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하드리누아스와 윤석열, 참된 지도자의 길

  • 기자명 이승윤
  • 기사승인 2022.05.26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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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키케로에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 이르는 시기는 이교의 신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그리스도는 아직 나타나지 않아서, 인간 홀로 존재했던 유일한 시대였다.”

소설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 뒤표지에 마치 선언문처럼 적혀 있는 이 문구는 원래 프랑스의 작가 플로베르의 말이다. 벨기에 태생의 여류작가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가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을 구상할 때 자신을 거듭 감동시켰던 구절이라고, 그녀의 창작 노트에 기록되어 있다.

로마제국을 모르는 이는 거의 없다. 하지만 로마제국 5현제 중 한 사람인 하드리아누스 황제(AD 76~138)를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역사에 조금 관심이 있다는 사람들조차 스코틀랜드 야만족의 침입을 방비하기 위해 세운 ‘하드리아누스 방벽’의 이름으로 그를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하드리아누스 황제 흉상
하드리아누스 황제 흉상

 

하드리아누스가 카이사르 혹은 네로 황제처럼 후세인들의 큰 관심을 받지 못한 것은 그의 치세 시기에 특별히 인상에 남을 요란한 치적이나 사건들이 그다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상에 깊이 남을 치적이나 사건들이 별로 없었다는 것이 결코 그의 무능함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는 상당히 유능한 지도자였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가 로마 5현제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의 선대 황제는 트라야누스였다. 뛰어난 군인이었던 트라야누스는 숙적 데케발루스 왕을 물리치고 다키아 왕국(오늘날의 루마니아)을 로마제국의 속주로 편입시켰다. 그 결과 트라야누스의 치세에 로마제국은 가장 광대한 영역을 차지했다. 트라야누스 황제는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파르티아 원정을 감행했으나 전황이 만만치 않자, 철수하던 도중 사망한다.

후임 황제가 된 하드리아누스는 선제 트라야누스의 확장 정책을 포기한다. 황제가 되기 전 그토록 좋아했던 사냥도 끊고 그는 오랜 시간 로마제국 순행에 나선다. 보통 최고 정치인들의 순행이라면 의례적인 현지 방문과 호화롭기 그지없는 향연을 떠올리기 쉽겠으나 하드리아누스의 경우는 전혀 달랐다. 하드리아누스의 순행지는 그리스를 제외한다면 제국의 변경 지역 또는 분쟁 지역에 집중되었다. 트라야누스가 확장시켜 놓은 방대한 제국 영토의 방위 및 통치 체계를 확고히 하려는 목적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하드리아누스는 시찰 도중 자주 일반 군사들과 똑같은 군장 차림으로 함께 행군하였다고 한다. 당대의 시인 플로루스는 ‘야만인들 사이를 싸돌아다니며 추위에 고생하는 황제’ 따위는 되고 싶지 않다고 풍자시를 쓰기도 했다.

분명 하드리아누스의 순행은 당대 로마인들에게 인기 있는 정책은 아니었다.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인기에 연연했다면 당장 눈에 보이는 거대한 건축물을 건설하거나 시민들이 좋아할 만한 검투사 경기 같은 볼거리 제공에 몰두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선대 황제의 뒤를 이어 화려한 대외 원정에 집착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드리아누스는 쉽게 겉으로 드러나는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 그는 국가 시스템의 보완과 개선이라고 하는, 그 노력의 성과가 좀처럼 돋보이지 않는 궂은 길을 선택했다. 그러나 후세의 많은 역사가들은 하드리아누스의 그러한 선택이 로마의 안정과 번영을 수십 년간 더 지속시킬 수 있었다고 평가한다.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가 축조한 하드리아누스 방벽은 로마제국의 안전 유지에 심혈을 기울였던 그의 의지를 상징한다. 자료 출처: 픽사베이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가 축조한 하드리아누스 방벽은 로마제국의 안전 유지에 심혈을 기울였던 그의 의지를 상징한다. 자료 출처: 픽사베이

2. 하드리아누스는 다재다능한 인간이었다. 지적으로 뛰어난 그는 문학과 수학, 건축학, 악기 연주 등에 상당한 소질을 보였고 그리스 문화에도 정통했다. 군사적 재능도 지니고 있었고 정치인으로서 책임감도 부족하지 않았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복잡한 심리를 지닌 인물이기도 했다. 잔인하면서도 자비롭고 쾌락적이면서도 자기절제에 능했고 신경질적이면서도 대범했다. 다른 한편 그는 동성애 성향도 지니고 있었다. 사랑했던 그리스 청년 안티노우스가 순행 도중 이집트에서 의문의 죽음을 맞고 또한 그 자신의 건강이 악화된 후 그는 자신이 직접 설계에 관여한 티볼리의 별장 ‘빌라 아드리아나’에 은거한다. ‘빌라 아드리아나’에서 은거하며 하드리아누스는 점차 다가오는 죽음을 황제답게 당당히 맞이하기 위해 거듭 자살을 시도하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그리고 결국 깊은 탄식과 체념 속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3.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은 죽음을 앞둔 황제의 내면세계를 치밀하고도 심층적으로 그리고 격조있게 그려내고 있다. 작가 유르스나르는 창작 노트를 통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나는 내가 한 위인의 생애를 쓰고 있다는 것을 재빨리 깨달았다. 그 때문에 나는 진실을 더욱 존중했고 더욱 조심스러워했으며 나 쪽에서의 개입을 더욱 삼갔다.”

작품 해설에 따르면 작가는 하드리아누스와 관련되는 일체의 것들을 연구하고 읽고 조사하였으며 그가 살았던 2세기의 텍스트를 접할 때 당대의 시선과 사유 그리고 감각으로 읽도록 노력했다. 또한 작가는 공감적 마술의 기법, 즉 상상을 통해 자신을 어떤 다른 이의 내부에 옮겨 놓는 기법을 사용하여, 한 역사적 인물의 총체적 초상을 진실에 가깝게 그려내고자 했다. 유르스나르는 1924년 처음 이 소설을 구상하였으나 소설이 발표된 것은 1951년의 일이었다.

 

4. 소설 속에서 늙은 황제의 사유를 통해 드러나는 세상은 5월의 햇살처럼 밝고 투명하지 않다. 늘상 습기 먹은 안개로 뒤덮여 있는 대서양 외딴 해안가처럼 불투명하고 아득하며 또한 어둡다. 하지만 그러한 혼탁한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삶의 여러 빛깔을 아우르고 포용하는 현명한 통찰로 가득 차 있다. 그 통찰 가득한 구절들을 살펴보면,

- 그러나 현실은 책 속에 있지 않다. 왜냐하면 현실은 책 속에 전부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 평화는 나의 목적이었지, 결코 나의 우상은 아니었다.

- 존경의 순금은 어느 정도의 두려움으로 합금되지 않으면 너무 무를 것이다.

- 나는 이 세상의 모든 철학이 동원되더라도 노예제도를 폐지하기에 이르리라고는 믿지 않는다. 기껏해야 그 명칭을 바꿀 것이다.

- 더할 수 없이 불투명한 사람들이라도 희미한 빛을 지니고 있는 법이다.

- 너무 일찍 옳은 것은 그른 것인 법이다.

 

5. 2022년 5월 20일 한덕수 국무총리 임명안이 국회 인준을 통과했다. 말 많았던 장관 인선 역시 교육부와 보건복지부 2개 부처를 제외하고는 마무리됐다. 5월 26일 세종시에서 윤석열 정권의 첫 정식 국무회의가 열릴 예정이다. 윤석열이 이끄는 대한민국의 본격적인 출항이 비로소 시작되는 셈이다. 대한민국 20대 대통령 윤석열은 과연 대한민국의 순항을 이루어 낼 수 있을까. 대통령 윤석열은 앞으로 5년 임기를 마치는 순간까지 수없이 많은 내적 고민과 갈등을 이겨내며 한 국가가 마땅히 나아가야 하는 현실적이고도 올바른 길을 모색해 가야 한다.

지도자가 걸어가야 하는 올바른 길은 과연 어떠한 길인가. 당장 눈앞의 관심과 승리를 위해 아름다운 꽃길만을 이야기하며 미래에 대한 그 어떠한 준비도 고민도 외면하는 길인가. 아니면 비록 당장은 인정받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진심으로 국가의 장래를 걱정하며 국가가 마땅히 나아가야 하는 방향을 제시하고 스스로 앞장서는 길인가.

답은 자명해 보이지만 실은 현실은 녹녹지 않다. 세계 경제는 코로나의 악영향 속에서 여전히 허우적대고 있다. 느닷없이 발발한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은 그 끝을 예측하기 어렵다. 국민의 여론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각 방면의 다양한 이슈로 인해 조각조각 균열이 나 있다. 수시로 탄도 미사일을 발사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는데 열중하는 북한의 핵 문제는 당장 눈앞에 닥친, 그러나 여전히 풀기 어려운 난제다. 실로 산 넘어 산이요, 엎친 데 덮친 격이 아닐 수 없다.

소설의 후반부에서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담담하게 그러나 어딘가 체념의 감정이 깃들어 있는 음성으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 인간의 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우리들의 연약한 노력은 우리들의 후계자들에 의해 산만하게 계승될 뿐일 것이다. 반대로 선(善) 자체 내부에 포함되어 있는 과오와 멸망의 씨앗은 제(諸) 세기를 거치면서 엄청나게 자라날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싫증난 세계는 다른 주인들을 찾게 될지도 모르고, 우리에게 현명하게 보였던 것이 신통치 않은 것으로, 아름답게 보였던 것이 추악한 것으로 보이게 될지도 모른다.

실로 그럴 것이다. 희망은 늘 언제나 우리를 배신하게 되어 있고 그 어떠한 개선의 성과물 역시 결국은 녹물 스며든 철조각처럼 변색되고 부스러지는 것이 이 세상의 이치다. 하지만 우리 같은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은 세계의 어쩔 도리 없는 부조리성 앞에서 체념할 수 있을지 몰라도 한 나라의 지도자에게는 감히 그러할 권리가 없다. 지도자의 선택이 어떤지에 따라서 수없이 많은 인간 생명들의 미래가 결정되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2천 년 전의 황제 하드리아누스는 한 나라의 지도자가 마땅히 가야 할 길을 선택했고 묵묵히 그 험한 길의 여정을 지치지 않고 걸어갔다. 2022년 5월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새롭게 지도자가 된 대통령 윤석열의 행보를 불안감과 기대감이 뒤섞인 복잡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대한민국 새로운 대통령의 선택이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선택했던 바로 그런 길이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 1, 2>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 지음/곽광수 옮김/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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