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친원전 세력의 몽니, 원전이 ‘녹색’이라고?

  • 기자명 뉴스톱
  • 기사승인 2022.01.05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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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30일, 환경부는 ‘한국형 녹색분류체계 지침서(이하 녹색분류체계)’를 발표했다. 녹색분류체계는 기후위기·생태위기 시대의 경제 전환을 앞두고 녹색금융 활성화를 촉진하기 위한 일종의 ‘투자 지침서’다. 6대 환경목표(온실가스 감축, 기후변화 적응, 물의 지속가능한 보전, 자원순환, 오염방지 및 관리, 생물다양성 보전) 달성에 기여하는 녹색 경제활동을 정부 차원에서 분류, 규정함으로써 금융기관들의 녹색금융 투자에 가이드라인으로 활용되도록 하기 위함이다.

출처: 환경부
출처: 환경부

각국 정부와 금융기관들이 이와 비슷한 분류체계를 만들어 녹색금융으로 전환하려는 흐름은 이제 이례적이지 않지만, 한국이 꽤나 선제적인 편이라는 점도 부정할 수 없다. 바로 그래서 한국형 녹색분류체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았다. 녹색분류체계에 화석연료인 LNG 발전이 포함된 까닭이다. 눈길을 걸어갈 땐 뒷사람을 위해 어지럽게 걷지 말라고 했다. 한국은 따라가선 안 되는 발자국을 남기고 말았다.

그런데 뜬금없게도, 환경부의 녹색분류체계 발표 이후에 ‘녹색’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은 점보다 ‘원전’이 빠졌다는 것이 더 큰 논란이 되고 있다. 필자는 이러한 상황을 대충 예견했었다. 로직 시나리오는 두 가지였다. 친원전 세력은, LNG가 녹색분류체계에 포함되는 경우 ‘LNG도 포함되는데 온실가스 덜나오는 원전은 빠졌다’고 비판할 것이었다. 이것은 현실이 되었다. 반대로 LNG가 녹색분류체계에서 빠졌다면 어땠을까? ‘석탄도 LNG도 안되면 원전이라도 포함할 수밖에 없다.’고 나섰을 것이다.

출처: 파이낸셜타임스 홈페이지
출처: 파이낸셜타임스 홈페이지

 

아무튼 기승전원전 논리인데, 최근 유럽연합(EU)의 지속가능 분류체계(EU 택소노미) 초안에 원전이 포함돼 있다는 것이 공개되자 논란은 더 거세졌다. 우선 이는 논란을 위한 논란이며, 설레발이다. 로이터통신 등을 통해 보도된 EU 택소노미는 회원국에 회람된 초안일 뿐이다. EU는 한국보다 앞서서 분류체계 수립 작업에 들어갔지만, 원전과 LNG 포함여부로 회원국들 간에 심각한 갈등 끝에 아직도 최종 발표를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이번 초안이 회원국에 회람되자마자 당장 오스트리아 환경장관은 원전이 포함된 초안이 확정될 경우 소송을 예고했고, 독일 환경장관 역시 ‘파괴적 환경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는 실수임을 지적했다. 원전이 EU 택소노미에 최종적으로 포함되는 것은 여전히 녹록지 않다는 뜻이다. 문재인 정부가 ‘정치적 이유’로 원전을 녹색분류체계에서 배제했다고 일각에서 주장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정치적이지 않은 일은 세상에 없는 법이다. EU 택소노미야말로 오히려 더 극명하게 국가 간 정치적 이해가 대립하는 전선에 놓여있다.

원전 의존도가 높은 프랑스 등 몇 개 회원국의 알력으로 원전이 EU 택소노미 초안에까지 들어가게 되었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원전의 한계를 조목조목 비판한 것에 가깝다. EU 택소노미 초안마저 덮어놓고 원전을 ‘녹색금융’의 투자대상으로 보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선 신규원전의 경우 방사성폐기물의 안전한 처분을 위한 부지와 자금 계획이 있어야 한다. 기존 원전의 수명 연장을 위해서는 최고 수준의 안전 기준을 갖춰야 한다. 이 인정기준을 맞춰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원전 프로젝트는 거의 없다. EU 택소노미에 원전이 포함되는 것은 실제 대규모로 자금 조달을 위한 것이라고 보기 힘들다. 정치적으로 녹색딱지를 붙여주는 것 외에 다른 의미가 없다.

이렇듯 EU 택소노미 초안은 까다로운 조건을 제시함으로써 오히려 왜 원전이 ‘녹색’이기 어려운 지 증명한다. 단순히 화석연료 에너지원보다 ‘비교적’ 온실가스가 덜 나온다는 것은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다. 원전은 사고위험·폐기물 발생·방사능물질 발생 등 명백한 ‘오염원’이기 때문에 녹색이 아니다.

출처: 한국수력원자력
원전 내부 수조에 저장되는 사용후 핵연료. <출처: 한국수력원자력>

당장 EU 택소노미 초안에 나온 인정기준을 들이대면 ‘녹색금융’을 조달받을 수 있는 원전은 국내에도 없다. 대표적으로 폐기물 관리 대책이 전무하다시피하다. 특히 고준위핵폐기물의 경우 수만 년간 저장하고 관리해야 하는데 현재 이러한 목적으로 조성된 시설은 지구상에 단 하나, 핀란드 온칼로 뿐이다. 한국은 이 위험한 폐기물을 저장할 부지도 없음은 물론, 관련 법·제도도 미비해 원전 내 수조 등에 임시로 저장하고 있을 뿐이다.

녹색분류체계에 원전이 포함되지 않음에 따라 원전 수출이 어려워진다는 것도 프로파간다에 지나지 않는다. 녹색분류체계와 무관하게 원전 수출은 물론 신규 원전 건설은 어려웠다. 국제적으로 환경·안전 리스크와 비용이 커지는 등 대규모 원전건설 시장은 장기간 침체돼 왔으며 원전 자체의 경제성 역시 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 지난 몇 년간 웨스팅하우스, 도시바 등 유수의 원전 기업들이 파산하거나 기업해체 위기에 내몰린 것도 이 때문이다. 가령 2020년 전 세계 재생에너지 분야에 대한 신규투자가 3588억 달러였던데 반해 원전은 417억 달러로 원전 시장은 이미 사양길에 접어들었음을 알 수 있다.

 출처:에너지경제연구원, 세계에너지경제인사이트 21-13호

더구나 원전 수출은 사고위험과 방사능·폐기물 위험을 외국에 내다파는 행위이기에 그 자체로 부도덕하다. 때문에 원전 수출을 지지하는 이들을 위해 조언할 생각은 딱히 없지만, 녹색분류체계에 포함되면 난항을 겪고 있는 자금조달 문제가 해소될 것으로 생각한다면 오산이라는 점은 강조해 주고 싶다. 오히려 괜히 ‘녹색’인 척 하려다가 자금조달 기준이 더 까다로워질 공산이 크다.

녹색분류체계는 그 자체로 녹색금융 활성화를 위한 지침서로 활용되어야 한다는 실용적 목적도 있지만, 정부가 무엇이 ‘녹색경제활동’인가를 분류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학습효과에 대해서도 면밀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따라서 엄밀한 의미의 환경성이 보장되지 않는 경제활동은 원칙적으로 모두 배제해야 한다. 투자 대상이 되는 경제활동이 기후위기 대응·적응에 기여해야함은 물론이고, 이 과정에서 여타의 다른 환경오염·위험 역시 없어야 한다.

원전은 전 과정에서 다량의 방사성 물질을 발생시키는 오염원이자, 대형사고의 리스크를 안고 있는 위험한 에너지원이다. 국내 원전들도 여러 차례 비계획적 정지, 비계획적 방사성 물질 누출 등 크고 작은 ‘사고’를 일으키며 안전한 원전 운영의 신화를 스스로 무너뜨려왔다. 원전이 ‘녹색’이 아닌 이유는 이토록 명백하다. 기후위기를 극복하는 사회 대전환의 문턱에서 친원전 세력의 몽니는 단호하게 기각돼야 한다.

글: 권우현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국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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