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 분석] '여직원에 헤드락' 왜 폭행 아닌 추행죄 됐나

  • 기자명 선정수 기자
  • 기사승인 2020.12.28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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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식 도중 여직원에게 ‘헤드락’을 건 회사 대표가 강제추행으로 처벌받게 됐다. 대법원은 여직원에게 헤드락을 건 행위가 강제추행에 해당된다고 판단했다. 헤드락은 레슬링 기술로 머리 또는 목부분을 팔로 감아 상대의 움직임을 제압하는 기술이다. 언뜻보면 성폭력과는 관련이 없을 것 같은데 대법원은 왜 이런 행위를 강제추행으로 판단했을까?

◈대체 뭔 짓을 한 건가?

24일 대법원 1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강제추행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무죄 판결을 받은 A씨(52)의 상고심에서 “A씨의 행위는 추행에 해당한다”며 사건을 2심 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먼저 A씨에 대한 공소사실을 살펴보자

피고인은 2018. 5. ㅇ. 18:45 경 서울 ㅇㅇ구 음식점에서 자신이 대표이사로 있는 회사의 직원인 피해자(, 20대) 등과 함께 회식을 하며 피해자의 결혼 여부 등에 관하여 이야기하던 중 갑자기 왼팔로 피해자의 머리를 감싸고 피고인의 가슴 쪽으로 끌어당겨 피해자의 머리가 피고인의 가슴에 닿게 하고 주먹으로 피해자의 머리를 2회 쳤다. 이후 피고인은 다른 대화를 하던 중 이 X을 어떻게 해야 계속 붙잡을 수 있지. 머리끄댕이를 잡고 붙잡아야 되나.”라고 하면서 갑자기 손가락이 피해자의 두피에 닿도록 양손으로 피해자의 머리카락을 잡고 흔들고, 이후 갑자기 피해자의 어깨를 수회 치며 피해자를 강제로 추행하였다. (A씨 판결문 中)

A씨가 저지른 행위는 ①헤드락(갑자기 왼팔로 피해자의 머리를 감싸고 자신의 가슴 쪽으로 끌어당긴 뒤 피해자의 머리가 자신의 가슴에 닿게 하고) ②꿀밤(주먹으로 피해자의 머리를 2회 쳤다) ③폭언(이 X을 ~ 머리끄댕이를~) ④머리채 붙잡고 흔들기(갑자기 손가락이 피해자의 두피에 닿도록 양손으로 피해자의 머리카락을 잡고 흔들고 ④어깨 치기(갑자기 피해자의 어깨를 수회치며~) 로 구분해 볼 수 있다.

 

◈강제추행이 아니라는 2심 판단 근거

1심은 A씨에게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으나 2심은 이를 뒤집어 무죄를 선고했다. 2심에선 아래의 이유를 들어 강제 추행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 당시 장소가 개방된 음식점이었고 회사 직원과 거래처 사람들이 동석해 있었다
  • 피고인이 접촉한 머리·어깨는 사회통념상 성과 관련된 신체부위로 보기 어렵다
  • 피고인의 행위를 성적인 의도를 가진 것으로 보기 어렵다
  • 피고인의 행동이 성적인 언동과 결합되지 않았다
  • 피해자가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고 진술했지만, 피고인으로부터 욕설과 모욕적인 언동을 듣게 되어 느끼게 된 불쾌감, 수치심과 구분된 성적 수치심을 명확하게 감지하고 이를 진술하였다고는 보이지 않는다

 

◈대법원은 왜 강제추행으로 봤나?

대법원은 "피고인의 행동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행위에 해당하고, 그로 인하여 피해자의 성적 자유를 침해하였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대법원의 판단 근거는 다음과 같다.

①피고인과 피해자의 성별, 연령, 관계 등에 비추어 피고인의 행동은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행위임이 분명하고, 폭행과 추행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기습추행의 경우 공개된 장소이고 동석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점은 추행 여부 판단의 중요한 고려요소가 된다고 보기 어렵다.

여성에 대한 추행에 있어 신체부위에 따라 본질적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없을 뿐 아니라(대법원 2004. 4. 16. 선고 2004도52 판결), 피고인의 첫 번째 행위로 인하여 피고인의 팔과 피해자의 목 부분이 접촉되었고 피해자의 머리가 피고인의 가슴에 닿았는바, 그 접촉부위 및 방법에 비추어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을 일으키게 할 수 있는 행위이다.

③피고인이 공소사실 행위 전후에 했던 말들(피해자 등이 나랑 결혼하려고 결혼 안하고 있다, 이X 머리끄댕이를 잡아 붙잡아야겠다는 등)과 그 말에 대한 피해자와 동료 여직원의 항의내용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의 말과 행동은 피해자의 여성성을 드러내고 피고인의 남성성을 과시하는 방법으로 피해자에게 모욕감을 주는 것이라는 점에서 성적인 의도를 가지고 한 행위로 볼 수 있다.

④ 피해자는 피고인의 반복되는 행위에 그 자리에서 울음을 터뜨리기도 하였고, 당시의 감정에 대하여 ‘소름끼쳤다.’성적 수치심을 나타내는 구체적인 표현을 사용하였으며, ‘성적 수치심과 모멸감, 불쾌함’을 느꼈다고 분명히 진술하였는바, 이러한 피해자의 피해감정은 사회통념상 인정되는 성적 수치심에 해당한다.

⑤거래처 대표가 피고인의 행동을 가리켜 “이러면 미투다.”라고 말한 것이 강제추행죄의 성부에 대한 법적 평가라고 할 수는 없더라도, 이는 피고인의 행동이 제3자가 보기에 성적 수치심을 일으키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행위라고 인식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⑥위와 같은 추행행위의 행태와 당시의 정황 등에 비춰 피고인의 강제추행의 고의도 인정되며, 피고인에게 성욕의 자극 등 주관적 동기나 목적이 없었다거나 피해자의 이직을 막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동기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추행의 고의를 인정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는다.

◈강제추행이란 무엇인가?

대법원 판례가 정의하고 있는 추행은 다음과 같다.

"추행이라 함은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행위로서 피해자의 성적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할 것이고, 이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피해자의 의사, 성별, 연령, 행위자와 피해자의 이전부터의 관계, 그 행위에 이르게 된 경위, 구체적 행위태양, 주위의 객관적 상황과 그 시대의 성적 도덕관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신중히 결정되어야 한다. 그리고 강제추행죄의 성립에 필요한 주관적 구성요건요소는 고의만으로 충분하고, 그 외에 성욕을 자극·흥분·만족시키려는 주관적 동기나 목적까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대법원 2015. 7. 23. 선고 2014도17879 판결 참조)


A씨는 재판과정에서 성적인 의도가 없었다고 항변했지만 대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성폭력 사건에서 가해자의 의도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피해사실이 인정되는지, 피해자가 성적 수치심 또는 혐오감을 느꼈는지가 중요할 뿐이다. 어디선가 벌어지고 있을 회식자리에서 타인에게 어떤 형태로든 피해를 줄지도 모를 수많은 A씨들에게 이 기사를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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