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여러 명과 결혼하는 '집합혼'이 뉴욕에서 합법화됐다?

  • 기자명 김정은 기자
  • 기사승인 2022.10.18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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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뉴욕 법원에서 집합혼이 승인됐다"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네이버에 '뉴욕 집합혼' 검색

해당 주장을 공유한 게시글들은 모두 유튜브 채널 '점점더 미디어'의 동영상을 근거로 제시했습니다. 동영상을 확인해보니, '점점더 미디어'는 "동시에 여러 명과 결혼하는 복혼제(집합혼)가 뉴욕에서 합법화됐다"며 "중세 시대에나 유행하던 집합혼이 합법화되기 시작했다"고 언급했습니다.

출처: 네이버 카페

그러면서 미국 뉴스 매체 <Washington Examiner>의 기사를 영상의 댓글창에 공유했습니다. 유튜브 채널이 언급한 이 기사는 "30여년 전 동성결혼을 처음 인정한 뉴욕 주 법원이 이제 폴리가미(Polygamy, 중혼) 관계를 인정했다"고 밝혔습니다.

출처: 미국 뉴스 매체 <Washington Examiner>

또 문제가 된 뉴욕 민사 법원(Civil Court Of New York)의 한 판결문을 소개했습니다. 뉴욕 법원이 집합혼을 합법화했다는 주장을 <뉴스톱>이 확인했습니다.

 

◈ 폴리가미? 폴리아모리? 둘은 다른 개념

먼저 용어를 확실히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유튜브 채널 '점점더 미디어'는 집합혼을 '동시에 여러 명과 결혼하는 제도'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집합혼이라는 단어, 구글과 네이버에 검색하면 쉽게 등장하는 단어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Washington Examiner>이 기사에서 언급한 '폴리가미(Polygamy)'가 집합혼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사실 외국에서 쓰이는 단어를 한국어로 정확히 번역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학문적으로 규정된 단어가 아니기 때문에,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자의적으로 번역하기 일쑤입니다. 폴리가미를 '일부다처제'라고 규정하는 커뮤니티가 있는 반면, '다부다처제'라고 번역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출처: 인터넷 커뮤니티 갈무리
출처: 인터넷 커뮤니티 갈무리

영국 캠브리지 단어사전은 폴리가미를 "동시에 두 명 이상과 결혼하는 것(the fact or custom of being married to more than one person at the same time)"이라고 규정했습니다. 한국 커뮤니티에서 언급되는 일부다처제나 다부다처제 등은 폴리가미의 한 방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법률상의 배우자가 있는 상태에서, 제3자와 사실혼을 유지하는 것이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중혼'으로 부르겠습니다.

한편 동시에 여러 명을 사랑한다는 의미의 단어는 우리에게 '폴리아모리(Polyamory)'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심리학 정보를 제공하는 웹 사이트 <Simply Psychology>는 폴리아모리를 '합의를 바탕으로 세 명 이상의 파트너 사이에서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the practice of having intimate relationships between three or more partners)'으로 규정했습니다. 이때 반드시 모든 구성원들과 관계를 맺지 않을 수 있으며, 결혼을 전제로 하는 폴리가미와는 구분된다고 명시했습니다.

정리하면 유튜브 채널이 언급한 <Washington Examiner>이 기재한 '폴리가미'는 '중혼'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이와 비슷한 개념인 '폴리아모리'는 법적 혼인을 전제로 하지 않을 수도 있으며, 반드시 모든 구성원들이 서로를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임대차 계약 갱신 둘러싼 분쟁이 배경

이제 논란이 된 뉴욕 민사법원의 판결문을 살펴보겠습니다. 판결문에는 세 명의 남성 '마르키우스 오닐(Markyus O'Neill)'과 '스콧 앤더슨(Scott Anderson)', '로버트 로마노(Robert Romano)'가 등장합니다.

사건의 발단은 뉴욕의 한 아파트 세입자인 '스콧 앤더슨'이 2021년 10월 사망하면서 시작됩니다. 앤더슨은 그의 남편 로버트 로마노와 25년 전에 만나 결혼했으나, 서로의 편의를 위해 별도의 아파트에서 거주했습니다. 그러다 앤더슨은 지난 2011년 오닐을 만났고, 둘은 앤더슨의 아파트에서 함께 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닐은 앤더슨이 사망하자 아파트의 임대차 계약을 갱신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집주인은 오닐이 "비전통적인 가족구성원"이며 앤더슨의 "룸메이트"에 불과하기 때문에 계약을 갱신할 권리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오닐은 자신이 앤더슨을 사랑했기 때문에 갱신 권리가 있다고 말했으나, 결국 집주인은 오닐을 퇴거시키기 위해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앤더슨의 남편 로마노는 오닐의 존재를 알고 있었으나, 로마노와 오닐은 친구가 아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오닐 역시 로마노가 앤더슨과 시간을 보낸 것보다, 자신이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앤더슨과 보냈다고 말했습니다.

 

◈ 판사 "가족에 대한 정의 바뀌어"

판사는 결국 오닐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그는 2인 동성 간의 관계가 법적으로 인정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을 명시한 최초의 판결문(1989)을 언급하며, "가족에 대한 정의는 1989년 이후 상당히 바뀌었다(아래 그림 참고)"고 말했습니다. 또 판사는 "2020년 6월 메사추세츠 주의 서머빌은 '자신이 가족이라고 생각하는' 3인 이상의 그룹을 파트너(구성원)로 인정하는 조례를 통과시켰다"고 언급했습니다. 그러면서 "로마노가 오닐을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중요하지 않다"며 "오닐은 단순한 룸메이트 이상이며, 3인 관계의 구성원"이라고 명시했습니다. 

출처: 판결문 <West 49th St., LLC v O'Neill>

결정적으로 "세 명의 (폴리아모리적인) 관계 때문에 피청구인 오닐의 비퇴거 보호 요청을 자동적으로 기각해서는 안 된다"고 판시했습니다. 집주인이 세 명의 관계를 이유로 오닐을 내쫓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출처: 판결문 <West 49th St., LLC v O'Neill>

해당 판결문은 3명 이상이 동시에 사랑하는 '폴리아모리' 관계를 법적으로 인정하는 초석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임대차 계약 갱신을 둘러싼 분쟁 과정에서, '폴리아모리 관계가 임차인을 내쫓는 이유가 될 수 없다'는 판결이 나온 것을 두고 "집합혼(중혼)을 합법화했다"고 결론을 내릴 수는 없습니다.

더군다나 해당 판결은 뉴욕의 민사법원에서 이뤄진 것으로, 법원에서 발간한 <집주인-세입자 재판 준비 방법>에 따르면 당사자는 항소할 수 있습니다. 이번 사건의 청구인인 집주인이 판결에 불복할 수 있기 때문에, 완전히 확정된 결정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뉴욕 법원의 판결을 근거로 '집단혼이 합법화됐다'고 주장하려면, 최소한 판결문의 맥락을 전달했어야 합니다. 하지만 해당 유튜브 채널은 외신의 기사만 번역한 채, 소송의 배경과 판결문의 세세한 내용을 제시하지는 않았습니다. 결국 일반화된 주장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일파만파 번져, '다부다처제' '일부다처제'와 같은 잘못된 용어로 번역되고 있습니다. <뉴스톱>은 '동시에 여러 명과 결혼하는 집합혼이 뉴욕에서 합법화됐다'는 주장을 '대체로 거짓'으로 판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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