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미터] 대학 서열화 없애는 '국립대 연합' 공약은 '변경'

  • 기자명 이고은 기자
  • 기사승인 2018.12.06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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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대통령 후보 시절 대담집 <대한민국이 묻는다> 등에서 국공립대학을 중심으로 하는 공동입학, 공동학위제의 필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서울대학교를 비롯한 지방 국공립대의 국립대 간 연합 네트워크 구조를 구축해, 함께 입학하고 함께 학위를 수여함으로써 대학 서열화를 없앤다는 취지였다. 문 대통령은 대선 전인 2017년 1월 17일 출간기념회에서 “국공립대학부터 공동입학·공동학위 국공립대학 네트워크를 만들자. 연합대학이라고 표현해도 좋다”고 말했다.

이 같은 구상은 대통령 선거 후보 공약집에서 ‘중장기적으로 대학 네트워크 구축 통해 대학서열화 완화 및 대학경쟁력 강화’로 제시됐다. 구체적으로는 ▲국공립대 공동운영체제 통해 대학들의 자발적 고등교육 혁신체제 방안 구축 ▲국공립대 네트워크 구축, 이후 혁신강소대학 네트워크 구축 ▲국공립대 간 기능별(연구중심, 교육중심, 직업중심 등), 중점 분야별 특화 추진 등의 내용이다.

 

국립대 연합? 거점 9개 국립대만 “환영”

이른바 ‘국립대 연합’으로 일컬을 수 있는 이 구상은 문재인 정부 출범 전 뜨거운 감자였다. 대선 전에는 정치권에서 꾸준히 제기된 ‘서울대 폐지론’의 부활로 관심을 모았고, 2012년 대선 당시 민주통합당(현 더불어민주당)의 ‘국공립대 통합네트워크안’을 연상시킨다는 반응도 나왔다.

대선 직후에도 이 문제에 대한 관심은 높았다. 그러나 정부에서는 대선 전과 같이 ‘국립대 연합’으로 나아가기 위한 구체화된 정책으로는 가시화되지 않는 분위기가 감지됐다. 문 대통령의 교육 공약을 총괄한 김상곤 전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2017년 5월 18일 서울 종로구에서 열린 원탁토론아카데미 교육포럼에서 “대학 구조 혁신을 통한 서열주의 해소 방안이 필요하다”면서 전국 9개 거점 국립대학을 우선 지원해 사립대학 수준으로 높이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전국 9개 거점 국립대는 강원대, 경북대, 경상대, 부산대, 전남대, 전북대, 제주대, 충남대, 충북대로, 이들 대학에 대한 지원을 강화한다는 취지였다.

이런 논의에서 서울대는 줄곧 한발 빠져있는 모습이었다. 서울대 내부에서는 국립대를 연합할 때 상향평준화가 아니라 하향평준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언급됐고, 이 공약으로 인해 “서울대가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전망까지도 나왔다. 대학서열을 깨기 위해 국립대 연합을 추진하면 서울대가 ‘국립대 서울캠퍼스’로 바뀌어 결과적으로 ‘서울대 폐지 정책’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있다는 풀이도 나왔다. 이에 서울대 온라인커뮤니티 스누라이프에는 ‘국립대 통합정책 폐지 요구 연서명’ 제안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 정책도 나오기 전에 먼저 나설 이유가 없다는 이유로 적극적인 움직임은 크게 나타나지 않았다.

반면 서울대를 제외한 9개 지방 거점 국립대들은 기대감을 높였다. 정부 정책이 본격화하기 전부터 스스로 네트워크를 활성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2017년 5월 19일 충북대에서는 9개 지방 거점 국립대 기획처장들이 모여 회의를 가지고 정부 정책과 별개로 거점 국립대 차원에서 논의를 본격화했다. 이 자리에서는 효과적인 대학 네트워크 구축을 위한 정책 연구를 정부에서 제안하기로 했다. 지역중심 국·공립대 총장협의회는 2017년 5월 25일 서울시립대 자작마루에서 회의를 개최하고 국·공립대 총장들과 함께 협력해 해결점을 찾고자 했다. 이 회의는 새 정부 출범 전에도 협의를 계속 해왔으며 당해 3회째 열리는 것이었다. 이날 총장들은 “적극적으로 대학체제 개편에 참여하자”고 뜻을 모았다.

거점 국립대에 속하지 않은 지방 국공립대, 일부 사립대는 불만이었다. 거점 국립대에 포함되지 않은 지역 국공립대와 사립대들은 정부 사업이나 재정적 지원에서 소외될 가능성에 대해 우려를 표해왔다. 특히 국공립대 학생비율을 끌어올리게 되면 사립대 입학생이 줄게 되고, 자연히 대학의 재정난이 심화될 것이라는 걱정이 깊었다. 결국 정부의 정책 방향은 9개 거점 국립대 당사자를 제외한 다른 모든 대학에게는 반갑지 않은 지향이 된 셈이다.

 

9개 거점 국립대 주도 ‘연합’ 움직임 반짝

2017년 5월 31일 국회 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성공적인 교육개혁’을 위한 정책토론회가 개최됐다. 이 토론회에서도 국립대 연합 정책은 대학 서열화를 타파할 주요 정책으로 제기됐다. 고등교육 부분 정책제안을 맡은 김종영 경희대 교수(사회학)는 대학 서열화를 해결할 혁신적 방안으로 ‘국립대통합네트워크’를 제시하며 “벌써부터 교육 분야 기득권 세력의 반대가 시작됐다”, “(국립대통합네트워크는) 하향평준화가 아닌 상향평준화”라고 강조했다.

지방 거점 국립대 9개 대학은 자발적으로 대학 네트워크 구축 사업에 돌입했다. 2017년 6월 28일 매일신문은 9개 지방 거점 국립대가 ‘연합 국립대’ 체계를 추진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가칭 ‘한국대학교’로 명칭을 통일하고 신입생을 공동 선발하는 안이다. 이 모델은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UC)가 모델로, 주 내 대학들이 같은 명칭 아래 신입생을 공동으로 선발하는 방식을 지향한다. 9개 지방 거점 국립대 총장들은 2017년 7월 4일 국회에서 ‘지역균형 발전을 위한 거점 국립대 발전방향’을 주제로 포럼을 열고 본격적인 여론 조성에 나서기도 했다.

김상곤 사회부총리 및 교육부 장관은 취임 후 지방 거점 국립대 집중 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국립대 연합안에 대한 뚜렷한 그림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2017년 7월 13일에 시·도교육감협의회 임원진과 가진 첫 간담회에서는 “거점 국립대와 강소대학이 성장할 수 있는 방향으로 대학정책이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7년 7월 19일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발표한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는 거점 국립대·지역강소대학 집중 육성 등 대학의 공공성과 경쟁력 강화가 거론됐다. 비록 9개 지방 거점 국립대가 실제로 추진하고 있는 연합 네트워크 구축에 대한 내용을 포함하지는 않았으나, 여론은 탄력을 받았다. 이날 전국 국·공립대학교노동조합은 성명서를 내고 거점 국립대가 추진하고 있는 연합대학안에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이들은 “국립대 내의 또 다른 대학 서열화를 초래하고 국립대 확대 정책을 훼손할 우려가 있어, 이 시점에서 논의되는 것은 섣부르기에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논란 속에서도 2017년 7월 25일 부산대에서는 ‘2018학년도 지역 거점 국립대학 공동 대입전형설명회’가 개최됐다. 지방 거점 국립대의 첫 협력 사업으로 선보인 셈이었다. 2017년 8월 17일 국공립대총장협의회가 열린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교수회관 앞에서는 전국대학노동조합 국공립대 본부 관계자들이 거점 국립대 통합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정부예산 확대 후 ‘국립대 연합’ 움직임 주춤

당장 추진될 것 같던 국립대 연합 움직임은 문재인 정부 첫 예산이 발표된 이후 수그러드는 모양새를 보였다. 2018년 교육부 예산 가운데 국립대 지원금은 전년도 대비 5배 가량 높은 1000억원(2017년 210억원)으로 책정됐다. 이는 국립대학이 지자체와 연계해 강점 분야를 중심으로 경쟁력을 제고하도록 지원하던 국립대학 혁신지원사업(PoINT) 사업을 확대 개편한 것으로, 2017년까지는 평가를 통해 18개 대학에 사업비가 지급됐지만 2018년부터는 전체 39개 국립대를 대상으로 확대했다. 9개 지방 거점 국립대에는 600억원이 중점 투자될 방침이었다. 최종 국립대 지원금은 800억원으로 다소 줄었지만 2017년 기준에 비하면 4배 정도 인상된 액수였다.

2018년 들어 거점 국립대 통합 논의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2018년 2월 전국 10개 거점 국립대가 계간 소식지 ‘K-NU10 매거진’ 창간을 알리면서 다시 부상하는 조짐을 보였지만, 이후에는 이렇다 할 대중적 움직임은 나타나지 않았다.

정부가 확정한 예산에 따라 2018년 3월 30일 교육부에서 공고한 ‘2018년 국립대학 육성사업 계획’을 보면, 이 사업은 대학이 기획하고 제출한 사업계획 및 성과 관리 방안 등을 평가해서 차등적으로 재원을 지원한다. 대학별 사업 기간은 애초 2년에서 5년으로 늘어났는데, 문재인 정부는 임기 만료까지 이 지원액을 집행하며 매년 성과 평가를 통해 관리한다.

다만 이 사업에서 애초 대선 전 공약의 구상이었던 '국립대 연합'의 단초를 찾기는 어렵다. 거점 국립대의 ‘네트워크 활성화’ 명목으로 책정된 금액은 거점 국립대 배분액의 약 10%인 45억원이다. 이 비용은 국립대학 간 네트워크, 지역사회(국립대, 사립대, 산업체, 지자체 및 공공기관)와의 협력 계획을 평가해 교육부가 재원을 차등 지원한다. 이 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교육부 국립대학정책과 측은 "국립대학 육성사업의 ‘네트워크 활성화’ 명목비로 거점 국립대가 자율적으로 네트워크 사업을 수립, 추진한다"고 설명한다. 물론 사업을 평가하고 예산을 지원하며 감독하기는 하지만, 이 외에 정부의 역할은 없는 것이다.

'국립대학 육성사업 기본계획' 중 거점 국립대에 배분된 451억원 가운데 네트워크 활성화 방안에는 10% 정도인 45억이 배정되었다. 출처 : 2018 국립대학 육성사업 기본계획, 교육부

이는 애초 공약에서 거점 국립대 간에 공동운영체제까지 거론할 정도로 긴밀한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인다. 이렇듯 재원을 확대하는 것만으로 거점 국립대가 적극 연계하는 네트워크가 구축될 것인지는 의문이다. 또한 공동입학, 공동학위 등의 문제는 대학이 자발적으로 결정할 사안이 아니라 정부와 사회가 참여해 사회적 공론화를 이룰 사안임에도, 이에 대한 뚜렷한 로드맵은 없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2019년도 국립대학 육성사업 지원액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교육부는 ‘국립대학 육성사업’에 2018년보다 704억원 늘어난 1504억원을 배정했다. 그러나 2019년부터 시작할 ‘공영형 사립대’ 공약에 교육부가 제출한 812억원의 예산은 기재부가 전액 삭감해 교육계와 시민사회계의 반발에 부딪히기도 했다. 이로써 고등교육의 공공화 움직임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는 지적도 나왔다. 지역 국립대에 대한 금전적 지원을 높이는 것만이 대학 서열화 완화와 대학 경쟁력 강화의 길은 아니라는 것이다.

종합해보면, 거점 국립대를 비롯해 지역 국공립대에 직접 지원하는 예산은 늘었지만, 국공립대 공동운영 등으로 대학 서열화를 타파하고 고등교육의 공공성을 확보한다는 대선 공약 당시의 청사진을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 됐다. 특히 대선 후보 시절에는 방법과 방향을 명확히 제시하면서 '이슈 파이팅'에 성공한 공약임에도, 대선공약집에는 구체적이지 않고 애매한 표현으로 공약 이행의 책임 여부를 불투명하게 한 측면도 있다. 이에 <뉴스톱>은 이른바 '국립대 연합(중장기적으로 대학 네트워크 구축 통해 대학서열화 완화 및 대학경쟁력 강화)' 공약에 대해서 '변경'으로 평가했다.

※ 본 기획물은 한국언론학회와 SNU팩트체크센터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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