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선언서는 누가 쓰고 누가 고쳤나

  • 기자명 정재환
  • 기사승인 2019.01.24 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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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선언서 작성자가 최남선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민족대표 33인의 이름 속에서 최남선 석 자를 찾을 수 없습니다. 최남선은 당대 문장가로서 선언서를 작성했지만, 민족대표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작성자가 최남선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독립선언 이후 33인에 대한 취조와 심문을 담당했던 일본경찰 덕분(?)이었습니다.

그 후 한용운은 독립운동에 직접 책임을 질 수 없다는 최남선으로서 독립선언문을 작성케 함은 불가한 일이니 선언문을 자기가 짓겠다고 주장한 일이 있었으나, 나의 생각은 누가 짓든 간에 선언서만은 육당이 짓는 것이 당연하다고 한용운의 이의를 거절하였다.
- 최린, 자서전, 여암문집 상

 

일경에 취조를 당할 때 한 최린의 진술에서 선언서 작성자가 최남선이었음이 밝혀진 것입니다. 선언서 작성은 송계백에 의해 2.8독립선언문이 현상윤에게 전달되었던 2월 초부터 준비되었고, 최남선은 선언서 작성을 자처했습니다.

 

나는 일생애를 통하여 학자의 생활로서 관철하려고 이미 결심한 바 있으므로 독립운동 표면에는 나서고 싶지 않으나 독립선언문만을 내가 지어볼까 하는데 그 작성 책임을 형이 져야 한다.
- 최린, 자서전, 여암문집 상

 

이렇게 해서 2월 15일 완성된 선언서 초안은 최린에게 전달되었고, 한용운, 오세창, 권동진, 손병희 등이 두루 읽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초안에 약간의 수정이 가해졌을 것이라는 추정은 문서 작성의 ‘일반적인 과정’, 즉 작성-검토-수정-완성의 단계를 고려하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 아래 나오는 ‘공약삼장’(행동강령)을 만해 한용운이 수정하거나 추가했을 것이라는 주장에 관한 논의는 여전히 명확한 결론이 나지 않았습니다. 처음부터 초안에 공약삼장이 들어 있었는지, 아니라면 후에 삽입이 된 것인지, 추가로 삽입했다면 과연 만해 한용운이 한 것인지? 만해의 제자인 김법린의 글에는 공판과정에서 만해가 선언서에 관해 언급한 내용이 나옵니다.

 

문: 그 서류를 보고 독립에 찬성하였나?

답: 그것을 보고 찬성한 것이 아니라 다소 나의 의견과 다른 점이 있어서 내가 개정한 일까지 있소.

 

만해는 선언서에 자신의 의견과 다른 점이 있었고,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 공약삼장이라고 딱 짚어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 직접 고쳤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단서가 되어 최남선이 작성한 초안의 개정 과정에서 만해가 공약삼장을 추가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으나, 이를 증명해 줄 결정적인 사료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고도 할 수 있겠으나, 어쩌면 변절한 최남선에 대한 실망과 배신감, 끝까지 조선민족의 정신을 지킨 한용운에 대한 후손들의 애증이 진실 규명을 지속케 하는지도 모릅니다. 진위를 떠나 이 같은 논쟁과 탐구가 역사를 복원하고 성찰하는 올바른 자세일 것입니다. (이상은 홍일식과 김상현의 글을 참고해 작성.)

1919년 3월 1일 하오2시 태화관에 모인 민족대표들. 출처:독립기념관

그러면 이제 “오등(吾等)은 자(慈)에 아(我) 조선(朝鮮)의 독립국(獨立國)임과 조선인(朝鮮人)의 자주민(自主民)임을 선언(宣言)하노라.”는 말로 시작하는 독립선언서를 읽어보겠습니다. 첫 문단에는 조선이 독립국이며 조선인이 자주민이라는 것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식민지 하의 조선이 그토록 갈망했던 나라의 독립과 조선인의 주권 회복에 대한 의지를 세계만방에 선포한 것입니다.

이어지는 단락에서는 선언의 의미가 민족의 영원한 자유 발전을 위함이라 설명하고 있으며, 이것은 인류의 양심에서 나온 것이며 지난날의 잘못을 씻고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인류 공존공영의 뜻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다음에서는 나라 잃은 조선인들이 일제의 압제에 시달려온 비참한 현실을 지적하며, 이로 인해 정신이 발전하지 못하고 민족의 명예가 훼손당했음은 물론 인류 발전에 이바지하지 못했음을 한탄합니다. 과거의 비통함이나 피할 수 없었던 지배자의 억압에 의한 고통 등에서 벗어나고 개인의 발달과 참담하게 쭈그러진 민족의 양심과 국가의 위신을 다시 세우고, 자손들에게 완전한 행복을 물려주기 위해서는 즉각 독립이 필요함을 역설하고, 이천만 조선인이 투쟁의 의지(方寸의 刃을 懷하고)를 불사르면 반드시 독립할 수 있음을 설파하면서 총 궐기를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런 다음 그간 저질러진 일제의 잘못을 열거하면서도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합니다. 남 탓 이전에 조선인들의 무능력을 반성하고 새 마음으로 새 세상 건설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밝힙니다. 이 문단은 아주 장황하지만 일제에 대한 경고는 매우 온건한 문장으로 표현되어 연약한 선언서라는 따가운 지적도 있습니다. 아마 만해 한용운도 이런 대목을 몹시 언짢게 생각했을 테지만, 한편으로는 천도교, 기독교, 불교 등 여러 종교의 큰 도량을 드러낸 대목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이어지는 단락에서는 일제의 폭압 정치의 부당함을 지적하면서 조선의 독립이 정당한 권리임을 선언하고, 나아가 중국을 포함하는 동양의 평화와 함께 세계 평화 실현을 위한 일본의 반성과 책임(日本으로 하야금 邪路로서 出하여 東洋 支持者인 重責을 全케 하는 것)을 요구합니다. 조선의 독립만이 아니라 세계 평화의 실현임을 천명한 것입니다. 

바야흐로 선언서는 조선인들 앞에 다가올 희망찬 미래를 얘기합니다. 강국이 약소국을 힘으로 억압하던 시대가 가고 도의에 따른 상호 존중을 통한 평화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을 전망하면서 조선인의 타고난 자유권을 회복하고 조선 민족의 우수함과 독창적 능력(自足한 獨創力/民族的 精華)을 발휘하도록 조선인의 분발을 촉구합니다. 독립선언의 당위성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오로지 앞을 보고 나아가기만 하면 반드시 조선의 부활을 이룰 것이라 선언합니다.

‘공약삼장’은 행동 강령입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만해 한용운이 추가한 것으로 추정하는 까닭은, 특히 두 번째로 언급된 ‘최후의 일인까지, 최후의 일각까지’라는 표현이 주는 강인함과 매력 때문일 것입니다. 선언서는 비폭력 평화 시위를 이끌기 위해 만들었습니다만, 이 대목에 승리하는 날까지 굴하지 않고 투쟁하겠다는 조선인들의 결연한 의지를 담았습니다. 끝으로 날짜와 민족대표 33인의 이름이 적혀 있는데요, 선언서에 이름을 올리는 것은 영광임과 동시에 이후 발생할 여하한 책임과 처벌을 모두 지겠다는 비장한 각오였습니다.

탑골공원 3.1 독립선언식 벽화. 정재용 선생이 1919년 3.1 운동 당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는 모습.

다소 긴 글이 됐습니다만, 이렇게 찬찬히 한 번 읽어봤습니다. 선언서가 천명한 것은 독립과 자주, 자유의 회복을 통한 민주 사회 건설과 세계 평화 실현이었습니다. 이렇듯 선언서는 오늘날 인류가 지향하는 보편적 가치인 자주, 자유, 민주, 평화의 정신을 담고 있기에 100년이 지난 오늘은 물론이고, 1000년 후 먼 미래에도 어두움 속에서 빛났던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의 한 장면을 증언할 것입니다.

아래 붙이는 「선언서」 전문은 지지난해에 반크로부터 부탁을 받아 요즘 말로 바꾼 것입니다. 1919년의 원문도 1979년 김동길 박사님의 번역문도 직접 읽기 어렵습니다. 반크는 특히 청소년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쉬운 요즘 말로 옮겨줄 것을 부탁했고, 거절을 잘 못하는 성격 탓에 외람되게도 어려운 일을 하고 말았습니다. 현재 반크는 「선언서」의 정신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중국어, 영어, 일본어, 프랑스어 등 20개 나라 언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1919년 3월 1일 독립선언서 번역본 전문

선언서

이제 우리는 우리 조선이 독립국임과 조선인이 자주민임을 선언한다. 이를 세계만방에 알려 인류가 평등하다는 큰 뜻을 분명히 하고, 자손만대에 알려 민족자존의 올바른 권리를 영원히 누리도록 한다.

(우리는) 반만년 역사의 권위에 의지하여 독립을 선언하는 것이며, 이천만 민중의 충성스러운 마음을 모아 우리의 독립을 널리 퍼뜨려 알리는 것이고, 겨레의 한결같은 자유 발전을 위하여 독립을 주장하는 것이며, 전 인류가 순수한 마음으로 바라는 세계 개조의 큰 뜻을 따르고 함께 나아가기 위하여 독립을 주창하는 것이니, 이것은 하늘의 뜻이며 시대의 큰 흐름이며 전 인류가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권리를 얻기 위한 정당한 주장이자 활동이므로, 세상 그 무엇도 우리의 독립을 막지 못할 것이다.

구시대의 유물인 침략주의와 강권주의에 나라를 빼앗겨 오천년 역사 이래 처음으로 다른 민족에게 자유를 억압당하는 고통을 겪은 지 오늘로써 십 년을 넘어섰다. 우리의 생존권을 빼앗긴 지 몇 년이며, 정신 발전의 장애를 입은 것이 얼마나 크며, 민족적 권위와 명예가 훼손당한 것은 또 얼마나 막심하며, 우리의 지식과 재능, 독창적인 발상으로 인류 문화의 큰 발전에 이바지하고 도울 기회를 얼마나 많이 놓쳤는가.

오호라, 예로부터 쌓인 억울함을 호소하려면, 지금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려면, 다가올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려면, 민족의 양심과 국가의 위신과 도의가 눌리어 쪼그라들고 힘없이 사그라진 것을 다시 살리고 키우려면, 저마다 자신의 인격을 올바르게 발달시키려면, 불쌍한 아들딸들에게 부끄러운 유산을 물려주지 않으려면, 우리의 후손들이 길이 완전한 행복을 누리게 하려면, 가장 긴급한 임무가 민족의 독립을 이루는 것이다. 이천만이 모두 마음속에 날카로운 칼을 품고, 인류 공통의 가치와 시대의 양심이 정의의 군대가 되고, 인륜과 도덕이 무기가 되어 우리를 지켜주는 오늘, 우리가 나아가 얻고자 하면 어떤 강적인들 물리치지 못할 것이며, 물러서서 계획을 세우면 어떤 뜻인들 펴지 못하겠는가!

조일수호조규(강화도조약) 이래 수시로 양국 간의 굳은 약속을 저버렸다고 해서 일본의 신의 없음을 비난하지는 않겠다. (일본의) 학자는 강단에서, 정치가는 실생활에서 우리가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터전을 식민지로 삼고, 우리 문화민족을 마치 미개한 사람들처럼 취급하여, 단지 정복자의 즐거움을 누릴 뿐이다. (그러나) 우리의 오래고 영원한 사회 기틀과 뛰어난 민족의 마음가짐을 무시한다고 해서 일본의 옳지 못함을 책망하지 않겠다. 자신을 탓하고 격려하기에 다급한 우리는 남을 원망할 수 없다. 현재를 돌보기에 바쁜 우리는 예로부터의 잘못을 따질 겨를도 없다. 오늘 우리가 할일은 오로지 우리 자신을 다시 세우는 것이지 결코 남을 헐뜯는 것이 아니다. 엄숙한 양심의 명령으로써 우리 민족의 새로운 운명을 개척하는 것이지 절대로 해묵은 원한과 일시적인 감정으로 남을 시기하고 배척하는 것이 아니다. 낡은 사상과 낡은 세력에 얽매여 공명을 세우고자 했던 일본인 위정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부자연스럽고 불합리한 지금의 그릇된 현실을 고치고 바로잡아 강자가 약자를 힘으로 지배하지 않는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올바른 세상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처음부터 우리 겨레가 원해서 된 일이 아닌 양국 병합의 결과가, 근본적인 대책 없는 억압과 차별에서 오는 불평등과 (사회 발전에 대한) 거짓된 통계숫자 때문에 이해가 엇갈린 두 민족 사이에 화합할 수 없는 원한의 도랑이 날이 갈수록 깊어지는 지금까지의 사정을 한번 살펴보라. 용감하고 과감하게 예전의 잘못을 바로잡고, 참된 이해와 인도주의를 바탕으로 친하게 지내는 새 시대를 여는 것이 서로 화를 멀리하고 행복을 불러들이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할 것이다.

또한 울분과 원한이 겹겹이 쌓인 이천만 조선인을 힘으로 억누르는 것은 결코 동양의 영원한 평화를 보장하는 방법이 아닐 뿐만 아니라, 동양의 안전과 위기를 좌우하는 사억 중국인들의 일본에 대한 두려움과 시기를 갈수록 깊게 하여, 동양 전체가 함께 쓰러져 망하는 비극을 초래할 것이 분명하다. 오늘 우리가 조선 독립을 선포하는 까닭은 조선 사람으로 하여금 정당한 번영을 이루게 하는 동시에, 일본으로 하여금 잘못된 길에서 벗어나 동양의 안전을 지켜나갈 무거운 책임을 통감케 하는 것이며, 중국으로 하여금 꿈속에서도 벗어나지 못하는 불안과 공포로부터 해방되게 하는 것이며, 세계 평화의 중요한 요소로서 동양 평화를 실현하여 전 인류의 복지에 반드시 있어야 할 단계를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어찌 졸렬한 감정상의 문제이겠느냐.

아아, 새 하늘과 새 땅이 눈앞에 펼쳐지는구나. 힘의 시대는 가고 도덕의 시대가 온다. 지나간 세기를 통하여 깎고 다듬어 온 인도적 정신이 바야흐로 새로운 문명의 찬란한 빛을 인류 역사에 던지기 시작한다. 새봄이 온 누리에 찾아들어 만물의 소생을 재촉한다. 찬바람과 꽁꽁 언 얼음 때문에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것이 지난 시대의 불길한 기운이었다면, 온화한 바람과 따뜻한 햇볕으로 서로 통하는 것이 다가올 시대의 상서로운 기운이니, 하늘과 땅에 새 생명이 되살아나는 이때에 세계 변화의 도도한 물결에 올라 탄 우리에게는 주저하거나 거리낄 그 어떤 것도 없다.

우리는 우리가 본디 타고난 자유권을 지켜 풍성한 삶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릴 것이며, 우리가 넉넉히 지닌 독창적 능력을 발휘하여 봄기운이 가득한 온 누리에 조선 민족의 우수함을 꽃피우리라.

그래서 우리는 분연히 일어나는 것이다. 양심이 우리와 함께 있고, 진리가 우리와 더불어 전진하니, 남녀노소 구별 없이 음침한 옛집에서 뛰쳐나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과 더불어 즐거운 부활을 이룩할 것이다. 천만년을 이어오는 조상들의 넋이 우리를 안으로 지키고, 전 세계의 움직임이 우리를 밖에서 보호하니, 일을 시작하기만 하면 곧 성공을 이룰 것이다. 오로지 저 앞의 빛을 따라 힘차게 전진할 따름이다.

 

공약삼장

하나, 오늘 우리들의 거사는 정의·인도·생존·번영을 찾는 겨레의 요구이니, 오직 자유정신을 발휘할 것이고, 결코 배타적 감정으로 치닫지 말라.

하나, 최후의 일인까지, 최후의 일각까지 민족의 올바른 의사를 당당하게 발표하라.

하나, 모든 행동은 먼저 질서를 존중하여 우리들의 주장과 태도를 어디까지나 공명정대하게 하라.

조선 나라를 세운 지 사천이백오십이 년 되는 해 삼월 초하루

 

손병희 길선주 이필주 백용성 김완규 김병조 김창준 권동진 권병덕

나용환 나인협 양전백 양한묵 유여대 이갑성 이명룡 이승훈 이종훈

이종일 임예환 박준승 박희도 박동완 신흥식 신석구 오세창 오화영

정춘수 최성모 최린 한용운 홍병기 홍기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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