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어준 주장 '기시다 대북 정책 전환설'은 사실이 아니다

김어준 뉴스공장에서 주장하는 기시다의 '대북 정책 전환론'
2019년 아베 정권 때 유엔 연설에서 이미 동일한 발언
결코 납치문제 뒤로 돌린다는 의미 아냐

  • 기사입력 2022.10.05 09:34
  • 기자명 윤재언

지난달 기시다 총리가 한 유엔 연설과 관련해, 김어준 뉴스공장 진행자가 최근 새로운 발견으로 내세우는 게 하나 있다. 기시다가 과거 아베 총리와 다르게 북일 교섭 내지는 정상회담을 ‘조건 없이’개최하겠다고 방침을 '전환'했다는 얘기다. 결론적으로 김어준의 주장은 ‘거짓’에 가깝다는 게 이번 글 요지다. 아래에서는 기시다 유엔 연설과 관련해 구체적으로 김어준이 어떤 발언과 인식을 보였는지 정리하고, 그에 대해 확인해보고자 한다.

 

기시다 대북 정책 전환설

김어준은 최근 방송에서 일본 혹은 북한 전문가를 불러, 자신의 생각을 바탕으로 질문하고 있다. 해당 내용을 그대로 옮겨본다. 우선 9월 22일자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와의 대화(발언 전문은 모두 해당 링크에서 인용)다. 이날 김어준은 기시다 유엔 연설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호사카 교수가 그에 호응한다. 

 

김어준: 우선 이 김정은 위원장과 조건 없이 만날 수 있다. 원래 기시다 총리가 작년부터 그런 얘기하긴 했어요.


호사카 유지: 하긴 했습니다. 


김어준: 그런데 유엔총회 가서 전 세계를 향해서 이렇게 말했다는 건 정말 그렇게 하고 싶다는 거잖아요. 


호사카 유지: 그건 확실하게 그래서 현재까지 아베 전 총리의 그 이야기는 먼저 납치 문제를 해결하고.


김어준: 그렇죠. 


호사카 유지: 그 다음에 북일 수교, 이거였는데 그것을 조건 없이, 


김어준: 없이 바꾼 거죠. 


호사카 유지: 네. 바꾼다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북일 수교를 먼저 하고, 그다음에 납치자 문제를 해결한다. 그것이라고할 수 있죠. 


김어준: 굉장히 큰 변화인데.

 

두 사람 이야기의 문맥은 기시다 정권이 전임 정권들과 다르게 북일 대화에 적극적으로 바뀌었고, 납치 문제 해결보다 북한과 만나는 데 방점을 두는 쪽으로 전환했다는 것이다. 그 근거로는 ‘유엔 총회라는 매우 중요한 자리에서의 공개 연설’이라는 점을 제시하고 있다. 아마도 호사카 교수 역시 해당 발언의 유래를 정확히는 인지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9월 27일에는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과도 비슷한 대화를 나눈다. 다소 길지만 두 사람의 대화에서 기시다 연설에 주목하는 의도와 상황 인식이 좀 더 명확하게 나타나기에 관련 부분 중 일부만 생략하고 그대로 옮겨 적는다.

 

김어준: 장관님, 이건 어떻게 보십니까? 기시다 총리가 이번 유엔총회 가서, 우리가 예상치 못했는데, 전혀. 김정은 위원장과 전제조건 없이, 이때까지는 이제 일본 납치자 문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식으로 쭉 이어져 오다가 기시다 총리가 “조건 없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겠다.”라고 유엔총회에서 연설을 딱 해 버렸어요.  

정세현: 그러니까 납치 문제를 북일, 일북 정상회담의 제1번 의제로 해야 한다고 하는 것은 아베 시대의 주장이었습니다. 입장이었었습니다. 그런데 아베가 이제 떠나고 나니까 기시다 총리가 조건 없이 김정은 위원장과 만날 용의가 있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그건 기시다 총리가 아베의 그늘에서 벗어난다는 의미도 있지만 또 하나는 남북을 갈라치기 하려고 그러는 저의가 좀 숨겨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어준: 남쪽하고 북쪽의 관계를 보아하니 그쪽은 잘 안 될 것 같고.

정세현: 그렇죠. 왜냐하면 지난 8월 18일 날 김여정 부부장이 담화를 발표하면서 윤석열 대통령과는 다시 만날 생각이 없다는 표현을 쓰지 않았어요? 인간 자체가 싫다고 그러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북쪽에서 그야말로 비토를 하는 윤석열 대통령과는 다르게 일본 총리가 김정은 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하게 되면 우리 외교는 또 한 번 술렁거리게 됩니다. 

김어준: 굉장히 어려운 국면이고.

정세현: 굉장히 어렵게 되죠. 이렇게 되면 우리로서는 또 김정은 위원장으로서는 ‘가만히 있어 봐, 남한의 윤석열 대통령을 한번 골탕 먹이기 위해서 기시다 총리 못 만날 것 없지’ 하는 식으로 입장 표명이 나오면 우리가 술렁거리게 되지만 그걸 막기 위해서 우리가 또 일본한테 매달려야 할 거예요.

김어준: 그러니까 한반도 문제인데 일본을 통해서 접근해야 되는 일이 생길 수 있어요.
(중략)

정세현: 그리고 잘못됐다, 그건. 사과를 하고 그러니까 이제 (필자 주: 요코타 메구미의) 유골이라도 돌려보내 달라고 했죠, 일본에서. 그랬더니 유골을 찾아서 보냈는데 그게 가짜라는 식으로 폭로를 하고 고이즈미 총리를 어렵게 만들면서 정치적으로 확 큰 게 당시 수행을 했던 고이즈미 관방부장관 아베 신조였습니다.

김어준: 그걸로 아베가 총리까지 가죠.

정세현: 그러면서 일본이 우경화를 시작을 하고 그리고 그 바람을 타고 총리를 두 번이나 하지 않았어요?

김어준: 최장수 총리입니다.

정세현: 최장수 총리죠. 그러니까 그때 북한은 그때 납치 문제 해결됐는데 아베가 장난을 쳐서 우리를 어렵게 만들면서 무슨 북일 정상회담을 하는데 납치 문제를 먼저 해야 한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냐, 필요 없다, 이렇게 거절했는데 이번에 기시다 총리가 그런 거 다 필요 없고 따지지 않고 조건 없이 만나겠다

김어준: 아베가 세워 놨던 조건과 장벽을 허물었어요, 지금.

정세현: 북한으로서는 매력적인 제안이에요. 지금,

김어준: 가능성이 있는 것 아닙니까, 지금?

정세현: 가능성이 있죠. 왜냐하면 지금 미국의 대북 제재에 가장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것이 지금 일본이란 말이에요. 그런 일본이 그들의 국내 정치적 필요 때문에 총리가 가령 평양을 찾아온다든지 여러 가지 쇼로라도 그럴 경우에 북한이 누릴 수 있는 여러 가지 혜택이 있잖아요. 

 

두 사람의 대화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대북 강경파 아베가 사라진 상황에서 기시다가 ‘전향적 대북 정책’을 자신의 정치적 활로로 삼으려 하고, 그 상징이 이번 유엔 연설의 ‘조건 없는 대화’라는 얘기다. 윤석열 정권의 대북 강경책은 일본의 이 같은 태세전환에 따라가지 못하고 결국 ‘패싱’당하는 신세가 되며, 한미일 공조라는 것도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게 요지로 생각된다. 북한도 응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강조되고 있다.

 

기시다가 대북 정책 연설은 '아베 노선'의 답습

만약 실제 기시다가 대북 정책 전환을 천명했다면 일본에서도 떠들썩하게 얘기가 나올 법한데 보도는 별달리 눈에 띄지 않는다. 해당 연설을 보도한 일본 언론 제목을 보면 명확하다. 9월 21일자로 NHK는 ‘기시다 수상 유엔총회서 연설 “안보리개혁을 향한 교섭 개시가 필요”’라고 했고, 마이니치신문은 ‘기시다 수상이 유엔 총회서 일반토론연설 안보리개혁과 기능 강화를 호소’, 아사히신문은 ‘기시다 수상, 러시아를 비판 유엔 연설에서 개혁 호소’라 전하고 있다. 어떤 곳도 대북 정책 전환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있다. 언론계 속어로 '대북 정책'은 일본 언론의 '야마'가 아닌 셈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2019년 9월, 유엔 총회 연설에서 당시 총리 아베가 동일한 발언을 이미 했기 때문이다. 즉, 기시다가 유엔 연설에서 아베 정책의 전환을 꾀했다는 건 김어준의 착각이거나 의도적 왜곡으로 추정된다. 윤석열 정권의 대북 정책 비판 수단으로 기시다 연설을 끌어 쓴 것으로 생각되는데, 별다른 확인이나 검증 없이 인용했다. 정세현 전 장관도 최근 일본 정부의 방침에 대해서는 충분히 확인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일본이 기시다 정권 들어 방침 전환을 했다는 전제 자체가 틀렸기 때문이다.

일단 일본어와 한국어 번역을 중심으로 기시다 연설과 아베 연설을 비교해본다. 우선 지난달 있었던 기시다 연설이다. '조건 없이'를 얘기한 대목에는 밑줄과 진한 색 표시를 했다.

 

本年は、小泉総理と金正日(キム・ジョンイル)国防委員長が署名した日朝平壌宣言から20年です。同宣言に基づき、拉致、核、ミサイルといった諸懸案を包括的に解決し、不幸な過去を清算して国交正常化を目指す方針は不変です。日本は、双方の関心事項について対話する準備があります。私自身、条件を付けずに金正恩(キム・ジョンウン)委員長と向き合う決意です。あらゆるチャンスを逃すことなく全力で行動していきます。

올해는 고이즈미 총리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명한 북일평양선언으로부터 20년입니다. 이 선언에 기반해 납치, 핵, 미사일이라는 모든 현안을 포괄적으로 해결하고, 불행한 과거를 청산해 국교정상화를 목표로 하는 방침은 불변입니다. 일본은, 쌍방의 관심사항에 대해 대화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 저 자신, 조건을 달지 않고 김정은 위원장과 마주할 결의입니다. 모든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전력을 다해 행동해 가겠습니다.

 

유엔 총회에서 연설하는 기시다 수상(출처: 일본 외무성)
유엔 총회에서 연설하는 기시다 수상(출처: 일본 외무성)

다음은 아베의 2019년 유엔 연설 해당 대목이다.

 

トランプ大統領のアプローチを、日本は支持します。首脳同士が胸襟を開き、未来に光明を見て目前の課題を解こうとするやり方は、北朝鮮をめぐる力学を変えました。
私自身、条件を付けずに金正恩(キム・ジョンウン)委員長と直接向き合う決意です
拉致、核、ミサイルといった諸懸案を包括的に解決し、不幸な過去を清算し、国交正常化を実現するのが不変の目標です。 
 
트럼프 대통령의 접근법을, 일본은 지지합니다. 정상 서로가 흉금을 터놓고 미래에 광명을 보며, 눈 앞의 과제를 해결해 가고자 하는 방식은, 북한을 둘러싼 역학을 바꿔 놓았습니다.
저 자신, 조건을 달지 않고 김정은 위원장과 직접 마주할 결의입니다. 납치, 핵, 미사일이라는 모든 현안을 포괄적으로 해결하고, 불행한 과거를 청산해, 국교정상화를 실현하는 것이 불변의 목표입니다.

 

유엔 총회에서 연설하는 아베 전 총리(출처: 일본 외무성)
유엔 총회에서 연설하는 아베 전 총리(출처: 일본 외무성)

문장의 순서는 다르나, 전체 맥락은 거의 바뀌지 않았고, 해당 대목은 문장이 완전히 같다. 2018년 이후 한국을 중심으로 남북, 북미관계가 급변하는 상황 속에서 이른바 ‘일본 패싱’이 벌어졌다. 여기에 아베가 무언가 해야 한다는 조바심 속에서 내놓은 게 2019년 5월 ‘조건 없는 만남’이다. 이 ‘조건 없는 만남’은 납치 문제가 부차적이 됐다는 얘기가 아니다. 아베와 기시다가 말하는 것처럼 납치, 핵, 미사일과 과거 청산, 국교정상화를 모두 올려놓고 대화하자는 얘기다. 물론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 미국과의 협조가 전제다.

 

일본 사회 납치문제 인식 과소 평가해선 안돼

그리고 김어준은 일본 사회의 납치 문제 인식을 과소 평가하는 듯하다. 일본 정부가 납치 문제를 가볍게 다룰 경우, 즉 북한과 교섭에서 납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그냥 회담만 열릴 때에는 정권이 붕괴할 가능성이 있다. 구체적으로 해결과 관련해서는, 요코타 메구미에 관한 정보(적지 않은 일본인들은 요코타가 생존해 있을 것으로 믿거나, 적어도 죽었다고는 대놓고 발언을 못한다. 여전히 ‘납치문제가족회’의 발언권이 강하기 때문이다)나 추가 생존자 귀환이라는 성과가 없을 경우, 북일 교섭과 회담은 안 하느니만 못한 결과를 낳을 것이다. 외교통 기시다가 이를 모를 리 없다. 일본에서의 납치 문제는, 한국에서의 위안부 문제와 같이 해법이 마땅치 않고, 강경한 여론(극우에 한정되지 않는다)이 배경에 있기에 잘못 다루면 오히려 반발만 커질 사안이다.

북한 입장도 간단치 않다. 2002년 김정일이 직접 사과를 하고 납치 피해자를 돌려보냈으나 보상은커녕 일본 여론 반발로 북한은 완전히 악마화됐다. 그렇기 북한이 사전에 아무것도 받지 않고 회담을 진전시킬 가능성은 거의 없다(이 부분에 대한 북한 내 실망은 태영호 의원의 저서에 잘 나와있다). 반대로 일본 입장에서도 회담을 위해 북한 지원을 서두를 경우, 여론의 강한 반대에 부닥칠 것이다. 이는 일부 극우층만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 사회 일반의 분위기다.

이같은 대북 정책의 고차원 방정식을 미리 어느 정도 풀지 않으면 북일정상회담은 열리기 어렵다. 김어준은 윤석열 정권의 대북 정책 비판을 위해 굉장히 난해한 문제가 쉽게 풀릴 것이라고 보는 듯하나, 비전문가의 정치적 의도가 담긴 낙관론으로 밖엔 생각되지 않는다. 게다가 일본을 굳이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윤석열 정권의 외교나 대북 정책은 이미 비판점이 충분히 많아 보인다. 사안을 잘못 끌어들이면서까지 비판할 필요성이 있을지 솔직히 의문이다.
 

윤재언   sharply2u@gmail.com    최근글보기
일본 히토츠바시대 강사, 전 신문기자. 연세대에서 사회학과 경제학을 전공한 뒤 2010년 매일경제신문 입사. 예전부터 갖고 있던 ‘일본을 알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기자일을 뒤로 한 채 2015년 훌쩍 바다를 건넘. 2021년 히토츠바시대에서 박사 학위 취득 뒤 연구자의 길에 접어듦. 전공은 국제관계(국제정치경제)지만 일본과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의 정치 / 경제 / 사회(특히 미디어)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연구하고 글을 쓰고 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기사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주요뉴스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