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법 논란] 정부는 왜 노동법을 고치려 하나? 그리고 개선인가 개악인가?

  • 기자명 선정수 기자
  • 기사승인 2020.11.23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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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계가 정부의 노동법 개정 시도를 '노동 개악'으로 규정하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정부는 국제노동기구(ILO)의 핵심조약을 비준하려면 꼭 필요한 절차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노동계는 정부의 노동법 개정안에 대해 "정부안 중에 ILO 기준에 부합하거나 노동기본권을 실질적으로 증진하는 내용은 없다"며 맞서고 있다.

민주노총은 정부의 노동법 개정을 '개악'이라고 칭하며 총파업까지 불사한다는 방침이다. 노동법 개정은 노동자의 삶을 바꾸고 노사관계를 변화시킨다. 2020년 진행중인 노동법 개정 무엇이 문제이고 나에겐 어떤 의미가 있을까? 뉴스톱이 5회에 걸쳐 심층 분석한다.

① 노동법 왜 고치나?

ILO 핵심협약 무슨 내용 담겼나

한국식 ILO 기준? – 어떻게 변형됐나?

노동법 개악 대신 전태일3법을!

전망 – 노조법 개정 가능할까?

총론: 현재까지 노동법 개정 흐름

현재 노동법 개정을 둘러싼 노동계·재계·정부의 갈등을 이해하려면 국제노동기구(ILO)의 핵심협약 비준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ILO 핵심협약 비준'은 처음에는 노동계의 오랜 염원이었다. 비준을 하려면 국내 노동법의 독소조항(노동계 입장)을 고쳐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재계는 ILO 핵심 협약 비준이 기업활동을 위축시킬 것이라고 반대를 해 왔다. 

그런데 정부가 ILO 핵심협약 비준을 이유로 노동법 개정을 추진했고 재계의 요청을 대폭 수용하면서 각계의 입장이 변했다. 재계는 노동법 개정에 찬성하거나 방관하는 입장이 된 반면, 노동계는 '노동법 개악'이라며 오히려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올해 안에 노동법 개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킨다는 방침이고, 민주노총은 총파업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아래에서 핵심 이슈별로 쟁점을 살펴본다.

 

① ILO 핵심 협약이란?

ILO 핵심협약 비준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표적인 노동분야 대선 공약 중 하나다. 구체적으로는 제87호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 협약’, 제98호 ‘단결권 및 단체교섭 협약’, 제29호 강제노동 협약, 제105호 ‘강제노동 철페 협약’ 등 4가지다. 문 대통령은 또한 ILO 핵심협약 비준에 따른 국내법 개정도 함께 공약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2017년 대선 공약.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2017년 대선 공약.

우리나라는 1991년 ILO에 가입한 이후 30년이 다 되어가는 오늘날까지 핵심협약을 비준하지 않고 있다. 정부마저도 "ILO 핵심협약은 ILO 회원국이라면 당연히 준수해야할 가장 기본적 노동권에 대한 협약"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정부는 "우리는 OECD 가입시(1996년), UN 인권이사회이사국선거시(2006, 2008년) 등을 계기로 국제사회에 핵심협약 비준을 여러 번 약속한 바 있다"고 밝혔다.

출처 : 월간노동리뷰 11월호 'ILO 핵심협약 비준의 쟁점'
출처 : 월간노동리뷰 11월호 'ILO 핵심협약 비준의 쟁점'

 

그러면 왜 ILO 핵심협약 비준은 30년째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핵심협약과 국내법이 상당 부분 부딪히기 때문이다. 결사의 자유 협약의 경우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노동조합법), 공무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공무원노조법),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교원노조법)과 충돌한다. 그래서 국내 법을 먼저 개정한 뒤 통과시킨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다. 핵심협약 비준은 국무회의 의결, 대통령 재가 이후 국회의 비준안 동의가 필요하다. 정부여당이 마음을 먹으면 비준안을 통과시키는 것은 지금이라도 문제가 없다. 그래서 정부는 지금까지 노동계와 재계의 의견 수렴을 한 뒤 법안을 마련했다.

 

② 배경엔 EU와의 통상 압력

ILO 핵심협약 비준 추진에는 문재인 대통령 공약이라는 점 이외에도 EU(유럽연합)와의 통상 갈등이 있다. 2011년 FTA 발효 이후, EU는 꾸준히 ILO 핵심협약 비준 문제를 거론하며 불이익 조치를 할 수 있음을 시사해왔다. EU 입장에서는 한국의 노동인권을 개선한다는 명분으로 한국의 수출을 통제하는 수단을 갖게 된 것이다. 

EU는 한국이 ILO 핵심협약 비준을 미뤄온 게 한-EU FTA 위반에 해당한다며 2018년 말 한국을 상대로 분쟁 해결 절차에 돌입했다. 현재 EU는 "한-EU FTA에 규정된 ILO 핵심협약 비준 약속을 우리나라 정부가 지키지 않고 있다"고 반발하며 분쟁 해결 절차를 진행 중이다.  2011년 발효된 한-EU FTA협약 13.4조에는 "ILO 8개 핵심협약 및 이행장려협약 비준 및 준수노력 경주"에 관한 내용을 규정하고 있다. 

고용부는 "우리나라의 ILO 핵심협약 미비준을 이유로 EU가 FTA 협정문에 근거한 직접적인 무역제재를 가할 수는 없지만, 핵심협약 비준이 늦춰진다면 우리나라에 어떠한 형태로든 대응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있다"며 통상 리스크로 작용할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양국간 통관절차, 원산지 인정조건, 위생 및 식물검역 조치 등을 현행보다 엄격하게 적용하는 방법 등 우회적인 무역 제재 가능성을 우려하는 것이다. EU 수출에 지장이 생길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정부 입장에선 ILO 핵심협약 비준에 반대해온 재계를 설득한 명분이 생긴 것이다.

 

③ 재계와 노동계 주장을 섞은 '짬뽕안'

정부는 2018년 7월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 위원회’를 설치하고,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관련 제도 개선방안을 10개월간 30여 차례의 회의를 개최해 논의했다. 

결국 노사 양측의 입장 차로 합의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2019년 5월 논의가 종결됐다. 논의과정에서 노사정 추천 공익위원들이 그동안 노사 양측이 요구한 과제 등을 고려해 2차례 개선안을 마련해 발표했다.

정부는 2차 공익위원안을 토대로 결사의 자유 및 단체교섭 분야 핵심협약(제87호 및 제98호) 및 강제노동 금지 분야 핵심협약(제29호) 비준과 관련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개정법률안 등 4건의 정부입법안을 마련해 국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임기만료로 폐기된 후 21대국회 개원 직후인 6월을 전후해 4개 정부입법안을 다시 제출했다.

개정안은 ILO 핵심협약 기준에 맞춰 실업자와 해고자의 노조 가입을 허용하는 등 결사의 자유를 확대했지만, 경영계 요구에 따라 파업 시 사업장 점거 금지 등의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

 

④ 노동부의 노동법 개정안

고용노동부는 6월 30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고용부는 "국제노동기구(ILO)의 핵심협약인 「결사의 자유에 관한 협약」의 비준을 추진하면서 해당 협약에 부합하는 내용으로 법률을 개정하기 위해 현행 제도의 운영상 나타난 일부 미비점을 개선·보완하려는 것"이라고 법률 개정 취지를 설명했다.

주요 내용은 ▲해고자, 실직자의 기업 노조 가입 허용 ▲노조 전임자 급여지급 금지 규정 삭제 ▲단체협약 유효기간 2년→3년 연장 ▲생산·주요업무 시설 점거 금지 등이다.

ILO 4개 핵심협약(87호, 98호, 29호, 105호)를 모두 비준하지 않은 국가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7개국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중국, 브루나이, 마샬제도, 팔라우, 통가, 투발루이다.
ILO 4개 핵심협약(87호, 98호, 29호, 105호)를 모두 비준하지 않은 국가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7개국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중국, 브루나이, 마샬제도, 팔라우, 통가, 투발루이다.

문재인 정부는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실현과 차별 없는 좋은 일터 만들기를 국정과제로 삼고 있다. 노동기본권을 신장하고 어려운 현장 노동자들의 권리가 침해받지 않도록 사회적 대화를 통한 노사관계 법·제도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ILO 핵심협약 비준 또한 중요한 국정과제이다.

 

⑤ 노동계, 재계 모두 불만

단순하게 보면 ILO 핵심협약과 상충하는 국내법 조항들을 ILO 기준에 맞게 고치면 될 일이다. 하지만 노동법 개정과 맞물려 노동계와 재계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어 정부는 단순히 ILO 핵심협약과 국내법 조항을 일치시키는 방법을 선택하지 못했다.

고용부는 "노동관계법 개정에 대한 노·사의 요구사항은 이견이 크고 단기간 내에 타협이 불가능한 쟁점들이 다수 있었다"며 "정부가 이를 그대로 수용하기에는 노사관계에 미치는 영향이 심대하다고 판단해 합리적 수준에서 개정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고용부는 "정부 개정안은 결사의 자유의 핵심내용을 보장하면서도 우리 기업별 노사관계 특성을 균형있게 고려한 결과물"이라고 자평했다.

하지만 노동계는 "개정안의 실제 내용은 결사의 자유에 관한 협약에 부합하거나 노동자의 단결권을 확대하는 내용이 없다"며 "오히려 노동자의 노동3권을 옥죄는 명백한 노동개악안"이라고 반발한다.

재계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ILO 핵심협약 비준을 이유로 한 노조법 개정안은 지금보다 노조에 힘을 훨씬 더 많이 실어주는 내용밖에 없다”며 “우리나라의 노사관계 경쟁력이 세계 최하위 수준인 것도 노조의 힘이 지나치게 강하기 때문이므로 노조의 단결권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면 사용자의 대항권도 비준 국가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EU 역시 정부안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다. EU측은 노조법 개정안의 근로자 개념이 특수고용직 종사자를 포괄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자영업자의 결사의 자유 배제와 관련된 EU의 우려가 해소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EU는 기업별 노조의 임원을 기업 소속 조합원으로 제한한 노조법 개정안 조항도 문제로 거론하고 있다.  

이처럼 재계, 노동계 및 EU까지 핵심 이해당사자들이 모두 문제점을 지적하는 가운데 노동부가 제출한 노동법 개정안은 조만간 국회 통과를 앞두고 있다. 
 


<②ILO 핵심협약 무슨 내용 담겼나>편에선 노동법 개정 논란을 촉발시킨 ILO 핵심협약의 내용과 기본 정신에 대해 살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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