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6년 동안 한국에서 숨진 태국 노동자 522명?

  • 기자명 선정수 기자
  • 기사승인 2021.01.08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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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터 통신은 지난달 22일 "한국에서 죽은 채로 발견된 수백명의 태국 노동자들" 이라는 기사를 세계로 타전했다. 2015년 이후 지난해까지 522명의 태국인들이 한국에서 숨졌는데 10명 중 4명은 사인도 모른다는 게 핵심 내용이다. 많은 태국인들이 죽음에 이를 때까지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으며 앞으로 사망자는 더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덧붙였다.

뉴스톱이 팩트체크했다.

출처:로이터 홈페이지
출처:로이터 홈페이지

 

◈한국서 6년 동안 태국인 522명 숨져 

로이터통신은 "2015년 이후 한국에서 최소 522명의 태국인이 사망했으며 이 중 84%는 미등록 상태"였다고 밝혔다. 뉴스톱은 이를 확인하기 위해 주한 태국 대사관에 문의했지만 회신을 받지 못했다.

이에 따라 뉴스톱은 로이터에 협조를 요청해 해당 자료의 원문을 입수했다. 주한태국대사관이 로이터에 보낸 자료에 따르면 2015년 이후 지난해까지 한국에서 숨진 태국인은 522명이다.
 

주한태국대사관이 톰슨로이터 재단에 제공한 한국내 태국인 사망자 통계 표지
주한태국대사관이 톰슨로이터 재단에 제공한 한국내 태국인 사망자 통계 표지

◈사망자 10명 중 4명은 원인도 몰라 - 검시 결과 미공개

주한태국대사관은 태국인 사망자 중 216명의 사인을 파악하지 못했다. 나머지 파악된 사망자의 사인은 질병, 사고, 자살 순으로 많았다. 

태국 대사관은 로이터에 병원이나 경찰의 보고서를 기반으로 사망자에 대한 데이터를 수집한다고 밝혔다. 대사관은 모든 사망자는 부검을 실시하지만 결과는 공개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 숫자가 정확한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뉴스톱은 한국 정부에 관련 통계를 요청했다.

뉴스톱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경찰청, 법무부, 외교부, 통계청에 태국인 사망자 수와 사인을 물었다. 경찰청은 외교부로, 외교부는 다시 법무부로 정보공개를 떠넘겼다. 통계청은 자료가 없다고 알려왔다.

 

◈6년 동안 사망자 522 : 197, 태국 집계: 한국 집계

법무부만 정보공개에 응했다. 법무부가 집계하고 있는 2015~2020년 국내 태국인 사망자 수는 197명이다. 태국 대사관이 집계한 522명의 37.7%에 불과하다. 나머지 325명은 우리나라에선 집계되지도 않는 죽음이다.

왜 이런 차이가 발생할까?

법무부는 "우리 부에서 관리하고 있는 외국인 사망자 통계는 출입국관리법 제19조(외국인을 고용한 자 등의 신고의무) 및 제37조(외국인등록증의 반납 등)에 따라 신고의무가 있는 고용주, 가족, 동거인 등이 사망진단서 또는 검안서 등 사망 사실을 증명하는 서류를 첨부하여 출입국·외국인관서에 사망신고가 된 현황으로 실제 사망자 수와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불법체류 중 사망 또는 사망신고 의무자가 없어 사망신고가 접수되지 않은 경우에는 파악이 불가하다"고 덧붙였다. 한마디로 불법체류자(미등록노동자)들은 파악의 대상이 아니라는 뜻이다.

국내에서 변사자가 발생하면 경찰이 '변사사건 처리규칙'에 따라 검안 또는 검시를 하게된다. 무연고 시신 등의 장사 매뉴얼에 따르면 타살 혐의가 없고 변사자가 외국인일 경우 해당 국적 영사에게 자국민 여부, 자국 내 연고자 파악 및 시신 인수를 요청하게 된다. 이후 연고자가 없거나 알 수 없는 경우 또는 시신 인수를 거부・기피하는 경우에는 내국인 무연고 등 시신 처리절차에 따라 매장 또는 화장된다.

 

◈인권의 사각지대, 사망자 통계의 사각지대

로이터는 한국에서 일하는 태국인 노동자를 18만5000명으로 추산했다. 이 가운데 합법적인 체류자격을 얻은 사람은 10%에 불과하다고 보도했다.

통계청의 '국적(지역) 및 체류자격별 체류외국인 현황'을 살펴보면 2019년 기준 태국인 체류자는 20만9909명이다. 이 가운데 비전문취업(E-9) 비자를 받은 사람은 2만5402명이다. 태국인 미등록노동자(불법체류자)는 15만2439명에 이른다.

미등록노동자(불법체류자) 중 누구라도 재해를 당하거나 질병에 걸려 목숨을 잃게 되면 자신의 사인을 밝힐 기회도 얻지 못한 채 구천을 떠돌게 될 수 있다.

우리나라 정부는 미등록노동자(불법체류자)의 이런 실태를 인식하고 있다. 법무부 관계자는 뉴스톱에 "대책 마련을 위해 관련 기관의 의견을 모으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이 외국인 변사자에 대해 해당국 영사에 사망사실을 통보할 때 법무부에도 관련 정보를 전달해 관리하는 방안이 검토될 것으로 보인다.

 

◈사망자 늘어나지 않게 할 방법은?

로이터는 태국인 노동자 사망자수가 더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타당한 지적이다. 미등록노동자(불법체류자)들의 열악한 처우는 개선되지 않고 있다. 강추위 속 비닐하우스에서 병을 키우다 생을 마감한 캄보디아 노동자 속헹씨의 사례에서 보듯 이주 노동자에 대한 사업주의 인식이 저열하기 때문이다.

값싼 농산물과 공산품, 서비스를 제공하고 제공받기 위해 이주노동자를 우려먹는 우리 사회의 시스템 자체도 문제이다. 이주노동자들의 인권을 착취한 대가로 지불되는 값싼 상품에 대해 아무런 자각이 없었던 나부터 반성한다. 

미등록노동자(불법체류자)들은 병원비 부담과 강제출국 우려 탓에 의료기관을 찾지 못한다. 게다가 코로나19 탓에 이주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민간 차원의 의료봉사가 위축되고 있어 이들을 대상으로 한 치료의 기회는 더 줄어들었다.

불법체류자도 최소한의 치료를 받을 수 있고 생명을 지킬 수 있게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한 시점이다.


체류자격이 불법이든 합법이든 치료받으며 살아갈 권리는 있다. 그게 바로 천부인권이다. 최소한 한 사람이 죽었을 때 그가 왜 죽었는지 정도는 밝혀줘야 함께 살아간 사람에 대한 도리가 아니겠는가?

길고양이가 얼어죽을까봐 노심초사하는 사람들이 많은 대한민국이다. 농장에서 키우는 닭의 복지까지 신경쓰며 계란에 번호를 매기는 대한민국이다. 농장에서, 공장에서, 서비스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내국인이든 외국인이든, 합법이든 불법이든 '살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고 있는지에 대해 신경을 써달라는 것은 너무 과한 요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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