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워싱 팩트체크] 환경 생각하면 저탄소, 사람 생각하면 친환경?

  • 기자명 선정수 기자
  • 기사승인 2022.09.15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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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워싱. 실제로는 친환경적이지 않지만 마치 친환경적인 것처럼 홍보하는 ‘위장환경주의’를 의미합니다. 쉽게 말하면 ‘짝퉁 친환경’이죠. 기후위기 시대를 맞아 친환경적 소비가 강조되면서 기업들도 ‘친환경’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그린’, ‘에코’, ‘녹색’, ‘친환경’, ‘천연’ 등 말만 들어도 지구가 살아날 것 같은 단어들이 광고를 가득 채웁니다. 과연 그린워싱이란 무엇이고, 그린워싱에 속지 않을 방법은 무엇일까요? 뉴스톱이 <2022 그린워싱 팩트체크> 시리즈를 통해 우리 곁에 있는 그린워싱을 팩트체크 했습니다.

※ 이 시리즈는 방송통신발전기금의 취재지원을 받아 작성했습니다.

출처: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출처: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안전을 위해 사먹는 친환경농산물

우리나라 사람들은 친환경 농산물을 왜 사먹을까요? 안전을 위해서입니다. 한국농수산유통공사(aT)의 의뢰로 2020년 한국갤럽이 진행한 <2020년 친환경농산물 소비자태도 조사> 보고서를 살펴보겠습니다. 전국 1200명의 20세 이상 70세 미만 여성을 대상으로 조사했습니다. 지역 및 연령별로 모집단 인구비례로 표본을 추출해 대표성도 갖췄습니다. 이 조사에서 친환경 농산물 구입 이유를 묻는 문항에 대해 응답자의 54.4%가 ‘안심하고 먹을 수 있어서’를 꼽았습니다. 27.3%는 ‘가족의 건강을 위해(질병 예방, 치유 등)’라고 응답했습니다. 5.2%만 ‘환경보호를 위해서’라고 답했습니다.

다른 조사를 살펴볼까요? 지난 2월 농촌진흥청이 실시한 <친환경 농산물 소비자 인식 조사>입니다. 농촌진흥청이 운영하는 전국 소비자 패널 999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12월 온라인으로 진행한 조사입니다. 이 조사에선 친환경 농산물 구매 이유로 소비자들은 안전성(44.9%), 건강증진(24.7%), 품질 우수(13.7%) 순으로 많이 응답했습니다. 환경보전은 6.4%에 그쳤습니다.

‘친환경’ 농산물이라 함은 환경친화적으로 재배한 농산물을 의미할 텐데 왜 소비자들은 ‘안전’ 또는 ‘안심’을 구매 이유로 꼽았을까요?

 

◈합성농약, 화학비료 안 쓰면 친환경?

우리나라 법령은 친환경 농업을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친환경농어업법 2조는 “친환경농어업이란 생물의 다양성을 증진하고, 토양에서의 생물적 순환과 활동을 촉진하며, 농어업생태계를 건강하게 보전하기 위하여 합성농약, 화학비료, 항생제 및 항균제 등 화학자재를 사용하지 아니하거나 사용을 최소화한 건강한 환경에서 농산물ㆍ수산물ㆍ축산물ㆍ임산물(이하 “농수산물”이라 한다)을 생산하는 산업을 말한다”라고 정의합니다. 여기에 포함되는 것은 유기(Organic) 농수산물, 무농약 농수산물, 무항생제 수산물 및 활성처리제 비사용 수산물입니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합성농약, 화학비료, 화학자재입니다. 법률에선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하고 있지만 실무적으로 친환경 농산물로 판단하는 기준은 농약을 얼마나 썼는지, 화학비료를 얼마나 썼는지입니다. 유기농산물은 최소 3년 동안 경작지에서 합성농약과 화학비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아야 인증을 받을 수 있습니다. 무농약농산물은 합성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화학비료는 권장 시비량의 1/3 이내를 사용해야 인증을 받을 수 있구요.

물론 농약(살충제, 살균제, 제초제 등)을 사용하지 않거나 적게 사용하면 경작지 주변의 곤충에게 피해를 덜 입힐 수 있습니다. 하천으로 흘러들어가는 농약과 화학비료를 줄이면 수질오염 부담도 줄일 수 있죠. 이 정도면 친환경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요?

출처: 한국형녹색산업 분류체계(K-택소노미) 가이드라인, 환경부
출처: 한국형녹색산업 분류체계(K-택소노미) 가이드라인, 환경부

◈K-택소노미가 인정하는 친환경 농업은?

한국형녹색산업 분류체계(K-택소노미) 가이드라인(윗 그림 참조)을 살펴보겠습니다. 환경부가 2021년 내놓은 지침인데요, “과연 무엇이 진정한 녹색경제 활동인가에 대한 명확한 원칙과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더 많은 녹색 자금이 녹색 프로젝트나 녹색기술로 흘러 들어갈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개발되었다”라고 의미를 부여합니다.

이 가이드라인에서 녹색경제활동으로 인정받는 농업은 ‘저탄소농업’과 ‘저탄소 사료 및 대체가공식품 제조’ 뿐입니다. 저탄소농업의 기준으로는 “식량, 채소, 과실, 화훼 작물 등 농산물을 재배하는 과정에서 온실가스 감축에 기여하는 기술이나 방법을 적용하는 활동”으로 정의합니다.

현행법상 ‘친환경 농산물’을 가르는 기준인 농약과 화학비료 사용에 대해선 기준 준수여부를 따질 뿐입니다. 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만 ‘녹색경제활동’으로 분류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친환경농어업법에서 규정하는 친환경 농업이 K-택소노미의 잣대로 보면 친환경이 아닐 수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된 겁니다.

실제로 농사 현장에선 친환경 농업을 시작하려면 비닐하우스부터 지어야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웃 경작지에서 날아드는 농약과 비료가 우리 농산물에 묻으면 친환경 농산물 인증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기 위해 흙을 비닐로 덮어 잡초가 자라지 못하게 하는 멀칭 비닐도 많이 깔고 있습니다. 유리온실도 많이 지어집니다. 사계절 일정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기 위해 난방도 해야하고 햇빛도 가려야하고 이모저모로 에너지가 많이 소모됩니다.

물론 노지에서 이뤄지는 친환경 재배도 있습니다. 논에서 이뤄지는 벼농사, 과수원의 과일 농사 등인데요. 시설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관행농법보다 온실가스를 더 배출할 이유는 없습니다. 문제는 소비자 입장에선 ‘유기농’, ‘무농약’ 마크만 보고는 이 농산물이 얼마나 지구환경 보호에 기여를 하는지 알 길이 없다는 겁니다.

 

출처: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한국농업기술진흥원
출처: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한국농업기술진흥원

◈사람 생각하면 '친환경', 환경 생각하면 '저탄소'

이런 고민의 연장선에서 정부는 ‘저탄소’ 농축산물 인증마크를 만들었습니다. 저탄소 농업기술을 적용해 농축산물 생산 과정에서 필요한 에너지 및 농자재 투입량을 줄이고, 온실가스 배출을 줄인 농축산물을 뜻합니다. 친환경 농산물(유기농, 무농약) 인증을 받거나 GAP(농산물우수관리) 인증을 획득하고, 저탄소 농업기술을 도입한 농업경영체(농업인 및 농업법인)가 인증 대상입니다. 이들이 생산한 농산물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품목별 평균 온실가스 배출량보다 적어야 인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저탄소 인증마크가 있는 농축산물이 엄격한 의미의 ‘친환경’에 더 부합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현장의 농부들은 유기농이나 무농약 같은 친환경 쪽은 기준이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소비자 인식도 그렇고 정부 인증 기준도 합성 농약과 화학비료 사용 여부를 따지니 ‘화학물질로부터의 인체 안전’에 더 초점을 맞춘다는 이야기죠. 쉽게 접근하자면 “사람한테 유해하지 않게 농산물을 생산하는 이게 친환경(농산물 인증)이고, 저탄소(농산물 인증)은 환경이 기준”인 셈입니다.

저탄소 농법의 온실가스 감축 효과에 관한 연구 논문도 있습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유기농업의 온실가스 감축효과' 논문에 따르면 저탄소 인증을 받은 유기농 감자는 관행 농법에 비해 89.3% 온실가스를 줄이는 것으로 추산됐습니다. 저탄소 유기농 양배추(76.7%), 상추(71.6%), 딸기(65.8%)도 온실가스 감소율이 높았습니다.

그런데 저탄소 인증 마크를 달고 판매되는 농산물에도 함정이 있습니다. 바로 포장인데요. 저탄소 인증마크는 농산물 생산 과정까지만 평가를 하기 때문에 이후 배송, 유통 과정에 대한 추적이 없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고급 이미지를 노린 대형마트, 백화점 등 유통채널에선 과다한 개별 포장을 요구하게 되죠. 그래서 저탄소 마크를 단 과일이 낱개로 스티로폼 완충재에 쌓인 채로 플라스틱 용기 안에 들어앉아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죠. 이렇게 되면 농장에서 농부들이 애써 탄소 배출을 줄인 노력이 상쇄되는 결과를 낳는 겁니다.

 

환경부와 주요 생협은 2021년 12월 포장폐기물 및 플라스틱 감량과 자원순환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두레생협은 '포장재 없는 친환경 농산물 판매 전용 매장'을 운영해 제품 포장을 줄였다. 사진=환경부 제공
환경부와 주요 생협은 2021년 12월 포장폐기물 및 플라스틱 감량과 자원순환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두레생협은 '포장재 없는 친환경 농산물 판매 전용 매장'을 운영해 제품 포장을 줄였다. 사진=환경부 제공

◈사람 헷갈리게 만드는 친환경 농산물

두가지 농산물이 여러분 앞에 있습니다. 하나는 GAP 인증을 받고 저탄소 마크를 단 과일입니다. 그런데 스티로품 포장재로 한 겹 쌓여있고 그걸 다시 투명 플라스틱에 곱게 넣어놨습니다. 다른 하나는 친환경 농산물 인증인 유기농 마크를 단 채소입니다. 이 상품은 투명 플라스틱 봉지에 들어있습니다. 그런데 온실에서 재배된 것이 분명한 철 지난 채소입니다.

어떤 것을 선택하는 것이 지구 환경을 덜 망치는 길일까요? 안 먹고 안 쓰는 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겠지만 살기 위해선 먹고 쓸 수 밖에 없잖아요. 소비자들이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생산부터 포장 유통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량에 관한 정보가 필요합니다. 지구를 살리는 길은 어렵습니다. 정부가 용어와 제도를 일목 요연하게 정비해 소비자의 선택권 행사를 도울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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