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논문'과 '가짜 편집자'...약탈적 저널이 심각하다

  • 기자명 지윤성 기자
  • 기사승인 2018.12.20 0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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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 기사에서는 오픈 액세스 운동의 정의와 약탈적 저널의 등장에 대해 기술했다. 3회 기사에서는 저널 기득권을 깨기 위한 오픈 액세스의 발전 과정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 이후 '약탈적 오픈 액세스 저널' 판별 실험을 통해 어떤 문제점이 드러났는지 밝힌다. 

뉴스톱 <약탈적 저널과 학계 연구윤리> 시리즈

논문인용 세계 1% 과학자? '학계 퇴출' 저널에 실렸다
'상위 1% 연구자' 논란의 이면 '오픈 액세스' 운동 
③'사기 논문'과 '가짜 편집자'...약탈적 저널이 심각하다
‘아가왈과 경상대 수학자는 어떻게 '세계 1%'가 됐나
가짜 학회와 약탈적 저널 배경엔 정부의 '정량적 평가'

 

1. '푸앵카레 추측'을 푼 천재는 왜 오픈 액세스 아카이브에 투고했나

그리고리 페렐만

2000년에 미국의 클레이수학연구소는 수학계 최대 7가지 난제를 선정하고 '밀레니엄 문제'라고 명명했다. 각 문제마다 100만달러의 상금을 걸고 수학계의 적극적인 도전을 권장했다. 이 중 유일하게 해결된 문제는 '푸앵카레의 추측'이다. 그런데 이 문제를 푼 사람은 당시 거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러시아 수학자 그리고리 페렐만이었다. 페렐만은 3편의 논문을 2002~2003년에 게재했다. 그런데 페렐만이 논문을 실은 곳은 미국 코넬대에서 운영하는 무료 논문저장소인 arXiv(아카이브)였다. arXiv는 오픈 액세스 운동의 일환으로 등장한 세계 최대 무료 논문 저장소다.  

푸앵카레의 추측을 푼 공로로 페렐만은 2006년 수학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필즈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그러나 그는 수상과 상금, 그리고 유명 대학의 교수 제의도 모두 거부했다. 고국 러시아에서 어머니의 사회보장 연금에 기대어 개인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나의 증명이 확실 한 것으로 판명됐으면 그만이다. 더 이상 다른 인정은 필요 없다.”

페렐만이 한 말이다. 그와 관련된 이야기는 EBS 지식채널ⓔ에서 다룬 적이 있다.

참고로 페렐만의 논문 제목에는 푸앵카레의 추측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지 않기 때문에 다른 학자들도 그가 무엇에 대해 쓴 것인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논문이 짧지만(각각 39, 22, 7페이지다) 난해하기 때문에 페렐만이 푸앵카레 추측을 증명했다는 것이 확인되기까지 3년이 걸렸다. 수학계가 일종의 TF를 구성했음에도 검증에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이다. 게다가 검증과정에서 많은 수학자들이 그의 증명을 이해하지 못해 폄훼하는 일이 발생했다. 

그가 오픈 액세스 저널에 논문을 실은 이유는 단순하다. 그의 논문을 받아줄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세계적 수학자들이 검증하는데만 수년이 걸리는 논문이 주류 저널에 실릴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게다가 그는 무명의 수학자였다. 주류 학자들이 그의 논문을 제대로 평가할 가능성은 매우 낮았다. 

페렐만이 주류 수학계로부터 받은 홀대는 유일한 인터뷰 기사인 뉴요커의 Mainfold Destiny에 잘 나와 있다. 이 기사에는 주류 수학계의 만연한 파벌싸움과 비도덕성, 그리고 중국 과학계와 서구 과학계의 알력다툼이 드러나 있다. 위키피디아에 이 기사에 대한 별도의 해설이 있을 정도로 화제를 불러일으킨 기사였다. 

이 기사에는 페렐만과 더불어 또 한 명의 필즈상 수상자가 중요 인물로 등장한다. 1982년 필즈상 수상자이면서 미국의 국가과학메달(National Medal of Science)까지 수상한 하버드대 교수 야우싱퉁이다. 그는 본인의 명성과 학계 지위를 이용해 페렐만의 논문을 깍아내렸고, 중국출신 과학자를 노골적으로 밀어주는 등 파벌을 형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류 수학계는 물론이고 언론도 권위에 눌려 야우싱퉁을 옹호하는 분위기였다. 그 때문에 페렐만은 "주류 수학계의 도덕적 기준에 실망했다"고 말했다. 그가 언론노출을 꺼리고 오픈 액세스를 이용해 혼자 연구를 진행하게 된 계기다. 

이 삽화는 페렐만의 필즈상 메달을 낚아채는 야우싱퉁을 풍자하는 내용이다. 출처: 뉴요커

페렐만의 사례는 오픈 액세스 운동이 왜 시작됐고 어떤 긍정적 효과가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페렐만 같이 명성과 돈을 떠나 순수히 연구에만 매진하는 과학자를 위한 논문 공유 플랫폼으로 시작한 오픈 액세스는 주류 학계와 지배적 저널 기득권에 대한 도전으로 발전하고 있다. 

 

2. 오픈 액세스 저널 발전과 거대 출판사들의 개입

전통적 학술 저작물 모음인 저널은 구독과 건당 판매가 주 수익원이다. 개별 혹은 집단 구독처럼 접근경로를 통제하여 돈을 받거나 페이퍼뷰 형태의 종량제로 돈을 번다. 구독형 저널에 실리는 논문의 저작권도 통상적으로 저널에 귀속된다. 분명한 것은 저널은 고도로 폐쇄적인 상업출판(Commercial Publishing)이다.

반면 오픈 액세스(Open Access)란 비용과 장벽의 제약없이 이용가능한 연구성과물을 말한다. 기존 학술생태계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등장하였으며 법적, 경제적, 기술적 장벽 없이 누구라도 무료로 정보에 접근, 활용할 수 있도록 저작물 생산자와 이용자가 정보를 공유하는 행위를 부르는 말이기도 하다. 오픈 액세스는 저자의 비용 부담, 이용자의 무료 접근, 시공간을 초월한 상시적 접근, 저자의 저작권 보유 등의 4대 원칙을 강조하는 정보 공유체계다. 저작물의 자유로운 이용을 위해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를 따르고 있다. 

오픈 액세스의 역할.

오픈 액세스의 시작은 1995년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스탠퍼드대 도서관은 학술 연구 결과를 보다 효율적으로 유통시키기 위하여 새로운 플랫폼을 만들었다. 과학기술분야 학회 및 출판사들이 새로운 정보 기술을 활용할 수 있도록 설립된 것이 하이와이어(HighWire)다. 하이와이어에 주간 저널인 JBC(Journal of Biological Chemistry)가 온라인 형태로 출판되면서 오픈 액세스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부다페스트 오픈 액세스 선언(BOAI)의 주역들. 출처:위키피디아

오픈 액세스의 핵심 가치가 잘 드러난 것은 2002년 2월 부다페스트 오픈 액세스 선언(Budapest Open Access InitiativeㆍBOAI)이다. 전 학문분야의 연구 논문을 일반인이 인터넷을 통하여 무료로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들은 오픈 액세스를 '재정적, 법률적, 기술적 장벽 없이 인터넷을 통해 학술논문의 원문을 누구나가 무료로 접근하여 읽고, 다운로드하고, 복제하고, 배포하고, 탐색할 수 있도록 저자들이 허용하는 것'이라 정의하였다.  개방사회학회(Open Society InstituteㆍOSI)는 오픈 액세스의 목표달성을 위하여 지원과 자금을 제공했다. 구체적인 전략으로 셀프 아카이빙(Self-archiving)의 확대와 새로운 오픈 액세스 저널(Open access journal)의 창립을 제시하고 이 시스템이 자생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오픈 액세스는 학술정보 유통에 있어서 지나친 상업화로 논문 이용 부담 능력이 전무하거나 미약한 국가, 기관, 도서관, 개인 등을 위해 등장했다. 가격 및 접근성이라는 높은 진입장벽을 제거해 연구자들이 학술정보, 학위논문 및 학술지 논문을 자유롭게 이용해 원활한 학술소통을 가능하게 하는데 있다. 

오픈 액세스 구현 방안 크게 셀프아카이빙과 오픈 액세스 저널로 요약된다.

 

오픈 액세스 저널(OAJ)의 출판은 7가지의 유형이 있다. 미시간 주립대 교수인 데이비드 솔로몬은 본인의 저서(Developing open access journals: A practical guide)에서 이같은 내용을 자세히 소개(p.19)했다.

  1. Author Fee: 논문 저자가 출판 비용 부담. APC(Article Processing Charge)
  2. Subsidized: 대학 학과, 도서관, 학술지 운영자들이 비용 지원 
  3. Added Value: 웹은 무료지만 고화질이나 PDF 다운로드는 건당 과금
  4. Delayed: 논문 게재 초기엔 PPV. 일정 시간이 지난 후 무료 배포
  5. Partial: 특정 저널에서 일부는 무료 공유하고 일부는 건당 과금
  6. Selected:  학생 등 특정 그룹에게만 무료 공개
  7. Cooperative: 여러 저널이 시스템, 편집, 광고 자원 공유로 비용절감해 공개

 

이중에서 1번이 현실적이지만 논문 공개 의지를 저하시킬 가능성이 있고 질 낮은 논문들을 무차별적으로 게재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모델이다. 2번 지원형이 오픈 액세스 운동에서는 가장 추천하는 모델이다. 현재 개방사회학회에서는 개발도상국 저자들이 투고시 출판비용을 일부 지원해주고 있으며 미시간 대학이나 일리노이 대학, 스웨덴 등 유럽 일부 대학에서도 비용을 지원해주고 있다. 코넬 대학의 경우 소속 연구자들이 오픈 액세스 저널에 출판시 기금을 출연하고 있다.

오픈 액세스 저널 현황은 DOAJ(Directory of Open Access Journals)에서 확인 가능하다. 2018년 12월 19일 현재 129개국에서 1만2397개 저널을 등록한 상태다. 해마다 출판되는 논문의 수는 엄청난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대학들이 OA 의무제출을 연구비 지원 조건으로 내걸고 있으며 특히 해외 공공연구기금은 그 빈도가 높다. 

 

오픈 액세스 저널수 추이. 출처: OASPA

 

그런데 오픈 액세스 시장이 커진데는 기존 학술 출판사들의 개입도 영향을 미쳤다. 최근 들어 거대 학술 출판사들이 오픈 액세스 저널을 사들이고 있다. 2015년 1월 런던에 기반을 둔 '네이처' 및 '사이언티픽 어메리칸'의 출판사 <맥밀란 사이언스 & 에듀케이션>은 베를린에 기반을 둔 세계 최대 과학 출판사 <스프링어(Springer) 사이언스 플러스 비즈니스 미디어>와 합병했다. 스프링어는 2014년 7월까지 20만건의 오픈 액세스 논문을 출판했다. 거대 출판사중 하나인 엘스비어(ElsevierㆍSCOPUS 인용지수를 발표하는 출판사로 ‘더 셀’지 소유)는 오픈 액세스 저널의 성장을 예측하고 많은 오픈 액세스 저널을 인수 합병하면서 최대 출판사 지위도 점유하게 된다. 아가왈이 만든 FTPA (Fixed Point Theory and Application) 역시 오픈 액세스 저널로 현재 스프링어에 인수된 상태다. 전통적인 구독자 기반 유명 저널들도 저자들에게 오픈 액세스 출간을 옵션으로 같이 제공 하는 경우가 일반화 되기 시작한 점도 특징이다.

기존 저널들에 오픈 액세스 저널까지 다량으로 소유한 거대 출판사들은 확보된 빅데이터를 활용하여 투고대상 저널 선택까지도 도와주는 저널 추천기(Journal Suggester) 사업까지 시작했다. 이는 결국 자사가 보유한 저널 리스트만을 우선 선별해주는 '가두리 양식장 모델'을 통해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자 하는 전략이다. 기존 저널의 폐쇄적이고 독점적인 권력을 극복하여 자유로운 논문 출간과 이용을 보장하고자 하는 오픈 액세스 운동이 아이러니하게 다시 기득권 저널의 자본아래 놓이게 된 상황이다. 거래장부의 분산화를 기본 철학으로 내세운 암호화폐가 제도권으로 진입하면서 돈벌이수단으로 전락한 아이러니한 현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한국의 오픈 액세스 저널은 DOAJ 기준으로 89개가 운영되고 있으며 국내 오픈 액세스 저널에 실린 논문수는 약 2만개에 달한다. 한 예로 한국지반공학회지의 저널 출판시스템과 출판사는 스프링어(SpringerOpen)로 되어 있다.

오픈 액세스 저널인 한국지반공학회지 현황

기존 저널들이 일부 오픈 액세스 저널을 '약탈적 저널'이라고 부르는데 위로 거슬러 올라가면 거대 학술 출판사로 그 소유주가 동일하다. '약탈적 저널' 문제가 오픈 액세스의 문제인지, 학술 출판업계의 문제인지 모호하다는 것이다. 오픈 액세스 저널을 활용하는 것은 더이상 개발도상국의 무명 연구자만이 아니다. 시스템만큼 개인의 연구 윤리가 중요하다는 의미다. 2017년 5월 스프링어는 자사 소유 오픈 액세스 저널인 <Tumor Bilology>의 중국 저자 논문 107편을 게재 철회한 바 있다. 사상 최대 규모다. 저자가 직접 피어리뷰어를 추천했는데 이 과정에서 조작이 밝혀졌다. 이들 중 일부는 베이징대, 상하이교통대, 푸단대, 중국의과대 등 중국 내 일류대학 출신이었다. 

오픈 액세스 운동의 의의는 작지 않다. 유명 학술 저널에 실리지 못한다고 반드시 논문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논문을 출간하여 평가를 받아보고자 하는 연구자 입장에서 오픈 액세스는 단비같은 플랫폼이다. 오픈 액세스 운동은 거스를 수 없는 학술 출판계 대세가 되고 있다. 문제는 진입장벽을 낮추니 수준 이하의 저널들이 우후죽순 생겼고 피어리뷰 없는 논문 게재와 인용수 부풀리기 등 부작용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3. 사기 논문으로 157개 학술지를 통과하다

2013년 10월 사이언스지는 '누가 피어리뷰를 두려워 하는가? (Who's Afraid of Peer Review?)'란 기사를 게재했다. 일종의 사회 실험을 통해 피어리뷰 없이 논문을 게재해 준 오픈 액세스 저널 사례를 공개했다. 2010년 제프리 빌이 '빌의 리스트'를 공개하며 오픈 액세스 진영에 대한 문제제기를 한 뒤 물밑으로 가라앉았던 '약탈적 저널' 문제가 다시 수면위로 떠올랐다.  

실험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존 보허넌(John Bohanon) 과학전문기자는 “이끼류에서 추출한 물질이 담긴 시험관에서는 암세포 증식의 속도가 저하됐다”는 내용의 가짜 논문을 만들어 10개월 동안 전 세계 304개의 오픈액세스 학술지에 투고해 255개 학술지에게서 답신을 받았다. 논문에 담긴 기본적인 논리와 데이터가 엉망이었음에도 157개 학술지가 게재 허가 통보를 보내왔다. 거절한 학술지는 98개에 불과했다. 동일 분야 연구자가 검증을 진행하는 ‘피어리뷰’를 실시한 학술지 비율은 40%가 채 되지 않았다. 60% 이상이 가짜 논문을 승인해 준 것이다. 

당초 오픈 액세스 진영에서는 초기부터 투명성을 강조해왔다. 투명하고 정직하지 않다면 오픈 액세스 운동 자체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오픈 액세스 학술 출판 협회(Open Access Scholarly Publisher Association)의 투명성 원칙은 오프라인 구독형 저널과 동등한 수준의 투명성 원칙을 준용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피어리뷰 없이 논문을 개제하는 것은 연구윤리준칙을 위반한 것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사이언스지의 보도가 나오자 오픈 액세스 학술지를 관리하는 학자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전 세계 오픈 액세스 학술지 목록을 서비스하는 DOAJ 창립자인 라르스 뵈른스하우게(Lars Bjørnshauge) 스웨덴 룬드대학교 교수는 “전체의 45퍼센트만이 피어리뷰를 진행했다”며 “믿기 어려운 일”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오픈 액세스 학술지 협회(OASPA)의 폴 피터스(Paul Peters) 회장은 “이번에 발견된 문제 학술지는 협회 탈퇴 결정을 통보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가짜 논문' 소동의 과학적 검증 방법에 이의를 제기했다. “구독 기반 학술지와 오픈 액세스 학술지 중 무작위로 여러 곳을 선정해 대조군을 만들어야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2015년 다른 연구에서는 장기적인 데이터로 봤을 때 오픈 액세스 저널에 문제점이 많은 것은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2010년 부터 2014년까지 오픈 액세스의 약탈적 논문 증가 현황. 출처:BMC Medicine

도표는 위에 언급한 연구에서 인용한 것이다. 2010년대 들어 '약탈적 논문'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약탈적 오픈 액세스 저널을 이용하는 연구자중 아프리카와 아시아 저자들이 76.7%를 차지하고 있고 약탈적 논문의 교신저자 34.7%가 인도 출신 연구자다. 최근 문제가 된 아가왈도 인도 출신이다. 약탈적 저널 문제를 다룬 다른 기사를 보면 약탈적 논문은 인도출신이 압도적으로 많이 생산하고 있지만 미국에서도 그 다음으로 많이 나오고 있다.

약탈적 저널에 게재된 분야별 논문 수. 상대적으로 물리학-수학분야는 적다. 출처:BMC Medicine
'약탈적 오픈 액세스 저널' 출판사의 지역 분포. 인도가 가장 많지만 미국 및 유럽도 26.3%를 차지 하고 있다. 출처:BMC Medicine
약탈적 오픈 액세스 저널 개제 논문의 교신저자 지역 분포. 역시 인도가 가장 높다. 출처:BMC Medicine

 

약탈적 저널에 게제된 논문의 지역별 분포. 중진국인 인도가 가장 많지만 선진국인 미국이 뒤를 잇고 있다. 출처: navigus.in

 

4. '인용수 부풀리기'는 얼마나 정확하게 검증될 수 있나

1회 기사에서는 임팩트 팩터(IF)를 높이기 위해 약탈적 논문들이 상호 인용하는 실태에 대해 간략히 설명한 바 있다. 임팩트 팩터(IF)의 계산식은 다음과 같다. 2016~2017년 저널 A에 실린 논문의 총수를 'PQ'라 하고 2년간 게재된 논문들이 2018년에 인용된 총 수를 'CQ'라고 할 경우 저널 A의 2018년 임팩트팩터는 아래와 같은 도식으로 설명된다.

IF of 저널 A = CQ/PQ

 

IF를 올리려면 분자인 CQ, 즉 피인용수를 늘려야 한다. 그런데 인용수 부풀리기는 오픈 액세스 저널만의 문제는 아니다. 전통적인 구독형 저널에서도 관행적으로 행해졌던 문제다. 국내에서도 이런 일이 발생해 문제가 된 적 있다. 2017년 대한의학회 산하 특정 학회는 논문 저자들에게 자신들의 학술지를 인용해줄 것을 요청했고 인용횟수에 따라 장려금을 지급한 것이 확인되어 논란이 된 바 있다. 해당 학회지의 SCI등재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비윤리적인 인용 부풀리기가 공공연하게 실행된 것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오픈 액세스 저널이 기존 구독형 저널에 비하여 더 많은 자기인용과 IF를 기록하는 것은 사실이다.

 

오픈 액세스와 비 오픈 액세스 저널의 인용 횟수 비교. 오픈 액세스 논문이 압도적으로 인용 비율이 높다.

 

접근 장벽이 없는 오픈 액세스의 특성상 오픈 액세스 논문이 더 많은 연구자들의 인용을 받는 것이야 당연한 결과다. 문제는 본인이 저널을 만들고 본인이 쓴 논문을 본인이 인용하는 자기 인용이 약탈적 오픈 액세스 저널에서 빈번히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저널 편집장이 논문 게재를 원하는 연구자에게 자기 저널의 논문을 더 인용할 것을 요구하거나 교신저자로 넣어줄 것을 요청하는데 이를 제재하거나 감시하는 것은 쉽지 않다. 

 

임팩트 팩터가 1 이하지만 SCI급(SCOPUS)에 등재되어 있는 오픈 액세스 저널 대한통증학회지.

그런데 인용수를 인위적으로 부풀렸는지 여부를 판별하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니다. 대한통증학회지의 논문 인용 정보를 한국학술지인용색인에서 보면 아래와 같다. 자기 저널 및 관계 저널의 인용비율과 피인용 비율이 압도적으로 모두 높다. 이것만 가지고 약탈적 저널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까 ?

대한통증학회지의 자기인용 비율은 56.34%를 기록하고 있다.
대한통증학회지가 인용한 학술지의 68%는 대한통증학회지 논문이다.

공저자 관계 분석(Co-Authorship Network Analysis), 이해상충 분석, 연구자 규모 분석, 글로벌 연구 그룹 현황 등 다양한 면을 분석해야 하며 동시에 논문의 질적 분석까지 병행해야지만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아가왈의 사례는 '상위 1% 연구자'라는 타이틀이 주어지면서 수학계의 전문가가 직접 평가에 나섰고, 국내에서는 감동근 교수가 공저자와 이해상충 분석을 통한 검증을 하면서 비교적 논란 여지가 없는 편이다. 그러나 다른 사례가 이처럼 '딱 떨어지기'는 쉽지 않다. 

 

5. '가짜 편집자'를 검증없이 고용하다

최근엔 자격이 검증되지 않은 '가짜 편집자(fake editor)' 고용 문제가 불거졌다. 2015년 폴란드의 한 대학팀이 가상의 연구자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작성해 약 360개의 저널에 에디터가 되고 싶다고 메일을 보냈다. 이중 약탈적 저널로 의심되는 40개 저널과 8개의 오픈 액세스 저널로부터 채용을 하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4개의 저널로부터는 편집장 자리를 주겠다는 연락도 받았다고 한다. 이 같은 내용은 2017년 네이처에 자세히 소개됐다.

이들 저널은 가상으로 만들어진 자기 이력서의 학교 정보나 연구실적 확인 등을 전혀 거치지 않은 것으로 확인 되었다. 편집자는 저널의 품질과 수준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결국 약탈적 저널들은 가공의 편집인력을 통하여 위장된 공신력과 전문성을 광고하면서 연구자들의 논문 사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연구자들만 욕할 상황도 아니라는 것이다.

최근 한겨레21이 재밌는 실험을 했다. 존재하지도 않는 대학에서 교수로 일했다는 가짜 이력서를 만든 뒤 친환경 화장품 대표라고 소개하고 언론홍보대행사에 돈을 주고 기사로 내보내 줄 것을 요청했다. 주요 일간지 중 하나와 일간지 자매지가 검증없이 이를 기사화했다. 기사까지 돈으로 거래되는 한국 언론의 민낯이 드러난 순간이었다. IT전문가와 의사, 부동산전문가를 사칭한 가공의 전문가 서준혁씨를 만든 것도 언론이었다. 그런데 지금 학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한국언론이 하는 일과 다를 것이 없다. 부끄러운 일이다.

 

6. '공유지의 비극'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정보는 공유됨으로써 가치가 상승하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과학 연구의 궁극적인 목적이 인류와 사회의 발전에 있는 이상 논문 공유와 이용에 제약이 없는 것이 훨씬 공익적이다. 그러나 늘 그렇듯이 선의의 시스템은 몇몇 이기적이고 상호 규칙을 어기는 사람들에 의하여 망가지게 된다. 공유지의 비극처럼 말이다.

논문 출판에는 돈이 많이 든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둘다 발행할 경우 미국돈 4871달러가 필요하다. 온라인만 출판할 경우 그 절반이면 된다.

오픈 액세스는 논문의 공급자와 소비자를 장벽 없이 연결시켜주는 전 세계적인 약속이자 규약이다. 또한 거스를 수 없는 과학 출판계의 대세이다. 단 투명성 원칙이 지켜질 때에만 저널로서 가치가 있다. 약탈적 저널은 오픈 액세스 운동의 가치를 배반한 것이다. 약탈적 저널 상당수가 오픈 액세스 저널이지만 모든 오픈 액세스 저널이 약탈적 저널이 아님은 분명하다.

공유지의 비극을 막기위해 어느정도의 시장개입이 요구되는 것처럼, 오픈 액세스 생태계가 건강해지려면 중립적인 평가 내지는 감사기관이 존재해야 한다는 의견이 전세계 학계에서 대두되고 있다. 학계, 도서관, 특정 기관이 참여한 세계적 컨소시엄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학자 개인의 양심에 호소해서 해결할 수 있는 시점은 넘은 것으로 보인다.

다음 3회차 기사에서는 클래리베이트가 공개한 '상위 1% 논문' 데이터 분석을 통해 아가왈과 그의 저널, 그리고 경상대 수학자들이 어떻게 연구윤리를 위반했는지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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