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EU, 우크라이나에 전투기까지 보낸다?

  • 기자명 우보형
  • 기사승인 2022.03.04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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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3일 러시아가 군대를 투입, 우크라이나를 무력 침공했다.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이 "미, 28년 전 핵 포기 대가 갚으라 (KBS 보도)"라고 요구했지만, 부다페스트 조약의 책임 당사국인 미국과 영국은 직접적인 군사개입은 안하고 있다. 비난의 화살은 무기지원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서유럽 국가들에게 향했고, 대선 정국인 국내 여론에도 여야의 선전전 도구로 사용된 바 있었다.

이 와중에 2월 27일 우술라 폰 데어 라이엔(Ursula von der Leyen)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EU 각국의 외무장관들을 소집, 긴급 회담 끝에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군사적 침공에 따라 EU 차원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새로운 지원 및 러시아에 대한 제재 조치들을 실행할 예정이라는 내용이 알려졌다. 그리고 2월 28일 아침, 조선일보는 "EU, 우크라에 6000억원 어치 무기 지원… 전투기까지 보낸다."라는 기사를 냈다.

그림 1. 조선일보는 EU가 우크라이나에 전투기까지 보낸다는 기사를 냈다. (기사 갈무리)
그림 1. 조선일보는 EU가 우크라이나에 전투기까지 보낸다는 기사를 냈다. (기사 갈무리)

그림 1에서 보듯 조선일보는 EU 외교정책을 총괄하는 호세프 보렐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가 “EU의 이번 군사 지원 패키지에는 우크라이나 공군을 위한 전투기 공급 등도 포함될 수 있다”며 “이미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부 장관과 어떤 종류의 전투기가 필요한지 논의했으며 해당 전투기를 공급할 수 있는 회원국이 있다”고 보도했다. 전투기를 보낸다는 이야기는 꽤나 파장이 큰 이야기인데 정작 조선일보 기사에는 발언의 출처가 딱히 언급되지 않았다. 필자에게 해당 매체의 기사 신뢰도는 딱히 높지 않기에 다른 매체의 보도를 찾아봤다. 마침 한국일보도 같은 날 아침 "EU, 우크라에 전투기 지원 논의"라는 제목의 기사를 냈다.

그림 2. EU, 우크라이나에 전투기 지원을 논의한다는 한국일보 기사 (기사 갈무리)
그림 2. EU, 우크라이나에 전투기 지원을 논의한다는 한국일보 기사 (기사 갈무리)

그림 2에서 보듯 월스트리트 저널을 인용한 한국일보 기사는 "호세프 보렐 EU 외교ㆍ안보 고위대표가 27일(현지시간)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이 EU에 제트 전투기를 요청했다'고 밝혔다"는 이야기다. 'EU가 전투기를 지원한다'는 조선일보 기사 제목, '지원할 수 있다'는 기사 내용의 워딩과는 명백히 거리가 있다. 때문에 월스트리트 저널의 관련기사, "EU Member Countries in Talks to Supply Ukraine With Jet Fighters"를 찾아봤다.

그림 3 EU, 우크라이나에 전투기 지원을 논의한다는 월스트리트 저널 기사 (기사 갈무리)
그림 3 EU, 우크라이나에 전투기 지원을 논의한다는 월스트리트 저널 기사 (기사 갈무리)

그림 3에 보인 월스트리트 저널 기사는 대충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브뤼셀 – 일요일 주제프 보레이 푼테냐스 (Josep Borrell Fontelles) EU 외교정책 부문 수석대표는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이 유럽연합(EU)에 제트 전투기 지원을 요청했고 일부 유럽연합 국가들은 이를 공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회담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아직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며 해당 기체들은 EU 회원국에서 직접 공급하며 EU가 우크라이나에 무기 배송을 지원하기 위해 발표한 협정을 통한 자금 조달에 포함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보레이 수석대표에 따르면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우크라이나 공군 조종사가 바로 비행할 수 있도록 구소련/러시아가 제작한 미그(MiG) 및 수호이(Sukhoi) 전술기를 요청했다고 말했다.

현재 EU 회원국 일부는 과거 한때 소련이 주도하던 바르샤바 조약의 일부였기에 해당 기체를 아직 운용하거나 보관중이다.

즉 월스트리트 저널 기사도 전투기, 아니 전술기의 지원 여부를 협의 중이지, 조선일보의 주장처럼 전투기, 아니 전술기를 지원한다고 확언한 것이 아니다,

참고로 국내 매체들의 표기 오류를 하나 짚자면 조선일보나 한국일보는 EU 외교안보정책 수석대표 Josep Borrell Fontelles의 이름을 호세프 보렐이라 했는데 직위는 그렇다 쳐도 호세프 보렐이란 표기는 대체 어디서 온 건지 모르겠다. EU 외교안보정책 수석대표 Josep Borrell Fontelles는 에스파냐 국적을 가지고 있지만 카탈루냐 사람이고, 카탈루냐어로는 주제프 보레이 푼테냐스라고 발음된다. 만일 에스파냐어로 표기한 것이라 해도 주제프 보레이 폰테예스 정도로 발음되기 때문이다.

 

EU, 동유럽 각국의 우크라이나 전투기 지원 이야기는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나?

조선일보 기사의 사실 여부와 별개로 필자가 EU에서 우크라이나에 전투기인지 전술기인지를 지원할 것이라는 소식을 접한 것은 국내 언론들의 관련기사가 나오기 전인 2월 28일 새벽부터였을 것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분쟁 소식을 전하던 국외 인물들의 SNS 및 이를 공유한 국내 SNS들에서 EU가 우크라이나에 전투기를 지원한다는 이야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이 무렵에 월스트리트 저널의 기사가 나왔던 게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우크라이나 공군이 러시아의 침공 전에 갖고 있던 전술기는 MiG-29 전투기 37대, 수호이 Su-27 전투기 32대, 수호이 Su-24 전술공격기 12대, 수호이 Su-25 17대였다. 러시아가 지금 우크라이나 상공에 투입한 기체가 러시아 공군 전술기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우크라이나 상공의 제공권은 러시아에 유리하게 흘러가는 와중이었기에 EU, 정확히 말하면 동유럽 각 국이 보유 및 운용하던 구소련/러시아가 제작한 미그(MiG) 및 수호이(Sukhoi) 전술기들이 지원된다면 우크라이나로서는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었다.

처음에는 EU 각국의 전투기 지원 여부가 논의 중이라는 이야기로 시작된 지원 이야기는 시간이 좀 더 지나자 폴란드가 MiG-29 28대, 불가리아가 MiG-29 16대, 지상타격기 Su-25 14대, 슬로바키아가 MiG-29 16대를 우크라이나에 넘길 것인데, 폴란드 공군은 이미 F-16을 주력으로 하고 있는 상태이고 불가리아나 슬로바키아도 F-16V를 받을 예정이라 MiG-29를 우크라이나에 넘길 여유가 있다는 식으로 구체화되어 갔다. 아래 그림 4처럼 말이다.

그림 4 EU, 우크라이나에 전투기 지원을 논의한다는 월스트리트 저널 기사 (기사 갈무리)
그림 4. EU, 우크라이나에 전투기 지원을 논의한다는 월스트리트 저널 기사 (기사 갈무리)

폴란드가 우크라이나에 MiG-29 23대를 보내기로 했으며 그 대신 미국이 이를 대체하기 위해 F-16을 제공할 것이며 이를 인수하기 위해 우크라이나 파일럿들이 이미 폴란드에 입국했다는 내용이다.

우크라이나 공군 사령부 페이스북 페이지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었기에 정말로 EU의 전술기 지원이 이뤄지나 싶었다. 그런데 3월 1일 오전, 우크라이나 공군 사령부 페이스북 페이지의 관련 내용이 업데이트되어 올라왔다. 아래 그림 5처럼 말이다.

그림 5. EU 동유럽 각국 전투기 지원 소식.
그림 5. EU 동유럽 각국 전투기 지원 소식

우리말로 번역해보면 대충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이제 키이우(Kyiv)의 유령이 더 많아질 것이다.

우크라이나 군에 70대 이상의 전술기가 더해진다.

동유럽 국가들이 우크라이나에 MiG-29와 Su-25를 제공할 것이다.

그리고 3월 1일에 분홍색 밑줄 부분이 더해진 것이다. 번역해보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다.

필요하다면 우크라이나 조종사들이 폴란드 공항에 기지를 두고 전투 작전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봐도 전쟁관련 국제법 위반처럼 보였다. 폴란드, 나아가 EU가 어떤 이유에서든 직접 참전을 선언하지 않는 이상, 할 수 없는 이야기고, 우슬라 폰 데어 라이엔 EU 집행위원장도 주제프 보레이 푼테냐스 EU 외교정책 부문 수석대표도 딱히 직접 참전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런데 저런 이야기라면 저거 자체가 국민들의 전의를 유지하기 위한 우크라이나 측의 프로파간다가 아닐까라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확인을 해볼 필요가 있겠다.

 

EU, 동유럽 각국이 우크라이나 전투기를 지원한다는 이야기는 사실일까?

만일 동유럽 각국이 우크라이나에 전투기(보다 정확히는 전술기라 해야겠지만)를 지원, 혹은 중고기체의 판매 의사가 있다는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해당 국가의 현지 언론들도 이에 대해 이야기가 나왔을 것이다.

가장 먼저 알아볼 곳은 불가리아다. 우크라이나 국방부 페이지에서 가장 먼저 언급했고 MiG-29와 Su-25를 합치면 가장 많은 수가 언급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불가리아의) 페트코프 총리는 우크라이나에 군사장비 공급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Premier Petkov: Bulgaria has not assumed a commitment to supply Ukraine with military equipment"라는 발언이 2월 28일 현지시각 오후 7시 무렵 기사로 나왔다. 아래 그림 6이다.

그림 6 불가리아는 우크라이나에 군사장비 제공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
그림 6. 불가리아는 우크라이나에 군사장비 제공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

기사의 내용은 제목과 같이 불가리아는 우크라이나에 군사 장비를 제공할 생각은 없으며 인도적인 지원물품만을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다음은 폴란드다. 앞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이미 공군 주력기를 F-16으로 전환한 상태고 MiG-29는 치장 상태인데다 그림 4에 캡처한 포스트의 언급한대로 우크라이나 파일럿들이 이미 폴란드에 입국했다는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에 우크라이나에 전투기를 제공할 가능성이 가장 높았다. 처음으로 검색된 것은 "폴란드가 MiG-29를 제공할 것 슬로바키아와 불가리아도 자국 전투기를 보낸다.Polska przekaże ukraińskiej armii 28 MiG-ów 29. Bułgaria i Słowacja też wyślą swoje samoloty"라는 제목의 기사. '오오 역시 여유가 있군' 하면서 내용을 살펴봤더니 월스트리트 저널의 기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마도 해당 기사를 폴란드 국내에 전달하는 목적의 기사로 보였고, 폴란드 당국의 이야기는 단 한 줄도 더해지지 않았다.

그림 7. 폴란드가 MiG-29를 제공할 것 슬로바키아와 불가리아도 자국 전투기를 보낸다는 제목이지만 EU와 우크라이나의 이야기만 있을 분 폴란드 당국의 입장이 없다. 즉 해당 내용을 폴란드 국내에 전달하기 위한 기사다.
그림 7. 폴란드가 MiG-29를 제공할 것 슬로바키아와 불가리아도 자국 전투기를 보낸다는 제목이지만 EU와 우크라이나의 이야기만 있을 분 폴란드 당국의 입장이 없다. 즉 해당 내용을 폴란드 국내에 전달하기 위한 기사다.

이 시점까지 폴란드의 반응은 유보적이라고 봐야겠다.

마지막으로 슬로바키아도 불가리아와 마찬가지로 "슬로바키아는 전투기를 우크라이나에 제공하지 않으며 사전계획대로 자국에 둘 것이다.Slovakia won't give its fighter jets to Ukraine, but may ground them earlier than planned"라는 내용의 기사가 3월 1일 오전에 나왔다.

그림 8. 슬로바키아도 우크라이나에 전투기를 보낼 계획이 없다고 한다.
그림 8. 슬로바키아도 우크라이나에 전투기를 보낼 계획이 없다고 한다.

정리하면 폴란드는 입장이 불명확하지만 불가리아와 슬로바키아는 현 시점에서는 우크라이나에 전투기를 제공할 계획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폴란드의 반응을 찾고 있었는데 폴란드의 반응을 공식적으로 확인해준 것은 폴리티코였다. 폴리티코는 3월 1일 저녁 무렵에 "EU 각국은 최종적으로 우크라이나에 전투기를 보내지 않기로 했다.EU countries won’t send Ukraine fighter jets after all"라는 제목의 기사를 냈다.

그림 9. EU 각국은 결국 우크라이나에 전투기를 보내지 않기로 했다는 폴리티코 기사
그림 9. EU 각국은 결국 우크라이나에 전투기를 보내지 않기로 했다는 폴리티코 기사

우크라이나 당국이 월요일에 EU의 파트너들에게서 전투기를 받을 수 받게 될 것이라는 주장했지만 'Ukrainian authorities claimed on Monday that they would be receiving planes from several EU partners.'라는 의미심장한 부제가 붙은 해당 기사는 폴란드는 화요일에 우크라이나에 전투기를 보내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유럽연합 국가들이 일련의 유사한 거부를 거듭한 가운데 가장 최근에 나온 것이다. 키이우가 주장하던 새로운 군사 지원이 실제로 어떤 형태가 될 것인지는 아직 혼돈스럽다는 이야기로 시작한 기사는 필자가 현재 쓰고 있는 기사 내용을 전개해간다. 해당 기사는 약간의 다른 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지만 현 시점에서는 우크라이나에 전투기를 보내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EU가 우크라에 6000억 원에 상당하는 규모의 무기를 지원한다는 것은 공표된 사실이다. 하지만 이상으로 보듯이 전투기까지 보낸다는 조선일보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그리고 해당 주장은 어디까지나 우크라이나 정부와 미국, 영국 측의 일방적인 언론플레이와 프로파간다에서 출발했다는 점 또한 잊어선 안 될 일이다.

 

마치며

마지막으로 여기서 배워야 할, 그리고 잊어선 안될 일은 폴란드, 불가리아, 슬로바키아 정부는 때를 놓치면 다음 차례는 동유럽 국가들의 차례이니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는 전략적 선택을 할 필요가 있네 마네 운운하던 국내 호사가들의 주장과 달리 공통적으로 우크라이나에 전투기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선택을 했다는 점이다. 위험에 상응하는 가시적인 대가가 손에 주어지지 않은 이상 국가의 안보와 국민의 안위를 위협에 빠뜨리지 않는 방향을 선택하는 것이 국가를 책임지는 정치인의 모습이라 할 만 하고 이 점은 자신의 신념을 관철시키기 위해 국가의 안보와 국민들의 생명을 위험에 빠트리는 푸틴 같은 지도자들과는 대비되는 모습이라 할 만하다. 과연 그들은 자존심이 없어서 그런 선택을 한 것일까? 자존심과 오만은 구분되어야 함을 알고 있기 때문에 국가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자극적인 도발에 넘어가지 않는 침착함이야말로 국정 운영 능력의 출발점이라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러시아의 침공에 맞서는 우크라이나의 저항이 가급적 큰 피해 없이 끝나길 바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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