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인류는 '성숙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

  • 기자명 이승윤
  • 기사승인 2022.08.19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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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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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즘 돌아가고 있는 심란한 세상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문득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2012년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에 갔던 때의 일이다. 세계적인 관광 명소답게 밀림 한복판에 자리한 앙코르와트는 웅장했고 화려했으며 수많은 볼거리로 가득 차 있었다. 다소 들뜬 상태의 관광을 마치고 약속 장소인 앙코르와트의 뒤뜰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었을 때 눈에 들어오는 또 다른 볼거리가 있었다. 야생 원숭이들이었다. 앙코르와트의 앞뜰이 관광객들의 세상이었다면 초록빛 풀밭과 열대 숲이 펼쳐져 있는 뒤뜰은 야생 원숭이들의 세상이었다.

언뜻 보면 열대의 태양 아래에서 풀밭을 어슬렁어슬렁 걸어 다니는 야생 원숭이들은 무척 평화로워 보였다. 하지만 그 원숭이들 사이에 간혹 눈에 거슬리는 존재들이 있었다. 무엇인가에 맞은 듯 얼굴이 함몰되어 있거나 혹은 골절된 것으로 보이는 사지(四肢)를 겨우 추스르며 힘겹게 몸을 지탱하고 있는 것들이었다. 마침 가까운 곳에 서 있던 관광 가이드에게 그 딱한 몰골의 존재들에 대해 물었을 때, 뜻밖의 대답을 들었다.

“저기 먼 앞쪽으로 들판을 양편으로 가르는 작은 흙길 같은 것이 보이시죠? 그 경계가 이곳에서 살고 있는 두 원숭이 무리의 영역을 나누는 일종의 경계선입니다. 다른 무리의 원숭이가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이라도 하면 바로 응징이 들어갑니다. 보기엔 원숭이들이 힘이 약할 것 같지만 실은 나무에 매달려 살아가는 존재들이라서 팔 힘이 엄청납니다. 한 대 잘못 맞으면 저렇게 얼굴이 움푹 들어가거나 아예 병신이 되곤 하는 것이죠.”

다소 심드렁한 표정의 가이드의 설명을 들었을 때 어딘가 몹시 흡사한 세상의 이야기 같다는 생각이 떠올랐다..그 세상이 어떤 세상이었던가, 잠시 궁리하다가 이내 입가에 쓴웃음이 지어졌다. 서글프게도 그 흡사한 세상은 바로 우리들 인간 세상이었다.

 

2. 1953년 출판된 소설 <유년기의 끝>은 출간 후 70년 가까이 된 지금까지도 과학 소설 분야에서 최고의 명작 중 하나로 손꼽힌다. <유년기의 끝>의 저자는 영국 출신의 작가 아서 C. 클라크이다. 그는 스텐리 큐브릭 감독의 걸작 SF 영화 <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원작자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아서 C. 클라크 소설의 상당수는 인류가 외계의 초(超) 지적 생명체 혹은 그들의 창조물과 접촉하였을 때 발생하는 사건들을 소재로 삼고 있다. <유년기의 끝>, <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 <라마와의 랑데뷰> 등 그의 대표작들이 모두 그러한 종류의 것들이다.

저자가 ‘인류와 초 지적 생명체와의 접촉’ 이라는 소재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는 그의 사상적 경향과 연관이 있어 보인다. 저자에게 크게 영향을 미친 사상이 바로 그노시즘(gnosticism), 달리 말하면 영지주의(靈智主義)이다. 고대 헬레니즘 시대에 널리 퍼졌던 그노시즘은 영지주의라는 동양식 명칭에서 잘 드러나듯이 인간의 영적 차원에서의 앎, 요컨데 영적인 각성을 중시하는 사상이다.

사실 그노시즘은 상당히 염세적인 사상이다. 그노시즘은 이원론적 세계관 즉 영(靈)적인 것과 물(物)적인 것의 상호 대립적 관점을 사유의 바탕에 두고 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이 실존하고 있는 물질적인 현상계는 속되고 악에 가득 찬 공간이다. 따라서 신체라고 하는 물질 안에 갇혀 있는 인간 역시 타락한 존재일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우리들 인간은 영적 각성을 통해 물질적 굴레의 속세에서 벗어나 참되고 고귀한 영적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사상이 그노시즘이다.

저자의 소설들을 그노시즘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외계의 초 지적 생명체는 인간의 영적 각성을 자극하는 외적 존재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3. 소설 <유년기의 끝>은 미소 냉전 시기, 하늘을 덮을 듯한 거대한 우주선의 출현과 함께 시작된다. 그 거대한 우주선에는 초 지적 외계 생명체인 오버로드(overlord)들이 타고 있었고, 그들은 이제부터 자신들이 지구와 인류를 관리하겠다고 선포한다. 당연히 저항이 일어났고 우주선을 향해 원자폭탄을 발사하는 국가도 있었으나 부질없었다. 우주선은 아무런 피해도 받지 않은 것이다. 압도적으로 과학력이 우수한 오버로드들에게 인간은 굴복했다.

오버로드들이 관리하는 세상은 천국에 가까웠다. 그 어떤 인간 집단도 오버로드들에게 저항할 수 없었기에 인간의 군사력은 무의미했다. 군사력이 쓸모 없어진 세상에는 평화가 찾아왔고 인간은 이제 지적이며 현명한 오버로드의 통치하에 일찍이 없었던 낙원 같은 번영을 누리게 된다.

도로, 수도, 전기 같은 공공 서비스, 생활필수품도 모두 무료로 제공되는 세상. 힘들거나 단순반복적인 노동이 사라진 세상. 마음만 먹으면 전세계 어느 곳이든지 뛰어난 과학기술의 힘을 빌어 비용 지불 없이 여행할 수 있게 된 세상. 인간들은 이제 마음껏 오락을 즐기며 그 어떠한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인간들은 50년 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오버로드들의 생김새가 머리에 뿔이 나 있고 날개와 꼬리가 달린 악마 모습을 하고 있다는 사실 앞에서도 크게 놀라지 않는다. 오랜 번영에 취해버린 인간은 그토록 무력해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세상 속에서도 '오래되고 해답 없는 질문'에 빠진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어디로 가는 걸까?”

그러한 사람들 중 하나가 잰 로드릭스이다. 그는 오버로드들의 진정한 실체에 대해 알고 싶었다. 그는 자신의 궁금증을 풀기 위해 은밀히 오버로드의 우주선에 탑승하여 6개월 간의 우주여행 끝에 오버로드들의 고향 별에 도착하게 된다.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에 따라 그 사이에 지구는 80년의 시간이 흐른다.

그 80년의 시간 동안 인류는 극적인 변환을 겪게 된다. 정신적 능력이 각성된 새로운 인류가 태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개체성을 넘어서는 정신적 각성을 통해 부모 세대와 완전히 단절된 모습을 보인다. 새로운 아이들은 영적인 능력 만으로 물체를 들어올리고 자신들의 꿈을 통해 ‘우주의 중심’으로 여행을 떠날 수도 있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실은 인류의 종말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문명의 종말, 태초 이후 인간이 이룩해온 모든 것의 종말이었다. 불과 며칠 사이에 인류는 미래를 잃었다. 자기 자식들이 떠날 때, 모든 종족의 마음은 부셔져 버렸고 생존하고자 하는 의지도 완전히 박살이 나버렸기 때문이다.”

새로운 아이들은 점차 자신들의 개별적 정체성을 상실하고 일종의 하나의 정신적인 에너지 통합체의 모습으로 변해 간다.

“아이들은 잠을 자고 있거나 혼수상태에 빠져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눈을 꼭 감고 있었다. 그들 위로 뻗어 있는 나무와 마찬가지로 주위 환경은 의식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 아이들의 정신은 어떤 거대한 직물의 씨실과 날실이 된 것처럼 복잡한 망을 형성하고 있었다.”

지구와 인류의 마지막을 목격하게 되는 인간이 잰 로드릭스였다. 그는 오버로드들의 고향별을 방문한 후, 오버로드들의 도움으로 다시 지구에 도달하게 되었을 때 자신이 인류의 마지막 인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새로운 아이들이 하나의 정신적인 에너지 통합체의 모습으로 변해가는 동안 자신들의 개체성을 벗어날 수 없었던 부모 세대들은 모두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잰 로드릭스는 지구를 관리하는 오버로드 중 하나인 캐렐런에게서 충격적인 진실을 듣게 된다. 오버로드는 실은 오버로드 자신들보다 더 지적으로 뛰어난 일종의 신적(神的) 존재인 오버마인드(overmind)의 심부름꾼이었다는 사실이다. 본래 인류는 자신들의 다툼으로 인해 멸절될 운명의 존재들이었다. 그러나 오버마인드의 명을 받은 오버로드의 인도에 따라 인류는 하나의 정신적인 에너지 통합체의 모습으로 진화할 수 있었다. 정신적으로 진화되어 거대한 에너지를 이룬 그들의 힘은 오버마인드에게로 통합될 계획이었다.

결국 오버마인드의 의도대로 인류의 최종 진화 형태인 정신적인 에너지 통합체는 그 강력한 에너지의 힘으로 지구를 산산히 해체한 후 오버마인드와 하나가 되기 위하여 태양계를 떠나간다.

그 마지막 광경을 명왕성 궤도 너머 6십억 킬로미터 밖에서 음울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던 존재가 처음 인류 앞에 나타난 이후 줄곧 인류를 인도해 왔던 오버로드 캐렐런이었다.

소설 [유년기의 끝]에서 저자 아서 C. 클라크는 진화론적으로 인류가 보다 고등한 존재로 성장할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견지하고 있다. 그의 비관적인 관점은 2022년 현재 세계를 바라볼 때 낙관적 관점보다 차라리 현실에 가까워 보인다.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소설 [유년기의 끝]에서 저자 아서 C. 클라크는 진화론적으로 인류가 보다 고등한 존재로 성장할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견지하고 있다. 그의 비관적인 관점은 2022년 현재 세계를 바라볼 때 낙관적 관점보다 차라리 현실에 가까워 보인다.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4. 스토리 자체가 지니고 있는 여러 은유적이고 관념적인 상징성 때문에 소설 <유년기의 끝>은 자칫 황당하고 기괴한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다. 갑자기 인류에게 나타난 오버로드와 그들 뒤에 숨어 있었던 오버마인드의 존재 그리고 인류의 최종적인 진화형태인 정신적인 에너지 통합체의 정확한 실체 등 소설 속 다양한 등장 대상들 혹은 그들과 연관된 사건들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상당히 추상적으로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은 저자의 의도된 뜻일 수도 있다. 단세포 생물인 ‘아메바’라는 존재가 그들보다 월등히 고등적인 인류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듯이 인류 역시 자신들보다 고도로 진화된 존재인 오버로드 혹은 오버마인드의 정확한 실체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부분은 실은 따로 있는지도 모른다. 사실 본 서평에서 관심을 기울이고자 하는 것은 소설에 등장하는 대상들 혹은 사건들의 상징성들의 실체에 대한 부분은 아니다. 오히려 주목하고자 하는 부분은 저자가 작품을 통해 시종일관 제기하고 있는 궁극적인 문제 의식이다. 즉 ‘유년기의 끝’에 이른 인류가 과연 성숙한 어른으로서 성장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다.

서글픈 일이지만 저자는 인간의 고등적 차원으로의 진입 가능성에 대하여 회의적인 듯하다. <유년기의 끝>의 설정 자체가 이미 인간 스스로 성숙한 존재가 될 수 없다는 가정을 전제하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 인류는 월등히 진화된 존재인 오버로드들의 힘을 빌어 진화의 길을 걸어가야 했던 것이다. 물론 작품이 집필된 시기가 1950년대 초 미소 냉전이 격화되어 가던 때이기에, 시대적인 분위기가 저자의 세계관에 비관적인 영향을 주었을 수는 있다. 그렇다면 과연 오늘날 우리의 세계는 어떠한가. 1950년대 이후 70년의 시간이 흘렀으나 인류는 그 시간 동안 정신적으로 성장 혹은 진화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5. 이 질문에 대한 대답 또한 서글프지만 긍정적인 답변은 하기 어렵다. 2022년 8월 16일 (현지 시간) 미국은 캘리포니아주 반덴버그 공군기지에서 사정거리 9,600km에 이르는 ICBM 미니트맨3를 시험 발사했다. 최근 대만 문제를 둘러싸고 군사적 긴장 관계에 놓여 있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미국의 이러한 시그널에 대하여 중국 역시 강경한 반응을 나타냈다. 8월 22일 실시되는 한미연합훈련에 맞서 중국은 서해에서 잇따라 군사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현재 군사적 긴장 상황은 비단 남중국해 혹은 한반도에서만 국한되어 전개되고 있지는 않다. 공공연히 핵사용 가능성이 재기되고 있는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은 말할 것도 없고 유럽의 영원한 화약고인 발칸반도에서 역시 앙숙 관계인 세르비아와 코소보 양국 사이의 해묵은 갈등이 재발될 징조를 보이고 있다. 문제는 코소보 정부가 실시하고자 하는 새로운 차량 번호판 정책 때문이다. 코소보 정부가 자국 내 세르비아계 주민들에게 코소보 정부가 발급한 차량 번호판을 강요하자, 코소보 내 세르비아계 주민들의 반발이 격해졌다. 이러한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양국 사이의 정상회담이 8월 18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렸으나 합의 도출에 실패했다. 유럽 각국은 코소보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요 사태가 자칫 세르비아와 코소보 양국 간 군사적 충돌을 야기하게 될 것을 염려하고 있다. 2022년 현재 인류는 타자(他者)를 향한 눈과 귀를 막고 오직 자신만을 위한 각자도생의 길로 접어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인슈타인은 세계 3차 대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날카롭게 풍자했다. "나는 3차 세계 대전에 어떠한 무기가 주로 사용될 지 모른다. 하지만 4차 세계 대전에서 우리 인류는 나무 막대기와 돌멩이로 대결하게 될 것이다." 현재로서는 3차 세계 대전의 대표 무기는 핵무기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아인슈타인은 세계 3차 대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날카롭게 풍자했다. "나는 3차 세계 대전에 어떠한 무기가 사용될 지 모른다. 하지만 4차 세계 대전이 일어난다면 우리 인류는 나무 막대기와 돌멩이로 대결하게 될 것이다." 현재로서는 3차 세계 대전의 대표 무기는 핵무기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6. 다시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의 원숭이들에게로 돌아가 보도록 하자. 우리가 하등동물인 원숭이들과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고 판단하는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이들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정녕 그들 원숭이들과 완전히 다른 존재들이라고 자신있게 장담할 수 있을까. 상대방과의 타협점을 모색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 혹은 영역을 침범하는 대상에 대하여 무조건적인 적의를 드러내는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들 인간의 현재 모습이 겹쳐 보이는 것이 경우에 한참 벗어난 시각일까.

사실 상황은 앙코르와트의 원숭이들보다 우리 인간들에게 훨씬 더 비관적인 것일 수 있다. 캄보디아 원숭이들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은 기껏 잔머리를 쓴다고 해보았댔자 돌멩이 혹은 나뭇가지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 인류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은 그와 차원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우리 인간의 손에는 인류를 1천 번도 넘게 멸망시킬 수 있는 각종 핵무기와 생화학 무기 거기에 더해 현 과학기술로는 요격이 불가능한 극초음속 미사일까지 쥐어져 있는 상황이다. 아직 유년기를 벗어나지 못한 철없는 아이의 손에 기관단총이나 수류탄이 들려 있는 꼴이라고 해도 좋다.

캄보디아의 원숭이들은 집단 난투극을 벌인다고 해서 그들 종족이 서로를 멸망시킬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어쩌면 이번 세기 내에 혹은 예상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우리들 자신의 힘으로 스스로를 멸종시키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한 면에서 <유년기의 끝>은 결코 단순한 SF 소설일 수 없다. <유년기의 끝>은 2022년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인류에게 가장 첨예하고도 중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질문은 과연 우리 인류가 유년기를 벗어나 성숙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 인류는 그와 같은 엄중한 질문에 귀를 닫고 도리어 다음과 같은 질문만을 던지고 있는 듯하다. 마치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의 원숭이들처럼.

“너는 지금 누구 편인가. 내 편인가. 아니면 저들 편인가.”


<유년기의 끝>

아서 C. 클라크 지음/

정영목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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