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체제선전용 그림 홍보에 세금 수천만원 투입?

  • 기자명 송영훈 기자
  • 기사승인 2021.04.16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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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조선일보가 ‘‘김씨 父子·미사일’ 그림 걸린 전시회에 나랏돈 8700만원‘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습니다. 스위스에서 열리는 남북미술전에 외교부 산하 기관이 후원을 맡아 북한 체제 선전용 그림 홍보에 나랏돈 수천만 원이 투입되는 내용입니다. 해당 기사는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중심으로 공유됐고, 댓글에서는 정부에 대한 비난이 이어졌습니다. <뉴스톱>에서 확인했습니다.

포털사이트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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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전시회는 한국국제교류재단(KF, Korea Foundation)이 지원하는 ‘국경을 넘어: 울리 지그 컬렉션 內 남북한 관련 작품 전시(Border Crossings-North and South Korean Art from the Sigg Collection)’입니다. 오는 4월 30일부터 9월 5일까지 스위스 베른시립미술관에서 열립니다.

한국국제교류재단은 외교부가 지정한 공공외교 추진기관으로 △해외 한국학 교수직 설치 △해외 싱크탱크 한국연구 지원 △해외 박물관 한국실 △인사 초청 등 다양한 외국과의 교류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울리 지그(Uli Sigg)는 스위스의 유명 미술품 수집가로, 1990년대 중국과 몽골, 북한에서 스위스 대사를 지냈습니다.

남북한의 특수한 상황을 우회적으로 또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이번 전시회에는 울리 지그의 미술품 컬렉션 중 북한 공예가와의 협업이 특징인 함경아, DMZ(비무장지대)를 그리는 이세현, 북한 작가 박영철, 조선족 사진가 심학철, 중국 작가 펑멍보(Feng Mengbo), 광팅보(Guang Tingbo) 작가 등의 작품 75점이 선보입니다.

조선일보는 출품 목록 중에 미사일 발사 장면을 배경으로 환하게 웃는 김일성·김정일 부자(父子) 그림 등이 포함됐다고 지적했습니다. 북한 화가 박영철이 그린 ‘미사일’(The Missiles)이라는 제목의 그림으로, 최근 북한의 미사일 도발이 잇따르는 상황에서 논란이 예상된다고 했습니다.

아직 전시회가 시작하지 않아 작품을 감상한 관람객들의 실제 반응은 확인할 수 없지만 이번 전시회가 현지에서 어떻게 소개되고 있는지 찾아봤습니다.

먼저 전시회가 열리는 스위스 베른시립미술관 홈페이지는 이번 전시회에 대해 “북한은 사회주의-리얼리즘 화풍을 육성하고 있는 반면 남한에서는 생동감 넘치는 현대 미술이 두 정치체제의 비화합성과 주민들의 살아 있는 현실을 고찰한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스위스정부관광청도 홈페이지에 ‘방문객들이 1970년대부터 오늘날까지의 남북한 미술을 통해 여행할 수 있도록 한다’고 이번 전시회를 소개했습니다.

독일의 미술 전문 서적 출판사인 하체 칸츠(Hatje Cantz)는 ‘정치적 이념의 거울로서의 예술’이라는 제목으로 이번 전시회를 소개하며, “한국은 아직 냉전에서 벗어날 길을 찾지 못한 분단국가이다. 왕조적 리더십 숭배를 따르는 사회주의 북부와 민주주의가 발달한 자본주의 남부의 차이는 거의 클 수 없다. 삶의 모든 영역을 포괄하는 이러한 차이는 두 나라의 예술에도 반영된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미술잡지인 ‘Tretyakov Gallery Magazine’도 이번 전시를 소개하며, ‘북한의 예술은 정치체제와 통치자들을 안정시키고 그들의 메시지를 전파하는 임무를 가지고 있다. 주제, 표현 수단 또는 전시 기회의 자유로운 선택이 없는 상태의 예술로서만 존재한다. 이런 예술은 북한 주민들의 일상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먼 유토피아적 목표를 향해 사회를 교육시킨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tretyakovgallerymagazine 홈페이지
이미지 출처: tretyakovgallerymagazine 홈페이지

이처럼 스위스 현지는 물론 인근 국가에서도 해당 전시를 남북한 비교의 장으로 소개하며, 남북한 미술의 배경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스위스 베른은 전 세계에서 남북한 대사관이 모두 주재하는 몇 안 되는 도시 중 하나이며, 베른시립미술관은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파울 클레(Paul Klee), 페르디난트 호들러 (Ferdinand Hodler) 등 주요 화가들의 작품을 다수 소장하고 있는 스위스의 대표적인 미술관입니다.

이번 전시의 기획을 맡은 캐슬린 뷜러(Kathleen Bühler) 베른시립미술관 큐레이터는 “미술사적 관점에서 한반도의 상황을 더욱 흥미롭게 만드는 것은 분단선을 사이에 두고 활력 넘치는 현대미술과 사회주의 리얼리즘 미술이 공존한다는 점”이라며 “극명하게 대비되는 두 양식이 양 체제의 확연한 차이를 보여준다”고 설명했습니다.

해당 전시회의 북한 그림을 보고 북한체제를 동경하는 이가 나올까봐, 또 그런 작품이 같이 전시된 행사에 세금이 쓰이는 것을 걱정하는 조선일보의 우려는 알겠지만, 전시회의 기획의도나 전시회를 바라보는 현지의 관점을 살펴보면 조선일보의 지적은 지나치게 예민하거나 과도해 보입니다. 신생매체인 <평범한 미디어>도 이 같은 조선일보의 보도행태를 지적하는 기사를 보도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조선일보의 이번 보도는 과장과 왜곡이 심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김일성 부자를 좋게 묘사한 그림도 아니고, 김일성 부자 그림만 있는 것도 아니며 '국경을 넘어'라는 주제로 남북한의 분단 상황에 대한 전시회이기 때문에 일부 북한을 다른 그림은 불가피합니다. 스위스를 비롯한 해외에서는 이번 전시회를 상당히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한국과 관련된 해외 전시에 지원을 하는 것도 특별한 것은 아닙니다. 유독 조선일보만 '김일성 부자'에 초점을 맞춰 레드콤플렉스를 자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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