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베트남전 사과하라"는 진보의 주장은 타당한가

  • 기자명 이광수
  • 기사승인 2018.12.20 01:5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베트남 축구 대표 팀 감독직을 맡고 있는 박항서 감독이 스즈키컵이라 불리는 동남아시아 국가들 축구 대회에서 우승했다. 이에 베트남 도처에서 박항서 감독에 대한 환호와 지지가 십 여 년 전 한국에서 월드컵 4강을 이룬 히딩크 감독에 대한 열풍과 닮았다. 심지어는 국부 호찌민에 비견되기도 할 정도로 열광적이다. 이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한국에서도 큰 호응이 나왔다. 잘 키운 박항서 하나에 열 외교관 부럽지 않다는 말이 퍼지고, 박항서 감독이 BTS 방탄소년단보다도 더 큰 한국-베트남 친선 교류의 역할을 했다는 말도 심심찮게 나온다. 그런데 이 분위기를 타면서 곳곳의 진보 인사들이 한국 정부가 베트남전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는 말을 주장하고 나선다. 과연 한국 정부는 베트남전 참전에 대해 사과를 해야 하는 것일까? 그 안에 담긴 현실적 어려움으로 어떤 것들이 있을까?

베트남 축구대표팀이 스즈키컵에서 우승한 뒤 한국에 대한 베트남 사람들의 호감이 급상승했다.

한국 정부가 베트남에 대해 사과를 하는 것이 옳은지의 여부는 국제 관계 차원에서 고려해야 한다. 2001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불행한 전쟁에 참여해 본의 아니게 베트남에 고통을 준 데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유감을 표명했고,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은 "우리 국민은 마음의 빚이 있으며 베트남의 성공을 바라고 있다"고 유감 표명을 했다. 2018년 3월 베트남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 또한 노무현 전 대통령과 비슷한 유감 표명을 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베트남전에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미국, 호주, 뉴질랜드, 태국, 중국 등이 참여했다. 우리가 진전된 내용을 바라면 다른 나라와의 관계에서도 (베트남이)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점까지 고려해서 유감이란 표현을 썼다. 현재 우리 정부가 할 수 있는 최대치"라고 말하면서, 이 발언은 “공식 사과는 아니다"라고 언급했다.

 

나는 부산에 있는 반전평화단체 아시아평화인권연대 대표로 2016년 ‘빈안 학살’ 50주년을 기리는 위령제에 참가하고 돌아왔다. 우리는 베트남 당국에게 베트남전 참전에 대한 사과를 드리겠다는 말을 넌지시 비쳤고, 그 쪽에서는 굳이 그럴 필요 없다고 전해왔다. 완곡한 거절이다. 우리는 대표가 큰 절을 한 것으로 갈음했다. 그냥 참석하는 것만으로 사과의 뜻을 전하는 것으로 양쪽 모두 이해했다. 우리는 분명히 사죄의 마음을 가지고 있고, 그들 또한 우리의 사죄 마음을 헤아려 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공식적인 사과는 받지 않는다. 그 이유는 우리는 사과할 수 있는 위치에 서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베트남 참전 군인의 가해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고 국제 관계의 위치상 우리는 나서서 사과를 할 수 없는 위치에 서 있다는 의미다.

지난 3월 유시민 작가가 jtbc <썰전>에 나와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사과 당위성을 설명하는 장면.

 

 

우선적으로 베트남은 승전국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베트남 통일 전쟁에 미국이 개입해서 침략한 것을 물리친 엄연한 승전국이다. 승전국은 패전국한테 사과를 받지 않는다. 전쟁에서 패배한 쪽이 자꾸 승리한 쪽에게 사과한다고 하는 것에 대해 베트남 정부는 달가워하지 않는다. 패전국이면 패전국으로서의 위치를 파악하라는 의미다. 더군다나 설사 침략 전쟁의 원인을 제공한 입장에서 그래도 사과를 좀 해야 되지 않겠느냐는 우리 쪽 요청에 대해 베트남의 논리는,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그런 건 돈 받고 팔려온 용병과는 관계 없는 일이라고 명토 박는다. 베트남 파병 장병은 전쟁을 치른 위치로 볼 때 해방군도 아니요, 점령군도 아니었다. 단지 돈을 받고 용병으로 남베트남 정부의 요청에 따라 참전하는 미국의 요청에 따라 간 것일 뿐이다. 전쟁을 치른 당사자로서 주체성이 없는 위치인 것이다. 이러한 시각은 국제 관계에서 분명하게 드러나고, 베트남 정부의 입장 또한 이에 준한다. 베트남 호치민 시에 있는 소위 전쟁박물관에 가면 전쟁의 비극과 그것이 남긴 상처와 후유증에 대해 눈 뜨고 볼 수 없을 만큼 있는 그대로 전시해 두었다. 그런데, 그 어느 섹션에를 가도 한국군에 대한 기록은 없다. 한국은 교전국이 아니고 단순한 용병을 보낸 나라이기 때문이다.

베트남과 한국은 전쟁이 끝난 후 외교적 관계가 끊어졌다가 1992년 공식으로 수교를 재개했다. 베트남 정부는 전쟁을 끝낸 후 곧바로 전쟁이라는 과거를 떠올리는 것을 하지 않기로 국가 운영의 틀을 잡았다. 그들은 전쟁이 끝난 후 실용주의의 노선으로 이미 돌아섰고, 그 태도는 ‘과거를 닫고 미래로’라는 구호 안으로 농축되어 들어갔다. 이는 전쟁이 끝난 뒤 약 10년이 지난 뒤인 1986년 12월에 베트남 공산당 제6차 대회에서 등장한 소위 ‘도이머이’ 즉 ‘새롭게 바꾸자’는 구호가 드러내는 공산주의에서 자본주의로의 노선 변경에서부터 시작된 일이다. 그들은 해외 자본을 적극적으로 유치했고, 적어도 경제 부문에서 만이라도 공산주의를 버리고 자본주의로 돌아선 이상 자본주의 여러 나라와의 교류를 추진하는 적극적 태도를 보였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과거를 닫고 미래로 나아가는 태도를 취하기로 한다. 과거란 잊지 않으면 될 뿐, 굳이 자꾸 끄집어 내봤자,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그들 특유의 역사관이 만들어낸 결과다. 우리가 갖는 일본에 대한 태도와는 전적으로 다른 것이다. 우리는 일본 정부의 ‘거듭된’ - 양국의 해석의 여지는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거듭된 사과가 있어 온 것은 사실이다. 물론 거듭된 망언 또한 분명히 있어 왔고.- 사과에 대해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미래로 나아가자는 그들과 일부 한국인들의 태도를 역사를 망각하는 더러운 짓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 혹은 진보적인 입장으로 간주되지만, 베트남에서는 그런 역사의 태도를 취하고자 하지 않는다. 그들은 오로지 미래만 보고 좋은 선린 관계 쌓자는 거다.

2018년 3월 23일 문재인 대통령이 베트남을 방문해 양국의 불행한 역사에 대해 '유감'을 표시하자 쩐 다이 꽝 베트남 국가주석이 화답했다. SBS 화면 캡처

역사를 인식하는 것은 결국 해석의 문제다. 그리고 그 해석은 해석의 주체가 서 있는 위치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해석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을 실체적 진실을 버린다는 말로 이해하면 곤란하다. 한국과 베트남은 분명히 전쟁을 치렀고, 우리는 그들에게 크나큰 상처를 주었다. 이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사실이 개인적인 관계가 아닌 국가 간의 관계에 대한 문제라면 그 가해 행위에 대한 사과의 문제는 양국 혹은 국제 관계의 일정한 룰에 따라야 한다. 양국의 가해와 피해에 대한 역사 해석의 주체로 서 있는 베트남이 굳이 국가 의례적으로 사과를 받고 싶지 않다는데, 그들에게 사과를 하라고 한국 정부에 대해 요구하는 일부 진보 측의 태도는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늘의 이슈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