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외교행낭 가짜뉴스' 때문에 장관 낙마했다?

  • 기자명 김준일 기자
  • 기사승인 2021.05.18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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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영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가 자진사퇴하고 임혜숙 과학기술정보통신부·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가 임명되면서 장관 청문회 정국이 마무리됐다. 하지만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이 외교행낭 표현을 놓고 신경전을 벌였고 이후 '반말 논란'이 불거지면서 감정이 상했다.

이후 김의겸 의원 등 여권에서는 '외교행낭 거짓주장'으로 억울하게 박 후보자가 낙마했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한겨레 이주현 정치부장은 사라진 '외교행낭'을 찾아서라는 칼럼을 통해 외교행낭으로 오인한 저간의 사정을 설명하고 반성문을 내놨다. "국민 눈높이는 고심한 여당은 공개적인 시시비비를 가리기를 포기하고 입을 닫아서" 결과적으로 박 후보자가 낙마하게 됐다는 주장이다. 

이미 자진사퇴했지만 외교행낭 표현을 둘러싼 일련의 과정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박 후보자가 정말 억울하게 낙마한 것인지 아니면 낙마할만한 사유인지는 각자 팩트를 보고 판단을 하면 될 것이다. 

 

1. 외교행낭이란 무엇인가

외교행낭(diplomatic pouch)은 외교부 훈령에 따라 운영방침이 규정되어 있다. 외교행낭은 국제협약(빈협약)에 의거 국제적으로 공인된 외교통신의 한 방식으로, 본부와 재외공관간 공문서 및 공용물품을 운송하기 위한 수단이며 목적국과 경유국 통과 시 불가침의 특권을 향유한다. 외교행낭은 공용물품만 담을 수 있다. 공용물품은 △ 재외공관 운영 및 대외교섭 업무수행 상 필요한 공문서 및 자료, △보안유지 상 필요한 서신 및 기타 용품 △ 업무연락 서신 △ 기타 외교부장관 및 재외공관장이 특히 필요하다고 인정한 사항 등으로 규정되어 있다. 

외교행낭은 가방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는 형태의 제한이 없다. 서류가방, 종이박스, 배낭, 선적용 화물 컨테이너 등 다양하다. 외교행낭이라고 표시만 하면 된다. 통관당국에서 그 내용물을 들여다보지 않고 통과시켜준다. 비밀리에 물품을 들여올 수 있기에 외교관이 사적으로 이용해 문제가 된 적이 여러 번 있다. 한국에서는 2011년 7월 외교행낭으로 술을 배달한 외교관을 감사원이 적발했다는 언론보도에 대해 외교통상부가 해명자료를 내놓은 적이 있다.

 

2017년 미국 국토안보부는 뉴욕에서 개최된 장애인권리협약 당사국 회의에 참석한 후 귀국하기 위해 뉴욕공항에서 수속을 마치고 대기하던 북한 대표단의 외교행낭을 압수해 물의를 빚은 바 있다. 한달 뒤 미 국무부는 압수한 외교행낭을 북한에 반환했다. 김정남 암살사건이 벌어진 뒤 이병호 국정원장은 신경작용제 VX를 말레이시아에 들여온 방법으로 북한의 외교행낭을 지목하기도 했다. 북한은 외교행낭으로 위조 달러나 국제 거래가 금지된 동물 뼈 등을 운송하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해외에서도 외교행낭을 이용해 다양한 물품을 들여오다가 문제가 되기도 했다. 1984년 나이지리아에서는 부패혐의로 기소된 우마르 디코 전 장관을 영국에서 납치한뒤 외교행낭을 이용해 국내로 들여오려다가 영국 세관에 적발되기도 했다. 1960년대에는 모로코 태생의 이스라엘 이중스파이가 온몸이 묶인 채 로마 주재 이집트 대사관 외교행낭에 실렸다가 이탈리아 당국에 구조되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외교행낭은 여러번 언급이 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해외순방때 조명 기구와 샤워 꼭지 등을 외교행낭에 실어 가져갔다는 설도 있었고, 최서원(구 최순실)씨의 언니 최순득씨가 해외 비자금을 빼돌릴 때 외교행낭을 이용했다는 안민석 의원의 주장이 있었지만 외교부에서는 부인했다. 최근에는 코로나 확진자 증가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인도에 한국 정부가 의료용 산소발생기를 외교행낭에 담아 보냈다는 언론보도가 있었다. 

이렇듯 외교행낭은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되며 그 활용법이 불법과 편법을 오가는 일이 많다. 외교행낭을 이용했다는 주장이 나오게 된 이유에는 이같은 외교행낭을 둘러싼 역사와 배경이 있다. 

 

2. 박준영의 '외교행낭'은 어떻게 언급됐나

네이버 기사 최신순 정렬을 이용해 '외교행낭'이란 표현이 언제 처음 나왔는지 살펴봤다. 국민의힘에서는 박준영 후보자 부인의 도자기 반입을 문제제기했고 연합뉴스가 5월 1일(토) 오전 12시 9분에 처음 보도했다. 김선교 의원에 따르면 박 후보자가 2015~2018년 영국대사관에서 공사참사관으로 재직하는 동안 부인이 대량의 도자기 장식품을 구매한 뒤 '외교관 이삿짐'으로 반입을 했고 별도의 세관신고는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박 후보자측은 "판매가 불법임을 알지 못해 사전에 판매업 등록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해 잘못을 인정하고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해명했다. 이처럼 처음 보도는 '외교관 이삿짐'으로 나왔다. 

외교행낭이라는 표현은 KBS에서 처음 썼다. KBS는 5월 3일 월요일 오후 7시 22분 <관테크·논문 내조·밀수 논란…靑 검증 제대로 했나?> 기사에서 "박준영 해수부 장관 후보자 경우는 부인 문제가 나왔습니다. 후보자가 영국 대사관 근무 때 부인이 대량의 도자기를 샀고, 이를 '외교 행랑'으로 들여와 허가 없이 팔았다는 겁니다."라고 보도했다. 일반적으로 '외교행낭'이라고 쓰는데 KBS는 '외교행랑'이라고 표현했다. 같은날 오후 11시 45분 <내일 5개부처 장관 인사청문회…의혹은?> 기사에서도 KBS는 '외교 행랑'이라고 표현했다.

정치인 중에서 가장 먼저 '외교행낭'을 언급한 것은 박원석 정의당 사무총장이다. KBS 보도 다음날인 5월 4일(월) 오전 CBS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 중에서 박 총장은 "그렇죠. 특히나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 외교관 이삿짐이라는게 일종의 어떤 외교관에게 주는 특권이거든요"라고 말한 뒤 "저 정도 규모의 도자기를 외교행낭에 포함시켜서 가지고 온 거 자체가 매우 부적절하다는 걸 몰랐다면 저는 그건 공직자로서의 자격이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박준영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 부인이 운영하는 카페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도자기들.
박준영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 부인이 운영하는 카페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도자기들.

5월 4일 청문회장에서 '외교 행낭'이란 표현이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김선교 국민의힘 의원은 "이 사진들을 처음 접했을 때 난파선에서 건져 올린 보물인 줄 알았다”며 “일반인이 이 정도 물량을 세관 신고 없이 들여와 판매했다면 한 마디로 밀수”라고 했다. 그는 “북한이 외교 행낭을 이용해 밀수를 한다는 얘기는 저도 들었는데, 공정을 외치는 문재인 정부에서 외교관이 이렇게 밀수를 했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고 말했다. 

5월 8일(토) 오전에 해양수산부는 국회에 서면답변서를 제출한다. 해수부는 "재외공관에서 근무한 해수부 공무원과 동반가족이 파견국가에서 대량의 물품을 구매해 외교행낭으로 반입한 뒤 판매하는 영리행위는 국가공무원법과 공무원 징계령 등에 따라 처벌될 수 있다"고 밝혔다. 외교부도 국회에 제출한 서면답변서에서 "외교관이 개인물품을 외교행낭으로 이송해 영리행위를 하는 것은 국가공무원법 등을 위반한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이같은 사실은 외교행랑 이용에 대한 원칙적인 답변이었다.

같은날 오후 해양수산부는 <박준영 해양수산부장관 후보자는 외교행낭을 이용한 사실이 없습니다>란 해명자료를 내놓는다. 해양수산부는 "국회에 제출한 답변서는 외교 행낭을 이용한 개인물품 반입에 대한 일반적인 판단일 뿐, 장관 후보자 사례에 대한 입장이 전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박준영 후보자는 외교행낭을 이용한 사실이 없으며 귀국 당시 상사 주재원 등과 동일하게 해외이사대행 업체를 통해 이삿짐을 국내로 배송했다는 설명이다.  이같은 해명은 수십개 언론에 게재됐다. 

하지만 결국 밀수와 불법판매 프레임에 따른 부정적 여론을 이기지 못하고 박준영 후보자는 5월 13일 자진사퇴를 했다.

 

3. 정치권 싸움으로 번진 외교행낭

5월 13일(목) 오후 국회에서 배진교 정의당 원내대표는 박준영 후보자가 외교행낭을 이용해 도자기를 국내로 밀반입했다고 주장했다. 홍기원·문정복 민주당 의원은 배 원내대표 자리로 이동해 "'외교행낭을 이용한 부인의 밀수'가 사실과 다르다"고 항의했다. 배 원내대표가 "그럼 무슨 이유로 사퇴했냐"고 묻자 문정복 의원은 "아니, 그건 당신이..."라고 말했다. 옆에 있던 류호정 의원이 "당신?"이라고 반문했고 문정복 의원은 "야!" "어디서 지금 감히" "어디서 목소리를 높여"라고 말했다. 이후 문 의원은 '당신'은 박 후보자를 3인칭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당신'이라는 극존칭을 이해못한 류호정 의원이 반박을 하면서 논쟁이 커졌다는 거다. 이후 배 원내대표는 '외교행낭'이라는 표현을 국회기록에서 삭제했다. 

이 사건 이후 여당과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외교행낭'이라는 표현때문에 박준영 후보자가 억울하게 낙마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김의겸 의원은 5월 14일(금) 페이스북에 김 의원은 "한국으로 귀국할 때 이삿짐 수입신고, 관세청 통관 등을 모두 적법하게 거쳤다"라며 "범죄행위라는 말도 틀린 말이다. 정의당의 불찰을 지적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왜 정의당 의원조차도, 핵심인 원내대표조차도 이렇게 오해하고 있을까?"라고 물었다. 이어 김 의원은 "국민의힘이 거짓된 주장을 내놨고, 일부 언론이 한껏 부풀려 보도를 했기 때문에 (낙마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도자기는 숫자가 많아서 그렇지 다 싼 것들이다"라며 "영국의 벼룩시장에서 1개에 1500원부터 3만 원 정도에 구입했다고 한다. 1250점이라고 해봐야 사들인 값으로 따지면 1~2천만 원이고 이 가운데 실제 판 건 320만 원 정도다"라고 말했다.

 

4. '외교행낭'과 '외교관 이삿짐'의 차이는?

과정을 돌이켜보면 5월 1일 박준영 후보자 부인의 소위 '밀수' 의혹이 불거졌을 때는 외교행낭이라는 표현은 없었다. 5월 3~4일  언론보도와 야당 정치인들의 발언을 통해 '외교행낭'이라는 표현이 처음 나왔다. 해양수산부는 5월 8일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외교행낭'과 관련해 해명을 했다.

왜 '외교관 이삿짐'과 '외교행낭'이 구분없이 쓰였을까. 1961년에 체결된 빈 협약에 따르면 외교관이나 그 가족이 거주 도중 개인용 물품으로 구매하는 물건들은 기본적으로 면세 대상이며 면세품이 담긴 외교관 이삿짐 역시 통관 절차가 매우 간소하다. 다만 마약 등 금지물품은 적발이 되기도 한다. 2011년 아프리카 주재 모 대사가 귀임하면서 외교관 이삿짐에 국제적으로 거래금지품목인 상아를 들여온 것이 발견되어 문제가 되기도 했다.

외교행낭은 원래 공적인 용도로 쓰여야 하지만 다른 용도로 종종 쓰인 유구한 역사가 있고, 국내 외교관들도 사적인 용도로 썼다가 적발된 사례가 있다. 그리고 '외교관 이삿짐'은 외교행낭처럼 들여오는 절차가 까다롭지 않다. 통관이 쉽다는 공통점 때문에 외교관 이삿짐과 외교행랑이 구분없이 쓰인 것으로 추정된다.  

 

5. '외교행낭 가짜뉴스' 아니었으면 장관이 됐다?

외교행낭에 도자기를 들여온 것으로 알려져 여론이 더 안좋아진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해양수산부에서 해명을 했지만 사실관계를 모르고 계속 오해한 사람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면 정말 여권과 일부 지지자들이 주장하는대로 '외교행낭 가짜뉴스'가 없었다면 장관에 임명됐을까.

중요한 것은 도자기 1250점과 샹들리에 8개를 들여와 일부를 신고없이 판매한 것은 분명히 위법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박 후보자의 자진사퇴를 결정한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다. 전체적으로 장관 후보자에 대해 여론이 안좋았기 때문에 '정치적 결정'을 내린 것이다. 외교행낭 문제가 불거지지 않았다면 문 대통령은 박준영 장관을 임명했을까? 문 대통령에게 직접 물어보고 싶다. 확실한 것은 사실관계는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는 것, 그리고 가정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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