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민주당 재보선 공천 여론' 정말 압도적 지지인가?

  • 기자명 선정수 기자
  • 기사승인 2020.11.02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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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당헌 96조 ②항은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사건 등 중대한 잘못으로 그 직위를 상실하여 재·보궐선거를 실시하게 된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한다. 민주당 소속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각각 성폭력 범죄에 연루돼 해당 지역들은 내년 4월7일 보궐선거를 치러야 한다.

당헌을 따르자면 민주당은 내년 보궐선거에 후보를 내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현실론에 부딪힌 민주당은 후보 공천으로 가닥을 잡았다. 내년 보궐선거에 패할 경우 2022년 대통령 선거에 매우 불리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같은 판단에서 더불어민주당은 10월 31일(토)부터 11월 1일(일)까지 ‘당헌 개정을 통한 내년 재보궐선거 후보공천’에 대한 전당원 투표를 진행했다. 모두 21만1804명이 투표에 참여했고, 투표율은 26.35%를 기록했다. 찬성 86.64%, 반대 13.36%로 찬성이 많았다.

민주당은 결과를 놓고 "짧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높은 투표율을 기록한 것은 재보선에 대한 당원들의 관심을 반영한 것"이라며 "86.64%라는 압도적인 찬성율은 재보궐선거에서 공천해야 한다는 전당원의 의지의 표출"이라고 자평했다. 이어 "이번 재보궐 선거에서 후보를 공천하여 시민들의 선택을 받는 것이 책임정치에 더 부합한다는 이낙연 대표와 지도부의 결단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라고 덧붙였다. 민주당은 2일 최고위원회 의결과 당무위원회 부의안건을 처리하는 등 당헌개정에 바로 착수했고 3일 중앙위원회 열어 당헌개정을 완료할 예정이다.

출처: 더불어민주당 홈페이지
출처: 더불어민주당 홈페이지

 

① 당원 압도적 지지? 투표율 26.35%를 어떻게 볼 것인가?

이번 민주당 전당원 투표의 투표율은 26.35%를 기록했다. 이 가운데 86.64%(18만3506명)이 찬성표를 던졌다. 비율만 놓고 따져보면 압도적으로 당헌 개정에 대한 찬성이 많았다. 그러나 투표율 26.35%를 뒤집어보면 73.65%가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당내 투표가 아니라 일반 총선, 대선 투표율과 비교하면 한참 낮은 수치이다. 국민 참여가 높지 않은 지방선거 투표율과 비교해도 낮다. 

유형별로 최근 다섯차례 선거 중 가장 낮은 투표율을 기록한 선거는 17대 대선(63%), 18대 총선(46.1%), 제3회 동시지방선거(48.9%) 였다. 민주당 전체 권리당원은 80만3959명이다. 이번 투표에서 찬성을 던진 인원은 전 당원의 22.82%에 불과하다

 

② 전당원 투표=실리 추구 동력 확보?

이번 민주당의 전당원투표는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재보궐 선거에 후보를 내기 위한 명분쌓기 수순이다. 당헌을 개정하면 민주당은 거리낌없이 두 지역의 시장 후보를 낼 수 있다. 민주당은 서울·부산 시장 보궐선거를 차기 대선을 향한 교두보로 인식하고 있다.

서울시장 출마를 고려 중인 우상호 의원은 지난달 30일 CBS라디오에 출연해 “우리가 후보를 내지 않아서 국민의힘 후보들이 당선된다고 치면 그 다음은 대선 국면”이라면서 “국민의힘 서울·부산시장이 연일 반정부적 행보를 하게 될 경우에 주는 영향력이 너무 크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명분보다 실리를 택해야 할 때 전당원투표를 실시한 전력이 있다. 지난 3월 총선국면에서 비례위성정당을 추진하지 않는다는 당론을 변경할 때도 전당원투표를 실시했다. 당시 전당원투표에서 74.1%(17만9096명)의 찬성으로 비례위성정당 참여를 결정한 바 있다. 당시 강훈식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전당원투표에 78만9868명 중 24만1559명이 참여해 역대 최대 투표율인 30.6%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③"투표율 미달 효력 없어" vs "의견 투표라 무방"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은 1일 페이스북을 통해 "민주당이 당헌 개정을 위한 전 당원 투표 결과 찬성이 86.64%로 나타나 높은 지지를 받았다며 호들갑을 떨고 있지만, 투표에 참여한 권리당원은 21만1804명으로 전체 권리당원의 26.35%에 불과하다"며 "3분의 1에 못 미친 것으로 투표성립요건인 정족수를 채우지 못하여 무효"라고 주장했다.

민주당 당규에 따르면 전당원투표는 발의 서명인 수의 100분의 10을 충족해 청구된 뒤(제35조 3항), 선거관리위원회가 정한 20일 이상 30일 이내 기간 동안 선거운동을 거쳐 실시된다(제38조 2항). 이후 결과는 투표권자 총수의 3분의 1 이상의 투표, 유효투표 총수 과반수의 찬성으로 확정된다(제38조 3항).

이에 대해 민주당 공보국은 "지난 주말 당원들의 의견을 물은 전당원 투표는 유효투표 3분의 1 이상의 투표 조항 적용대상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최인호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2일 "당원들의 의지를 물은 것이고, 당헌 개정은 내일 열릴 중앙위 의결을 통해서 절차가 완료될 것"이라고 했다. 

 

④대선 공약 막 뒤집어도 되나?

개정 대상이 된 민주당 당헌은 문재인 대통령이 민주당 전신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를 역임했던 2015년 제정된 것이다. 당시 김상곤 위원장이 이끄는 혁신위원회는 무공천 사유를 ‘부정부패 사건’에 한정하던 것을 ‘부정부패 사건 등 중대한 잘못’으로 확대했다. 지자체장들의 부정부패 뿐만 아니라 성추행과 같은 잘못 역시 당이 책임지겠다고 밝힌 셈이다.

이후 당명이 바뀌었지만 당헌 내용은 그대로 계승됐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 <공직선거제도 개편, 37p>에도 "부정부패 등으로 재·보궐선거 사유를 제공한 정당에 대해 당해 선거에 해당 정당의 후보 무공천 제도화"라는 내용으로 반영됐다.

이에 대해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 본청에서 열린 당 대표단회의 서면 모두발언에서 "더불어민주당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비상식적 꼼수이니 '당원들의 폭넓은 선택권'이라는 구차한 변명 뒤에 숨은 것 아니냐"고 밝혔다. 이어 "당원 투표가 그저 요식행위에 불과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며 "필요할 땐 혁신의 방편으로 사용했던 약속을 헌신짝 버리듯 하는 모습은 분명 민주당 역사의 오명으로 남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성 비위라는 중대한 범죄에 연루된 단체장의 보궐선거에 또다시 자당 후보를 출마시키는 철면피는 최소한 피해자들에 대해 어떠한 반성도 책임도 지지 않겠다는 태도"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정치적 손익만을 따져 손바닥 뒤집듯 쉽게 당의 헌법을 바꾸는 것은 당원 투표라는 미명으로 행하는 것은 정치에 대한 신뢰, 정당의 책임정치를 기대한 많은 민주시민에 대한 모욕"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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