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3번째 '신도시 공직자 투기'...정권의 명운이 달렸다

  • 기자명 선정수 기자
  • 기사승인 2021.03.08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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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신도시 개발 역사는 온갖 부정부패의 축소판이다. 경기 부양과 투기 억제 사이에서 부동산 정책은 실패를 거듭해왔다. 정책 실패는 부동산 불패 신화를 낳았고 전국토의 투기장화, 전국민의 투기꾼화를 불러 일으켰다.

신도시 개발 역사도 마찬가지이다. 누군가는 내집 마련의 꿈을 이루기 위해 청약에 목을 맬 때 약삭빠른 몇몇은 불법을 동원해 한 몫 잡기에 혈안이 됐다. 이번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의 업무 정보 이용 부동산 투기 행위는 가뜩이나 불공정 이슈에 민감한 민심을 자극하고 있다. 

뉴스톱은 역대 신도시 개발과 관련된 부동산 투기 수사의 흐름을 짚어봤다.

출처: 네이버 뉴스 아카이브
출처: 네이버 뉴스 아카이브

 

 

①1기 신도시: 공직자 131명 구속

1989년 노태우 정부는 경기도 성남 분당, 고양 일산, 부천 중동, 안양 평촌, 군포 산본 등 5개 지역 신도시 건설 계획을 발표했다. 이후 부동산 투기가 기승을 부리자 검찰은 1990년 2월 합동수사본부를 설치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은 수사가 진행된 1990∼1991년 부동산 투기 사범 1만3000여명을 적발해 987명을 구속했다. 금품 수수와 문서 위조 등에 연루돼 구속된 공직자는 131명이 이르렀다. 1991년 건설부(현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신도시 아파트 부정 당첨자 167명 가운데 당시 현직 공무원 10명이 포함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②2기 신도시: 공무원 27명 적발

2003년 노무현 정부가 2기 신도시 계획을 발표하자 또다시 부동산 바람이 불었다. 2기 신도시는 경기 김포(한강), 인천 검단, 화성 동탄1·2, 평택 고덕, 수원 광교, 성남 판교, 서울 송파(위례), 양주 옥정, 파주 운정 등 수도권 10개 지역과 충청권 2개 지역(아산·도안) 등 모두 12곳이다.

부동산 투기가 기승을 부리자 검찰은 2005년 7월 부동산 투기 사범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그해 10월 31일까지 검찰은 특별단속을 벌여 9700여명을 적발했고 300여명을 구속했다. 이 부동산 투기 사범 중에는 공무원 27명도 포함됐다. 이들은 뇌물을 받고 기획부동산업체나 전문 투기꾼들에게 개발제한구역 관련 정보를 제공하거나 부동산 투기 세력과 유착해 허위 농지취득자격증명을 발급해줬다.

일부 공무원들은 직무상 알게 된 개발 예정지 정보를 이용해 땅을 집단으로 매입한 뒤 형질을 불법 변경하는 방식으로 시세 차익을 꾀했다. 

 

③3기 신도시 : 사태는 진행중

이번 LH직원들의 의혹은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회(민변)가 제보를 받아 제기했다.  정부의 토지·주택 정책 시행을 위임받은 준(準)공직자인 LH 직원들, 그것도 고위 간부급 직원이 내부정보를 이용해 개발 예정지의 땅을 사들이고 보상액을 높이기 위해 나무를 심는 등 비난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크다.

해당 LH 직원들이 토지 거래 과정에서 차명을 사용하지 않고 본인들의 실명으로 거래에 나섰다는 점, 친인척을 대거 동원해 땅을 사들였다는 점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LH 직원들이 내부 정보를 이용한 거래를 장기간 지속해 왔을 가능성도 크다.

투기 근절, 집값 안정을 목표로 했던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도 뿌리부터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 부동산 구원투수로 등판한 변창흠 국토부 장관이 LH 사장으로 재직했을 때 일어난 일이라 변 장관에 대한 사퇴요구도 들끓고 있다. 8일 민변과 참여연대에서 LH 직원의 투기로 추정되는 사례 2건을 추가로 폭로하는 등 사태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④ 역대 신도시 투기는 정권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노태우 정부 때 1기 신도시 투기 수사는 정권의 명운을 걸고 이뤄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8년 이후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면서 노태우 대통령은 200만호 건설을 발표했고 일산과 분당 등 수도권에 여러 개의 신도시가 지어진다. 하지만 전국의 투기꾼들이 몰려들어 다시 땅값을 올리면서 부동산 자산 격차는 극심해진다. 노태우 정권은 1990년초 '1기 신도시 투기 수사'에 이어 가을에는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부정부패를 일소하고 해이해진 공직기강을 바로잡는데 일정 정도 기여했다. 바닥으로 떨어진 정부 지지율은 살짝 반등했고 1992년 김영삼 후보의 당선으로 정권 재창출에 성공을 했다.

노무현 정부 때 2기 신도시 투기 수사 역시 비슷한 흐름이었다. 부동산 가격을 잡기 위해 노무현 대통령이 신도시 계획을 발표한 뒤 각종 부동산 투기 의혹이 줄을 이었다. 검찰이 대대적인 단속에 나섰으나 악화된 민심을 되돌리기는 쉽지 않았다. 열린우리당은 2006년 지방선거에서 참패했고 2007년 대선까지 내주게됐다. 신도시 투기 의혹 때문만은 아니지만 부동산 투기 및 폭등으로 인한 민심이반이 어느 정도 영향을 준 것은 분명하다. 

문재인 정부의 3기 신도시 투기 수사 역시 비슷한 흐름으로 지속되고 있다. '부동산 가격 폭등-신도시 발표-투기 기승-대대적 수사'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전과 비교해 상황은 더욱 좋지 않다. 역대 가장 많이 부동산 가격이 폭등한 가운데 대선을 1년 남기고 악재가 터졌다. 노무현 정부때처럼 정권을 내줄 것인지 아니면 노태우 정부처럼 정권재창출에 성공할지는 지켜볼 필요가 있다. 확실한 것은 이번 조사 및 수사가 4월 보궐선거, 특히 서울시장 선거에 큰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⑤ 어떤 법을 위반했나

참여연대와 민변은 해당 LH 직원들의 행위가 사실로 밝혀질 경우 사법 처리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실제 법을 적용하는 것이 쉽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LH 직원들의 광명시흥 신도시 지구 사전 투기의혹이 사실이라면 공직자윤리법 상 이해충돌방지 의무 위반과 부패방지법 상 업무상 비밀이용 금지 위반의 가능성이 있음. 

-‘공직자윤리법’은 제3조의2에서 ‘공기업’과 ‘정부의 출자·출연·보조를 받는 기관·단체’를 공직유관단체로 정의하고 있으며, 제2조의2 제3항에서는 ‘공직을 이용하여 사적 이익을 추구하거나 개인이나 기관·단체에 부정한 특혜를 주어서는 아니 되며, 재직 중 취득한 정보를 부당하게 사적으로 이용하거나 타인으로 하여금 부당하게 사용하게 하여서는 아니된다.’고 규정

-‘부패방지법’은 ‘공직자가 직무와 관련하여 그 지위 또는 권한을 남용하거나 법령을 위반하여 자기 또는 제3자의 이익을 도모하는 행위’를 ‘부패행위’로 정의하고 제50조에서 ‘공직자가 업무처리 중 알게된 비밀을 이용하여 재물 또는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취득하게 한 때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 (참여연대 보도자료 중)

LH 직원을 처벌한 근거가 되는 법은 공직자윤리법, 부패방지법, 공공주택특별법이 있다. 재직 중 취득한 정보를 부당하게 사적으로 이용할 경우 공직자윤리법 위반을 적용할 수 있다. 공공주택특별법은 업무중 알게 된 정보를 목적 외로 사용하거나 타인에게 투설한 행위에 대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하지만 안병길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최근 10년 동안 LH에서 비밀 누설 금지, 미공개 정보 이용 금지 규정을 어겨 적발된 사례는 한 건도 없다. 

문제는 광명 시흥 지역에 투자한 LH 직원들 대부분이 토지 보상업무나 택지선정 관련 업무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난달 광명·시흥 지구에서 땅을 산 LH 직원 13명은 모두 2015년 이후 신도시 관련 부서나 광명시흥사업본부에 근무한 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신도시를 지정한다는 정보를 미리 알았다면 어떤 경로를 통해 정보를 얻었는지를 입증하는 것이 처벌의 관건이 될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투기 공무원들의 혐의를 입증하면 처벌을 할 수는 있어도 수익 환수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수천만원의 벌금을 내고 수십억원의 이익을 얻을 가능성도 있다. 투기 이익을 환수하기 위해선 특별법을 만들어 소급적용을 해야 하는데, 위헌 시비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진상조사 과정에서 검찰과 감사원을 배제한 것도 뒷말을 낳고 있다. 정부는 국무조정실·국토교통부·행정안전부·경찰청·경기도·인천시가 참여하는 조사단을 꾸렸다. 3기 신도시 6곳(광명 시흥·남양주 왕숙·하남 교산·인천 계양·고양 창릉·부천 대장)과 택지면적이 100만㎡를 넘는 과천 과천지구·안산 장상지구 등 총 8곳을 전수 조사할 계획이다.

국토부가 포함된 조사단이 산하기관인 LH를 엄정히 조사할 수 있을지, 국토부 공무원 연루사실이 드러날 경우 제대로 처벌할 수 있을지 등이 구설에 오르고 있다. 정부는 우선 국토부와 LH 직원들을 상대로 1차 조사를 벌여 다음주 중반쯤 결과를 내놓을 예정이다.

 

⑥ 제도적 허점 어떻게 보완할까

현재 참여연대는 "LH공사 직원들의 행태는 정부와 공공주택 사업의 투명하고 공정한 수행에 대한 국민적 기대를 크게 저버리는 것으로 사회적 공분의 대상이 되고 있다"며 "공공택지 등에 대한 공직자의 투기적 행태가 반복되지 않도록 처벌 규정의 엄중한 강화, 투기로 인한 이익의 환수, 지속적인 거래 감시·감독 시스템의 구축 등 제도적 개혁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밝혔다.

민변 민생경제위원회와 참여연대 8일 정의당 심상정 국회의원의 청원소개로 '공공주택 특별법 개정안'을 입법 청원했다.  

개정안은 ▲국토교통부, 공공주택지구 사업을 준비 또는 조성하고 있는 지방자치단체, 공공주택사업자 등에 종사하는 자의 미공개 중요정보 등을 이용한 투기 방지를 위해 공공주택지구 지정 후보지 등 개발 관련 정보 등 미공개 중요정보의 제3자에 대한 제공 금지, ▲국토교통부, 공공주택지구 사업을 준비 또는 조성하고 있는 지방자치단체, 공공주택사업자 등에 종사하는 자의 이러한 미공개 중요정보 등을 이용한 거래행위에 대한 금지 및 형사 처벌(미공개 중요정보 등을 받은 사람도 제3자에 공개 또는 미공개중요 정보를 이용한 거래행위시 처벌), ▲국토교통부 등 공공주택사업에 관계된 기관의 종사자에 대한 상시적인 부동산 거래 신고 및 투기 여부 검증 시스템 구축 등을 주요 내용으로 담았다.

더불어민주당도 LH직원들의 투기 논란을 일제히 비판하면서 일명 'LH투기방지법'을 3월 국회에서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가·차명 거래에 대해서는 강제수사를 통해서라도 있는 그대로 모든 것을 밝혀내고, 현행법이 허용하는 가장 강력한 처벌을 하겠다”고 말했다. 김태년 원내대표도 “투기이익에 대해 3~5배 벌금을 부과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을 문진석 의원이 지난 5일 발의했고, 박상혁 의원도 오늘 발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신도시 지정 업무 방식을 바꿔야한다고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방식의 신도시 지정 업무는 정보 유출을 원천차단할 수 없다"며 "국가고시 출제 때처럼 지정 업무를 하는 직원들을 일정기간 별도로 격리하고 관리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부정한 부동산 투기 이익을 환수할 수 있도록 법을 고치는 일이다. 정부는 자본시장법을 참고해 법안을 만든다는 방침이다. 현 자본시장법은 내부정보를 활용해 불공정 행위를 하는 경우 이익의 3~5배를 환수하고 있는데 이를 부동산 시장에 적용하는 방식이다. 주택 관련 법령이나 내부 규정상 기밀정보, 내부자 정보 등의 범위와 관련 정보 취급자 범위를 더 넓히고 유출하거나 사적 이용시 처벌 수준을 높이는 방안도 검토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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