우와의 공연을 맞아. 츠마부키 사토시 배우는 그녀에게 끊임없는 지지를 보내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사진제공: (C)2020 RED Film Partners

홍상현

이상일 감독의 <분노>나 <악인> 등에 출연하셨을 때 매번 온 몸을 던져 배역에 몰입하시다 보니 작품을 마치고 일상으로 복귀하면서 어려움을 겪으신 적이 있는 걸로 압니다. <레드>도 만만치 않게 무거운 내용이었는데요.

츠마부키 사토시

참 신기하게도 순조롭게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웃음)

작품을 준비하면서 ‘비극적인 내용으로 비쳐질 수도 있겠지만 구라타에게 <레드>는 무척 행복한 이야기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 것과도 관련이 있을 것 같네요. 그에게 몰입해갈수록 제 안에서 ‘짧은 인생에서 단 한 순간이라도, 그 무엇보다 아름답게 핀 꽃처럼 인생을 다했으니 여한이 없다’는 감정이 솟아났습니다.

 

홍상현

코로나 19 사태라는 인류사적 재앙으로 많은 나라들이 서로 간의 벽을 쌓아가는 와중에, 역으로 보다 적극적인 해외활동을 준비하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츠마부키 사토시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변함없이, 아니 더 열심히 세계로 눈을 돌려 활동하고 싶습니다. 지적하신대로 분명 코로나 19가 맹위를 떨치고 있지요.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위기상황을 극복했을 때, 사람들은 전보다 더 강한 모습이 되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때 큰 용기를 전해줄 수 있는 것이 엔터테인먼트 아닐까 하고요. 어쨌든 지금을 재기를 위해 영기(vigour)를 키우고 많은 것들을 차곡차곡 준비해나가야 할 시기라고 생각해요. 아울러 위기상황에 있는 까닭에 모든 인류가 서로 돕는 것이 더더욱 중요하겠고요.

저는 난관을 통해 아시아가 이전보다 더 강하게 하나가 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런 흐름 안에서 영화라는 분야를 통해 제가 뭘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고요. 또, 연기뿐만 아니라 기획 등에도 참가하면서 제 가능성을 넓혀가고 싶습니다.

전주국제영화제 초청작으로 온라인 상영을 마친 후, 현재 장기상영회를 통해 다시 한국 관객을 만나게 될 「레드」는 OTT 서비스인 넷플릭스를 통해서도 관람이 가능하다. 사진제공: (C)2020 RED Film Partners
전주국제영화제 초청작으로 온라인 상영을 마친 후, 현재 장기상영회를 통해 다시 한국 관객을 만나게 될 「레드」는 OTT 서비스인 넷플릭스를 통해서도 관람이 가능하다. 사진제공: (C)2020 RED Film Partners

“한국의 여러분, 안녕하세요. 다시 인사드립니다. 배우를 하는 츠마부키 사토시라고 합니다. 이번에 제가 출연한 <레드>의 주제는 ‘인생에서의 선택’이에요.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강요되는 선택과 내가 정말로 원하는 선택, 나라면 어느 쪽을 택할지에 대해 영화를 보시는 분들도 꼭 한번 생각해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에 계신 여러분과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항상 응원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리고요. 코로나 19가 사태가 진정되면 다시 한국에 가서 술을 마시고 싶네요. 그 때는 부담 없이 말을 걸어 주세요. 아마 옆에 하정우 씨도 있을 겁니다. (웃음)”

긴 인터뷰의 마지막을 한국 관객들과의 만남을 기약하는 메시지로 장식한 그가 짤막하게 낮은 한숨을 쉬며 한 마디를 덧붙였다.

“질문에 제대로 답을 드리기는 한 건지 모르겠네요. 제 어휘력이 얼마나 부족한지 새삼 깨달았습니다.”

물론 그럴 리 없다. 한국 언론매체를 통틀어 가장 긴 시간을 할애해주었던 이번 인터뷰 내내, 그의 모든 발언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다만, 옛 이야기를 할 때마다 미소 짓는 얼굴 위로 그리움이 스쳤을 뿐. 그리고 아주 잠깐 분위기가 바뀌었던 건 지나치게 심각한 이야기를 이어간 건 아닐까 싶었는지 ‘술이라도 한 잔 하고 있을 테니 꼭 말을 걸어달라’는 말을 할 때 정도였을까.

아울러 “나는 15세가 되어 학문에 뜻을 두었고(吾十有五而志于學), 30세에 학문의 기초를 확립했다(三十而立). 40세가 되어서는 미혹하지 않았고(四十而不惑) 50세에는 하늘의 명을 알았다(五十而知天命)”던 공자의 말을 곱씹으며, 연기 또한 ‘광의의 학문’임에 주목하는 한편, 15세를 18세로 바꿔보니 욕망에 대한 이야기조차 한 치의 흐트러짐도 보이지 않던 그의 모습이 이해되었다. 세상에 태어나 살아온 삶의 절반 ‘스타’로 보내고도,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하거나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는 불혹의 사내가.

다만, 인터뷰를 끝마친 지금에도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는 바람 하나가 있다. 누구를 만나든 자신을 “배우를 하는 츠마부키 사토시”라 소개하는, 천상배우인 그의 연기를, 그가 “하늘의 명을 아는” 나이가 되기 전까지 좀 더 많이 보고 싶다는 것.

언제나처럼 건투를 빈다. 사랑하는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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