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권력을 감시하지 못하면 민주주의는 쇠퇴한다

  • 기자명 홍상현
  • 기사승인 2021.05.18 14:2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나는 신문기자다」의 타이틀 롤, 모치즈키 이소코 기자는 세간에서 “사회부 기자의 기자정신을 가진 인물”로 유명하다. (C)2019 i -Documentary of the Journalist- Film Partners
「나는 신문기자다」의 타이틀 롤, 모치즈키 이소코 기자는 세간에서 “사회부 기자의 기자정신을 가진 인물”로 유명하다. (C)2019 i -Documentary of the Journalist- Film Partners

“그럼 질문을 받겠습니다.”

관방장관이 브리핑을 끝내고 사회자가 엄숙한 목소리로 질의응답의 시작을 알린다. 하지만 정권 관련 인사가 직접 기자를 지목해 질문에 답하며, 경우에 따라 격론도 벌어지는 풍경을 연상하면 안 된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 출입처의 분위기에 젖어들어, 어느 순간 취재원과 기자라는 관계조차 모호해져버린 ‘이상한 연대감’이 지배하는 공간에서‘진실’이나 ‘시민의 알 권리’ 는 먼 이야기다. 오직 권력이 알려주고 싶은, 혹은 알기를 원하는 정보만 있을 뿐. 당연히 분위기도 차분할 수밖에 없다. 문자 그대로 ‘약속대련’ 아닌가.

우리의 히어로가 등판하는 타이밍은 바로 이때다.

손을 드는 순간 ‘뭐야, 오늘도 당신인가?’하는 공기. 애써 눈길을 피하는 사회자, 하지만 끝내 마이크를 건네받아 포문을 연다. 특유의 졸린 것 같은 눈매에 시종일관 같은 어조를 유지하며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던 관방장관의 대답에도 슬슬 감정이 실린다. 서둘러 회견을 마무리하고 자리를 뜨려 하지만 쉽지 않다. 급기야 난처해진 사회자가 끼어든다.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논쟁적이며 용맹무쌍한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일본의 극우세력이 꺼려하는 영화인의 대표주자, 모리 타츠야 감독. 그의 카메라 앞에서는 어떤 성역도 존재하지 않는다. (C)2019 TIFF
논쟁적이며 용맹무쌍한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일본의 극우세력이 꺼려하는 영화인의 대표주자, 모리 타츠야 감독. 그의 카메라 앞에서는 어떤 성역도 존재하지 않는다. (C)2019 TIFF

긴장감과 박진감이 넘치는 이 시퀀스의 메인 플레이어, 모치즈키 이소코 기자(《도쿄신문》)의 얼굴을 아는 한국 관객은 거의 없다. 하지만 어딘가 낯설지 않은 느낌. 그는 2019년 가을과 2020년 봄 한국에서 총 두 차례 개봉하고, 주연을 맡은 심은경 배우가 일본 아카데미 최우수여우주연상을 거머쥐는 쾌거를 거둔 영화 <신문기자>의 실존 주인공이다.

또 한 가지 놀라운 점은 그에 의해 궁지로 몰리다 결국 평정심을 잃어버리는 관방장관이 현재 일본의 총리인 스가 요시히데라는 사실.

도쿄 지하철역 사린가스 테러 사건으로 악명 높은 옴진리교를 고발한 다큐멘터리 <A>와 <A2>부터 동일본대지진 피해지역 시민들의 삶을 기록한 <311>, 우상을 만드는 미디어의 폐단을 지적한 <페이크>까지, 총 세 편의 작품이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되어 주목받은 모리 타츠야 감독은 오키나와 미군기지 이전 작업과 주민피해,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특혜 제공 스캔들, 여성언론인 성폭력 사건 등, 권력에 부역하는 거대언론이 수박 겉핥기식으로 지나쳐버리는 이슈에 온몸을 던지는 모치즈키 기자의 활약상을 보여주는 한편, 개인과 사회의 관계에 대해 비판적 성찰을 제안하는 <나는 신문기자다>로 지난해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았다.

논쟁적이며 용맹무쌍한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일본의 극우세력이 꺼려하는 영화인의 대표주자인 그를 만났다.

모치즈키 이소코 기자의 얼굴을 아는 한국 관객은 거의 없다. 하지만 어딘가 낯설지 않은 느낌. 그는 한국에서 총 두 차례 개봉하고, 주연을 맡은 심은경 배우가 일본 아카데미 최우수여우주연상을 거머쥐는 쾌거를 거둔 영화 「신문기자」의 실존 주인공이다. (C)2019 The Journalist Film Partners
모치즈키 이소코 기자의 얼굴을 아는 한국 관객은 거의 없다. 하지만 어딘가 낯설지 않은 느낌. 그는 한국에서 총 두 차례 개봉하고, 주연을 맡은 심은경 배우가 일본 아카데미 최우수여우주연상을 거머쥐는 쾌거를 거둔 영화 「신문기자」의 실존 주인공이다. (C)2019 The Journalist Film Partners

홍상현

1998년 데뷔작 <A>, 2001년 후속작 <A2>, 2012년 공동연출로 참여하신 <311>, 그리고 2017년 <페이크> 등으로 네 번이나 부산국제영화제에 오셨고, 올해는 도쿄국제영화제 일본영화 스플래시 부문 작품상, 《키네마 준보》베스트 텐 비드라마 부문 1위라는 성과를 거둔 <나는 신문기자다>로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하셨습니다.

모리 타츠야

무척 기쁩니다!

특히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는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 꼭 한번 참여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정말 영광인데, 코로나 19 때문에 현지 행사 참석이 불가능해서 안타깝기도 해요.

 

홍상현

“홍상현의 인터뷰”에서 매번 드리는 질문인데요. 평소 한국 영화를 즐겨 보시는지요. 좋아하는 작품이나 감독, 배우 등이 있으십니까?

모리 타츠야

한국영화, 너무 좋아하죠. 배우는 역시 송강호 배우, 또, 감독으로는 봉준호 감독님을 빼놓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봉 감독의 다음세대 중에서는 장훈 감독을 주목하고 있고요.

악명 높은 옴진리교의 민낯을 ‘신자’에 초점을 맞춰 파헤친 「A」는 베를린국제영화제를 거쳐 부산국제영화제 관객들과 만났다. (C)1998 A Film Partners
악명 높은 옴진리교의 민낯을 ‘신자’에 초점을 맞춰 파헤친 「A」는 베를린국제영화제를 거쳐 부산국제영화제 관객들과 만났다. (C)1998 A Film Partners

홍상현

대학(릿쿄대)시절, <스파이의 아내>로 베니스국제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 <도로로>로 시체스영화제 오리엔탈익스프레스 부문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한 시오타 아키히코 감독 등과 함께 영화동아리“릿쿄 SPP”에서 활동하시고, 졸업 후에는 배우생활도 하셨는데요.

모리 타츠야

당시 영화동아리에는 배우가 항상 부족했고, 마침 제가 영화동아리와 극단에 소속되어 있었습니다. 그렇다보니 배우로 자주 기용되었죠. 구로사와 감독의 <간다천음란전쟁>이나 이시이 가쿠류 감독의 <셔플> 같은 작품들이 그 예고요. 이 분위기를 이어 대학 졸업 후에도 신극극단 양성소에 들어가 무대를 중심으로 스물여덟 무렵까지 활동했습니다.

 

홍상현

그리고 TV 제작사에 입사, 다큐멘터리 연출자로 데뷔하셨습니다. 굳이 다큐멘터리를 선택하신 이유가 궁금한데요.

모리 타츠야

그게... 제 선택은 아니고, 이 인터뷰에서 최대한 솔직하게 이유를 말씀드리면 ‘착각’ 때문이었습니다. (웃음)

TV 드라마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으로 들어간 프로그램 제작사가 드라마 아니라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곳이었던 거죠. 그런데, 막상 또 만들다 보니까 다큐멘터리도 재미있더라고요. 그래서 그 뒤로는 쭉 다큐멘터리를 연출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신문기자다」가 제작될 당시, 아베 신조 덩사 총리는 대통령을 방불케 하는 권한강화를 진행하고 있었고, 실제로 연설회에서 아베 반대를 외치던 시민이 체포되기도 했다. 하지만 명불허전인 모치즈키 이소코 기자는 언제나처럼 거침이 없다. (C)2019 i -Documentary of the Journalist- Film Partners
「나는 신문기자다」가 제작될 당시, 아베 신조 덩사 총리는 대통령을 방불케 하는 권한강화를 진행하고 있었고, 실제로 연설회에서 아베 반대를 외치던 시민이 체포되기도 했다. 하지만 명불허전인 모치즈키 이소코 기자는 언제나처럼 거침이 없다. (C)2019 i -Documentary of the Journalist- Film Partners

홍상현

‘다큐멘터리 감독 모리 타츠야’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데뷔작이자 감독의 존재감을 세계무대에 각인시킨 <A> 시리즈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1995년 3월 도쿄 지하철역 사린가스 테러가 일어났으니까 <A>를 제작하실 당시 만해도 옴진리교는 여전히 위협적인 존재였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의 실체를 추적하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모리 타츠야

작업에 착수하는 것 자체는 크게 어렵지 않았습니다. 당시 일본의 언론보도가 워낙 옴진리교 일색이었거든요. 오히려 다른 기획이 통하지 않을 정도였어요. 그렇다 보니 하는 수 없이 옴진리교 신도를 피사체로 한 TV다큐멘터리를 찍기 시작한 건데, 촬영을 하던 중에 후지TV에서 내용을 보더니 ‘이런 작품은 방영할 수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졸지에 자주제작 영화가 되어버렸지요. 그러니 실상은 죄다 수동적인 과정을 거친 거지요.

 

홍상현

이후 이어지는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보더라도 역시 ‘성역 없는 취재’라는 공통점이 도드라집니다.

모리 타츠야

아마 제가 둔한 사람이라 그럴 겁니다.

그러니까 그 많은 사람들이 ‘금기’라든가 상영이나 방송을 할 수 없다면서 건드리지 않는 테마에 굳이 손을 댈 수 있었던 거죠.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무척 중요한 경험도 하게 되었는데요. 대개 많은 이들이 ‘건드리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들 중 대부분은, 막상 파고 들어가 보면 그저 환상에 불과하더라는 거였습니다.

「나는 신문기자다」는 거대언론이 수박 겉핥기식으로 지나쳐버리는 이슈에 온몸을 던지는 모치즈키 기자의 활약상을 보여주는 한편, 개인과 사회의 관계에 대해 비판적 성찰을 제안한다. (C)2019 i -Documentary of the Journalist- Film Partners
「나는 신문기자다」는 거대언론이 수박 겉핥기식으로 지나쳐버리는 이슈에 온몸을 던지는 모치즈키 기자의 활약상을 보여주는 한편, 개인과 사회의 관계에 대해 비판적 성찰을 제안한다. (C)2019 i -Documentary of the Journalist- Film Partners

홍상현

일본의 영화감독 중에는 정치적으로 리버럴, 또는 래디컬한 입장을 서 계신 분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특히 모리 감독께서는 “자민당을 지지할 정도라면 투표를 하지 않는 게 좋다”고 공언하거시나, 아베 정권에 정면으로 대항하는 야마모토 타로 씨의 지지 연설을 하시는 등, 눈에 띄게 적극적인 정치 활동을 하고 계셔서 화제인데요.

모리 타츠야

그런데요. 사실 저는“자민당을 지지할 정도라면 투표를 하지 않는 게 좋다”는 발언을 한 적은 없어요. (웃음) 그냥 온라인상에서 그런 타이틀이 붙어버린 거죠. 하지만 그에 가까운 생각은 물론 가지고 있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제 일이라는 게 영상을 찍고 글을 쓰는 작업인 까닭에. 직접적으로 정치나 사회과 관련한 메시지를 내면서 살짝 망설일 때도 없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현재 일본의 정치상황이 워낙 심각하게 보니 그만 목소리를 내게 되어버리는 것이죠. 물론 그 과정에서 어김없이 가해지는 인터넷 상의 비난 등에도 이제 나름 적응이 되었지만요. (웃음)

 

홍상현

<나는 신문기자다>를 제작하실 당시 아베 총리는 대통령을 방불케 하는 권한강화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연설회에서 아베 반대를 외치던 시민이 체포되기도 했고요. 정권의 스캔들을 정면에서 다루는 기자의 파트너로서 부담을 느끼지 않았습니까?

모리 타츠야

아, 네. 그건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저라는 사람의 스타일상, 말로 어떤 주장을 펼 때에는 다소 주저하는 순간도 있는 게 사실이에요. 그러나 영화를 만들 때는 다르거든요. 망설임 없이 제 목소리를 담아내죠. 그게 바로 제 일이니까요.

“대개 많은 이들이 ‘건드리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들 중 대부분은, 막상 파고 들어가 보면 그저 환상에 불과하더라는 거였습니다.” 모리 타츠야 감독의 의미심장한 술회다. (C)2019 i -Documentary of the Journalist- Film Partners
“대개 많은 이들이 ‘건드리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들 중 대부분은, 막상 파고 들어가 보면 그저 환상에 불과하더라는 거였습니다.” 모리 타츠야 감독의 의미심장한 술회다. (C)2019 i -Documentary of the Journalist- Film Partners

홍상현

모치즈키 기자와 모리 감독님의 콤비플레이는 <나는 신문기자다>라는 작품의 재미를 더해주는 대단히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습니다. 혹시 이와 관련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같은 게 있으면 소개해주시겠어요?

모리 타츠야

콤비플레이보다 그 반대에 해당하는 일이랄 수도 있겠는데요. (웃음) 모치즈키 기자가 엄청난 길치입니다. 어디를 가든 변함이 없거든요? 그런데 또 저도 만만찮은 길치란 말이죠. (웃음) 이 두 사람이 만나, 다큐멘터리를 찍으려다 보니 길을 헤매는 건 그냥 자연스러운 하나의 과정과도 같았습니다.

 

홍상현

다음은 <나는 신문기자다>의 가장 큰 볼거리에 관한 이야기인데요. 오키나와 미군기지 이전 문제나 총리의 스캔들, 성폭력 사건 등 모치즈키 기자가 매달리는 이슈 외에도 마치 승부가 정해져있는 약속대련처럼 전개되는 총리관저 기자회견의 모습을 되풀이해서 보여줌으로서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권언유착을 비판합니다.

모리 타츠야

이 부분과 관련해서는 제 필모그래피와 관련해서 가지고 있는 생각을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작품이란, 창작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는 작가의 과정이지만, 수용이 이루어지는 순간부터 수용자의 해석이 따라 그 존재의미를 부여 받게 됩니다. 감독인 제 의도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거죠. 홍상현 씨가 그렇게 받아들이셨다면, 저는 그게 바로 정답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마디만 덧붙이면, 그렇게 봐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웃음)

모치즈키 이소코 기자와 모리 타츠야 감독은 「나는 신문기자다」에서의 눈부신 콤비플레이를 통해, 시민의 눈과 귀를 가리는 권언유착의 카르텔을 향해 거침없이 돌진하는 결기를 보여준다. (C)2019 i -Documentary of the Journalist- Film Partners
모치즈키 이소코 기자와 모리 타츠야 감독은 「나는 신문기자다」에서의 눈부신 콤비플레이를 통해, 시민의 눈과 귀를 가리는 권언유착의 카르텔을 향해 거침없이 돌진하는 결기를 보여준다. (C)2019 i -Documentary of the Journalist- Film Partners

홍상현

<나는 신문기자다>에 등장하는 또 한 사람의 주인공이 있습니다. 바로 이 영화가 공개된 후 총리에 취임한 스가 요시히데 당시 관방장관인데요. 자민당 추천 후보의 거리연설을 지원하던 스가 씨와 모치즈키 기자가 마주치는 불꽃튀는 장면에서 느닷없이 애니메이션이 등장하는 게 무척 재미있었어요.

모리 타츠야

그 시퀀스의 의도는 아주 간단합니다. 제가 워낙 애니메이션을 좋아해요. (웃음)

 

홍상현

개인적으로 <나는 신문기자다>의 완성도 제고에 기여하신 스가 배우께 전할 메시지는 없으신가요?

모리 타츠야

(아주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얼른 내려오쇼!

「나는 신문기자다」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모치츠키 이소코 기자와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당시)이 연설회 현장에서 마주치는 장면. 애써 태연함을 가장하지만 숙적과 맞닥뜨린 스가 장관의 어색한 미소에서 감추기 힘든 불편함이 배어나와 관객의 폭소를 자아낸다. (C)2019 i -Documentary of the Journalist- Film Partners
「나는 신문기자다」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모치츠키 이소코 기자와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당시)이 연설회 현장에서 마주치는 장면. 애써 태연함을 가장하지만 숙적과 맞닥뜨린 스가 장관의 어색한 미소에서 감추기 힘든 불편함이 배어나와 관객의 폭소를 자아낸다. (C)2019 i -Documentary of the Journalist- Film Partners

“저널리즘은 무엇을 위해 존재할까요? 그 중요한 사명의 하나가 권력에 대한 감시입니다. 제대로 되지 않는 나라는 민주주의가 쇠퇴하지요. 일본이 내내 이런 상태고요. 한국도 과거에는 비슷했다고 들었는데, 최근 상황을 보면 역시 미디어와 저널리즘이 훌륭하게 제 역할을 해내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영화도 재미있고요. 부러울 따름이에요.”

의외의 반전으로 가득한 모리 감독과의 대화를 이어가던 내내, 필자의 머릿속에 떠오른 말은 ‘담담함’이었다. 평범한 다큐멘터리 감독이라면 인생프로젝트 쯤에 해당할만한 작품을 몇 편이나 발표했음에도 결코 호들갑스럽게 무용담을 늘어놓지 않는, 흡사 누군가의 비명소리에 구두를 벗어놓고 “잠깐 좀 보고 있으라”는 말을 남긴 뒤 묵묵히 맹수 우리로 향하던 <리틀 빅 히어로>의 더스틴 호프만 같은.

그런 모리 감독이 차기작으로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을 테마로 한 극영화를 준비 중이란다. 전주국제영화제 초청작 <분화구의 두 사람>의 아라이 하루히코 감독과 <전쟁과 한 여자>의 이노우에 준이치 감독 등 굵직굵직한 동료 영화인들이 프로듀서로 참여해 내년 크랭크인 할 예정이다. 하지만 “역사를 정면에서 마주하지 않는 일본사회에 느끼는 분노를 담아낼 것”이라는 이 작품을 발표한 후에도 놀라움과 호기심으로 가득한 필자 앞에서 모리 감독은 예의 그 담담한 어조로 제작스토리를 늘어놓을 것 같다.

그는, 바로 그래서 매력적인 사람이니까.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늘의 이슈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