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즉석밥 용기는 분리배출해도 쓰레기?

  • 기자명 선정수 기자
  • 기사승인 2020.11.24 12:4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밖에서 먹기는 찜찜하다. 해먹자니 너무 귀찮다. 그래서 오늘도 즉석밥을 전자렌지에 돌린다. 멸치볶음과 도시락김을 곁들여 한끼를 해치웠다. 그릇까지 다 먹어버리려했지만 플라스틱이니까 참았다. 그런데 이 즉석밥 용기는 어디에 버려야 하나? 일단 잘 씻었다. 씻어야 분리배출이 가능하다고 하니까. 그리고 나서 플라스틱이니까 당연히 플라스틱으로 분리배출? 기사를 검색해봤더니 그게 아니란다. 즉석밥 용기는 분리배출해도 재활용이 되지 않고 쓰레기가 된단다. 그래서 팩트체크했다.

◈플라스틱 'OTHER'는 분리배출해봤자 쓰레기 된다? - 사실

인문교양 잡지 월간 유레카는 12월호에 <재활용,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유레카는 "(플라스틱 재질 분류 중)OTHER는 대부분의 비닐, 즉 과자나 라면 봉지, 햇반 용기 등에 쓰이는데 신소재 혼합 플라스틱이라서 역시 재활용 불가"라고 언급했다.

그래서 분리배출의 '바이블'인 '내 손 안의 분리배출' 앱을 즉시 구동했다. 

 

환경부 분리배출 가이드 앱 '내손안의분리배출'. "플라스틱 OTHER도 내용물을 비우고 물로 헹구는 등 이물질을 제거해 배출하라"고 안내한다.
환경부 분리배출 가이드 앱 '내손안의분리배출'. "플라스틱 OTHER도 내용물을 비우고 물로 헹구는 등 이물질을 제거해 배출하라"고 안내한다.

플라스틱은 HDPE, LDPE, PP, PS, PVC, OTHER 등 재질에 따라 종류별로 나눠 '플라스틱 수거함'으로 분리배출이 가능하다고 안내하고 있다. 그런데 왜 재활용이 안 된다고 기사를 썼을까?

다시 검색해봤다. 한국일보 <[뷰엔] 당신의 재활용은 틀렸다>, 조선일보 <플라스틱 컵에 알루미늄 덮개 붙어… 만들 때부터 '재활용 불능'>, 머니투데이, <[르포]이것은 '분리수거'가 아니다>등 수많은 기사에서 '플라스틱 OTHER'는 재활용이 불가능하거나 어렵다고 보도하고 있다.

이상하다. 그래서 전문가에게 물었다.

CJ제일제당 '햇반' 용기 아랫면. 플라스틱 'OTHER'로 분리배출하라는 표시가 있다.
CJ제일제당 '햇반' 용기 아랫면. 플라스틱 'OTHER'로 분리배출하라는 표시가 있다.

 

◈"선별장에서 쓰레기로 분류됩니다" - 버려지는 OTHER

한국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 한성우 기획홍보팀장은 "OTHER로 분류되는 플라스틱은 필름(비닐) 형태와 딱딱한 용기형태로 나눠진다"며 "비닐 형태는 재활용이 가능하지만 딱딱한 용기류는 재활용이 곤란하다"고 밝혔다.

비닐 형태의 플라스틱은 재생원료, 성형제품(빗물받이 등), 재생유, 고형연료 등의 형태로 재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OTHER로 분류된 용기류는 선별장에서 쓰레기로 처리된다. 원료 재질을 확인할 길이 없는데다 재생 공장으로 섞여 들어갈 경우 재생원료의 품질을 낮추기 때문에 오히려 재활용 공정을 방해하는 것으로 인식된다.

즉석밥 제조사들도 이런 사정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즉석밥 시장 1, 2위 업체는 CJ제일제당과 오뚜기이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뉴스톱과 통화에서 "햇반 용기가 선별장에서 보통은 버려진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있다"며 "전자레인지 조리와 상온 장기보관을 고려해 복합재질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오뚜기 관계자는 "오뚜기밥 용기는 복합재질로 만들어져 재활용되지 않고 소각 또는 매립된다"고 밝혔다.

즉석밥 용기는 두겹의 폴리프로필렌(PP) 소재 사이에 산소 투과를 차단하기 위해 에틸렌비닐알코올(EVOH) 재질의 필름을 끼워넣은 구조이다. PP가 95% 정도, EVOH가 5% 정도를 차지한다.

즉석밥 용기를 재생원료 가공 공장으로 보내면 5%의 EVOH가 불순물로 작용하면서 재생원료의 품질을 떨어뜨린다. 그래서 선별장에선 즉석밥 용기를 쓰레기로 버린다. 순도 높은 단일 물질로 제조한 플라스틱류를 모아 보내야 단가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CJ제일제당은 햇반 용기를 재사용해 지역 공부방 어린이들과 함께하는 '햇반 가드닝'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출처: CJ제일제당
CJ제일제당은 햇반 용기를 재사용해 지역 공부방 어린이들과 함께하는 '햇반 가드닝' 활동을 펼치고 있다. 출처: CJ제일제당

 

◈제조사 "손 놓고 있지는 않습니다"

즉석밥 제조사들은 용기의 재활용률을 높이기 위한 기술 개발을 진행 중이다. CJ제일제당은 포장 재질 개선과 재활용율을 높이기 위한 기술 개발을 전담하는 '패키징 센터'를 두고 있다. 이 부서에서 개발한 기술로 용기에 들어가는 플라스틱량을 연간 340톤이나 줄였다고 한다. 제품 파손 위험을 감안하면 한계치까지 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인 것이라는 설명이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중장기적으로는 재생원료를 사용해 용기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오뚜기도 즉석밥 용기의 재활용률을 높이기 위해 기술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당장 오늘 먹은 즉석밥 용기가 재활용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명확하다. 즉석밥 용기를  깨끗이 씻어 플라스틱류로 분리배출해도 지구 살리기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뜻이다. 

지난 추석을 앞두고 소비자단체 쓰담쓰담은 통조림햄 '스팸'의 노란색 겉뚜껑을 모아 제조사인 CJ제일제당에 돌려보내는 운동을 펼쳤다. 스팸이 밀봉 상태로 출시되는데 플라스틱 뚜껑을 굳이 쓸 필요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런식으로 즉석밥 용기를 제조사에 돌려보내면 어떨까? CJ제일제당 관계자는 "지금도 사회공헌 차원에서 햇반 용기를 재사용한 미니 화분을 만들어 보육시설에 전달하는 사업을 벌이고 있다"며 "수거만 잘 된다면 다양한 용도로 업사이클링할 수 있다"고 말했다.

플라스틱 폐자원의 재활용 경로. 출처: 한국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
플라스틱 폐자원의 재활용 경로. 출처: 한국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

 

◈재활용도 안 되는데 분리배출 마크는 왜? -제도의 허점

즉석밥 용기가 분리배출표시제도의 사각지대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즉석밥 용기는 복합재질로 만들어진 딱딱한 용기이다. 단일재질의 플라스틱 폐자원은 녹여서 다시 원료로 활용이 가능하지만 복합재질은 재생원료로 재창출되지 않는다. 순도를 낮추기 때문이다.

필름류의 복합 재질 플라스틱은 열분해, 압출성형, 용융압출, 용융성형 등의 공정을 거쳐 재활용된다. 그러나 즉석밥 용기는 딱딱하기 때문에 이런 공정에 집어넣으려면 파쇄를 거쳐야 한다. 재생업체 측에선 공정이 늘어나고 결국 비용이 증가하게 되는 것이다. 매력이 없다.

즉석밥 용기엔 <플라스틱 OTHER>라는 분리배출표시가 붙어있지만 분리배출돼도 갈 곳이 없다. 현행 자원재활용제도의 허점인 셈이다. 정부가 나서 제도적 허점을 보완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집에 사다 쟁여놓은 즉석밥이 제법 많이 남았다. 다 먹고 남은 용기는 잘 씻어서 아이 어린이집에 만들기놀이 재료로 보내야겠다. 다 먹은 다음에 다시 구매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하지만 잘 씻어서 분리배출해도 쓰레기가 된다는 사실은 너무나 충격적이다. 뭔가 대책이 나오지 않는다면 앞으로 <플라스틱 OTHER> 분리배출표시가 찍혀있는 용기 형태의 제품은 사지 않으련다. 삶은 좀 더 귀찮아지겠지만 말이다. 선택은 언제나 본인의 몫이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기사
오늘의 이슈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