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정부 예산안 깎으면 국회의 세금 절약?

  • 기자명 이상민
  • 기사승인 2018.12.27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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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도(19년) 예산안이 국회 심의를 통과해서 확정되었다. 국회는 심의과정에서 5.2조원을 깎고 4.3조원을 증액했다고한다. 즉,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이 국회 통과과정에서 0.9조원이 줄어들었다. (정부 예산안은 470.5조원 -> 확정 예산은 469.6조원). 국회는 맨날 싸움만 한다더만, 국민의 세금을 0.9조원이나 지켰다니 잘한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보건복지노동 분야 예산을 1.2조을 깎고, SOC 분야는 1.2조원을 증대했다고 한다. 복지예산을 깎고 SOC 예산을 증대했다니 많은 언론이 비판하기도 했다. 그래도 국회가 일반행정, 지방행정 같은 행정비용을 1.4조나 아꼈다면 정부가 편성한 예산안을 견제하는 입법부의 역할을 나름 충실히 한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국회가 정부 예산안을 깎았으면 그만큼 국민의 세금을 절약한 것일까? 복지예산을 줄이면, 복지 지출 증대를 바라는 사람은 비판해야 하고, SOC 예산을 늘리면 SOC를 통해 경기 부양이 필요하다는 사람은 환영해야 할까?

YTN 화면 캡처

삭감액 상위 7개 사업 중 실제 삭감은 구직급여 뿐

19년 예산안 중, 국회에서 가장 많이 삭감된 상위 7개 항목은 다음과 같다.

가장 큰 금액이 삭감된 금액은 ‘국고채 이자상환’ 사업으로 9천억원이나 삭감되었다. 이 사업 하나가 국회의 순 삭감액과 같은 규모다. 그런데 국고채 이자상환 금액을 삭감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국채를 보유한 사람에게 이자를 계획보다 덜 주겠다는 의미는 아닐 것 같다. 국회가 아무리 갑질을 하더라도 국채를 보유한 사람에게 정해진 이자를 덜 주는 방법은 없다. 결국, 이자 비용 삭감이란 의미는 실제로 지급해야 할 이자 비용을 국회가 절약했다기보다는 이자 비용 예측치를 수정조정 했을 뿐이다. 즉, 정부는 보수적으로 이자 비용을 다소 과다 책정하였다. 그런데 국회는 국채 이자 비용 예측치를 현실 이자율에 맞게 축소하였다. 그래서 실제로 지출할 이자 비용(결산액)과는 상관없이 단순히 회계적으로(예산액)만 줄인 금액이다.

여섯 번째로 큰 금액이 삭감된 ‘국민연금급여지급’ 항목을 보면 더 이해하기가 쉽다. ‘국민연금급여지급’이라는 예산사업은 국민연금 수급자에게 국민연금법에 정해진 금액을 지급하는 사업이다. 국회가 예산액을 삭감, 또는 증액하는 것과 상관없이 정확히 국민연금법에 정해진 금액이 각각의 수급자에게 전달된다. 그래서 국회가 국민연금급여지급 금액을 삭감했다는 의미는 실제 나갈 비용을 줄인 것이 아니라 예산 예측치만을 회계적으로 변경했다는 의미다.

정부는 내년도 국민연금기금 지출 금액이 약 23.3조원 정도 될 것이라고 다소 보수적으로 넉넉하게 예측해서 국회에 제출했다. 그런데 실제로 지출될 국민연금 지급액보다 지나치게 많은 지급액을 예산상에 잡으면, 쓰지 못하고 남는 불용액이 많이 발생하게 된다. 그래서 국회는 넉넉하게 예측했던 정부안 상의 예측치를 좀 더 현실에 ‘빡빡하게’ 들어맞는 금액으로 바꿨다는 의미다.

너무 빡빡하게 예측해서 연금지급 예산액이 부족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래도 법적으로 정해진 국민연금 지급액을 주지 못 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국가가 법을 어길 수는 없다. 일차적으로는 기금운용계획 변경을 통해 자체적으로 지급액을 늘릴 수 있다. 기금은 국회가 정한 지출액에서 20%(금융성 기금은 30%) 가감할 수 있다.

만약에(그럴 일은 없겠지만) 운용계획 변경만으로도 부족하다면, 국회에 추가 변경안을 제출하거나, 또는 타 항목의 예산을 이용(移用)하여 지출하거나, 아니면 예비비를 쓰면 된다. 예산 삭감과 상관없이 법으로 약속된 국민연금 지급액은 지출하게 된다. 결국, 국회가 국민연금 지급액을 2700억원 삭감했다는 사실은 회계적인 의미 외에는 실제로 지출할 금액을 줄이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네 번째로 많이 삭감한 항목인 공무원연금 퇴직급여 예산지출 삭감도 마찬가지다. 4천억원의 예산삭감이 이루어졌지만, 공무원 퇴직급여 액수를 실제로 줄인 것은 아니다. 실제로 공무원 퇴직급여를 적게 지급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회계상의 삭감일 뿐이다.

두 번째로 많이 줄인 보통교부세 7166억원도 지방소비세 증대에 따라 자동으로 줄어든 금액이지 국회가 지방에 내려보낼 지방교부세를 삭감한 것은 아니다. 보통교부세는 지방교부세법상으로 정해진 금액(내국세의 19.24% 중 97%)만큼을 내려보내야 한다. 국회 예결위에서 삭감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런데 국세, 지방세 비율 조정에 따라 더 많은 지방세를 늘리니 국세가 준다.(현재는 국세인 부가가치세의 11%가 지방소비세로 지급되나 내년에는 15%가 지급된다.) 국세가 줄면 내국세의 일정 부분이 연동된 보통교부세도 자동으로 줄게 된 것이다. 다섯 번째로 많이 줄인 쌀변동직불금도 회계적인 감액일 뿐이다. 쌀가격과 목표 쌀 가격의 차이만큼 지불하는 변동직불금액은 쌀값인상에 따라 자연스럽게 줄어든다.

결국, 일곱 번째로 큰 금액인 2300억원을 삭감한 구직급여만 국회가 실제로 삭감한 금액이다. 정부 원안에는 고용보험 실업급여의 가장 중요한 예산사업인 구직급여 액수와 지급 기간을 내년 초부터 늘리기로 되어 있었다. (평균임금의 50% ->60%, 지급 기간 90~240일 -> 120~270) 그런데 국회 심의과정에서 적용 시기를 7월로 늦추기로 의결했다. 결국 내년 상반기에 추가로 지급될 실질적 예산이 삭감되었다.

 

고용분야 예산 삭감을 어떻게 볼 것인가

국회 심의과정에서 사회복지 금액이 1.2조원이나 감소한 이유의 약 절반 이상은 회계적 이유다. 사회복지예산이 줄었다는 비판의 절반 이하만 유효하다는 의미다. 상술한 바와 같이 공무원연금 지급 4천억원 삭감과 국민연금 지급 2700억원 삭감은 실질 금액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회계적, 장부적 의미만 있다.

다만, 노동 분야에서는 실질적으로 감액이 이루어졌다. 특히 고용 분야에서 많은 감액이 이루어졌는데, 상술한 구직급여 지급액에서 2300억원, 청년구직활동지원금, 취업성공패키지, 청년추가고용장려금, 내일채움공제에서 각각 438억원, 413억원, 400억원, 180억원이 감소하였다. 이들은 모두 실질적으로 사업금액을 줄이는 감액이다.

그러나 실제로 감액이 이루어졌다고 고용예산 증대를 주장하는 사람은 반드시 비판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고용예산 증대는 필요하지만, 그 방식이 꼭 취업성공패키지나 청년추가고용장려금 형태로 나타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의견을 말한다면, 나는 고용부문 예산은 증대되기를 바라지만 취업성공패키지, 청년추가고용장려금, 내일채움공제와 같은 예산 사업은 삭감되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청년구직활동지원금 삭감은 아쉽고, 구직급여 삭감은 대단히 안타깝다. 이 말은 특정 분야나 특정 부문의 예산이 증감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기계적으로 찬성 하거나 비판할 필요는 없다는 의미다. 사회복지예산 증대를 원하는 사람이라도 비효율적이거나 불요불급한 사회복지 사업의 예산 삭감은 동의할 수 있다. SOC 예산 증대를 싫어하더라도 반드시 필요한 SOC증액 사업도 존재한다는 것은 자명하다. 

한편, 증대된 사회복지 분야 사업도 여럿 존재한다. 아동수당이 소득과 상관없이 보편적으로 지급되고 9월부터는 7세 미만까지 확대된다. 또한, 장애인활동지원 예산도 343억원 국회에서 증대되었다.

 

증액은 나눠먹기 의심되는 '지역 SOC 분야'에 집중

SOC 분야 금액이 1.2조원이 증대된 이유는 대부분 정치인들 지역구 사업 위주로 증액되었기 때문이다. 가장 큰 금액인 2700억원이 증대된 부동산교부세는 종부세법 개정에 따라 자동으로 증대된 금액이다. 종부세법에 따라 종부세 금액은 부동산교부세 형태로 전액 지방에 교부된다. 두 번째 및 세 번째로 큰 금액의 증대된 아동수당과 소방안전교부세는 실제 지출액이 증대된 금액이나 국가배상금 지금은 법원 판결에 따라 지출되는 배상금 예측치를 늘린 항목이다.

그런데 다섯 번째 항목부터 지역 SOC 증액이 이어진다. 보성-임성리철도건설 항목부터 도담-영천 복선전철 항목까지 예결위에서 각각 1천억원씩 증액되었다. 그런데 각각의 철도 및 전철 건설은 규모와 내용이 각각 다르다. 즉, 필요한 증액의 규모도 각각 달라야 하는데 우연히도 모두 1천억원식 증액되었다. 경제적, 행정적 필요에 의한 증액이 아니라 정치적 필요에 의한 증액이라는 의심이 드는 부분이다.

 

국회가 '기를 쓰고' 정부 예산을 삭감하는 이유는?

결국, 국회가 예산심의과정에서 5.2억원을 감액하고 4.3억원을 증액하여 0.9억원을 순 감액 했다는 것은 단순히 수치적, 회계적 의미 밖에 없다. 감액은 상당 부분이 실질 지출금액을 줄이는 것이 아닌 단순한 회계적 감액이다. 반면, 증액은 상당 부분이 지역 SOC 사업으로 이루어진 실질 지출금액을 늘리는 증액이다. 결국, 국회의 예산심의를 거치면서 수치적으로는 감액이 더 많아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오히려 지출이 증가하는 효과도 발생 가능하다.

그런데 왜 이런 회계적 감액이 필요할까? 국회가 예산심의를 열심히 했다는 정치적 성과를 얻기 위해서?

국회는 정부가 편성하고 제출한 예산안을 심의하고 결정한다. 그런데 사실상 ‘반쪽짜리 예산심의권’만 가지고 있다. 즉, 감액은 마음대로 할 수 있지만, 증액은 정부의 동의가 필요하다. 무려 헌법에 정해진 원칙이다. (헌법 제57조 국회는 정부의 동의 없이 정부가 제출한 지출예산 각항의 금액을 증가하거나 새 비목을 설치할 수 없다.) 이를 ‘예산심의권의 제약’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정부의 동의가 있어야 예산을 증액할 수 있는 법리 하에서 국회가 삭감한 금액 한도까지만 증액 할 수 있는 원칙이 만들어졌다. 즉, 국회가 1조원을 삭감하면, 1조원 한도까지 증액이 가능하고, 5조원을 삭감하면, 5조원 한도까지 증액이 가능한 구조다. 결국 실질적으로든 또는, 서류상으로든 감액을 많이 해야 국회 몫의 증액 금액을 가져갈 수 있는 구조가 되었다.

 

예산 감액 및 증액 액수가 정해지는 '소소위'의 비밀

2014년 김현미 의원을 통해서 국회 예결위의 비밀이 공개된 적 있다. 김현미 의원에 따르면 예결위는 증액심사를 하지 않고 밀실 합의체에서 정해진 증액의 한도 내에서 각 정당이 ‘나눠 갖는다’고 한다. 다만, 김현미 의원도 왜 예결위에서 증액심사가 없는 이유를 명쾌하게 말하지는 못했다.

국회의 예산심의 과정을 보자. 각 상임위에서 1차 예산 심의를 마친다. 상임위에서 논의된 안건은 예결위 전체회의를 거쳐 예결위 소위에서 논의된다. 예결위 소위에서 실제 감액 액수가 조정된다. 그런데 예결위 소위에서는 감액심의만을 할 뿐, 증액심의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전체 감액 규모가 나와야 그 한도 내에서 전체 증액 규모가 정해지게 된다. 그런데 여야가 감액액수를 합의하지 못한 여러 쟁점 사업들이 있다. 올해는 일자리예산이나 남북협력기금 등이 그랬다. 이렇게 전체 감액 규모가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는 증액은 논의조차 할 수 없다.

결국, 여야가 합의하지 못한 쟁점 예산안은 소위 ‘소소위’라고 불리는 법적 근거가 없는 ‘밀실 합의체’에서 논의되게 된다. 그런데 소소위라고 불리는 밀실 합의체에서 일자리 예산과 같은 기존에 합의 보지 못한 감액 규모만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새롭게 회계적 감액 항목이 들어가고, 이를 통해 전체 감액 액수가 정해진다.

물론 밀실 합의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밀실 합의체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논의된 내용은 알 수 있고, 최종으로 확정된 내용은 모두 공개된다. 그런데 예결위 회의 속기록을 보면 이러한 회계적 감액 사항은 소소위 전에는 논의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회계적 감액은 밀실에서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즉, 그전까지 논의되지 않았던 회계상 감액이 밀실에서 이뤄지고, 회계상 감액규모에 따라 전체 국회 증액의 액수가 밀실에서 정해지며, 전체 증액의 액수에 따라 각 정당과 각 국회의원들의 증액 사업이 정해지게 된다.

밀실에서 이러한 회계적 감액 규모가 정해져야 비로소 전체 증액의 규모가 나오기에 회계적 감액 규모가 정해지기 이전인 공식적 예결위 논의에서는 증액심사가 거의 이루어지기 어렵다. 문제는 밀실 합의에서 누가, 어떤 방식으로 회계상 감액을 주도하는지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다만, 국채이자ㆍ국민연금ㆍ공무원연금의 정교한 지출 금액 추계를 국회 내부만의 정보만 가지고 조정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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