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돈, 권력, 직위는 쓰레기에 불과" 이건희 회장 마지막 편지?

  • 기자명 이나라 기자
  • 기사승인 2020.10.26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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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이건희 회장의 사망 소식이 알려지며, SNS상에서는 ‘이건희 회장이 남긴 마지막 편지’라는 이름으로 장문의 글이 퍼지고 있다. ‘나의 편지를 읽는 아직은 건강한 그대들에게’라는 말로 시작하는 이 편지는 늙고 병들어 죽음을 앞둔 한 부자가 유언처럼 남긴 말들이 적혀 있다. 아무리 부자여도 건강이 가장 중요한 것이며, 돈보다 자신을 더 사랑하라는 내용이 골자다. 과연 이 편지는 정말 이건희 회장이 쓴 편지일까. <뉴스톱>이 팩트체크 했다.


 

인터넷 커뮤니티 갈무리
인터넷 커뮤니티 갈무리

 

편지에서 글쓴이는 “아프지 않아도 해마다 건강 검진을 받아보고, 목마르지 않아도 물을 많이 마시며, 괴로운 일이 있어도 훌훌 털어버리는 법을 배우며, 양보하고 베푸는 삶도 나쁘지 않으니 그리 한 번 살아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돈과 권력이 있다 해도 교만하지 말고. 부유하진 못해도 사소한 것에 만족을 알며, 피로하지 않아도 휴식할 줄 알며, 아무리 바빠도 움직이고 또 운동하라”고 강조한다.

이어 “건강에 들인 돈은 계산기로 두드리지 말라”며 “건강할 때 있는 돈은 자산이라고 부르지만, 아픈 뒤 그대가 쥐고 있는 돈은 그저 유산일 뿐”이라고 말한다. 또, “물건을 잃어버리면 다시 찾거나 사면 되지만, 영원히 되찾을 수 없는 것은 하나뿐인 생명”이라며 “무한한 재물의 추구는 나를 그저 탐욕스러운 늙은이로 만들어 버렸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내가 한때 당연한 것으로 알고 누렸던 많은 것들, 돈, 권력, 직위가 이제는 그저 쓰레기에 불과”하다며, “힘없는 나는 이제 마음으로 그대들의 행운을 빌어줄 뿐”이라며 글을 마무리한다.

죽음을 앞에 둔 부자의 진정성 있는 깨달음과 조언으로 들린다. 그러나 이건희 회장이 썼다고 알려진 이 편지는 몇 년 전부터 인터넷에서 떠돌고 있는 ‘어느 부자가 남기고 떠난 편지’라는 제목의 글이다. 정확히 말하면, 원본에서 일부를 발췌해 짜깁기한 것이다.

 

 

구글에 ‘어느 부자가 남기고 떠난 편지’라는 키워드를 검색하면, 2018년 12월 6일에 작성된 게시글이 가장 오래된 글로 검색된다. 유튜브에도 역시 비슷한 시기인 2018년 12월 18일에 ‘어느 갑부의 편지’라는 제목으로 해당 내용이 담긴 영상이 올라와 있다. 약 2년 전부터 인터넷상에서 널리 알려졌던 글이란 것이다.

이건희 회장은 2014년 5월, 급성 심근경색증으로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자택에서 쓰러진 뒤 병원에서 자가호흡을 하며 재활치료를 받아왔다. 그러다 6년 5개월 만인 지난 25일 향년 78세의 나이로 삼성서울병원에서 별세했다. 해당 글이 처음 등장한 2018년 12월, 이건희 회장은 80억 원대 양도소득세를 탈루하기 위해 520개의 차명계좌를 만든 혐의로 입건됐으나,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직접 조사가 불가능해 기소중지 처분을 받았다. 즉, 시기상으로도 이건희 회장이 남긴 편지라고 보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구글에 '이건희 편지'를 검색하면 나오는 화면 갈무리
구글에 '이건희 편지'를 검색하면 나오는 화면 갈무리

 

이 같은 '가짜 유언' 소동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애플 공동창업자인 스티브 잡스의 사망 이후에도 역시 가짜 유언이 인터넷상에 진짜인 것처럼 퍼졌었다. 내용도 비슷하다. 자신이 이룩한 부는 의미가 없으며, 건강한 삶이 가장 의미 있는 것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는 대만의 한 수필집인 'Say It Before Its Too Late: The Last Words of New Yorkers(너무 늦기 전에 말하라: 뉴요커들의 마지막 말)' 중 '포춘 500대 기업 CEO의 소원'이라는 단원에 실린 말이었다. 누군가 책의 일부 내용을 짜깁기해 잡스의 마지막 유언이라고 퍼트린 것이다. 실제 스티브 잡스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한 말은 "Oh, wow"였다고 한다. 

 

스티브잡스의 유언이라고 잘못 알려진 글/인터넷 커뮤니티 갈무리
스티브잡스의 유언이라고 잘못 알려진 글/인터넷 커뮤니티 갈무리

 


정리하자면, 이는 2년 전부터 인터넷에 널리 퍼져 있던 글이며, 이건희 회장의 사망 이후 누군가에 의해 ‘이건희 회장이 남긴 마지막 편지’로 잘못 알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해당 편지를 쓴 사람이 누구이며, 어디에서 전해졌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이건희 회장이 유서로 남긴 편지라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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