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고교생 카툰 '윤석열차'는 <더 선>만평을 표절했다?

  • 기자명 김정은 기자
  • 기사승인 2022.10.07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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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지난 9월 윤석열 대통령을 기관차에 묘사한 한 고등학생의 풍자만화 '윤석열차'를 카툰부문 금상 수상작으로 선정한 뒤 표현의 자유 논란에 이어 표절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지난 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은 일제히 해당 작품이 외국 작품을 '표절'한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김종혁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은 <BBS 전영신의 아침저널>에서 "2019년 <더 선>지에 나온, 트럼프(전 미국 대통령)와 보리스 존슨(전 영국총리)을 풍자하는 내용을 누가 봐도 그대로 표절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출처: 트위터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서도 영국 만평을 표절한 것 아니냐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언뜻 보기에 비슷해 보이는 두 그림, 과연 학생이 영국 잡지에 실린 그림을 표절했다고 볼 수 있을까요.

 

◈ '토마스 기차 얼굴'은 풍자 소재로 종종 이용돼

국민의힘이 문제 삼은 고등학생의 그림과 2019년 영국 잡지에 실린 그림은 일반 기차가 아닌, 영국 어린이 애니메이션 <토마스와 친구들>의 기차 캐릭터를 활용한 것입니다. <토마스와 친구들>은 당초에는 동화책이었는데 인기를 끌자 1984년 애니메이션화 되어 방영됐고 우리나라에도 1997년에 EBS 등 여러 채널에서 방영된 애니메이션입니다. 기차의 전면에 사람의 얼굴이 그려져 있는데 기괴한 표정이 가끔 나와 밈으로 활용되곤 합니다. 토마스 기차 표정을 닮은 정치인이 화제가 되기도 합니다. 

출처: 영국 풍자 웹사이트 <THE POKE>

<뉴스톱> 객원필자이기도 한 전범진 변호사는 "토마스 캐릭터는 그것 자체를 독자적인 저작권으로 인정할 수 있는데, 2019년 영국에서 나온 작품은 토마스 기차 형식에 변형을 가한 정도"라며 "영국 작품이 독자적인 저작권을 갖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답했습니다. 그러면서 "고등학생이 저작권을 침해했다고 하려면, 영국에서 나온 그 그림도 토마스 캐릭터의 저작권을 침해했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토마스 캐릭터는 이미 외국에서 권력자를 풍자할 때 자주 사용될 뿐더러, 국민의힘이 언급한 2019년의 그림 역시 토마스 캐릭터를 차용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장입니다. 

 

◈ 권력자 비판할 때 자주 쓰이는 소재 '기관차'

또한 풍자만화에서 '기관차'는 정치인 등 권력자를 비판할 때 자주 사용되는 소재입니다. 당장 구글에 'train satire(풍자) cartoon'이라고 검색해봐도, 아래와 같이 무수히 많은 풍자 만화가 등장합니다. 

구글에 'train satire cartoon' 검색

폭주기관차를 의미하는 단어는 흔히 영어권에서 'runaway train'이라고 통하는데, 아래의 그림만 봐도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습니다. 빠르게 성장하는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미디어들이 기존 종이신문을 사지로 몰아넣는다는 의미로 기차가 활용됐습니다.  

출처: 캐나다 언론사 <TORONTO STAR>

캠브리지 단어사전도 runaway train이라는 단어의 예문(아래 참고)으로, "통제하기 어려운 기관차 같다"는 문장을 제시했습니다.

캠브리지 사전에 'runaway' 검색

카툰은 한컷이나 서너컷으로 정치풍자 의미를 전달해야 하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익숙한 이미지를 차용하는 일이 잦습니다. 즉 얼굴이 있는 열차와 정치인이 등장했다고 해서 표절로 단정짓는 것은 무리라는 겁니다.

 

◈'저작권법 침해' 따져보니...

그렇다면 법적으로는 문제가 될 수 있을까요. 법제처의 생활법령정보에 따르면 '표절'이라는 단어는 도덕적인 개념이지 법률상의 용어가 아닙니다. 한국저작권위원회는 "표절은 도덕적 비난이 내포되어 있는 것으로 법률적 판단에 기인한 저작권 침해와 같은 의미는 아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래서 우선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지 여부를 알기 위해 저작권법을 살펴봤습니다. 관련해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조항은 저작권법 '제5조(2차적 저작물)'와 '제35조의5(저작물의 공정한 이용)'입니다.

 

① 저작권법 제5조(2차적 저작물) 위반 가능성은?

<더 선>의 만평은 저작권을 주장할 수 있을까요. 만에 하나 저작권이 있다면 이는 '2차적 저작물'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더 선> 만평 역시 토마스 기차의 이미지를 차용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작권법 제5조는 "원저작물을 번역ㆍ편곡ㆍ변형ㆍ각색ㆍ영상제작 그 밖의 방법으로 작성한 창작물은 독자적인 저작물로서 보호된다"고 명시했습니다. 기존의 원저작물을 활용하더라도, '창조적 개성'이 드러나면 원저작물과 별개로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와 관련해 참고할 만한 판례가 있습니다. 2005년 8월 한빛소프트가 '신야구'라는 온라인 게임을 출시하자 게임업체 코나미는 신야구가 자사의 '실황 파워풀 프로야구' 캐릭터와 경기장면을 표절했다며 저작권 침해 금지 소송을 냈습니다(아래 사진 참고). 2006년 1심에서 법원은 해당 소송에 대해 '기각 판정'을 내렸습니다. 저작권 침해가 아니라는 의미이며 일반의 언어로 얘기하자면 '표절'이 아니라는 겁니다.

법정 다툼은 최종심까지 갔는데 2010년 당시 대법원은 "어떤 저작물이 기존의 저작물을 다소 이용하였더라도 기존의 저작물과 실질적인 유사성이 없는 별개의 독립적인 신 저작물이 되었다면, 이는 창작으로서 기존의 저작물의 저작권을 침해한 것이 되지 아니한다"고 판시했습니다.

출처: 게임메카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대법원은 '신야구' 캐릭터와 '실황 파워풀 프로야구'의 표현 등에 있어 유사한 면이 있다고 봤지만, '실황야구' 캐릭터가 출시되기 이전에 만화, 게임, 인형 등에서 어린아이 이미지가 귀여운 캐릭터들을 표현하는 데에 흔히 사용되었기 때문에 캐릭터를 복제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실황야구의 귀여운 캐릭터가 2차적 저작물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도 판단했습니다. 이미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캐릭터를 가공해 작품내에 사용한다면 두 캐릭터가 유사성이 있더라도 저작권을 침해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판결입니다. 

한국저작권위원회 교육자료에 따르면 2차적 저작물의 성립 요건은 '원저작물을 기초로 하되, 새로운 창작성이 부가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때 원저작자의 허락은 성립요건이 아니지만, 이것이 침해책임을 면제받을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2차적 저작물이더라도 원저작자의 권리를 침해했다면 그에 따르는 책임이 별도로 발생할 수 있습니다.

종합하면 2019년 <더 선> 만평 역시 카툰에서 보편적으로 이용되는 폭주기차와 토마스기차 얼굴을 차용해서 그린 것이기 때문에 '2차적 저작물'에 해당될지 여부를 단정짓기 힘들며 그래서 '윤석열차'도 저작권 침해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겁니다. 

 

② 저작권법 제35조의5(저작물의 공정한 이용) 위반 가능성은?

이번에는 저작권법 제35조의5를 살펴보겠습니다. 이 조항은 "저작물의 통상적인 이용 방법과 충돌하지 아니하고 저작자의 정당한 이익을 부당하게 해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저작물을 이용할 수 있다"고 명시했습니다. 이때 다음과 같은 조건을 고려해야 합니다.

㉠이용의 목적 및 성격

㉡저작물의 종류 및 용도

㉢이용된 부분이 저작물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그 중요성

㉣저작물의 이용이 그 저작물의 현재 시장 또는 가치나 잠재적인 시장 또는 가치에 미치는 영향

풍자만화를 포함한 패러디의 경우에도 위에서 언급한 규정을 준수한다면,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한국저작권위원회는 이 경우에도 '원작의 비평 또는 풍자라는 목적에 충실'해야 저작권법상 허용되는 패러디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저작물의 공정 이용와 관련된 판례도 있습니다. 2001년 가수 이재수씨가 서태지의 '컴백홈(Come back home)'이라는 노래를 패러디한 '컴배콤'을 발표했습니다. 서태지는 저작권 침해금지 가처분신청을 냈고, 당시 서울지방법원은 '컴패콤'을 공정한 인용으로 보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습니다. 

서울지방법원은 판결문에서 "패러디로서 보호되는 것은 당해 저작물에 대한 비평이나 풍자인 경우로 할 것"이라며 "당해 저작물이 아닌 사회현실에 대한 것까지 패러디로서 허용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언급했습니다. 한마디로 원저작물 자체를 풍자한 작품은 '패러디'가 될 수 있지만, 원저작물을 바탕으로 사회를 풍자한 작품은 '패러디'가 될 수 없다는 판례입니다. 

패러디의 범주를 다소 좁게 해석한 이 판례에 따르면, 고등학생의 '윤석열차'는 저작권 침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2001년 컴배콤 사례는 저작권법에 명시된 음반(음반제작자의 권리)에 관한 것이지, 이번 사안의 핵심인 '만화'와 관련된 판례가 아닙니다. 

한국저작권보호원은 패러디의 저작권 침해에 대한 면책은 '해석상의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며, 이를 저작권법에서 명문화하여 규정하고 있는 입법례는 해외 사례를 통틀어 매우 드물다고 언급했습니다. 패러디의 저작권 침해를 가리기 위해 자주 언급되는 법 조항은 있지만, 법관마다 해석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위에서 언급한 두 조항으로 고등학생의 저작권 침해 여부를 가릴 수 없습니다. 

 

◈ <더 선> 만평작가 "표절 아니다"

2019년 <더 선>지에 실린 만평의 작가 스티브 브라이트(Steve Bright)는 저널리스트 '라파엘 라시드(Raphael Rashid)'에게 "이 학생은 내 작품을 표절하지 않았다"고 답했습니다. 그림의 컨셉은 유사하지만 "완전히 다른 아이디어이고, 표절과는 다르다"는 게 원작자의 입장입니다. 

출처: 라파엘 라시드 트위터

YTN과의 서면 인터뷰에서도 표절이라고 보지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카툰과 만평의 유머와 풍자 비교 분석> 논문은 "카툰은 의미작용에 따라 유머 중심의 유머카툰과 풍자 중심의 풍자카툰으로 나눌 수 있다"며 "풍자카툰에서도 만평은 구체적인 대상과 비난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비웃음을 잘 보여주는 장르"라고 언급했습니다. 풍자만화에서 특정 대상에 대해 비판하는 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겁니다.

'윤석열차 논란'에 묻혔지만 이번 전국학생만화공모전에서 수상한 다른 작품들도 온라인에서는 화제입니다. 토마스 기차를 활용해 윤석열 대통령을 비판한 그림뿐만 아니라, 다른 학생들도 '아빠 찬스' '임산부석' 등을 이용해 한국 사회를 비판하는 내용의 만화를 그렸습니다. 

전국학생만화공모전 수상작, 출처: 온라인 커뮤니티 글 갈무리
전국학생만화공모전 수상작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글 갈무리)

풍자를 그냥 풍자로 받아들였으면 해프닝으로 끝날 일이었는데 문화체육관광부와 정치권이 문제를 삼으면서 표현의 자유 이슈로 불거졌습니다. 학생은 장르 특성상 풍자가 내포된 '카툰(만화)' 공모전에 현실을 비판하는 작품을 제출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를 두고 여당과 대통령실은 '표절'을 내세워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습니다. 국제사회에서도 '자유'를 천명한 윤석열 대통령과 상반되는 행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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