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언론은 범죄 보도 제목에 '외국인 국적'을 왜 넣을까

  • 기자명 윤재언
  • 기사승인 2021.11.18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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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꾸준히 관심을 뒀고, 일본 사회에서 ‘마이너리티’로 생활하는 지금도 늘 신경 쓰이는 게 외국인 범죄보도다. 어떤 사회든 외국인이 자국 내에서 벌이는 범죄에는 높은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언론은 외국인 범죄를 곧잘 보도하고, 독자들은 흥미를 갖고 읽는다. 반드시 이러한 보도에 차별적 의도가 담겨 있다고 하기는 힘드나 ‘외국인’ 범주에 묶이는 거주민들에게 유쾌한 일은 아니다.

필자는 2012년 한국/조선계 중국인(재중동포 혹은 조선족) 인식 악화의 결정적 계기가 됐던 이른바 ‘수원 토막살인사건(오원춘 사건)’을 직접 취재한 경험이 있다. 사건 발생 초기부터 취재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직접 현장에 가보고 경찰에게 얘기를 들어봤다. 이 사건에 대한 초동 대응 미비로 당시 조현오 경찰청장이 사임하기도 했었는데, 그때 느낀 점은 해당 사건을 되도록 ‘외국인 범죄’로 다뤄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랬기에 경제신문에 있으면서도 ‘깨진 유리창법칙’과 치안문제를 지적하거나(해당기사, 2012년 4월 11일), 제노포비아의 문제점(해당기사, 2012년 4월 18일)을 비판적으로 다루려고 나름대로는 노력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지금 상황은 그렇게 긍정적으로 보이지만은 않는다.

개인적으로 최근 뜨악하게 느꼈던 한국 언론 기사는 간병인이 코로나 확진사실을 숨긴 채 일하다 감염을 퍼뜨렸다는 내용이었다. 사실 얼마든지 비난받을 수 있는 사건이라고 생각하나 대부분의 기사들은 굳이 제목에 자극적으로 ‘中’, ‘중국인 간병인’이라는 문구를 넣었다(아래 사진). 한국에서 간병인으로 일하는 중국인(대부분은 한국계/조선계라고 생각한다)이 적지 않을 텐데, 한 사람의 일로 기사 제목에 국적까지 포함해야 할까? 한국에 퍼져 있는 혐중 내지는 반중 정서에 기대 ‘클릭질(혐오) 장사’를 하려는 의도 이상으로는 읽히지 않았다. 

 

간병인 관련 기사들
간병인 관련 기사들

 

한편으로 일본 언론의 외국인 범죄 보도는 한국 못지 않게 상당히 심각한 수준이다. 모든 범죄의 실명 보도(및 얼굴공개)가 원칙인 일본 언론은 기사 제목에 국적을 써 놓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예를 들어 2021년 3월 26일, NHK는 ‘출입국 관리법위반 용의로 체포된 한국적 2명을 불기소 도쿄지검’이라고 적었는데, 굳이 불기소된 사건에까지 국적을 넣었다(해당기사, 아래사진). 혐오 장사에 매진해온 산케이는 특히나 외국인 범죄 기사 제목에 거의 무조건 국적을 넣는데 예를 들어, ‘4000만엔 절도 용의 한국인을 재체포’처럼 강력범죄, 절도범죄 가릴 것 없이 국적을 써넣는다(해당기사). 이 같은 외국인 범죄 기사에는 대체로 이름도 등장하기 때문에 검색하면 방송에 나왔던 얼굴이 그대로 등장한다. 필자는 일본 언론의 지나친 실명보도에 대해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기회가 있으면 또 다뤄볼 생각이다.

NHK보도
NHK보도

 

최근 일본 언론 외국인 범죄 보도의 주 타겟은 사실 한국, 중국보다는 베트남인들이다. 일본에 베트남 체류자들이 급증하면서 범죄도 늘고 있는 상황인 건 맞다. 다만 지난해 수도권 북부에서 일어난 일은 한층 베트남인 범죄 보도를 가속화시켰다. 

베트남 기능실습생(한국의 과거 산업연수생과 흡사한 제도) 4명이 자택에서 돼지를 도축했다는 혐의로 지난해 7월 체포됐다. 당시 해당 지역에서는 실제로 돼지 절도가 잇따르고 있었고 SNS에는 베트남인들이 일본 주택에서 돼지를 도살하는 영상도 돌고 있었다. 당연히 인터넷에서는 ‘베트남인들의 잔인성’을 지적하는 글들이 줄을 이었다. 지금도 베트남인 범죄와 관련한 기사 댓글에는 혐오 표현이 넘쳐난다. 그런데 정작 체포된 4명은 작년 11월 증거불충분으로 검찰의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해당기사). 다만,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용의로 체포된 다른 베트남인은 기소된 일이 있었으나 ‘집단으로 집에서 돼지를 잡았다’는 충격적인 사건은 ‘진실’이 돼 일본인들 뇌리에 강력하게 남았다. 

지난해 12월 기준 일본에 들어와 있는 베트남인은 한국, 조선인(45만 4122명)에 육박하는 44만 8053명(일본 정부통계)인데 범죄 건수로는 다른 국적을 압도(경찰청 발표, 전체 외국인 범죄 중 베트남 3365명, 중국 2948명, 필리핀 746명, 태국 509명, 브라질 508명, 한국 454명 등)하는 상황이라 아마도 일본 언론의 자극적 보도는 이어지리라 생각된다.

사실 개인적으로 외국인 범죄 보도에 새삼 주목하게 된 건 위의 한국 언론 간병인 보도와 더불어 BBC보도를 보고나서다. 지난달 15일 영국 보수당 의원이 피살된 사건이 있은 뒤 BBC 보도를 살펴봤으나 제목에 용의자 관련 정보(소말리아계 흑인이며 이슬람극단주의자)라는 묘사를 피하고 있었다. 보도 내용도 비교적 냉정한 편이다(해당기사 일람, 아래사진). 그런데 정작 용의자 관련 정보를 자극적으로 전하고 있는 건 한국 언론들이었다. 연합뉴스의 ‘영국, 의원피살 테러로 규정…”용의자는 소말리아계 극단주의자”’를 시작으로 아마도 해당 기사를 받아쓴 것으로 보이는 SBS, 뉴스1, 한국경제(한경닷컴)의 보도가 줄줄이 보인다. 제목에 ‘이슬람’이라는 묘사를 덧붙인 건 덤이다(아래사진).

 

BBC 보수당 의원 사망 첫 보도
 BBC 용의자 특정 보도
한국 언론의 보도

 

한국에 외국인 보도 관련한 준칙이나 규정이 없는지 찾아봤더니 6년전에 나온 KBS보도가 동일한 문제의식을 갖고 상황을 비판하고 있었다(해당기사). 다음과 같은 멘트도 있었다. “우리 언론들은 이주노동자나 외국인들의 범죄가 발생하면 제목에 특별히 범인의 ‘출신 국적’을 붙여 강조합니다.”, “특히, 중국 동포의 범죄를 다룰 때는 잔혹한 범행수법을 자세히 묘사하거나 과거의 사건들을 한 번에 모아서 보여주기도 합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나름대로 ‘인권보도준칙’을 마련해서 제시하고 있지만 지난 6년 사이에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셈이다.

물론 기사 내용에 외국인 관련 정보를 쓰는 것은 사실 보도와 관련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해당 범죄가 ‘특정국가의 외국인이기 때문에 벌어진 것으로 단정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닐 경우, 적어도 제목에 국적이나 출신을 강조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자살 보도 관련해서는 추종 자살 등 문제 제기가 이어지자 어느덧 기사 말미에 상담 관련 내용이 담기는 변화가 있었다. 그러나 외국인은 직접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는 이유(동일 국적인이 범죄를 저질렀다는 상황도 있을 것이다)로 범죄 기사의 또다른 피해자가 되고 있는 건 아닌지 의문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지난번 일본 선거 관련한 글(일본 야당의 '정체성 정치', 그리고 주목받는 후보들)의 애프터 서비스: 첫번째로 적었던 이마이 루루 후보는 40.5%를 받아 비교적 선전했다(자민당 상대후보는 48.5%). 도쿄의 요시다 하루미 후보는 48.4%로 압승했고, 공산당 이케우치 사오리 후보는 일본유신회 돌풍에 밀려 3위로 내려 앉았다(28.4%). 야당은 일본 언론들 예상과 다르게 참패했고 일본유신회(日本維新)가 약진하는 결과가 나왔다. 일본유신회에 대해서는 이번달말 오사카 및 간사이 지방을 잠시 다녀온 뒤 적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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