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언론 '피해자 실명보도' 관행이 바뀌는 이유

  • 기자명 윤재언
  • 기사승인 2022.11.11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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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이태원 참사는 일본에서도 관심이 높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일본 사회 전체적으로 관심이 높아진 데다가, 큰 인기를 끈 ‘이태원 클라쓰(일본에서는 '롯폰기 클라스'라는 이름으로 공중파에서 리메이크됐다)’의 지명도도 영향을 주고 있다. 여기에 일본인 2명이 희생됐다는 점까지 겹치면서, 일본 언론의 보도는 국내 사안에 준할 만큼 비중이 컸던 상황이다.

최근 개인적으로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이 범죄와 사고 관련한 피해자 혹은 피의자(용의자) 보도다. 한국에서는 이태원 참사 피해자(희생자) 명단 공개가 정치적 쟁점이 되고 있다. 일부 나온 팩트체크 보도를 보면, 2014년 세월호 사고 때는 온라인에 명단이 공개됐지만, 그 뒤 개인 정보 관리와 관련해 비공개 방침으로 수렴된 것으로 보인다. 필자 역시 2010년 이후 몇몇 사건사고 보도를 직접 담당한 적이 있지만, 기본 원칙은 비공개 아니었나 싶다. 굳이 공개를 해야 한다고 하더라도, 특히 사망자과 관련해서는 기본적으로 유족 동의를 전제로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일본 언론 사건사고 보도는 실명이 원칙

일본 언론은 피의자는 물론, 피해자도 실명 보도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대체적인 보도 과정을 살펴보면, 당사자나 가족(유족) 동의는 부차적으로 보이고, 경찰이나 소방 등 행정에서 취재 기자들에게 관련 정보를 전해주면, 실명과 더불어, 방송의 경우 사진까지 그대로 보도한다. 때로 해당 피해자의 SNS가 특정 가능한 상황에는 동영상을 보도하는 일도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일본에서도 피해자 보도에 대한 인권 침해 차원의 문제 제기가 끊이지 않아, 정보를 요구하는 기자들과 소극적인 행정, 거기에 언론 태도에 의문을 제기하는 국민들 사이 간극도 점차 벌어지고 있다.

우선은 이태원 참사를 예로, 일본 언론의 피해자 보도가 어떻게 이뤄졌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참사 다음날인 10월 30일 저녁 일본 언론들은 일본인 피해자가 모두 2명 확인됐다고 전한다. 아사히신문마이니치신문 등은 주한일본대사관과 가족 취재를 근거로 피해자 1명의 이름이 토미카와 메이(冨川芽生)라며 실명과 나이를 적시했다. 부친이 홋카이도 네무로시 시의원인 점에서 확인이 조금 더 빨랐던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입수한 사진도 보도된다. 이 시점에 다른 1명의 신상정보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다음날인 10월 31일에는 한국 취재 정보를 근거로 일본 언론에 가타카나(외래어 등을 표기하는 일본 문자)로 ‘코즈치 안(コヅチ・アン)’이라는 이름이 전해진다. 취재원이 한국교육기관 관계자인 것으로 보아, 유학하고 있던 건국대 어학당 쪽에서 나온 정보로 생각된다. 일본인 인명 보도는 한자가 원칙이기 때문에 한국어 내지는 한글로 전해 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일본정부관계자를 근거로 한자명(小槌杏)과 나이가 표기되기 시작하고, 사이타마현에 산다는 가족 취재도 이뤄진다.

이처럼 일본 사건사고 보도는 행정기관이나 수사기관 취재 혹은 정보 제공을 기초로 신상 정보를 얻고, 그것을 바탕으로 실명 중심으로 가족이나 주변 취재를 이어가는 형태를 띤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이 같은 보도의 방향성이 반드시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있다고는 할 수 없을 듯하다. 이태원 참사 피해자 관련한 TV 뉴스에 달린 유튜브 댓글이 사회적 인식의 일면을 보여준다고 판단해 일부 소개한다.

 

취재진에게 고개를 숙이는 이태원 참사 유가족(출처: 일본테레비 유튜브 캡처)
취재진에게 고개를 숙이는 이태원 참사 유가족(출처: 일본테레비 유튜브 캡처)

피해자 실명 보도에 대해 높아져 가는 사회적 의문

한국에서 시신과 함께 귀국한 토미카와 메이의 아버지가 현지 공항에 도착한 보도에 대해, 적잖은 댓글들은 굳이 심경을 묻고, 유족들을 취재할 필요가 있는지, 기자들 앞에서 죄인도 아닌데 고개를 숙이게 할 이유가 있는지(위 사진과 아래 영상) 등 의문을 표하고 있다. 이는 동시에 많은 공감을 받고 있는 댓글이기도 했다. ‘아버지가 시의원이라는 것이 보도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는 댓글도 있었다. 적어도 피해자와 유족 보도에 대해서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문제 의식을 느끼고 있다는 점은 확인 가능하겠다. 

 

 

기자들이 피해자 개인 정보를 취재하는 것은 자유이고 부당하게 그 행위가 침해받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것을 유족이나 가족 동의 없이 무분별하게 보도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 행정 당국이 초기 단계부터 정보 공개를 불합리하게 거부하는 것도 방지할 필요가 있겠으나, 그렇다고 신상이 확인되고 가족들에게 정보가 전달된 상황에서 얼굴이나 나이를 보도해서 얻어지는 실익이 무엇인지 불명확하다. 이른바 ‘알 권리’로 포장되는 독자, 시청자의 호기심 이상의 대의가 있는지 의문이란 얘기다. 

지난해 6월 도쿄 내 러브호텔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아래 영상)은 평소 의문을 더 크게 한 계기였다. 마침 현 거주지와 가까운 곳에서 일어났기에 다소의 충격과 함께 접했던 사건이다. 한 19세 남성이 러브호텔에 유흥업소 여자 종업원(‘데리헤루’라 불리며 전화로 부르는 형식, 일본에서는 합법이다)을 불러 아무런 이유 없이 살해했다. 두 사람 사이 면식은 없었다. 용의자는 사회 부적응 등으로 울분 풀 대상을 찾다 해당 업소에 전화를 건 것으로 조사됐다. 여자 종업원 외에 운전을 담당한 업소 남성 직원도 흉기에 찔렸다.

 

 

사건이 일어나자 일본 언론사 앱 등은 내용을 속보로 전했다. 처음에는 사건 개요만 전해지다가, 점차 구체적인 정황과 피해자 이름, 나이가 보도됐다. 용의자는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마지막까지 개인 정보가 보도되지 않았는데, 가족 취재가 이뤄진 것으로 보아 기자들이 정보 입수는 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처럼 피해자 이름과 나이가 보도되자 인터넷에서 사건, 사고 기사가 뜰 때마다 보도된 개인의 정보를 검색해 올리는 사이트(‘정리 사이트’로 불린다)도 반응하기 시작했다. 피해자의 SNS로 보인다며 그곳에 실린 얼굴과 일상 사진이 여과없이 올라온 것이다.

트위터 등 SNS에서는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피해자의 개인 정보를 그대로 보도하는 게 옳은 일인지 의문시하는 글이 이어졌다. 피해자가 주위에 밝히고 유흥업소에서 일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 오직 경찰 정보만으로 보도하는 게 인권 침해 아니냐는 내용들이었다. 필자 역시 동일한 의구심이 들었다. 선정성과 독자, 시청자 주목 외에 실명을 보도할 필요성이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이처럼 의문이 이어지자 처음에는 실명 보도를 이어가던 언론들도 후속 보도에서는 이름과 나이를 모두 공개하지 않는 방향으로 바뀌어 갔다. 유족 보도도 보이지 않았다. 

최근에는 지역과 행정 관청에 따라선 재해나 피해자가 대량으로 발생한 사건에서도 개인정보와 관련한 법률과 인권 침해 가능성 등을 이유로 피해자 정보를 적극 공개하지 않는 곳도 나타나고 있다. 2019년에 있었던 쿄애니메이션 방화사건(36명 사망)이나 2021년 오사카 병원 방화사건(26명 사망)에서는 일부 피해자를 실명 보도한 데 대한 사회적 반발이 있었다. 이에 대해 올해 3월 일본신문협회는 다음과 같은 논리를 제시한다. 

일본신문협회 홈페이지 갈무리
일본신문협회 홈페이지 갈무리

‘피해를 당한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없는 익명사회에서는 피해자 측으로부터 사건의 교훈을 얻거나 후세 사람들이 검증할 수 없게 된다’, ‘최근 유족이 익명을 희망하는 케이스가 늘어나고 있는 것은 인식하고 있고, 실명으로 보도할지에 대한 판단은 보도하는 측이 책임을 갖고 하고 있다’, ‘이름은 개인이 군중 속에 있는 ‘원 오브 뎀’이 아니라, 유일한 존재라는 증거이기도 하고, 그것을 사회에서 공유한다는 역할이 있다.’

이 같은 논리가 완전히 틀렸다고는 할 수 없으나, 일본 언론이 그동안 보여온 무분별한 실명 보도(특히 방송국)와 그로 인한 폐해는 인터넷 시대에 들어서면서 더 확대되고 있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신문과 방송 보도로 끝나지 않고 인터넷 사이트에 이름과 사진이 거의 영원히 남는다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이른바 '잊혀질 권리' 존중의 관점). 게다가 사건사고와 달리 일본 언론의 정치 보도에서는 한국과 유사하게 익명 취재원이 주로 등장한다. 결국은 언론사들 입맛에 맞게 실명, 익명이 선택되고 있다고도 볼 수 있겠다.

그렇기에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을 공개하자는 주장도 정당성이 없다고는 할 수 없으나, 위화감을 떨칠 수 없다. 주로 의문을 제기하는 주체가 정치 세력이고, 여태까지 존중되어온 피해자 인권과 관련해 다소 거리가 있는 주장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유족이 먼저 문제제기를 하고 언론사나 기자들이 응하는 흐름이었다면 조금은 더 납득이 갔을 것이다. 또한 유족 의견과 관계없이 위패나 영정에 이름과 사진이 없으니 문제라고 하는 지적도 신중히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정부의 소극적 정보 공개는 그것대로 비판받아야 하지만, 사건사고 보도에서 중요한 것은 인권 침해와 2차 가해의 최소화고, 세월호 취재에서 수없이 문제시됐던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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