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도 아닌, 중국 선수가 KBO 경기에 뛴 적이 있다

  • 기자명 최민규
  • 기사승인 2021.01.13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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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NC 다이노스에서 뛰던 왼손 투수 왕웨이중은 올해 대만 중화직봉(CPBL) 웨이취안 드래건스 소속으로 자국 프로야구에 데뷔한다.

왕웨이중은 NC와 계약이 만료된 뒤인 2019년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소속으로 메이저리그에 복귀했다. 지난해엔 미국 마이너리그 시즌이 취소돼 팀을 구하는 데 애를 먹었다. 그래서 CPBL 드래프트에 참가해 신생 구단 웨이취안의 지명을 받았다.

전 NC 다이노스 소속 왕웨이중.
전 NC 다이노스 소속 왕웨이중.

 

왕웨이중은 KBO리그 최초의 ‘대만 국적 외국인선수’다. ‘대만 국적 선수’로는 1998년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한 소소경이 최초다. 소소경은 대만 국적의 화교로 1979년 대구에서 출생해 옥산초등학교, 성광중학교, 대구고등학교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야구규약상 드래프트 대상인 ‘신인’은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자’에 한정된다. 하지만 KBO는 1997년 7월 소소경이 드래프트에 참가할 수 있다는 유권해석을 했다. 한국에서 10년 이상 아마추어선수로 등록돼 활동했다는 게 근거였다. 거슬러 올라가면 1984-88년 실업야구 한국화장품의 에이스로 군림했던 대만 가오슝 출신 투수 쉬성밍도 있다. 쉬성밍은 한국 프로야구 데뷔도 노렸지만 당시 KBO는 외국인선수에 문호를 개방하지 않아 뜻을 이루지 못했다.

대만 출신 소소경 선수를 다룬 신문 기사.
대만 출신 소소경 선수를 다룬 신문 기사.

 

대만은 동아시아의 야구 강국이다. 반면 해협을 맞대고 있는 중국은 야구 인기와 수준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KBO리그 구단이 중국 국적 선수를 영입한 사례는 아직 단 한 건도 없다. 중국 지린성에서 태어난 KT 투수 주권이 있지만 2005년 입국 뒤 국적을 중국에서 한국으로 변경했다. 주권은 2017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중국 대표팀에서 뛰었지만 WBC는 국적 기준이 느슨한 대회다. 주권은 아버지 국적이 중국이라 대표팀 참가 자격을 얻었다.

그런데 한국 프로야구에는 중화인민공화국 국적 선수가 뛴 적이 있다. 그것도 한 명이 아니라 다섯 명이다.

KBO 2군 기록 전산화 작업을 하고 있는 야구연구모임 ‘야구공작소’ 회원 오연우씨는 2007년 상무 팀의 기록에서 의문스러운 점을 발견했다. 이해 상무는 도합 40명을 2군 경기에 출장시켰다. 당시 상무에는 5경기에서 13타수 4안타로 타율 0.308을 기록한 선수가 있었다. 이름이 생경했다. ‘뢰경봉’이다. 한국식 이름으로는 들리지 않는다. 뢰경봉 외에 당위, 류걸, 장성, 황일휘라는 선수도 있었다. 이 다섯 명은 낯설게 들리는 이름 외에도 공통점이 있다. 모두 이 시즌에만 출장해 5경기 이하만 뛰었고, 대한야구협회 소속 아마추어 선수로 등록된 적이 없다.

이들은 중국 남부 광둥성에서 온 중국 국적의 선수들이었다. 사정은 이렇다. 당시 상무 야구팀은 오프시즌에 광둥성에서 전지훈련을 치렀다. 광둥성에는 한국의 태릉선수촌에 해당하는 스포츠 시설이 두 군데 있다. 광둥성 산하 각급 스포츠 팀들이 이곳에서 합숙 훈련을 실시한다. 상무도 이 시설을 이용했다.

김정택 당시 상무 감독은 “광둥성 쪽에서 여름에 선수단 일부를 한국에 파견해 훈련을 하고 싶다는 제안이 들어왔다. 현지 여름 날씨가 너무 덥다는 이유도 있었다. 양국 스포츠 교류 차원에서 부대 승인이 떨어졌다”고 회상했다. 그 결과 야구 뿐 아니라 핸드볼 등 여러 종목에서 20여 명이 한국 땅을 밟았다.

야구 종목에는 위의 다섯 명이 파견됐다. 처음에는 훈련만 소화했다. 김 전 감독은 “기껏 한국까지 왔는데 경기를 뛰지 못한다면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선수는 경기에 뛰어야 기량이 는다. 그래서 KBO에 경기 출장을 요청해 승낙을 받았다”고 밝혔다.

 

물론 이들이 KBO리그 소속 선수는 아니었다. 하지만 한국야구위원회가 주관하는 공식경기에 출장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중국 국적 선수의 KBO 경기 참가 최초 사례다. 국군체육부대인 상무였기 때문에 타 구단에 비해 출장이 상대적으로 용이하기도 했다. 가령 대학생 선수가 상무 지원에 합격했을 경우 KBO 소속 선수가 아님에도 프로 2군 리그에서 뛸 수 있다. 그리고 당시엔 2군에 출장선수 제한을 두는 엔트리 제도가 없어 구단 재량이 지금보다 컸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KBO 관계자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중국 야구계에서 교류 요청이 잦았던 시기였다. 중국 팀에서 뛴 한국 선수와 지도자도 꽤 있었다. KBO가 소속 구단 전지훈련지로 중국을 검토하기도 했다. 그런 분위기에서 경기에 뛸 수 있도록 하자고 결정됐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타 구단에서 특별한 문제제기는 없었다”고 밝혔다.

이들의 실력은 어땠을까. 그해 상무에서 내야수로 뛰었던 이영수 삼성 타격코치는 “한국 야구 기준으론 고교생 레벨이었다. 우리 선수들의 플레이를 다소 신기한 듯 바라보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그럴 만도 했을 것이다. 뒷날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는 홈런왕 박병호를 비롯해 김재호, 박석민, 손시헌, 오재일 등 쟁쟁한 올스타급 선수들이 당시 상무 소속이었다. 이 코치도 전해 타율 0.401로 북부리그 타격왕에 올랐다. 김 전 감독은 “소질이 있는 선수 한 명이 있었다. 광둥성 대표 선수로 오랫동안 활약했다. 나머지 선수들은 비교적 일찍 유니폼을 벗었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활약했다”는 선수는 아마도 뢰경봉일 것이다. 중화권 야구전문가인 김윤석 KBO 코디네이터는 “중국프로야구(CBL) 광둥 레오파드에서 뛰었던 라이징펑(賴竟峰)이라는 선수가 있다. 한국식 독음으론 뢰경봉이다. 2013년 WBC에 중국 국가대표 외야수로도 출전했다”고 밝혔다. 그는 3월 4일 일본 후쿠오카돔에서 열린 이 대회 1라운드 쿠바전에 대타로 한 타석에 출장한 기록이 있다. 동일 인물이라면 2007년 여름 한국에서 흘린 땀이 헛되지 않았던 셈이다.

 

 

KBO 2군 공식 기록에 당위, 류걸, 장성, 황일휘라는 이름으로 기재된 나머지 네 선수도 2006~2008년 레오파드 팀 소속이었다. 원래 이름은 각각 탕웨이(唐煒), 류제(劉傑), 장성(張晟), 황이후이(黃逸暉)다. 외야수 라이징펑을 제외한 네 명은 모두 내야수였다. 1990년대 삼성 라이온즈에서 강속구 투수로 이름을 날렸던 최한경은 2008년 레오파드 코치로 이들과 한솥밥을 먹었다.

남중국에서 온 선수 다섯 명의 2007시즌 퓨처스리그 합산 성적은 24경기 60타수 14안타 타율 0.233 OPS 0.570에 4사구 3개 삼진 13개였다. 2루타와 3루타는 1개씩이었지만 홈런은 하나도 없었다. 미약한 흔적이지만 한국 야구의 국제교류사에서 빠져서는 안 될 이름과 숫자들이다. 어떤 이유에선지 당시 국내 언론에는 이들의 2군 경기 출장이 보도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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