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 공포에 떨던 소녀, '공감'의 히로인이 되다

  • 기자명 홍상현
  • 기사승인 2018.12.25 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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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lower that blooms in adversity is the most rare and beautiful of all.

(역경을 이겨내고 핀 꽃이 가장 아름다운 꽃이다.)

 

인터뷰어(interviewer)이기 이전에, 제주영화제 폐막작 <세골(洗骨)> 초청 게스트 수행팀장으로 사흘간 배우 미사키 아야메를 지켜보던 필자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전주영화제에서 20년 만에 다시 만난 <뮬란>의 결말부에 나오는 이 대사였다. 나름의 한계야 있겠지만 <뮬란>은 <인어공주>나 <미녀와 야수>쯤으로 수렴되던 당시 디즈니 애니메이션 히로인의 위상에 가히 ‘혁명적 전환’을 가져왔다.

확실히, 닮았다.

동세대 여성 연기자들 가운데 도드라질 정도로 액션 연기에 뛰어나기 때문만은 아니다. 중국 위진남북조시대 서사시의 등장인물로부터 영감을 얻은 <뮬란>의 타이틀 롤(title role)은 자유분방한 성격에 따듯한 마음씨를 가졌으며, 스스로에게 진실하다. 또한 자신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용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미사키 아야메는 여기 한 가지가 더해진다. 바로 ‘공감’의 능력이다. 그 의미를 ‘상대방의 느낌, 감정, 사고 등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이해된 바를 정확하게 상대방과 소통하는 능력’이라 규정한다면 더욱 그렇다.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보면 그녀가 앞을 볼 수 없는 이들을 위해 영화 음성 해설을 만드는 모임에 참여하고 글을 쓰는 작가로 분한 칸국제영화제 에큐메니컬상 수상작 <빛나는>의 히로인을 성공적으로 연기해낼 수 있었던 요인도 대번에 드러난다. 이게 다가 아니다. 이 모두가 단순히 ‘천진난만하고 낙천적인 퍼스널리티(personality)’에서만 비롯되었다면 이 인터뷰는 그리 긴 내용을 담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자, 그럼 독자들에게 다소간의 실례를 무릅쓰고, 그녀에 대해 필자의 문장으로 설명하는 것은 이쯤 해두려고 한다. 장장 사흘에 걸쳐 계속된 대화의 내용은, 어설픈 몇 줄의 문장으로 옮기기에 너무 값지니까.

그녀의 웃음은 밝고 유쾌하지만 결코 가볍지는 않다. 제주영화제 제공

홍상현:

우선 부드러운 이야기부터 시작해보자. 통상 한국의 영화제를 방문한 배우 등을 인터뷰할 때 의례적으로 ‘한국에 와 본 적이 있느냐’, ‘한국음식을 좋아하느냐’같은 질문을 많이 한다. 하지만 당신의 경우, 이런 질문을 따로 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웃음)

미사키 아야메:

(웃음) 이건 아주 중요한 이야기다. 우선 한국 여행을 좋아해서 모두 합쳐 20번을 방문했다. 올해 들어 방문한 것만 3회고. 한국인 친구들도 많다. 일본에서 나고 자란 이른바 ‘재일한국인’도, 한국에서 나고 자라 한국에 살고 있는 친구도 있다. 한국을 자주 방문하는 이유 중 대표적인 것은 ‘한국음식’인데, 처음 먹었을 때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있나’싶더라. (직접 올린 한국 음식 관련 인스타그램) 특히 닭 한 마리와 설렁탕, 꼬리곰탕 등을 좋아하고, 그래서 제주에 오는 날도 기내식을 먹지 않았다. 이번에 먹었던 수육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홍상현:

하긴, 식사 시간마다 그렇게까지 즐거워하는 사람이 또 있으려고. (웃음) 기왕 이야기를 꺼낸 김에 조금만 더 이야기해보자. ‘맛’ 이외에 한식 애호가가 된 다른 이유가 있나?

미사키 아야메:

설렁탕과 꼬리곰탕, 그리고 삼계탕이 대표적이라고 생각하는데, 한국요리는 오랜 시간 공을 들인 끝에 완성된다. 재료 면에서도 약선(藥膳), 그 자체 한약재이기도 한 것들을 쓰는 건강식이고. 일본에서는 보통 ‘한국식’이라고 하면 매운 음식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지만, 잘 아시다시피 정말 다양한 맛의 한국음식이 존재한다.

 

홍상현:

그밖에 한국영화 팬으로도 유명하다. 이 부분에서도 특이점이 발견되는데, 그렇다고 다른 ‘영화제 해외 게스트’처럼 박찬욱이나 이창동, 혹은 홍상수 등의 국제영화제 수상작을 나열하지 않는다.

미사키 아야메:

한국영화는 높은 질적 수준과 재미, 어느 쪽도 놓치지 않는다는 점에 매력이 있다. 예컨대 액션영화만 보더라도 이정범 감독의 <아저씨>, 4년 뒤에 공개된 <우는 남자>는 정말 특별했다. 워낙 많은 작품을 접하다 보니 한국영화를 보는 저만의 시각이 생기더라. 또, 배우들이 워낙 개성이 강하고 연기력도 뛰어나 해외 감독이 연출을 맡아도 특유의 컬러가 배어나온다. 예컨대 전지현과 정우성이 주연한 <데이지>처럼. 아, 그리고 <부산행>과 <도가니>의 공유도 좋아한다.

국내 영화제로서는 처음으로 미사키 아야메를 초청한 제주영화제는 소탈함과 따듯함으로 대표되는 제주인의 정서로 그녀를 맞았다. 제주영화제 제공

홍상현:

여기서 잠시 시간을 2004년으로 되돌려보자. 거대기획사 호리프로가 주최하는 일본최대의 신인발굴오디션(호리프로 탤런트 스카우트 캐러밴)에 참가한 15세의 미사키 아야메가 있다. 보통이라면 그저 “내가 스타가 될 수 있을까” 정도를 생각하겠지. 하지만 그녀는 달랐다.

미사키 아야메:

오디션에 나가게 된 데는 두 가지 동기가 있었다. 첫째는 ‘가족’이다. 저는 다섯 자매 중 네 째인데, 우리에게는 부모님이 계시지 않았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큰 문제없이 성장할 수 있었다. 언니들 덕분이었다. 그녀들은 나와 동생에게 부모님 몫까지 사랑을 베풀어주었다. 예컨대 생일날에도, 크리스마스에도 어김없이 선물을 준비해주었다. 심지어 그냥 유행이라 다른 친구들이 가지고 있는 물건까지 사주었다. 반면 자신들은 버스비조차 아까워했다. 단순히 ‘돈’의 문제를 뛰어넘는 의미가 있었지. 연예인이 되어 수입이 생기면 그런 언니들에게 조금이나마 보답할 수 있는 기회도 주어질 거라 생각했다.

다른 하나는 ‘희망’이다. 저는 한신ㆍ아와지 대지진 피해지역인 효고 현 고베 시 출신이다. 제가 여섯 살 되던 해 지진이 일어났는데 많은 분들이 다치거나 돌아가셨고. 저 자신도 1년 이상 피난소에서 살아야했다. 나와 같은 아픔을 겪은 아이들에게, 그들과 다르지 않은 제가 뭔가를 이뤄내는 모습을 통해 희망을 보여주고 싶었다.

 

홍상현:

참 구태의연한 표현이라 썩 좋아하지는 않지만, 더 정확한 표현이 없을 것 같아 말씀드리면, 그야말로 ‘휴먼드라마’다.

미사키 아야메:

그렇게까지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다. (미소) 제가 아니라도 분명히 저와 같은 어려움을 겪은 친구들 중에 비슷한 경우가 나왔을 거다. 게다가 저는 말씀드렸다시피 그렇게까지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버팀목이 되어준 형제들이 있었지 않나.

 

홍상현:

2년 뒤, 당신은 일본 유수의 영상ㆍ음악 소프트 제작사, 포니 캐년에 의해 ‘파이브 스타 걸(five star girl)’의 칭호를 부여받는다. 별 다섯 개, 문자 그대로 연예계 최고의 유망주. 하지만 이 대목에서 필자가 떠올리는 것은 얼마전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에게 들었던 “배우, 혹은 연예인은 그 일을 하게 되는 시점부터 자신과 다른 어떤 존재를 만들어 가게 된다”는 말이다. 열광하는 팬도 있지만, 또래 친구들이 경험하는 소소한 행복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겠지.

미사키 아야메:

그냥 ‘여러 가지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는 표현이 정확하겠다. 대회에서 받은 특별상이 소학관에서 발행하는 《주간 영 선데이》가 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일단 잡지모델 일이 많았다. 사진집을 발간하고, 영상 DVD도 만들었다, 그렇게 인지도를 높이다 방송에도 출연하게 되었다. 일단 일이 주어지면 그게 뭐든 간에 망설임 없이 뛰어들어 최선을 다했다. 다만, 저도 사람, 그것도 고작 열여섯ㆍ열일곱 나이의 아이다 보니 정신적ㆍ육체적으로 한계가 오더라. 지쳤던 거지. 내가 서 있는 자리와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보게 되었다.

 

홍상현:

그런 스스로를 다잡기 위해서였을까. 얼마 후 당신은 또 다른 도전을 선택한다. 아키타서점이 발행하는《소년 챔피언》의 인기 연재만화로 애니메이션으로까지 만들어진 <큐티하니>의 실사버전 드라마 <큐티하니 더 라이브(The Live)> 오디션에 응시했다. 어찌 보면 경쟁이 더 치열했을 수도 있다. ‘프로’를 대상으로 하는 ‘업계의 내부경쟁’이었으니까. 여기서 한 가지 부연설명을 덧붙이겠다. 일종의 ‘슈퍼히어로물’인 이 드라마는 주인공인 키사라기 하니가 자주 콩트의 소재로 희화화 되어 오해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당신이 맡은 캐릭터는 그와 전혀 다른 입체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미사키 아야메:

벌써 10년도 넘은 일인데 어떻게 그런 세밀한 부분까지 조사하셨을까. (웃음) 그렇다. 저는 사오토메 미키 역이었다. ‘시스터 미키’로 변신하는. 주인공인 큐티 하니는 트럼프의 하트로 상징되는 캐릭터인 반면, 시스터 미키는 스페이드, 즉 ‘죽음’을 상징한다. 타인과의 교류를 꺼리는 차가운 성격에 두뇌가 명석하고 냉정한 판단력을 가졌다. 특히 신체능력이 탁월한 것으로 묘사되지. 다만 이 인물은 내면에 그늘이 있다. 자신의 부모를 살해한 원수에 의해 안드로이드가 되었고, 이후, 그 사실을 알게 되어 복수를 감행해 교정시설에 수용된 전력 때문이다. 그리고 드라마부터 보신 분들은 잘 모르시는 경우가 많지만, 원작에는 나오지 않는 오리지널 캐릭터다.

칸국제영화제 에큐메니컬상 수상작인 <빛나는>은 그녀를 세계무대에서 인정받는 연기자로 발돋움시켰다. 사진은 <빛나는> 프랑스 개봉 포스터.

홍상현:

DC코믹스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다크 히어로, 혹은 안티 히어로에 해당하는 인물이었지. 이 커리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중요하다. 예컨대 세계무대에서 당신의 가치를 입증한 <빛나는>이 한국에서 공개되었을 당시, 왜인지 당신의 이 경력이 언급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당신은 이 드라마에 출연하는 동안(2007년 10월 2일부터 2008년 3월 25일까지) 대부분의 액션을 스턴트맨 없이 직접 해냈다.

미사키 아야메:

연기자로 살아가는데 있어 신체훈련은 중요하다. 사람의 몸이란 생각처럼 쉽게 움직여주지 않으니까. 무대 위에서든(그녀는 7편의 무대극에 출연했다), 카메라 앞에서든 연기자의 동작에는 의미가 담기기에 대사나 표정과 다르지 않은 비중을 지닌다. <큐티하니 더 라이브> 출연을 통해 이런 교훈을 몸으로 터득할 수 있었다.

 

홍상현:

그런 태도는 당신의 SNS를 봐도 어김없이 드러난다. 체조, 등산, 킥복싱, 격투기, 단순히 취미라고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 종목을 아우르며 수련을 계속하고 있지 않나. 또한 ‘액션’은 ‘노래’와 더불어 다들 인정하는 미사키 아야메의 ‘특기’이기도 하다.

미사키 아야메:

오랜 세월 이어지다 보니 습관으로 몸에 배어 있기도 하고, 당연히 재미 또한 느낀다. 최상의 피지컬 컨디션으로 동료, 그리고 관객 앞에 서는 일은 중요하다.

 

홍상현:

당시 형성된 생활습관은 최근 당신을 "스토익(Stoic)한 (자기관리가 철저한) 연기자"라고 언급한 <세골>의 테루야 토시유키 감독의 평가와도 연결된다. 자연스레 화제가 다시 ‘영화’로 넘어오게 되었다. 이는 성년이 된 이후 당신의 이력에 나타나는 가장 또렷한 변화와도 관련된다. 2009년 이후 당신이 출연한 영화는 <세골>과 <빛나는>을 제외하고도 20편이 넘는다. 연기자의 수입에서 주로 텔레비전 드라마라나 CM 출연 등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일본의 업계 분위기를 볼 때 이례적이다.

미사키 아야메:

<큐티 하니 더 라이브>로 전기를 맞은 이후 다시 힘을 냈다, ‘이건 이래서, 저건 저래서 안 된다’는 식으로 일을 가리지 않았다. 다만, 그 와중에도 좀 더 애착을 가지고 참여하게 되는 일은 있더라. 그것이 영화였다, 제가 맡은 배역의 비중이 어느 정도이며 얼마의 보수가 주어지는지 보다 경험을 쌓아간다는 데 초점을 맞췄다. (주: 그렇게 출연한 작품들 중에는 한국에서도 공개되었던 문제작 <마이 백 페이지>나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에게 첫 번째 베를린국제영화제 국제비평가연맹상을 안긴 <퍼레이드> 등이 있다)

 

홍상현:

당신을 ‘칸영화제의 히로인’으로 만들어준 <빛나는>과 관련해서, 사람들은 주로 가와세 나오미 감독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주인공인 ‘미사코’역을 누구보다 성공적으로 해낸 당신에게 찬사를 보내는 이들도 적지 않다.

미사키 아야메:

감독이 직접 각본을 쓰고 연출을 하는 영화에서 연출자가 갖는 비중은 대단히 크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감독의 페르소나인 저는 누구보다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어야 했다. <빛나는>에서 중요한 것은 앞이 보이지 않는 분들의 고통과 슬픔에 대한 공감이었다고 생각한다.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감사하게도 제가 성장기의 경험을 통해 기를 수 있었던 것은 누군가의 불행에 조금 더 깊이 공감할 수 있는 힘이다. 어느 정도 선에서 결론을 내리는 게 아니라, 상대의 마음에 가까이 다가가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 것. <빛나는>은 이런 ‘힘’을 연기로 풀어내는 한편, 당시까지의 제 배우인생을 총괄해보는 기회였다.

 

홍상현:

드디어 <세골>로 넘어왔다. 이 작품은 여러 가지로 당신에게 의미심장하다. 또한 제주영화제의 폐막작으로 선정된 이유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 일본 내에서도 독특한 오키나와의 문화를 소재로 하는 작품이다. 배우들도 내내 한국의 서울표준말과 제주방언 이상의 차이를 보이는 오키나와방언으로 연기한다.

미사키 아야메:

우선 작품에 참여하게 된 계기 자체가 다른 작품과 다르다. 열다섯 나이에 데뷔한 이후, 저는 대부분의 출연작을 스스로의 뜻에 따라 결정하지 못했다. 하지만 <세골>은 다르다. 애초부터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으니까. 작품의 각본과 연출을 담당한 테루야 토시유키 감독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테루야 감독은 직접 만나보면 방송 등에서 보이는 인기 개그맨으로써의 이미지를 미처 떠올리지 못할 만큼 진솔하고 따듯한 사람이며, 늘 후배들을 위해 노력한다. 그를 만났을 당시 저는 도저히 버텨내지 못 할 정도로 에너지가 소진되어 은퇴까지 고려하던 상황이었다. 그런 제게 테루야 감독은 ‘일’ 이야기가 아니라 다시금 힘을 내 살아갈 수 있도록 격려의 말을 해주셨다. 그의 말에는 진실성이 있었다. 그 자신 힘든 환경에서 수많은 난관을 극복하며 자랐으니까. 그런 그가 준비하는 작품이라면 함께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말씀하신 것처럼 오키나와방언은 도쿄표준말과 큰 차이가 있고, 특히나 효고 현 출신인 제가 구사하는 관서방언은 억양이 강하다. 또한 ‘언어’가 <세골>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그래서 저 스스로 아예 <세골>에서 공연(共演)하는 오키나와 출신 연기자에게 어린아이처럼 아예 말 자체를 다시 배웠다. 아이들이 언어를 습득할 때 사용하는 단어카드까지 활용하면서.

오키나와에서 한 달간 <세골>이 촬영이 이루어지는 내내, 그녀는 임신한 몸으로 분장한 상태에서 생활했다. “부모님을 사진 속 모습으로밖에 기억하지 못하는 제 입장에서‘모성’이란 그야말로‘미지의 영역’”이었다고. ⓒ2018『洗骨』製作委員會

홍상현:

그밖에도 영화의 촬영이 이뤄지는 내내 당신이 보여준 열정은 지금까지 화제가 되고 있다.

미사키 아야메:

대본을 읽으면서 물론 불안한 마음도 있었다. 극중에서 유코는 아이를 가진 것으로 되어있는데, 일상에서조차 부모님을 사진 속 모습으로밖에 기억하지 못하는 제 입장에서 ‘모성’이란 그야말로 ‘미지의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게 변명이 될 수는 없다. 내내 임신한 몸으로 분장한 상태에서 생활했다. 목욕할 때만 빼고.

 

홍상현:

힘들지 않았나. 온몸에 땀띠가 났을 텐데. 제주영화제 폐막식이 치러지던 12월 15일에도 오키나와의 낯 최고기온은 25.7도였다. 체중을 무리하게 늘리는 일도 위험부담이 컸을 거다.

미사키 아야메:

실제로 아이를 가지신 분들은 그런 상황에서 저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만큼 긴 시간을 보내신다. 그 정도 노력은 당연하지. 분장을 한 채로 숙소에서만 지내려 하지도 않았다. 동네를 산책하거나, 거리에 나가 임신부의 몸으로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어떤 지점에서 어려움이 있는지도 경험해보았다. 체중을 늘린 데다 눈에 띄는 차림을 하지 않고, 게다가 아이를 가진 모습이다 보니 모두들 ‘배역을 소화해내기 위한 작업을 하는 배우’가 아니라 ‘아이를 가진 이웃’으로 아시더라. “(몸을 보니 출산이) 이제 얼마 안 남았네, 축하해요!”라며 격려해주는 아주머니도 계셨다.

 

홍상현:

그런 피땀 어린 준비 과정 때문이었을까. <세골>의 초반부에 무거운 몸을 이끌고 나타나 ‘싱글마더’가 되겠다고 선언했던 유코는 망자와의 이별과 새 생명과의 만남이 교차되는 라스트 10분 동안 ‘생명을 잇는 주체’로서 그 시퀀스의 중심에 서게 된다. 몇 번을 실신했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열연이었다.

미사키 아야메:

그늘 하나 없는 해변에서 태양빛이 그대로 떨어졌다. 수많은 스태프와 출연진에 둘러싸여 연기를 했는데 너무 몰입을 하다 보니 더위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다이어리의 달력에도 ‘몇 회 차 촬영일’이 아니라 ‘출산일(出産日)’이라고 적어놓은 날이었다.

촬영이 시작되었는데 눈물이 멈추지 않더라. 생명의 탄생이 주는 감동을 느꼈다. 그리고 후반부에는 마치 제 스스로 저 자신을 낳은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부디 이 영화를 관객 여러분께서 소중한 사람과 함께, 혹은 그 소중한 사람을 떠올리며 보아주셨으면 좋겠다.

<세골>은 2019년 1월 18일 전국개봉에 앞서 오키나와에서 선행공개 된다. 한신ㆍ아와지 대지진(1995년 1월 17일)이 일어난 지 정확히 14년이 되는 날이다. ⓒ2018『洗骨』製作委員會

사흘간의 누적된 피로를 생각하면 비교적 이른 시간에 눈을 뜬 12월 17일 아침, 수많은 말들이 입가를 맴돌았다. 제주영화제 폐막식 당시 관객과의 대화를 위해 그녀가 준비한 것들이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미사키 아야메입니다” 정도가 아니다. 히로인으로서 영화의 촬영에 임했던 마음가짐과 촬영 과정에서 느낀 감상을 담은 긴 스피치였다. 일본어로 직접 작성한 뒤 한국인 친구에게 한글 번역을 부탁하고, 가타가나로 깨알같이 발음을 표시해 놓았는데, 발음이 정확하지 않아 알아듣지 못하는 관객이 계실지 모른다며 단어 하나하나를 잘라 필자에게 발음 교정을 받았다. 그렇게 일정 사이사이에 대화 형식으로 진행된 인터뷰 외에, 그녀와의 대화는 온통 스피치의 표현과 한국어 일상회화와 관련한 문답으로 채워졌다. ‘한국영화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 한국에서 치러지는 영화제에, 폐막작 히로인으로 초청된 데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고 싶다’는 이유에서였다.

폐막작 <세골>은 관객들에게 이번 영화제 상영작품 중 가장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다. 제주영화제 제공

누군가에게 진심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일이 그녀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필자에게 각인시켜준 일화를 하나만 더 언급해야겠다. 한신ㆍ아와지 대지진은 아직도 그녀에게 현재진행형인 상처를 남겨 놓았다. 바로 당시의 굉음으로 인해 아직도 대용량 스피커가 사용되는 행사장, 공연장 등에 가기 꺼린다는 점. 하지만 그녀는 직업상 이런 장소를 피할 수 없다. ‘그럼 어떻게 하느냐’고 묻자, 예의 소녀처럼 맑은, 하지만 특유의 무게감으로 가슴에 오랜 흔적을 남기는 미소와 함께 다음과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참아냅니다. 제 모습을 보며 희망을 가질 수도 있는 분들을 위해서. 저는 어려운 시절 만난 모르는 분들의 선한 마음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한신ㆍ아와지 대지진 당시 겁에 질려 오랫동안 말을 하지 못하는 아이들도 많았는데, 그런 우리들과 내내 함께 해 주신 자원봉사자 분들이 계셨어요. 또, 아사히 맥주 회사에서는 피해지역의 아이들을 여행에 데려가 주기도 했습니다. 가족여행이라는 걸 해본 적이 없던 제게 지금까지도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어요.”

<세골>은 내년 1월 18일 전국개봉에 앞서 작품의 ‘고향’인 오키나와에서 선행공개 된다. 그녀의 삶에 큰 흔적을 남긴, 한신ㆍ아와지 대지진(1995년 1월 17일)이 일어난 지 정확히 14년이 되는 날이다.

앞으로 한국영화에도 꼭 출연하고 싶다는 그녀가, 부디 인종과 국적을 뛰어넘어, 보다 많은 이들에게 치유의 경험을 선사해주기를 기대하며 긴 글을 마무리 하려는 순간. 문득, 실로 오랜만에 해 보는 인사 한 마디가, 마법처럼 흘러나온다.

“Merry... Merry christmas...”

※ 폐막작 게스트 수행팀장으로써 12월 14일부터 12월 16일까지의 3일간, 팀을 위해 밤낮으로 헌신해 주신 제주의 멋진 청년, 강민혁 씨께, 진심어린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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