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올림픽에서 일본 국가 '기미가요' 부르면 논란거리?

기미가요의 역사, 그리고 한국언론의 보도양태

  • 기사입력 2021.07.29 16:43
  • 최종수정 2021.07.29 23:56
  • 기자명 송영훈 기자

코로나19 팬데믹으로 1년 연기된 도쿄올림픽이 열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악화된 한일관계를 반영한 듯 한일 간의 크고 작은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올림픽 개막식의 한 장면이 논란이 됐습니다.

연합뉴스 등은 23일 <日톱가수, ‘군국주의 상징’ 논란 국가 기미가요 불러>라는 제목의 기사를 출고했습니다. 도쿄올림픽 개막식에서 일본의 정상급 가수 미샤가 ‘군국주의 일본’을 상징한다는 논란이 있는 ‘기미가요(君が代)’를 불렀다는 내용입니다.

이와 관련해 한 트위터 이용자는 “지금 도쿄올림픽 개막식 보고 있는데 어떤 노래 나오니까 할머니가 듣자마자 따라 부르시길래 뭔데 어떻게 아냐 했더니 기미가요 안 부르면 엄청 맞았다고 그래서 알고 있다고...”라는 내용의 글을 올렸고, 이는 2만8천회 리트윗 됐습니다.

트위터 갈무리
트위터 갈무리

이데일리는 이 내용을 <도쿄올림픽서 ‘기미가요’ 나오자...“따라 부르는 할머니, 소름 돋아”>라는 제목으로 기사화했고, 포털사이트 많이 본 뉴스 순위에 올랐습니다. 인터넷매체인 마이데일리는 <‘일본 왜 이러나...’ 日톱가수, 도쿄올림픽 개막식에서 ‘기미가요’ 열창한다>는 좀 더 자극적인 제목을 달았습니다. 뉴스핌도 <‘군국주의 상징’ 기미가요 꺼낸 도쿄올림픽... ‘배려’ 없는 일본>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출고했습니다.

마이데일리 갈무리
마이데일리 갈무리

하지만 다른 쪽에서는 올림픽 개최국이 개막식에서 자국 국가도 연주 못하느냐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기미가요 논란의 맥락을 짚어봤습니다.

 

군국주의시대에 사용하던 기미가요, 1999년 일본 국가로 공식 제정

일본은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 패전 이후 공식 국가가 없었으나 군국주의시대에 사용되던 기미가요가 사실상 국가로 계속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다가 1999년 7월 제정된 「국기 및 국가에 관한 법률」에 의해 법적으로 기미가요가 다시 국가가 되었습니다. 국기·국가법은 「히노마루를 국기로 한다」, 「기미가요를 국가로 한다」는 두 조항으로 이뤄졌으며 국기·국가에 대한 존중의무 등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일본 E-GOV 法令検索 사이트 갈무리
일본 E-GOV 法令検索 사이트 갈무리

서울신문에 따르면, 당시 일본의 국기·국가법 법제화는 1999년 2월 교육위원회의 국기게양·국가제창 지시와 교사들의 반발 사이에서 고민하던 한 고교교장의 자살로 인해 추진됐습니다. 메이지 유신 이후 관행적으로 사용돼 왔으나 명확한 규정이 없어 일어나고 있는 혼란을 막기 위해 법제화가 불가피하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었지만, 전국교원노조인 일교조(日敎組)와 사회단체들은 법제화 강행이 침략전쟁기였던 메이지·쇼와시대로의 복귀라며 적극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서울신문은 해당 기사에서 “히노마루와 기미가요에는 일본 제국주의의 역사가 배어 있다. 히노마루를 앞세우고 기미가요를 부르며 일본이 벌였던 침략전쟁의 희생자인 아시아 이웃국가들에는 일본 군국주의가 자행했던 ‘과거사’를 다시 생각나게 한다. 특히 최근 일본의 급속한 군사대국화 행보와 궤를 같이하는 히노마루와 기미가요의 공식화는 ‘군국일본’의 부활을 걱정하게 만든다.”고도 했습니다.

한겨레21은 일본 국기와 국가가 제정된 이듬해인 2000년 4월 ‘히노마루·기미가요에 등돌리는 일본 초·중·고 졸업식장의 진풍경’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일본 학교 졸업식에서 기미가요 반주가 시작되자 학생과 학부모들이 자리에 그냥 앉아버리거나 중간에 자리를 박차고 떠나는 학생 등 기미가요와 히노마루 강행에 반대하는 진풍경을 소개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일본 교육위원회가 지역의 학교 교장들에게 지방 공무원법상의 직무명령을 통해 졸업식 때 히노마루를 게양하고 기미가요를 제창하도록 지시하고, 2007년 2월 27일 일본 최고재판소가 국가 반주 명령에 대해 합헌을 인정하면서 히노마루와 기미가요에 대한 일본 내의 반대 목소리는 힘을 잃어가는 상황입니다.

 

일본 식민지배 경험한 한국에서는 여전히 예민한 부분

기미가요는 “천황의 치세는 천대에서 팔천대까지(이어지리라)/조약돌이 반석이 되어/거기에 이끼가 낄 때까지.”라는 가사를 담고 있습니다. 해방된 지 76년이 지났지만 앞서 트위터에서 언급한 ‘기미가요 따라 부르는 할머니’ 사례는 여전히 실제로 가능한 상황입니다. 이 때문에 일본 식민 지배를 경험한 한국에서 기미가요는 여전히 예민한 부분입니다. 2009년 4월 일본에 진출했던 한국 연예인이 일본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 기미가요를 듣고 기립박수를 쳐 파문이 일었던 적이 있습니다.

또 2014년에는 JTBC의 예능 프로그램 ‘비정상회담’이 기미가요를 배경 음악으로 사용하여 논란이 일었습니다. 이를 두고 SBS <한수진의 SBS 전망대>는 “기미가요 트는 건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인정하는 꼴”이라는 제목으로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SBS 방송화면 갈무리
SBS 방송화면 갈무리

당시 방통심의위도 ▲방송사가 사과문 게재, 사과방송 및 관계자에 대한 징계조치 등 다각적으로 노력한 점을 감안하더라도, ▲한일 간 과거사 문제가 현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이 되는 음악을 사용한 것은 국민의 역사인식과 정서를 배려하지 않고 민족의 존엄성과 긍지를 손상시킨 것으로 판단했다며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25조(윤리성)제3항 위반으로 경고‘를 결정했습니다.

JTBC의 기미가요 송출을 비판했던 SBS는 2018년 2월 24일 평창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매스스타트 경기 시상식을 생중계하면서, 기미가요를 그대로 송출해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됩니다. 당시 시상식을 동시 중계한 MBC는 기미가요가 나오는 순간 남자 매스스타트 경기에서 금메달을 받은 이승훈 선수의 경기 장면을 다시 내보냈으며, KBS는 광고를 송출했습니다.

이를 두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130건이 넘는 민원이 접수되는 등 논란이 커지자, 방통심의위는 방송심의규정 제27조(품위유지) 5호에 따라 심의를 거쳐 ‘시상 장면을 중계하며 불가피한 일’이었다고 의견을 모아 ‘문제없음’을 의결했습니다.

 

악화된 한일관계도 조회 수에 이용하는 언론

일본이 참가하는 국제 스포츠 경기에서 일본 국가인 기미가요가 연주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2016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렸던 하계올림픽 폐막식에서도 차기 개최국인 일본을 소개하는 영상에 기미가요가 일부 삽입됐고, 야구나 축구 등 국가 대항전으로 치러진 스포츠 경기에서도 기미가요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유튜브 영상 갈무리
유튜브 영상 갈무리

현재 한일관계는 크게 악화된 상황입니다. 두 나라 정치권에서 한일 갈등 상황을 이용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올 만큼 양국 모두 중재의 목소리보다는 상대국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더 두드러집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국내에서 일본 관련 이슈는 조회 수가 많이 나오는 기사입니다. 국제 스포츠 경기에서 자국 국가 연주가 당연하고, 국내 방송사의 스포츠 중계에서 기미가요 송출 논란이 있었지만 방통심의위의 ‘문제없음’ 의결이 나온 상황입니다. 최근 악화된 한일관계에는 이를 이용해 조회 수를 올리려는 일부 언론의 책임도 있습니다.

 

송영훈   sinthegod@newstof.com  최근글보기
프로듀서로 시작해 다양한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활동해 왔다. <시민을 위한 팩트체크 안내서>, <올바른 저널리즘 실천을 위한 언론인 안내서> 등의 공동필자였고, <고교독서평설> 필자로 참여하고 있다. KBS라디오, CBS라디오, TBS라디오 등의 팩트체크 코너에 출연했으며, 현재는 <열린라디오 YTN> 미디어비평 코너에 정기적으로 출연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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