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야생동물 구조일지] 갑자기 떨어진 왜가리 몸 속에서 총알이...

  • 기자명 뉴스톱
  • 기사승인 2022.01.20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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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수렵은 법으로 정한 기준에 따라 일정 시기에, 정해진 장소에서 정해진 종을 몇 마리까지 잡을 수 있는 지를 제한하고 있습니다. 수렵면허를 취득하기 위해선 어떤 종을 잡을 수 있는지, 어떤 종은 잡으면 안 되는지 공부가 필요하죠. 실제로 기출문제를 확인해보면 종을 형태적으로 구분하는 동정과 동물의 습성파악 역시 객관식의 형태로 문제가 출제되고 있습니다.

수렵면허 시험 기출문제, 김태훈 서울야생동물센터 재활관리사 제공
<수렵면허시험 기출문제, 김태훈 서울야생동물센터 재활관리사 제공>

외국에서는 트로피 헌팅(trophy hunting)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수렵활동이 진행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헌팅은 막대한 기부금을 통해 허가가 이뤄지는데 이 기부금으로 국립공원을 운영하며 적절한 개체수 조절이 되게 함으로써 인위적이지만 생태계의 순환에 기여하는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흔히들 '유해조수는 사냥해도 돼’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우리나라의 수렵과 수렵대상 동물의 기준은 유해조수보다 개체수의 밀도에 따라 수렵이 이뤄진다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멸종위기종이나 천연기념물이 아니더라도 포획대상으로 정해진 종 이외의 야생동물은 사냥이 불가능합니다. 수렵인들이 기본적으로 종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하는 이유이죠.

수렵동물의 지정 고시
야생생물법에 따른 수렵동물의 지정 고시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사냥으로 많은 것을 해결해 왔습니다. 사냥 후 가죽은 옷처럼 걸쳤고 고기를 섭취했으며 뼈를 갈아 약재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안전한 검역과 방역을 거친 먹거리와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의류로 인해 사냥으로 얻을 것이 적어지고 수렵은 차츰 잊혀져갔습니다. 현재는 취미 스포츠로 이뤄지고 있죠.

서울시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확인한 결과, 2017년부터 현재까지 수렵장 개설이 시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냥당하지 말아야 할 종들이 무분별한 밀렵으로 희생되기도 합니다.

지난해 2월 구조했던 왜가리는 다행히 총알이 피부 아래 비교적 얕은 곳에 박혀 있었지만 이 역시 몸에 큰 부담을 주었고 기아 탈진 상태로 구조되었습니다.

구조된 왜가리의 가슴뼈 밑에 박혀있는 총알
구조된 왜가리의 가슴뼈 밑에 박혀있는 총알. 출처:서울야생동물센터

청계천과 중랑천이 만나는 구간에서 구조됐는데 신고자에 따르면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졌다고 합니다. 약 1m의 키를 가진 큰 새가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지는 일은 어떠한 충격 또는 기아· 탈진으로 인한 비행불가 상태가 돼야 가능합니다. 큰 충격이 있을 것이라 생각해 방사선촬영 역시 진행했습니다. 다행히 골절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총알은 더 선명한 모습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구조된 왜가리의 X선 촬영 사진. 출처:김태훈 서울야생동물센터 재활관리사
구조된 왜가리의 X선 촬영 사진. 붉은 원 안에 총알이 확연히 드러나 보인다. 출처: 서울야생동물센터 

 

크게 영향을 끼치진 않겠지만 어쨌든 이 총알은 제거해야 했습니다. 여러 감염을 피하기 위해 강력한 소독을 실시하고 살과 완전히 붙어버려 제거 중 느껴질 통증을 염려해 마취를 진행했습니다. 마취 중 수의사님의 빠른 처치로 총알을 무사히 제거할 수 있었습니다.

 

상처가 깊지 않았던 점이나 기아탈진으로 인해 구조된 점을 고려해 사고원인을 유추해보면 허가된 수렵장을 지나던 중 산탄총에서 발사된 총알이 왜가리의 피하에 박힌 것으로 추정합니다. 멀리 서울까지 날아와 늦게나마 발견됐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이 총알은 무분별한 밀렵에 희생될 뻔한 것이 아닌 허가받은 수렵활동 중 발생한 사고였으리라 생각하고 싶습니다. 이 왜가리는 다행히 기력을 회복하고 한 달 정도 센터에서 머무른 뒤 자연으로 방생되었습니다.

서울시 한복판에서 총상을 입은 동물을 만날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왜가리는 사고를 당한 것으로 믿고 싶습니다. 수렵허가 대상이 아닌 동물이 사냥당하는 것은 무분별한 살생입니다. 시민들의 여가 활동을 존중하지만 하나의 생명을 해하면서 어떻게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는 않습니다. 

수렵활동은 생명을 해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로 이뤄지기에 세심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사냥이 불가능한 종을 구분하고 동정하는 공부도 필요합니다. 야생생물법 49조는 수렵 허가 대상 동물이 아닌 다른 종을 사냥할 경우 수렵면허를 정지 또는 취소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수렵인들의 주의를 강력히 촉구합니다.


글: 김태훈 서울야생동물센터 재활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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