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오래된 책이 호흡기 질환·생리불순 일으킨다?

  • 기자명 이나라 기자
  • 기사승인 2021.01.18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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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의 장기화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며, 독서를 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독서 플랫폼 ‘밀리의 서재’에 따르면, 사회적 거리두기 강도가 높아질수록 독서량이 급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확진자가 급증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됐던 지난 3월의 경우, 그 전달인 2월보다 독서량이 43%나 증가했다.

얼루어코리아 기사 갈무리
얼루어코리아 기사 갈무리

그런데 집에 오래 쌓아둔 책에서 나오는 화학 물질이 호흡기질환과 생리불순을 일으킬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패션잡지 <얼루어코리아>가 지난 8일 <서재에 쌓아둔 오래된 책이 호흡기질환뿐 아니라 생리불순을 일으킨다고?>라는 제목으로 낸 기사에 따르면, 장서(藏書·책을 간직하여 둠. 또는 그 책)와 새 가구 등에서 나오는 화학물질인 ‘포름알데히드’는 인체에 대한 독성이 강해 다양한 질병을 일으킬 수 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헌책방이나 오래된 책이 많은 도서관, 서재는 포름알데히드로 인해 위험한 장소가 될 수 있다. 오래된 책이 호흡기 질환·생리불순 일으킨다는 주장이 사실일지, <뉴스톱>이 팩트체크 했다.


기사에 따르면, 숨이 막힐듯한 자극성 냄새가 나는 무색의 기체인 ‘포름알데히드’는 단기 노출 시에는 코·인후·눈에 급성 자극과 두통· 메스꺼움·구토·설사·어지러움·기억상실·수면 장애 등을 발생시키며, 장기 노출 시에는 눈 자극과 눈꺼풀에 염증·피부 알레르기 반진·눈 화상·호흡기 질환까지 일으킬 수 있다. 여성의 경우 생리 불순의 위험까지 있다.

보통 포름알데히드는 새로 지은 집이나 새 가구의 건축재료나 접착제 성분에서 자주 검출된다. 새로 지은 건물에서 거주자들이 느끼는 불편함을 뜻하는 이른바 ‘새집증후군’ 역시 건축자재에서 나오는 포름알데히드 주요 원인이다. 기사는 새집이나 가구뿐만 아니라 오래된 장서도 `포름알데히드` 중독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적절한 환기와 공기 정화를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장서를 줄이기 위해 e-book이나 오디오북 등을 활용하라고 조언한다.

'허용기준 대상물질 13종 노출 실태 조사 연구' 보고서 갈무리
'허용기준 대상물질 13종 노출 실태 조사 연구' 보고서 갈무리

사실 확인을 위해 해당 기사가 참고한 대한산업보건협회에서 발간한 연구보고서인<허용기준 대상물질 13종 노출 실태 조사 연구>를 살펴봤다. 보고서에 따르면 포름알데히드는 포르말린 제조·합판 제조·합성수지 및 화학제품 제조 시 검출될 수 있으며, 국제암연구소(IARC)에서는 인간에게 암을 일으킬 수 있는 물질로 분류하고 있다. 그러나 오래된 책에서 나오는 포름알데히드가 인체에 유해하다는 내용은 어디에도 없다.

해당 연구보고서를 집필한 대한산업보건협회 산업보건환경연구원 관계자는 <뉴스톱>과의 통화에서 “연구보고서에서 장서와 포름알데히드와의 연관성을 언급한 내용은 전혀 없다”며 “무슨 내용을 근거로 나온 주장인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보고서에서 지적한 내용은 ‘작업환경에서의 유해 화학물질 노출 실태’이기 때문에, 이를 장서에 대한 위험으로 연결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허용 기준 대상물질 13종 노출 실태 조사 연구' 보고서 갈무리
'허용 기준 대상물질 13종 노출 실태 조사 연구' 보고서 갈무리
'허용 기준 대상물질 13종 노출 실태 조사 연구' 보고서 갈무리
'허용 기준 대상물질 13종 노출 실태 조사 연구' 보고서 갈무리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포름알데히드의 노출빈도가 높은 업종은 소매업·화학물질 및 화학제품 제조업·전자부품, 컴퓨터, 영상, 음향 및 통신장비 제조업 등의 순이었으며, 주로 접착·살균·검사·정제 공정에서 포름알데히드 노출 기준을 초과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단순히 오래된 책을 보관한다고 기준치 이상의 포름알데히드가 노출된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환경운동연합 정미란 생활환경국장은 “포름알데히드는 VOC(Volatile Organic Composite, 휘발성 유기화합물)로, 국제암연구소에서 발암성 등급 1로 지정된 것은 사실”이라며, “그러나 일상에서 워낙 많이 쓰이기 때문에 방출량에 따라 위험 정도를 다르게 측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단순히 오래된 책에서 나오는 포름알데히드가 호흡기 질환이나 생리불순을 일으킨다고 단정하는 것은 비약이 크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포름알데히드로 인해 호흡기에 문제가 발생하는 수치는 0.25~0.33ppm부터이며, 암이 발생하는 수치는 1.0ppm부터다. 급성중독이나 독성 폐기종으로 인한 사망이 발생할 수 있는 수치는 30.0ppm 이상인 경우다. 장서가 보관된 공간이나 헌책방의 포름알데히드 평균 노출량을 측정한 자료는 따로 없지만, 통상적으로 주택 내의 포름알데히드 농도는 평균 0.05 mg/㎥ 이하이고, 사무실 내의 농도는 그 절반 이하로 본다. 고용노동부는 1일 작업시간 동안의 시간가중평균노출기준(Time Weighted Average, TWA)을 0.5ppm으로 권고하고 있다.


정리하자면, 포름알데히드가 질병을 일으킬 수 있는 발암 물질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주로 소매업, 제조업에서 접착·살균 등의 공정 과정에서 주로 노출되며, 일상에서 노출되는 양으로 봤을 때 인체에 유해한 수준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새집이나 오래된 책에서 평균 이상의 포름알데히드가 노출될 가능성은 있지만, 호흡기 질환이나 생리불순을 일으킬 만큼은 아니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일상 속 발암물질 실태를 경고해 경각심을 갖게 하는 것은 필요한 역할이다. 하지만 명확하지 않은 근거와 주장은 자칫 헌책방이나 도서관에 대한 공포감을 조성하는 식의 불필요한 피해를 낳을 수 있다. 게다가 <얼루어코리아>가 참고했던 연구보고서는 대한산업보건협회에서 발간하는 월간지 <산업보건>에 2014년 12월호에 실렸던 내용이다. 6년 전 자료를 소환해 과도한 의혹을 만드는 것은 시기적으로도, 방법적으로도 적절하지 않다. 안전과 건강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뜨거운 시기인 만큼, 언론사의 신중한 문제 제기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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