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 2만원, 실리콘밸리 '땅콩집' 성공할까

  • 기자명 황장석
  • 기사승인 2018.12.25 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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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에 '땅콩집'이 들어선다. 영어로 'Tiny Homes'라는 명칭이 붙은 집 80채가 빠르면 2019년 여름까지 실리콘밸리 도시 산호세(San Jose, 국립국어원 표기는 새너제이)에 지어진다. 이 집은 저렴한 가격에 일반인에게 판매하는 초소형 주택이 아니다. 홈리스 주민에게만 무료에 가깝게 싸게 임대하는 집이다. 실리콘밸리의 성장과 더불어 급등한 집값, 월세 등을 감당할 수 없어 사회 안전망 바깥에 사는 주민에게 일정 기간 제공하는 숙소다. 참고로 실리콘밸리 홈리스 문제에 대해선 앞선 글 샌프란시스코에 '홈리스 법인세'가 생긴 이유도 있다.

땅콩집은 산호세 시와 실리콘밸리 해비타트가 함께 진행하고 있다. 시가 소유한 부지 2곳에 각각 40채 규모의 땅콩집 마을을 조성하는 일이다. 홈리스 주민 숫자에 비해 그들을 수용할 공간이 턱없이 부족해 임시거처를 확충하려는 것이다. 저렴한 월세에 가난한 주민들이 살 수 있는 일반적인 주택을 더 많이 공급하는 일이 장기 프로젝트라면 당장 필요한 땅콩집 같은 임시거처를 짓는 일은 단기 프로젝트라고도 할 수 있다. 산호세 시 조사에 따르면, 홈리스 주민 숫자는 2017년 1월 현재 4350명. 그 가운데 74%는 거리에서 생활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산호세 시청 앞 땅콩집 모델하우스

 

산호세 두 곳의 '땅콩집 마을'에 총 80채 건설 

현지언론 머큐리뉴스 보도를 보면, 산호세 시 등은 주민들이 이곳에서 6개월 정도 지내는 동안 일자리를 찾고, 이를 통해 저렴한 월세를 구해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아주 적은 금액이지만 월세를 받기는 한다. 처음 6개월 동안엔 소득이 있으면 소득의 10%, 소득이 없으면 월 20달러, 우리 돈으로 2만원 조금 넘게 받는다. 6개월 이후엔 월세를 조금씩 올린다고 한다. 방 한 칸, 욕실 하나 아파트 월세가 보통 2000달러, 3000달러 하는 동네에서 월세 2만원은 무료나 다름없다.

땅콩집 마을에 주민이 입주하는 건 2019년 하반기부터다. 2022년 1월까지가 1차 시범사업 기간. 시범사업을 하는 동안 총 320명에게 숙소를 제공하는 게 시의 목표다. 마을을 조성하는 공사비는 430만달러 정도. 집 한 채를 짓는데 드는 비용은 대략 6500달러라고 한다.

 

땅콩집 모델하우스에 가 보니

산호세 시에 짓는 땅콩집은 어떻게 생겼을까. 지난 12월 12일 산호세 시청 앞 광장에 설치된 '모델하우스' 현장을 찾았다. 둥근 돔 형태의 시청 건물 앞에 모델하우스가 꾸며져 있었다. 3일 동안 전시하는데, 이날이 마지막 날이었다. 현장을 관리하는 여성직원이 방문객을 맞고 있었다.

안에 들어가 봐도 되느냐고 물었더니 “편안히 둘러보면 된다”고 했다. 모델하우스는 딱 한 명이 잠만 자기에 적합한 공간이었다. 집 한 채가 방 한 칸이었다. 냉난방 시설이 갖춰진 집 안엔 트윈사이즈 침대와 옷가지 등을 보관할 만한 수납함이 있었다. 책이나 작은 화분 등 개인물품을 둘 만한 선반도 있었다. 벽에는 전원 콘센트 두 개가 붙어 있었다.

실리콘밸리 땅콩집 내부 전경.
키 178센티미터인 필자가 침대에 직접 누웠다. 다행히 발이 벽에 닿진 않았다. 2018. 12. 12. 황장석.
김부겸 행정안전부장관이 12월 12일 고시원 화재 뒤 고시원 현황을 점검하면서 침대에 직접 누워보고 있다. 실리콘밸리 땅콩집은 한국 고시원과 규모가 비슷하다. 출처: 행정안전부장관 김부겸 페이스북

키가 178cm인 필자가 침대에 누워보니 발이 벽에 닿진 않았지만 키가 좀 더 큰 사람들은 무릎을 구부려야 할 것으로 보였다. 면적을 확인해 보니 7.4㎡(약 2평)이 조금 넘었다. 80채 가운데 대부분은 이 사이즈이며 몸이 불편해 휠체어를 사용하는 주민 등을 위해 일부만 약간 크게 11㎡(약 3.4평)로 짓는다고 한다.

모델하우스를 찾은 중년여성 2명에게 인사를 건네며 모델하우스를 본 소감을 물었다. 그들은 어떤 인상을 받았을까. 한 여성이 부엌, 화장실 얘기를 했다. “작기는 정말 작네요. 부엌도 없고, 화장실도 없고.” 그러자 같이 온 다른 여성이 끼어들었다. “부엌, 화장실은 집마다 따로 없고 공용으로 사용하게 된다네요. 세탁기 건조기도 그렇고요. 그런데 작긴 작네요.”

 

4년 새 10배 증가 '홈리스 텐트촌철거

산호세 시가 민간단체와 함께 땅콩집을 짓는 건 공동체를 위해 반드시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건 단순한 인도적 지원 사업이 아니다. 샌프란시스코와 마찬가지로 산호세도 '홈리스 텐트촌' 철거 문제로 몸살을 앓아왔다. 시 곳곳에 홈리스 주민들이 쳐 놓은 텐트들이 모여 있는 텐트촌이 형성됐다가 철거되고, 다시 세워지기를 반복해왔다.

철거 횟수는 급증해왔다. 시의 관련 부서에서 작성한 홈리스 관련 감사보고서를 보면 2013년 4월부터 12월까지 9개월 동안 시에서 철거한 홈리스 텐트촌은 49곳이었다. 하지만 2017년 7월~2018년 4월 10개월 동안 철거한 텐트촌은 563곳이었다. 불과 4년 만에 10배 가량 증가했다고 볼 수 있다. 시에서 쓴 철거 예산은 2013-14회계연도(2013년 10월부터 다음 해 9월까지) 130만달러에서 2017-18회계연도엔 200만달러로 늘었다. 텐트촌이 형성되면 인근 주민들의 철거 민원이 잇따랐다. 그리고 민원을 무시할 수 없는 시 정부는 철거에 나서길 반복해 왔다.

산호세 시청 앞 광장에 설치된 '땅콩집' 모델하우스를 담당하는 여성직원이 현장을 찾은 한 남성에게 건축 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2018. 12. 12. 황장석.

지역주민 반대 목소리도 높아 난항 예고

예상 가능하듯 텐트촌을 철거한다고 홈리스 주민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오갈 데 없는 주민들을 한 곳에서 쫓아내면, 대부분 옆 동네로 옮겨갔을 뿐이다. 산호세 시의 조사를 보면, 2011년 이후 홈리스 주민 숫자의 변동은 있었지만 4000명을 넘는 상태는 이어지고 있다. 또 최근 2, 3년 사이엔 증가 추세다.

그렇다고 땅콩집 마을 건축에 모두 찬성하는 건 아니다. 우선 이게 해법이냐는 지적이 있다. 현지방송 보도를 보면, 지난 10일 열린 모델하우스 공개 행사에서 한 주민은 “물도 안 나오고, 화장실도 없고, 샤워기도 없다. 이건 감옥 같다"고 말했다. 홈리스를 지원하는 활동가는 “같은 돈을 들이면 더 짧은 기간에 많은 홈리스 주민을 위한 집을 지을 수 있는데, 이런 걸 짓는 건 시간 낭비일 뿐”이라고 혹평했다. 그런가 하면 왜 그들에게 돈을 써야 하느냐는 사람들도 있다. 다른 현지언론은 “홈리스는 이웃이 아니라 침입자일 뿐”이라며 비판하는 주민의 사례를 전하기도 했다.

빠르면 2019년 여름에 문을 열 예정인 산호세의 홈리스 땅콩집 마을들. 이 마을이 의도대로 홈리스 주민의 자립을 위한 징검다리 역할을 충분히 하게만 된다면, 시는 더 많은 마을을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실리콘밸리에 짓는 땅콩집은 그런 징검다리가 돼 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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