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야생동물 구조일지] 쥐 끈끈이에 목숨 잃는 족제비

  • 기자명 뉴스톱
  • 기사승인 2021.12.21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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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매주 1마리씩 서울에서 구조…고양이 포획틀이 안전

사람 주변에서 가장 많이 살아가는 동물은 단연 쥐일 것입니다. 쥐는 생태 피라미드의 낮은 쪽에 위치하며 많은 포식자들의 먹잇감이 됩니다. 쥐를 먹이로 가장 많이 소비하는 동물 중 하나는 족제비입니다. 족제비의 학명은 mustela sibirica로 sibirica 는 시베리아라는 뜻이고 mustela는 족제비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족제비 <출처:서울야생동물센터>

족제비는 보통 계곡이나 산림지대의 바위 틈 같은데서 생활하지만 사람 주변에서도 많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주식은 쥐이지만 잡식성이어서 하루 기준 체중의 약 15% 이상 섭취해야 하므로 쥐뿐만 아니라 서식 환경 내에서 먹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먹어 치우기도 합니다. 암수의 차이가 심해 수컷의 평균 체중은 암컷의 2배 정도로 덩치가 큽니다. 저희 센터에서 구조한 개체 중 약 1200g까지 나가는 수컷도 있었죠. 구조되는 대부분의 족제비가 어린 개체임을 감안해도 평균적으로 600g ± 100g 정도인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덩치였죠. 족제비는 여름철 번식기 새끼를 기르기 위해, 또는 겨울철 먹이를 구하기 위해서 민가 근처로 내려와 사람이 살고 있는 집 부근의 창고 속에서 발견되기도 합니다. 야생동물이지만 사람의 곁을 이용하는 가까운 동물이지요. 하지만 사람의 곁에서 살아가는 것은 순탄치 않습니다. 로드킬이나 구조물에 갇히는 등 여러 가지 사고 요인에 노출되기 때문이죠.

창고 문 틈 사이에 몸이 끼어버린 족제비 <출처:서울야생동물센터>

족제비는 겨울이 되면 굉장히 밝은 황금빛 털로 털갈이를 합니다. 이 털은 예로부터 가치가 높았으며 꼬리털을 황모라 하여 붓으로 쓰기도 했고, 모피를 이용해 외투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인터넷에 족제비붓이라고 검색하면 서예붓이나 미술붓, 화장붓까지 아직도 많은 제품이 확인되고 있습니다.

 

족제비의 겨울털
족제비의 겨울털 <사진:서울야생동물센터>

족제비가 구조 요청을 보내는 원인은 많지만 서울시에서는 쥐 포획용 끈끈이에 붙는 사고가 가장 많습니다. 2021년에만 11월까지 약 50마리의 족제비가 구조됐는데요. 이는 매주 1마리씩 구조된 것과 다름 없습니다. 나이와 성별은 다양했으며 대부분 8월 말 어미의 곁을 떠나 독립하는 사회 초년생 족제비가 민가 근처에서 쥐 끈끈이에 붙어서 구조되고 있습니다.

족제비가 어떤 장소에 출현하면 그 지역에서는 쥐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족제비는 먹이를 저장해 두는 습성이 있으며 입맛에 따라 맛있는 부위만을 고집하기도 해서 필요 이상으로 사냥을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를 과잉 살해(surplus killing)라고 합니다. 먹이 저장과 사냥 학습을 위한 걸로 추측됩니다. 또한 자신에게 위협이 된다고 판단하면 가장 큰 천적 중 하나인 사람에 대해서도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기도 합니다.

귀여운 외모를 갖고 있지만 장갑없이는 잡을 수 없습니다. 출처: 서울야생동물센터
귀여운 외모를 갖고 있지만 장갑없이는 잡을 수 없습니다. <출처: 서울야생동물센터>

가게를 어지럽히면서 똥을 누거나 항문 양쪽에 위치한 항문선(肛門腺)에서 나오는 특유의 악취로 인해 인가에 침입하면 많은 문제를 일으킵니다. 신고자의 경우 쥐로 착각하고 끈끈이를 설치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끈끈이에 붙은 족제비를 구조하면 끈적이는 점성 물질을 기름으로 중화시킨 후에 기름은 중성세재를 이용하여 제거하고 따뜻하게 말려서 털이 다시 기능을 찾게 되면 방생합니다. 새를 구조하면 굉장히 오랜 시간 깃털의 회복을 지켜봐야 하지만 족제비는 끈끈이를 잘 제거해주면 혼자서 비비고 씻으면서 털의 회복 시간을 스스로 단축시키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끈끈이에 오래 붙잡혀 있으면 많은 문제가 생기고 역시 생명을 위협할 수 있어 빠르게 제거해야 합니다.

 

쥐 끈끈이에 붙은 족제비
쥐 끈끈이에 붙은 족제비 <출처:서울야생동물센터>

만일 집에 족제비가 들어와서 잡아야 한다면요? 족제비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쥐 끈끈이보다 고양이 포획틀이 훨씬 안전합니다. 날렵한 몸매를 가지고 있지만 구멍이 작은 포획틀에 걸리면 쉽사리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포획틀을 구매해서 설치 후 포획되면 근처 야산이나 개천 옆으로 방생해주시길 권해드립니다. 족제비의 생명도 살리면서 신고자가 받는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 될 수 있겠습니다.

프렌차이즈 레스토랑에서 포획틀에 포획된 족제비<출처:서울야생동물센터>

직접 피해를 당한 분이라면 족제비가 많이 괘씸할 수 있습니다. 양계장에서는 닭을 위협하는 1순위 경계 대상이며, 식당에 침입하면 모든 식자재를 망가뜨리기도 합니다. 생명에 위협이 느껴지면 오히려 공격 행동을 나타내 포획 역시 쉽지 않습니다. 침입 자체가 괘씸할 수 있지만 족제비는 그게 왜 문제가 되는지 모릅니다. 양계장 속 닭값이 얼마나 되고, 그들이 일으키는 일이 왜 ‘피해’가 되는 것인지 도무지 알 리가 없죠. 사람의 기준으로는 '재산 상 피해'를 입는 것이지만 야생동물에게는 그저 먹음직스러운 하나의 먹이자원일 뿐입니다. 부디 족제비에게 조금만 너그러운 마음을 가져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오늘도 족제비는 또 한 번의 햇살을 마주하기 위해 야생에서 야생동물다운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출처:서울야생동물센터>

글: 김태훈 서울야생동물센터 재활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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