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체크] '장애인 이동권 20년 시위' 왜, 어떻게 진행됐나

  • 기자명 이채리 기자
  • 기사승인 2022.03.31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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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들이 장애인 이동권·권리 예산 보장을 위해 지난해 말부터 최근까지 서울 지하철에서 시위를 벌였습니다. 휠체어를 타고 출근길 지하철을 승하차하는 방식입니다. 이에 대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연일 강한 발언을 쏟아냈습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등 장애인들이 비문명적 방식으로 시위를 벌인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대표는 “서울시민의 아침을 볼모로 잡는다"라고 했고 "소수자 정치는 성역을 만들고 모순은 언더도그마(underdogma: 약자는 무조건 선하고, 강자는 무조건 악하다고 인식하는 현상)으로 묻어버린다”라고도 했습니다. 

그러자 '볼모', '비문명적 관점' 등의 표현이 장애인 혐오를 조장한다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전장연 저격 발언을 자제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 시위가 정치적 쟁점이 되면서 정작 장애인들이 왜 집회를 하는지, 장애인 이동권은 어떤 상황인지에 대한 설명은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인수위와 면담한 장애인단체측은 4월 20일까지 해법을 요구하며 지하철 시위는 일시 중단하겠다고 밝힌 상태입니다. 뉴스톱이 장애인 이동권 보장 시위의 역사와 쟁점을 짚어봤습니다. 

추천: YTN News 홈페이지 캡쳐
출처: YTN News 홈페이지 캡쳐

■ 2001년 오이도역 사망사고로 시위 본격화

2001년 1월 22일, 설을 맞이해 역 귀성한 장애인 노부부가 오이도역에서 수직형 리프트를 이용하다 추락했습니다. 한 명은 중상을 입었고 다른 한 명은 중상을 입은 배우자가 보는 앞에서 사망했습니다. 1988년 서울 장애인 올림픽을 계기로 지하철 계단에 설치된 휠체어 리프트가 안전기준에 부합하지 않아 추락 사고 위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앞서 1999년에도 혜화역과 천호역에서 장애인 휠체어 리프트 사고가 발생한 바 있습니다. 

참사를 계기로 시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목적은 이동권 보장·장애인 권리 예산 반영입니다. 이후 승강기안전관리법 개정으로 안전기준에 부합하는 수직형 리프트가 설치되었습니다. 하지만 법 개정 이후에도 장애인 휠체어 리프트 사고사는 매년 꾸준히 발생했습니다. 

■ 휠체어 리프트 사고 18년간 17번 

시위가 이어졌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2002년 5호선 발산역에서 휠체어 리프트를 탄 장애인이 사망했습니다. 그러자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은 2004년까지 모든 역사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후임인 오세훈 서울시장 재임 기간에도 3번의 부상과 2번의 사망 사건이 있었습니다. 오 시장 다음으로 취임한 박원순 서울시장도 <장애인 이동권 증진을 위한 서울시 선언>을 통해 모든 역사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행되지 않았습니다. 2022년 현재 서울 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율은 93%입니다. 

1999년~2017년 수도권 지하철 휠체어 리프트 사고는 총 17건입니다. 뉴스톱은 자료를 참고해 장애인 휠체어 리프트 사고 내역을 (1999년~2022년) 타임라인 표로 만들었습니다. 

■ 오세훈만 노려서 집중 시위? 20년을 참아왔다

장애인 이동권을 정파적으로 이용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 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문재인 정부 하의 박원순 시정에서 이동권을 위해 했던 약속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이유로, 오세훈 시장이 들어선 뒤에 지속적으로 시위를 하는 것은 의아한 부분”이라고 말했습니다. 장애인들이 시장의 소속을 가려서 시위를 한다는 취지입니다.

출처: MBC NEWS 캡쳐
출처: MBC NEWS 캡쳐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구체적인 공약은 이명박 서울시장때 시작됐습니다. 2002년 이명박 시장은 2004년까지 모든 서울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겠다고 했으나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2006년 취임한 오세훈 시장은 별도로 공약을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재임 기간 휠체어 리프트 추락 사고가 발생했지만 같은 당 출신 전임 시장의 공약을 이행하지 않았습니다. 박원순 시장도 2015년 장애인 이동권 증진을 위한 서울시 선언을 발표했지만 결국 약속은 이행되지 않았습니다. 

출처: 2015년 장애인 이동권 증진을 위한 서울시 선언 표지 캡쳐
출처: 2015년 장애인 이동권 증진을 위한 서울시 선언 표지 캡쳐

지난해 4월 다시 서울시장에 취임한 오세훈 시장은 6월 28일 서울장애인차별연대(서울장차연)와의 면담에서 “요구안에 대해 전체적으로 서울시가 의지를 갖고 목표 기한 내에 될 수 있도록 법령, 조례, 예산, 하나하나 목표를 향해 갈 수 있도록 하겠다”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진척이 없는 상황입니다. 장애인 단체는 기본적인 이동권 획득과 장애인 예산 보장을 위해 21년 동안 기다려 왔고 지속적으로 시위를 벌여왔습니다.

처음에 장애인 단체는 국회를 찾아갔습니다. 돌아오는 답은 '법을 만들어도 예산을 배정하지 않으니 기재부 때문에 안된다'였습니다. 그러자 기재부가 있는 세종시와 홍남기 기재부 장관 집 앞으로 찾아가 시위를 이어갔습니다. 하지만 답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전장연은 지하철 시위와 관련해 시민의 불편에 대해 죄송하다며, 이렇게 나서지 않으면 바뀌지 않는 게 현실이라는 점도 이해해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지난해 8월에는 이준석 대표와 면담을 했고 "기재부를 혼내주기 위해선 정권 교체를 해야 한다"라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결국 각 부처의 책임 떠넘기기로 수십 년이 낭비됐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지하철 승하차 시위였습니다. 장애인 단체는 시민들의 불편을 유발하려 하기보다는 장애인이 실제로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겪는 일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 2024년까지 완료된다? 필요 예산 6분의 1만 편성

시위가 이어지자 1월 28일 오세훈 시장은 2024년까지 서울 지하철 1~8호선 모든 역사에 엘리베이터를 100% 설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서울교통공사가 추산한 21개 역사 엘리베이터 설치비용은 620억입니다. 하지만 편성된 예산은 96억 원에 불과합니다. 서울교통공사 보도자료에서는 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 기간을 평균 2년 이상으로 잡고 있습니다. 이번 약속 이행도 불투명한 상황입니다.

지난해 말 통과된 교통약자법 개정안도 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하기엔 불충분합니다. 개정안은 ▲버스 대·폐차 시 저상버스 도입 의무화 ▲국가 또는 도가 특별교통수단(장애인 콜택시)의 이동지원센터 및 광역 이동지원센터의 운영비 지원 등을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장애인이 이용가능한 저상버스는 '시내버스’와 ‘마을버스’에만 의무 도입됩니다. ‘시외·고속버스’는 저상버스 의무 대상에서 제외했습니다. 또한 도로의 구조·시설 등이 저상버스에 적합하지 않을 시에는 저상버스를 도입하지 않아도 되는 조건을 달았습니다. 

일부에서는 장애인 단체들이 이동권뿐 아니라 노동권, 교육권 탈시설 권리까지 포함한 장애인 권리 예산을 요구하는 것을 정치적으로 비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장애인의 교육수준과 취업률은 이동권과 밀접합니다. 2017년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장애인 중 중학교 졸업 이하 학력이 54.4%에 달합니다. 또 비경제활동인구는 62.7%입니다. 교육도 못 받고 직업도 없으니 집에만 머물게 되는 겁니다. 

지난 1월 한국 장애인 공단은 '한 눈에 보는 장애인 통계'를 배포했습니다. 장애급여와 상병급여는 장애인 예산 중에 하나입니다. 노동이 어려운 장애인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존재입니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대비 장애급여·상병급여 공적 지출 비율은 0.3%로 OECD 34개 회원국 평균 1.6%의 5분의 1 수준이었으며 꼴찌에서 두번째였습니다.

출처: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고용개발원 '한눈에 보는 2021 장애인 통계'
출처: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고용개발원 '한눈에 보는 2021 장애인 통계'

■ 서울교통공사의 여론전, 그리고 비판목소리

장애인들의 지하철 시위가 길어지자 서울 지하철 운영을 담당하고 있는 서울교통공사의 홍보실 직원은 최근 ‘사회적 약자의 여론전 맞서기–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지하철 시위를 사례로’라는 제목의 문건을 내부 게시판에 올렸습니다.

“상대방(전장연)이 실점 또는 무리수를 둘 때까지 기다리면서 디테일하게 (약점을) 찾고, 필요할 때 상대방의 실점을 소재로 물밑 홍보를 펼쳐야 한다” 등 장애인 단체 지하철 시위에 대한 공사의 대응전략이 담겨 있었습니다.

문건에는 “전장연도 사람이 있는 조직이다. 선 넘는 실수는 충분히 한다”며 “이번 시위에서 공사가 캐치(Catch)한 전장연 측의 미스는 바퀴를 열차-승강장 틈 사이로 끼워 넣기, 휠체어로 문 가로막기 등이다. 이는 고의적 열차 운행 방해를 증빙하는 것이 된다”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2월말 공사가 배포한 보도자료는 실제로 문건의 내용과 짝을 이룬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논란이 커지자 공사는 “직원의 개인적인 생각으로 공사의 공식 입장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정치권에서 이준석 대표의 시위 지적 방식이 장애인 혐오를 부추긴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국민의힘 조명희 의원은 당 원내 대책 회의에서 “장애인 시위 멈출 수단은 비난 아니라 관련 제도 정비와 예산 확충 노력”이라며 “우리 당이 먼저 귀 기울이고 공감해서 함께 대안을 찾아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권지웅 비대위원도 28일 <불교방송>(BBS)라디오에서 “시민 불편을 해소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시위를 못하게 해서 교통 약자들의 입을 다물게 하는 방식이 아니라 시위를 하게 된 이유를 해소해야 한다”고 비판했습니다. 정의당 배진교 원내대표는 ”차기 여당 대표라면 장애인들의 울분 섞인 몸부림이 입법 부족, 정치 부재에서 온 것은 아닌지 자성하며, 대책을 내놓는 것이 마땅하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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