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D-1 트럼프 대역전 가능성은?

미국 현지 언론이 바라보는 선거 판세 최종 점검

  • 기사입력 2020.11.02 11:39
  • 최종수정 2020.11.02 12:25
  • 기자명 문기훈 기자

I go to sleep and get up in the middle of the night and start checking the news because God knows what might have happened. […] I can’t think of a time – and I’ve been a reporter for nearly 50 years – where I’ve felt more anxiety about the country and the presidency and the future.

 

매일같이 한밤중에 자다 깨서 뉴스를 확인한다. 밤새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모르니까. 50년 기자 생활을 통틀어 이렇게 나라와 대통령직의 미래가 걱정됐던 적은 처음이다.

           -밥 우드워드, 가디언 인터뷰 중에

향후 4년간 미국, 더 나아가 전 세계의 향방을 결정지을 제 59회 미국 대선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부동산 사업가 출신으로 임기 내내 수많은 화제를 몰고 다닌 ‘이단아’ 도널드 트럼프냐, 전임 오바마 행정부에서 부통령을 지낸 50년 경력의 베테랑 정치인 조 바이든이냐. 걸어온 발자취만큼이나 상반된 이념과 정책 성향을 보이는 두 후보가 전대미문의 팬데믹 한 가운데서 격돌한다. 지난 4년간 극도로 양극화된 정치 지형을 반영하듯 이번 선거를 둘러싼 미국 사회의 열기도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화제성에 초점을 맞춘 국내 보도 특성상 이번에도 트럼프의 ‘깜짝 승리’ 가능성을 전한 기사들에 이목이 집중됐다. 크리스토스 마크리디스 애리조나주립대 교수의 더힐 기고문을 인용한 22일자 조선일보 기사, 보수 성향 여론조사기관 트라팔가르그룹의 분석을 소개한 26일자 이데일리 기사 등이 대표적이다. 대체로 4년 전과 마찬가지로 여론조사 기관들이 이른바 ‘샤이 트럼프’ 지지층을 누락하고 있다는 미국 내 보수 일각의 관점을 전하고 있다. 선거 정국 내내 여론조사 결과를 ‘가짜’라고 평가절하해온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과 일맥상통하는 내용이다. 그렇다면 미국 현지 언론이 바라보는 선거 판세는 과연 어떤지, 뉴스톱에서 최종 점검했다.

 

선거 초기부터 바이든 일관된 우세…‘바이든 대세론’에 이견 없어

2016년 트럼프의 대선 승리는 각종 여론조사 기관과 주류 언론의 예측을 깬 대이변으로 회자된다. 이를 인식한 듯 유력 언론사들도 4년 전과는 달리 특정 후보의 당선 전망을 직접적으로 내 놓지는 않는 분위기다. 실제로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20년간의 관행을 깨고 자체 예상 결과를 발표하지 않기로 했으며, 지난 2016년 선거 당일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의 승리 확률을 85프로로 점쳤다가 곤혹을 치룬 바 있는 뉴욕타임스 역시 구체적인 예측을 최대한 자제하고 있다. 이와 같은 변화에는 트럼프 당선이라는 이변이 낳은 ‘학습효과’ 뿐 아니라 코로나 팬데믹의 여파로 급증한 우편투표의 영향이 크다는 것이 뉴요커의 설명이다. 선거를 이틀 남긴 시점에서 투표용지의 배송이 지연되면서 혼선이 이어지고, 선거일 이후 당국에 도착한 투표용지를 개표할 지 여부에 대한 법적 논란이 각 주마다 끊이지 않는 등 선거 결과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매우 큰 상황이다. 최종 승자 발표까지 수 일, 길게는 수 주까지 소요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언론사들 역시 결과 예측에 전례없이 신중을 기하고 있다고 뉴요커는 덧붙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 언론들은 대체로 바이든 쪽으로 조심스럽게 무게추를 옮기는 모양새다. 최근 몇 주 사이 경합주 일부, 대표적으로 29석의 선거인단이 걸린 플로리다 주에서 트럼프 지지층이 막판 결집에 나서며 접전 양상을 보이는 것은 사실이나, 전국적으로 크게 벌어진 지지율 격차를 무시하기는 어렵다는 평가다. 일례로 미국의 대표적 친 트럼프 성향 보수언론인 폭스뉴스는 현지시간 1일 바이든의 우세를 전하는 보도잇달아 내놓으며 ‘바이든 대세론’에 힘을 실었다. 10월 27일부터 29일 3일간 실시한 자체 여론조사 결과에서 바이든이 52대 44로 우위를 보인 것을 두고 폭스는 “대선 전망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어둡다”고 설명했다 (“the electorate’s outlook is gloomy”). 이에 앞서 폭스의 소유주인 루퍼트 머독은 사석에서 바이든의 압승을 예상한 것으로 전해진 바 있다. 여기에 더해 보수 성향 정론지인 월스트리트 저널도 1일 NBC와 공동으로 실시한 자사 여론조사를 인용, 바이든이 트럼프를 10포인트차로 리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경합주 12곳의 경우 트럼프 지지세가 늘어남에 따라 두 후보간 격차가 6포인트까지 줄었으나 여전히 오차범위 밖이다 (+/- 3.1%). 선거를 불과 이틀 앞두고 보수 언론에서 바이든의 우세를 전하는 기사를 잇달아 내놓고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결코 작지 않다.

이처럼 바이든이 유리한 고지를 점한 데에는 이른바 ‘러스트 벨트’ 3개주에서의 선전이 결정적이다. 정치분석매체 리얼클리어폴리틱스에서 집계한 전국 지지율 여론조사 평균에 따르면 미시간 (선거인단 16석), 위스컨신 (10석), 그리고 펜실베니아 (20석) 세 곳 모두에서 바이든은 트럼프를 상대로 꾸준히 안정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다. 4년 전과 같은 이변 없이 바이든이 이들 3개 주를 가져갈 경우, 경합주로 분류되는 아이오와 (6석), 애리조나 (11석), 노스캐롤라이나 (15석), 조지아 (16석) 그리고 플로리다 (29석)를 트럼프에게 전부 내주고도 승리가 가능하다 (아래 그림 참조). 플로리다를 최대 승부처표현수많은 국내 언론 보도와는 달리, 플로리다 주 한 곳만으로는 시쳇말로 ‘대세에 지장이 없다’는 말이다. 4년 전 결과 예측에 실패한 여론조사 기관들이 조사 기법을 대대적으로 수정한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에도 예상을 뒤엎고 대이변을 연출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CNN의 선거인단 시뮬레이터 'ROAD TO 270'을 활용한 모의 선거 결과. 접전 지역을 모두 내주고도 바이든이 과반 이상인 278석을 확보, 승리하는 경우의 수를 보여준다.
CNN의 선거인단 시뮬레이터 'ROAD TO 270'을 활용한 모의 선거 결과. 접전 지역을 모두 내주고도 바이든이 과반 이상인 278석을 확보, 승리하는 경우의 수를 보여준다.

 

진짜 문제는 우편투표 둘러싼 음모론과 ‘가짜뉴스’

이번 미 대선의 최대 화두 중 하나는 바로 우편 투표다. 미국 대선의 투표 방법은 크게 우편 투표, 사전 직접투표와 선거 당일 현장투표로 나뉘는데, 올해 코로나 사태의 영향으로 비대면 방식인 우편 투표 건수가 급증했다. 선거분석 단체 미국선거프로젝트 (U.S. Elections Project)에 따르면 미국 내 우편투표자 수는 1일 기준 무려 560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된다. 4년 전에 비해 2천만명 이상 증가한 수치다. 전체 사전투표가 1억명을 넘길 것이라는 예측까지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대선을 앞두고 극우 언론을 중심으로 우편 투표를 둘러싼 음모론이 조직적으로 유포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우편 투표가 반 트럼프 진영의 대규모 부정선거 수단으로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다는 것이 음모론의 골자다. 하버드 대학교 산하 버크만 클라인 센터 (Berkman Klein Center for Internet & Society) 연구진에 따르면 이번 선거기간 중 우편투표 관련 허위정보 대다수가 SNS 플랫폼이 아닌 워싱턴 이그재미너, 브라이트바트, 뉴욕포스트 등 극우 성향 매스 미디어를 통해 유포된 것으로 드러났다. SNS가 가짜뉴스의 진원지일 것이라는 통념과는 달리 수십만의 독자를 거느린 기성 언론매체들이 정치적인 목적을 띠고 “프로파간다 악순환(propaganda feedback loop)" 조성에 앞장서고 있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 본인이 “우편 투표 조작설”의 진원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6월 트위터에 “우편투표는 부정 선거로 이어질 것” (“Mail-In Ballots will lead to a RIGGED ELECTION!”) 이라는 주장과 함께 극우 황색언론 브라이트바트의 기사를 인용하는가 하면, 지난달 열린 1차 대선 토론회에서는 웨스트 버지니아주의 집배원이 투표 용지를 매매했으며 (“selling ballots”) 투표 용지들이 강에 버려지고 있다 (“being dumped in rivers”)는 허위 주장을 펼쳐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이외에도 방송 인터뷰, 유세 현장 등에서 비슷한 발언을 이어 나가며 음모론 확산에 불을 지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객관적인 열세에 놓인 가운데 투표 정당성에 흠집을 내어 대선 불복의 포석을 놓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끊이지 않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번 대선에서 우편 투표가 대규모 부정선거로 이어졌음을 시사하는 근거는 없다. 우편투표의 신뢰성에 관해서는 뉴욕대학교 로스쿨 산하 브레넌 센터 (Brennan Center for Justice)에서 지난 2017년 이미 한 차례 팩트체크한 바 있다. 해당 기관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까지 미국 내 선거에서 부정 투표 (voting fraud) 발생 비율은 0.0003%에서 0.0025% 사이에 불과하다. 조직적인 투표 조작과는 거리가 먼 미미한 수치다. 이외에 우편투표의 신뢰성을 뒷받침하는 자료로는 애리조나 주립대 언론대학 (Arizona State University’s journalism school) 연구진의 프로젝트, 워싱턴포스트와 전자등록정보센터 (Electronic Registration Information Center)에서 공동으로 진행한 연구결과 등이 있다. 모두 선거 당락에 영향을 미치기에는 턱없이 낮은 수치를 보여준다.

종합해보면, 트럼프가 일반적인 투표로 승리할 가능성은 매우 낮은 편이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에서 자체 모델을 사용해 분석한 결과 트럼프 재선 확률을 4%라고 집계해 보도했을 정도다. 하지만 현지시간 1일 오후 트럼프가 대선 당일날 바로 승리를 선언할 계획을 측근들과 논의했다는 언론보도가 나왔다. 바이든 몰표가 확실시되는 사전 우편 투표지들이 선거당국에 도착하기 앞서 자신이 개표 결과에서 앞서고 있을 때 선수를 치겠다는 계산이다. 대선 이후 미국 정국이 혼란에 빠질 것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실제로 미국 선거를 앞두고 총기 판매가 급증했으며 소요사태를 대비해 상점들이 철문을 덧대거나 아예 문을 닫고 있다. 그야말로 폭풍전야의 미국 대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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