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김순덕과 한국 언론, 그리고 스페인의 선택

  • 기자명 곽민수
  • 기사승인 2021.06.19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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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7일 동아일보 칼럼에서 김순덕은 "믿고 싶진 않지만 김정숙 여사한테 벨베데레궁 국빈 만찬 같은 마지막 선물을 안겨주기 위해 기획한 건 아닌지, 몹시 궁금해졌다"라고 쓰며 한국 대통령의 이번 오스트리아-스페인 국빈 방문을 폄하했다. 아마 G7 정상 회담에서도 그렇고, 바로 이어진 오스트리아-스페인 순방에서도 특별하게 흠 잡을 만한 상황이 연출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대통령 개인에 대한 혐오의 감정을 표현할 길이 없어 좀 억지를 부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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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덕은 명백하게 '동아일보 기자'라는 언론인 타이틀을 걸고 칼럼을 쓰는 인물이다. 심지어 그는 ‘대기자’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보여주는 행태를 '한국 언론의 실제 현실', 최소한 '한국 언론의 한 단면'이라고 이해해도 크게 무리는 아니다. 김순덕의 칼럼은 그 편향성과 일방성의 측면에서도 문제가 되지만, 그가 언론인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언론인의 본분, 즉 '시사 현상에 대한 사실적 보도와 해설'에 태만했다는 점에서도 비판받을 수 있다. 예컨대, 한국 대통령의 이번 스페인 방문에서 관찰된 상황들을 국제적으로 높아진 한국의 위상을 실제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례들이었고, 언론은 이 상황들 속에 담겨진 의미를 설명해야만 했다.

이번 스페인 방문에서는, 개인적으로는 다소 '충격적이기까지 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스페인 측은 마드리드의 상원도서관에서 소장 중인, 독도를 조선의 영토로 분명하게 표기한 1730년대에 제작된 '조선왕국전도'를 한국 대통령에게 보여주는 의전을 연출했다. 이것은 한국의 사정에 대해서 매우 면밀하게 조사하고 연구한 이후에야 이뤄질 수 있는 연출이다. 국제 외교 과정에서 있어서 의전은, 특히 서구 사회에서의 의전은 '무언의 메세지를 전하는 유용한 수단'인 만큼, '독도 지도 퍼포먼스'는 스페인 측에서 한국을 아주 중요한 파트너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미지 출처: 청와대 페이스북
'조선왕국전도'를 살펴보고 있는 한국 대통령
(이미지 출처: 청와대 페이스북 페이지)

그런데 여기서 더 나아가 이 '독도 지도 퍼포먼스'는 스페인의 입장에서는 약간의 위험을 감수한 선택이기도 했다. 즉 독도 문제를 둘러싸고 한국과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일본을 자극할 수도 있는 선택이었다는 이야기다. 일본이라는 국가의 국제적 위상을 감안한다면 스페인의 선택은 상당히 의미있는 것이다.

조선왕국전도 (이미지 출처: 청와대 페이스북 페이지)
조선왕국전도 (이미지 출처: 청와대 페이스북 페이지)

그렇다면 스페인은 왜 일본을 자극할 수 있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그런 선택을 했을까?

올해 초에 여러 외신한국 언론을 통해서 보도되었던 것처럼, 스페인 카탈루니아 지방에 있었던 일본의 자동차 회사 닛산의 공장이 올해 안에 모두 철수한다. 스페인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많은 수의 일자리가 사라지게 된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스페인은 이에 대한 대안으로 닛산 공장 부지에 전기차의 핵심 부품인 자동차 배터리 공장을 들여오려고 시도하고 있었다.

로이터 기사 갈무리
닛산의 자동차 공장 철수와 관련된 2021년 2월 15일자 로이터 기사

한국은 이미 국제적으로 공인을 받은 배터리 강국이다. 거기에 이번 한국 대통령의 스페인 순방 때는 한국의 주요 배터리 생산업체 중에 하나인 LG에너지솔루션의 김종현 대표가 동행을 하기도 했다. 이런 정황을 염두에 둔다면, 한국 대통령의 스페인 방문과 스페인 측의 의전이 갖고 있는 주요한 목적과 의미가 무엇이었는지 대략적으로나마 추정이 가능하다.

나 같은 비전문가도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추정할 수 있는 이런 상황에 대해서 기자, 그것도 '대기자'의 타이틀을 달고 있는 김순덕은 전혀 말하지 않았다. 대신 악의와 정념으로 가득 차 있는 그의 칼럼이 한국 최고의 신문들 가운데 하나에 실렸을 뿐이다. 만약 한국 대통령의 이번 순방의 목적이 무엇인지 정말 몰랐다면 그건 언론인으로서는 무능의 극치라 할만하고, 알면서도 악담만을 퍼부은 것이라면 기본적인 언론 윤리조차 지키지 않은 것이 된다. 한 가지 더 아쉬운 것은 이렇게 '한국 언론을 대놓고 망신시키고 있는 칼럼'이 유력 일간지에 실렸는데도, 여기에 대해서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언론인은 아직까지는 없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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