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어디에 있나?

  • 기자명 선정수 기자
  • 기사승인 2020.12.16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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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재해로 인해 사망사고가 발생했을 때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를 처벌하는 내용의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국회 통과가 눈앞으로 다가왔다. 이 법안의 입법은 끊이지 않는 산재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노동계의 숙원사업이다. 반면 재계는 '연좌제', '헌법 위반' 등 갖은 논리를 들어 "입법 추진을 중단하라"고 주장한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과연 어디까지 왔는지 뉴스톱이 분석해봤다.

◈하루 5명이 일터에서 죽는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의 산업재해통계에 따르면 2019년 산재사망자(사고, 질병 포함)는 2020명이다. 사고 사망자는 855명, 질병 사망자는 1165명에 이른다. 단순 계산으로도 하루에 5명 이상이 산업재해로 숨졌다. 사고 사망자의 유형별로는 떨어짐(347명), 끼임(106명), 부딪힘(84명), 깔림·뒤집힘(67명) 등의 순이다. 떨어짐, 즉 추락사고는 작업발판·안전난간·추락방지망 설치, 안전모 착용 등으로 막을 수 있다. 끼임 사고는 기계에 사람이 끼었을 경우 작동을 멈추는 안전 시스템을 장착하는 등의 방식으로 막을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노동자의 생명을 비용으로만 인식하는 관행이 만연하다는 점이다. 사망사고 발생율과 보상비를 곱해 산출되는 비용이 안전장치 설치에 들어가는 비용보다 낮을 경우 상당수의 사업장에선 안전장치를 설치하는 대신 개별 근로자의 주의를 요구하는 방식으로 대처한다.  

때문에 노동계는 실효성있는 산재 사망사고 근절 대책을 요구해왔다. 사망사고를 줄일 수 있는 안전장치를 산업현장에 마련하기 위해 노동계는 '사업주 처벌'을 가장 현실적인 대책으로 보고 있다. 

출처: 민주노총 홈페이지
출처: 민주노총 홈페이지

◈입법 추진 상황

진보정당은 노동계의 숙원이 담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위해 꾸준히 법안을 발의해왔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은 2017년 대선 당시 "산재발생 사업장에 대한 책임 강화"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21대 국회가 열리면서 정의당은 강은미 의원 대표발의로 지난 6월11일 '중대재해에 대한 기업 및 책임자 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을 제출했다. 민주당은 박주민 의원 대표발의로 11월12일 '중대재해에 대한 기업 및 정부 책임자 처벌법안'을 제출했고, 국민의힘은 임이자 의원 대표 발의로 12월1일에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기업의 책임 강화에 관한 법률안'을 제출했다.

법안 명칭은 비슷비슷하지만 세부 내용은 조금씩 다르다.

[출처: 국회의안정보시스템, 정리: 뉴스톱]
[출처: 국회의안정보시스템, 정리: 뉴스톱]

정의당은 12월11일부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제정을 요구하며 국회 본관 앞에서 단식 농성에 돌입했다. 14일엔 민주당 이낙연 대표와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가 각각 농성장을 방문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통과를 약속했다.

이번 임시국회 회기는 내년 1월10일까지이다. 상임 소관위인 법사위에서 법안을 조정하고 심사한 뒤 본회의 표결까지 거쳐야 법안이 통과되지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하지만 위헌 논란, 재계의 반발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그동안 정의당은 민주당법안에 포함된 50인 미만 사업장 법 적용 4년 유예 부칙에 크게 반발했다. 소규모 사업장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압도적으로 많고 노동 조건도 열악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법안의 취지를 무색케 하는 조항이라는 취지에서다.

그러나 16일 강은미 원내대표가 기자회견에서 '유예기간 1년 수용' 입장으로 선회함에 따라 협상의 여지가 생겼다. 강 원내대표는 "(국민의힘)임이자 의원 안에 50인 미만 영세 사업장들에 안전 조치를 하기 위한 예산을 지원할 수 있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제가 보기에는 1년 정도의 기간을 갖고 정말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일이라고 하면 영세 자영업자가 안전 조치를 시행할 수 있도록 예산을 지원하는 방안 등을 모색하면 가능하지 않겠냐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17일 정책의총을 열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대한 원내 의견을 수렴할 계획이다. 민주당 정책위원회는 영세 자영업자들이 운영하는 식당 등 공중이용시설을 처벌대상에서 제외하고, 공무원 처벌조항 역시 조정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민주당이 법안 통과로 당론을 정하면 사실상 본회의 통과는 무난할 것으로 보인다.

 

◈법안 통과되면 기업인 무조건 처벌?

이날 공동성명서를 낸 경제단체들은 "중대재해 사고의 원인은 복합적이며, 일부 불가항력적인 부분도 있다"며 "그러나 여당이 발의한 중대재해법은 모든 사망사고 책임을 일방적으로 기업과 경영책임자와 원청에게 돌리는 법으로, 그 자리와 위치에 있다는 자체만으로 공동연대 처벌을 가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의당의 법안을 살펴보자.

제5조(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등의 처벌) ①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등이 제3조 또는 제4조의 의무를 위반하여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한 때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 또는 5천만원 이상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모든 사망사고 책임을 기업과 경영책임자에 돌리는 것이 아니다. 이 법에 정한 의무를 위반해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한 때 처벌 기능이 작동하는 것이다. 

제3조(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등의 유해‧위험방지의무) ① 사업주(개인사업주에 한한다. 이하 같다)와 법인 또는 기관의 경영책임자 등은 사업주나 법인 또는 기관이 소유·운영·관리하는 사업장, 공중이용시설 또는 공중교통수단에서 그 종사자 또는 이용자가 생명・신체의 안전 또는 보건위생상의 위해를 입지 않도록 유해‧위험을 방지할 의무가 있다.

②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등은 사업주나 법인 또는 기관이 소유·운영·관리하는 사업장에서 취급하거나 생산·제조·판매·유통 중인 원료나 제조물로 인하여 그 종사자 또는 이용자가 생명·신체의 안전 또는 보건위생상의 위해를 입지 않도록 유해‧위험을 방지할 의무가 있다.

제4조(도급과 위탁 관계에서 유해‧위험방지의무) ① 사업주나 법인 또는 기관이 제3자에게 임대, 용역, 도급(여러 차례 이상 도급이 이루어진 것을 포함한다), 위탁 등을 행한 때에는 사업주나 경영책임자 등은 제3자와 공동으로 제3조의 의무를 부담한다.

② 법령에 따라 해당 시설이나 설비 등이 위탁되어 수탁자가 그 운영·관리 책임을 지게 된 때에는 사업주나 경영책임자 등은 수탁자와 공동으로 제3조의 의무를 부담한다.

이 법의 취지는 <사업장 종사자, 다중이용시설 이용자가 해를 입지 않도록 유해 또는 위험을 방지할 의무>를 기업과 경영책임자에게 지우자는 것일 뿐이다. 내 사업장을 안전하게 관리하고 내 가게에 들르는 손님에게 해를 주면 안된다는 극히 상식적인 내용이다. 기업들이 윤리 경영을 실천하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자각하고 있었다면 일어나지 않아도 될 산업재해와 제조물 피해를 법으로라도 막겠다는 몸부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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