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돼지 도축 후 5일까지 가장 맛있다? 사실 아님

  • 기자명 선정수 기자
  • 기사승인 2021.04.19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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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축된지 4일 이내의 돼지고기를 판매하는 인터넷 쇼핑몰이 인기를 끌고 있다. 돼지고기가 가장 맛있는 시기는 도축 후 5일까지라며 정부기관을 인용한다. 뉴스톱이 팩트체크했다.

출처: 정육각 홈페이지
출처: 정육각 홈페이지

◈정육각, "도축 후 5일 이내 돼지고기가 가장 맛있다"

초신선육 돼지고기를 판매하는 정육각이라는 업체는 자사 인터넷 쇼핑몰에 "축산물품질평가원에 의하면 돼지고기가 가장 맛있는 시간은 도축 후 5일까지 입니다"라고 밝힌다. 이 업체의 판매전략은 '초신선육'이다. 이 업체는 도축 후 1~4일 지난 돼지고기를 판매하는데 시중 마트에선 도축 후 3~45일된 돼지고기를 판다고 홍보한다.

한마디로 도축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신선한 고기일수록 맛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틀렸다. '맛'이라는 것은 주관적인 감각이다. 일률적인 지표로 나타내기 어렵다. 하지만 연도(질기고 부드러운 정도), 색상, 아미노산 등 맛과 관련된 화학성분 함량 등으로 어느 정도 계량화하는 것이 가능하다. 

농촌진흥청 농업정보포털에 따르면 돼지를 도축하면 사체 강직이 일어난다. 죽은 돼지의 근육이 딱딱하게 굳는다는 말이다. 사체 강직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풀린다. 돼지고기는 도축 후 1~2일이면 사체가 완전히 강직되고 3~5일 정도 지나면 강직이 해제된다.

농촌진흥청은 "사후 강직현상으로 근육의 수축에 의해서 매우 질긴 식육이 되고, 또 당의 분해로 생성된 젖산에 의하여 산도가 저하되어 도축 후 1~2일경에 식육의 조리 시 맛에 관계되는 물리적 특성이 가장 나빠지게 된다"고 밝힌다. 갓잡은 고기는 신선하긴 하지만 사체 강직이 진행돼 매우 질기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강직이 진행되는 도축 후 1~2일 기간 동안에 고기의 맛이 가장 좋지 않고 3~5일 정도까지 강직 해제 과정이 진행되므로 도축 5일 이내에 고기 맛이 가장 좋다고 볼 근거는 없다.

 

◈정육각의 근거는?

정육각은 축산물품질평가원의 '재미있는 축산물 이야기(2014)'를 근거로 들고 있다. 이 책에선 돼지고기의 숙성과 관련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육류별 숙성기간은 포장상태, 냉장고의 온도에 따라 다르지만 4°C 내외의 냉장 숙성인 경우 일반적으로 쇠고기는 약 7~14일, 돼지고기는 1~2일, 닭·오리고기는 1일 정도입니다. (고온숙성인 경우에는 숙성기간이 짧은 장점이 있으나 미생물 오염의 위험이 그만큼 높아집니다) 그러나 숙성기간이 필요 이상으로 길어지면 미생물의 번식과 지방의 산패로 오히려 육질을 저하시킬 수 있어서 적당한 숙성방법과 기간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돼지고기가 언제 가장 맛이 있는지에 대해선 명확히 언급하지 않는다.

출처: 농림축산식품부 블로그
출처: 농림축산식품부 블로그

 

◈농식품부 블로그, "도축 3~5일째 되는 날 가장 맛있어" 

뉴스톱이 관련 컨텐츠를 검색하다보니 농림축산식품부 블로그 '새농이의 농림축산식품 이야기'에서 돼지고기가 맛있는 시기에 대한 내용을 찾았다. 2016년 12월 작성된 이 컨텐츠에선 "국립축산과학원에 따르면 돼지고기가 가장 맛있을 때는 도축한지 3~5일째 되는 날이라고 합니다"라는 언급이 들어있다. 농림축산식품부, 축산물품질평가원, 한국소비자연맹이 공동으로 컨텐츠 제작자로 표기돼 있다.

뉴스톱이 국립축산과학원에 확인한 결과 이 컨텐츠의 근거가 되는 자료를 찾을 수는 없었다. 국립축산과학원 관계자는 "돼지고기가 가장 맛있을 때는 도축 후 3~5일이라는 연구 결과는 찾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 대신 과학원은 자체 수행한 연구 논문 한 편을 참조해달라고 보내왔다. 논문 제목은 <냉장저장 중 돼지 저지방 부위 근육의 육색소, POV, TBARS, 유리지방산 함량 및 지방산 조성 변화>이다. 

연구진은 돼지고기 저지방 부위를 구성하고 있는 근육들 중 지방 함량이 높은 5개 근육들의 냉장유통 중 품질변화를 예측하고자 냉장상태에서 14일 동안 저장하면서 근육별 이화학적 품질변화를 조사했다. 그 결과 육색소(oxy-myoglobin, met-myoglobin, total-myoglobin) 함량, 과산화물(POV) 측정값, 지방산 조성 등은 유의적인 변화가 없었다. 타이오바르비투르산 반응 물질(TBARS) 값은 유의적으로 증가했지만 냉장저장 14일까지는 지방산화가 품질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판단했다. 유리지방산은 저장기간이 길어질수록 유의적으로 증가했다.

결과적으로 이 연구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저장기간이 길어질수록 돼지고기에 포함된 지방의 산화가 일어나 신선도가 떨어진다는 정도이다. 축산물품질평가원 관계자는 뉴스톱과 통화에서 "해당 글은 작성 당시 돼지고기 이력제의 필요성에 초점을 맞춰 작성한 것으로 파악됐다"며 "엄밀한 근거를 갖고 작성한 것이 아니라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농식품부 블로그에서 언급한 "돼지고기가 가장 맛있을 때는 도축한지 3~5일째 되는 날"이라는 명확한 근거는 없는 셈이다. 이 컨텐츠는 뉴스톱 취재 이후 농식품부 블로그에선 비공개 처리됐지만 정책 브리핑에서 여전히 찾아볼 수 있다.

 

◈정육각 "축산물풀질평가원 책자 인용"

뉴스톱은 정육각의 입장을 물었다. 정육각은 축산물품질평가원이 발간한 책자를 인용했다는 내용의 메일을 보내왔다. 책 내용에는 "육류 냉장온도(0~-1.7도)에서 고기 맛좋은 기간이 유지되는 기간은 돼지는 4~5일"이라고 적혀 있다. 정육각은 "주말을 제외하면 도축 다음날 부분육으로 진공포장을 하기 때문에, 냉장기준으로 돼지는 도축 후 5일까지를 맛좋은 기간으로 볼 수 있다."고 알려왔다. 

출처: 정육각이 뉴스톱에 보낸 메일
출처: 정육각이 뉴스톱에 보낸 메일

그러나 이는 정육각이 책자의 내용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으로 판단된다. 해당 부분은 진공포장된 고기의 적절한 보관 기간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가장 맛있는 기간으로 해석하기는 어렵다. 설령 정육각의 주장대로 해석한다고 해도 도축 후 다음날 진공포장 되기 때문에 돼지고기는 도축 후 3~5일이 아니라 5~6일이 가장 맛있는 기간이 되어야 한다.

"축산물품질평가원에 의하면 돼지고기가 가장 맛있는 시간은 도축 후 5일 이내"라는 정육각의 홍보 문구는 자의적 해석에 불과하다. 앞서 밝힌 것처럼 도축 1~2일 후엔 사체 강직 탓에 고기가 질겨진다.  책에는 "숙성 중에 또 하나의 변화는 고기 중 펩타이드의 분해에 의한 유리아미노산 함량이 증가되는 것인데 숙성 중 유리되어 나오는 유리아미노산은 고기 풍미(맛)의 향상에 기여하게 됩니다. 이와 같이 맛이 좋아지는 고기의 숙성은 효소작용에 의한 저장중의 고기의 변화로서 숙성조건의 설정은 온도관리와 관련된 기술입니다."는 언급이 들어있다. 숙성의 중요성을 강조한 내용이다.

 

◈축산물품질평가원, "부정확한 인용, 시정 요구했다"

뉴스톱은 축산물품질평가원에 정육각의 마케팅에 관한 입장을 문의했다. 평가원 관계자는 "정육각이 홈페이지에 게시하고 있는 홍보 문구는 축산물품질평가원이 펴낸 책자의 내용과는 다르다"며 "부정확한 인용을 시정해 줄 것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평가원은 해당 책 내용에 대해 육류 보관방법에 대한 설명으로 소비자가 돼지고기 구입 후 육류 냉장고가 아닌 일반 냉장고에 보관할 때 맛이 변하지 않는 기간을 말한다는 입장이다.

 


식품표시광고법은 "식품 등에 표시를 하거나 식품등을 광고한 자는 자기가 한 표시 또는 광고에 대하여 실증(實證)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규정한다. 초신선육 돼지고기를 셀링포인트로 삼는 정육각은 무슨 근거로 "돼지고기가 가장 맛있는 시간은 도축 후 5일까지"라고 표시했는지 밝혀야 할 의무가 있다. 유일한 근거였던 축산물품질평가원의 책자 속 문구는 '잘못된 인용'이었다는 것이 책자를 펴낸 기관의 입장이다.

초신선육이든 숙성육이든 마케팅 포인트를 뭘로 잡을지는 업체의 자유다. 그러나 광고 내용에 대한 입증 자료를 내놓지 못한다면 그 문구는 철회돼야 한다. 소비자를 기만하는 행위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농식품부와 관련 기관도 블로그 등을 통해 정책을 홍보하는 컨텐츠를 생산할 때 철저한 검증을 하지 못했다. 사실과 다른 내용으로 정책 홍보를 한다면 정책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역풍을 불러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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