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축구는 왜 필리핀전에 1점밖에 못 냈나

  • 기자명 김지석
  • 기사승인 2019.01.10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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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년만의 아시아 정상을 노리는 대한민국 대표팀의 2019 아시안컵 여정이 시작되었다. 한국이 속한 C조도 예선 1차전(중국 vs. 키르기스스탄, 대한민국 vs. 필리핀)을 끝냈다. 한국 대표팀은 1월 12일 키르기스스탄전과 16일 중국전을 앞두고 있다. 지난 경기를 통해 드러난 몇가지 특징과 한국 대표팀의 과제를 살펴본다. 

대회 첫 경기엔 이변이 속출한다

친선경기나 평가전에서는 칠레, 우루과이와 같은 강팀과 경기를 해도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데 월드컵 혹은 아시안컵과 같은 권위있는 대회에서는 필리핀과 같은 한 수 아래의 팀을 상대하는 경기라해도 경기를 시청하는 팬들의 마음에 왠지 모를 옅은 긴장감이 전해져 오기 마련이다. 어느 종목, 어느 대회든 첫 경기는 쉽지 않다. 첫 경기 특유의 긴장감, 경직성이 있다. 거기서 오는 심리적 무거움이 가볍지 못한 몸놀림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월드컵을 비롯한 모든 대회 첫 경기에서 대체로 이변이 잘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며, 전문가들이 대회 첫 경기에는 경기 내용에 깊이 주목하지 않고 결과물에 더 비중을 두는 이유이기도 하다. 첫 경기의 경기 결과가 다음 경기들의 내용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대표팀의 필리핀전 결과는 1대 0 승리였으나, 선수들의 몸놀림과 경기 내용은 만족스럽지 못했다. 지난 아시안컵 챔피언이자 이번 대회 강력한 우승 후보인 호주는 한 수 아래로 여겨지던 요르단과의 첫 경기에게 졌다. 첫 경기는 결과가 중요하며, 우리는 필리핀전에서 얻어야 할 최소한의 결과는 얻었다. 필자는 1차전에서 결과를 얻고 부담감을 떨쳐낸 우리 대표팀이 키르기스스탄 전에서는 경기 결과와 내용 모두에서 성과를 가져올 것이라 예상한다. 

 

 

1차전 한수 아래의 요르단에 패배 후 망연자실한 호주 대표팀

 

①동남아시아 축구 수준의 향상

과거 동남아 팀을 상대로 손쉽게 4~5득점을 하던 다득점은 이제는 더 이상 쉬워 보이지 않는다. 전세계적으로는 아시아 대륙 전체가 여전히 축구 변방이기는 하나, 한국-일본으로 대표되는 극동, 이란-사우디로 대표되는 중동, AFC로 편입되어 좋은 성과를 보여주는 호주를 제외한 지역, 즉 아시아에서도 축구 약소 지역이던 동남아시아-인도의 축구도 빠르게 향상되어(박항서 감독의 베트남 연령별 대표팀의 상승세, 인도의 금번 아시안컵 태국전 4:1 승 등) 아시아 축구 전체가 평준화되어 가는 모습이다. 필리핀이 보여준 90분 동안 흐트러짐 없는 견고한 파이브백(5-back)과 4명의 중원은 과거 동남아시아 팀에서 볼 수 없었던 팀전술과 집중력이었다.

후반 막판까지 5-4-1 포메이션의 견고한 수비라인을 흔들임없이 유지하는 필리핀.

 

②1대1 능력 향상 절실

현대축구에서는 상대 선수와의 1대1 능력의 우위를 중요시한다. 공격수들이 수비수와 1대1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지 못하면 어떠한 포메이션이던 상대의 견고한 수비라인에 크랙(crack)을 효과적으로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다. 신체적, 전술적 능력이 떨어지는 동남아시아 팀이라 해도 에릭손과 같은 명장 밑에서 스즈키컵과 같은 실전 대회를 치르며 수비라인의 조직력과 견고함이 자신들의 최고치를 보이고 있는 팀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일반적으로 우리 대표팀 공격수들은 아시아 팀과의 경쟁에서는 2대1 패싱 등 부분전술 능력에서는 상대팀들에 비해 한단계 세련된 능력을 보여주고 있지만, 1대1 능력에서는 아직 상대 수비수를 완전히 허물어내고 벗겨낼 정도의, 혹은 상대 수비를 농락할 정도의 능력을 보여주지 못한다. 아시안컵, 월드컵 아시아지역예선, 아시안게임 등 아시아 지역 타이틀 대회에서는 이란, 일본, 호주 등 일부 팀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팀들이 한국을 상대로 수비라인을 최대한 내리고 걸어 잠그는 축구를 구사한다. 1대1 능력에서 압도적 우위를 보이지 못하는 점은 한국 축구가 여전히 상대의 이러한 뻔한 전술을 알고도 효과적으로 뚫어내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우리가 손흥민을 열광하며 기다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③수비팀 상대로 '기술적 세밀함' 부족

아시안컵 역사에서 일본이 대체로 우리보다 두각을 나타내는 이유는 ‘기술의 차이’로 분석할 수 있다. 인정하기 싫지만 기술 측면에서는 분명 일본이 우리에게 앞선다. 여기서 말하는 기술이란 ‘세밀함’이다. 상대가 밀집된 상황에서도 허점과 빈틈을 찾아 정확히 뚫어낼 수 있는 그 ‘한 끝 차이’의 세밀함이 우리보다 일본이 그동안 우위에 있어왔다. 우리는 공간을 찾고 그것을 활용하는 활동력과 스피드가 강점이다. 아시아팀들이 공격적으로 맞대응하는 경기를 펼치지 않는 이상, 잔뜩 물러나 웅크리고 있는 팀들을 상대로 우리 대표팀이 그 특유의 강점을 보이기가 쉽지 않고, 정적인 플레이로 경기를 풀어나가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이 부분에서 상대를 압도할 만한 ‘기술적 세밀함’이 아직은 다소 아쉬운 것이 사실이다. 

필리핀전 후반, 황인범, 이청용과 같은 테크니션들이 투입된 후 곧바로 득점이 이루어지고, 한층 효율적인 경기력을 보인 점이 이를 입증한다고 하겠다. 9-back, 10-back 전술로 물러서 있는 아시아팀들을 상대로 우리 고유의 팀컬러와 다소 맞지 않는 정적인 축구를 구사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개인기술, 부분전술의 창의성과 정확성이 상대적으로 뛰어난 선수들의 활용이 상대적으로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혹은, 이번 대회에 차출되지 않았으나 김신욱과 같은 압도적 피지컬로 ‘깨부수는’ 축구도 아시아팀들을 상대로는 효과를 볼 수 있으리라 사료된다. 아울러, 미드필드진에서 공·수에 왕성한 활동력을 가졌으나 1대1 능력이 떨어지고 패스 정확성과 연계 능력에서 계속해서 아쉬움을 보여주던 선수를 빼고, 이 부분에 상대적 강점을 가진 황인범, 이청용을 투입함으로써 경기 내용의 답답함을 일순간 극복해낸 벤투 감독은 선임 당시 일부에서 재기되던 ‘경기 중 전술변화의 경직성’에 대한 우려를 부분적으로 씻어낸 순간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④더 많은 슈팅이 필요하다

우리 대표팀은 대체로 슈팅이 적다. 벤투호는 최후방에서부터 전술적인 빌드업을 통해 경기를 지배해 나가는 축구를 지향한다. 그러나 대표팀은 벤투가 추구하는 빌드업과 경기지배에 몰입되어 슛을 해야 하는 순간에도 연계에 집착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슛을 해야 하는 찰나의 순간과 공간이 생기면 반드시 슛이 필요하다. 수비나 골키퍼에 걸리더라도 의외의 세컨볼 찬스나 이어지는 플레이 가능성, 단순한 점유율이 아닌 실제적인 경기지배력과 주도권 점유, 경기 전개의 다이내믹을 위해서라도 슛은 더 많이 나와야 한다. 필리핀전에서는 8대2의 점유율에도 불구하고 14개의 슈팅밖에 없었고 유효슈팅은 4개였다. 필리핀은 6개 슈팅중 3개가 유효슈팅이었다.

골이 들어가지 않더라도 슛이 나오고 하나의 플레이가 마무리되어야 선수들도 한 템포 숨을 고르고 수비 전열을 다듬을 수 있다. 슛으로 마무리 없이 끝없이 볼을 돌리다가 실수가 나오는 순간 역습을 맞이하고 위험을 초래하게 되는 예는 어제의 필리핀전과 지난 날 한국 축구에서 수없이 경험하였다. 사각 지역이라도, 수비가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다소 거리가 있더라도 계속해서 과감하게 두드려야 한다. 골은 슛을 통해서 생산된다. 수비에서부터 시작되는 모든 빌드업은 슛을 하기 위함임을 잊지 않아야 하겠다.

 

⑤역습에 대한 방어 대책 수립

필리핀전에서는 답답한 공격력과 함께 수비에서도 문제를 보였다. 개인기를 갖추고 발이 빠른 상대 공격수 1~2명에게 쉽게 역습을 허용하며 실점과 다름이 없는 장면을 여러차례 보였는데, 만일 상대가 일본, 이란 등과 같은 아시아 정상급 팀이었다면 분명 실점을 하였을 순간이었다. 이용, 김진수와 같은 측면 수비수들이 높은 위치까지 올라가 계속해서 공격에 가담하는 상황에서 기성용, 정우영 더블 볼란치는 기민한 상대 공격수들의 빠른 역습에 빠르고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두 선수는 안정된 경기 조율과 빌드업에 강점을 가지고 있으나, 투지 넘치고 발 빠른 공격수들에 대응하는 데에는 분명 아쉬움이 있었다. 

아시아팀들을 상대로 작고 빠르며 활동력 높은 수비수(최철순, 고요한 등)가 필요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드는 부분이었으나, 경기 막바지 주세종의 투입으로 안정적으로 1대 0 승리를 지켜낸 점은 좋았다고 볼 수 있다. 키르기스스탄과 중국과의 예선 경기에서도 상대팀들은 우리를 상대로 비교적 수세적으로 경기하다가 강하고 빠른 역습을 추구하는 형태의 전술을 보일 확률이 높다. 이에 대한 전술적 대응과 연구가 반드시 필요한 대목이다.

역습 한번에 허물어지고 결정적인 위기를 맞이하는 우리 수비라인

 

⑥선수 개인별 '맞춤형 컨디셔닝' 필요

필리핀전 후반 초반, 경기내내 대단히 몸이 무거워 보이던 기성용이 햄스트링 부상으로 교체 아웃 되었다. 어떠한 상대팀을 맞이하던 벤투가 추구하는 빌드업과 연계 플레이를 유지하며 대표팀의 전체적인 경기 조율을 담당하는 기성용은 현재 대한민국 대표팀의 전술적 핵이다. 그러나 남은 아시안컵 경기에 참가가 불투명한 것으로 전해진다. 기성용은 ‘꾀’가 많은 선수다. 어제의 교체아웃이 심각한 부상에 의한 치명적인 것이 아니라, 선수 스스로 느낀 통증과 차후 경기에 대한 우려에 의해 자발적으로 교체아웃을 원한 상황이었길 소망한다. 예선을 마친 후 토너먼트가 시작되면 돌아오길 희망한다. 

첫 경기에 햄스트링에 문제가 발생한 기성용의 부상은 2018 러시아 월드컵 첫 경기 박주호의 햄스트링 부상과 중첩된다. 햄스트링 파열 혹은 근손상은 선수들의 피로감을 가장 극명하게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유럽과 아시아를 오가며 소속팀 경기와 A매치를 치뤄야 하는 대표팀 선수들의 고충을 잘 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매번 중요한 대회마다 상대 선수의 거친 플레이에 의한 피치 못할 부상이 아닌, 컨디션 저하와 피로에 따른 부상이 대표팀에 반복적으로 나타난다는 점은 매우 아쉬운 점이다. 물리적 거리가 먼 유럽과 아시아대륙에서 소속팀 생활을 하는 각각의 선수들이 A매치를 위해 한 곳에 차출되어오게 되는 우리 대표팀의 특수성이 잘 반영된 컨디셔닝 노하우가 그동안의 우리 대표팀에 축적되어 오고 있는지를 강하게 의심하게 되는 부분이다. 본국은 극동아시아 혹은 오세아니아 지역이면서 소속팀은 유럽에 위치하여 소속팀 경기와 A매치를 위해 이동해야 하는 거리가 상당한 선수들을 다수 보유하고 있는 한국, 일본, 호주와 같은 팀들에게는 반드시 선수 개인별 맞춤형 컨디셔닝이 필요하겠다.

 

⑦피지컬 뛰어난 키르기스스탄, 역습 한방 조심해야

한국-필리핀 경기에 앞서 진행된 중국과 키르기스스탄의 경기는 중국의 2대 1 역전승으로 끝이 났다. 한국의 다음 상대인 키르기스스탄의 전력은 예상보다 강했고, 좋은 피지컬을 바탕으로 펼치는 투박하지만 빠르고 간결한 공격력은 경기내용면에서 중국보다 오히려 뛰어났다. 특히, 키르기스스탄의 포워드 럭스(no. 19)의 공간 창출능력과 찬스 메이킹 능력은 비교적 탁월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골을 마무리 짓는 결정력에는 부족함이 보이며, 무릎 부상도 있는 듯하다. 좋은 피지컬과 스피드를 함께 보유한 김민재를 중심으로 우리 수비라인이 럭스에 대한 집중적인 수비를 펼친다면 이렇다할 위협적 장면은 보여주지 못할 선수로 판단된다. 

좋은 공격력에 비해 키르기스스탄 골키퍼의 능력은 ‘수준 이하’로 보여진다. 키르기스스탄이 중국에 허용한 두 골 모두 골키퍼의 치명적 실수에 의한 것이었으며, 그 실수들이 아니었다면 키르기스스탄은 중국에 1대 0으로 승리하였을 것이다. 골키퍼는 키르기스스탄의 아킬레스건이다. 이 점을 집요하게 노려본다면 우리 대표팀의 손쉬운 승리가 예상된다.

중국은 공격 전개 능력의 창의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모습이다. 과거, 상대팀으로 만나기만 하면 부상을 유발했던 중국 특유의 지나친 투쟁심과 일명 ‘소림사 축구’도 이젠 보이지 않는다. 골결정력은 심각해 보인다. 다만, 한국과의 경기에서는 한·중·일 대표팀 간에 발생하는 특유의 경쟁심으로 자신들이 가진 전력 이상의 모습을 보일 것으로 예측된다. 우리 대표팀은 슈틸리케 시절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중국에게 당한 패배 등으로 중국이 더이상 우리 대표팀을 상대로 과거의 공한증을 보이지 않는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결국, 앞으로의 예선 두 경기에서 조심해야 할 것은 상대의 ‘한 방’이다. 키르기스스탄과 중국 모두 우리 팀을 상대로 잔뜩 움츠리다가 빠르게 넘어와 슛까지 마무리하고 내려가는 전술을 구사하려 할 것이다. 그 한 방의 위협에 대한 불씨부터 제거할 수 있는 집중력을 발휘하느냐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로 판단된다. 상대가 같이 맞대응 하는 전술로 나온다면 우리에겐 오히려 다득점 경기의 기회가 될 것이다.

골키퍼와 1대1 찬스를 만들고도 어이없이 빗나가는 킥을 선보인 키르기스스탄의 공격수 럭스
공중볼을 골문 안으로 처리한 키르기스스탄 골키퍼 마티아시의 어이없는 실수

좋은 팀은 상대에게 집중하거나 환경에 집중하지 않는다. 경기내내 자신에게 더욱 집중한다. 상대팀의 플레이에, 상대 선수의 도발에, 심판의 판정에 흔들리지 않는다. 경기 중 어필할 만한 순간에 짧고 강하게 어필할 뿐, 곧 자신들의 플레이에 집중을 한다. 경기가 안 풀린다고 짜증스러운 표정을 짓지 않는다. 경기가 잘 풀린다고 느슨해지지도 않는다. 오로지 연습하고 훈련한 계획들과 기량을 경기장에서 실현하는 데에 집중한다. 남은 예선 두 경기와 이후의 토너먼트 과정에서 우리 대표팀이 조금 더 우리 자신에게 집중하고, 우리 자신의 플레이에 흐트러짐 없이 몰입할 수 있다면, 59년만의 아시안컵 정상이 그리 멀리 있는 것만은 아닐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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