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법정감염병 환자는 열차 이용금지?

  • 기자명 선정수 기자
  • 기사승인 2022.11.11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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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이나 철도를 이용하다보면 인기 캐릭터 ‘뽀로로’가 등장해 지하철 이용시 금지 행위를 안내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뭐 문화시민이라면 모두다 지키고 있는 기본적인 내용들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선뜻 동의할 수 없는 내용이 있습니다. “법정 감염병자가 종사자 허락없이 타는 행위”라는 대목입니다. 법정감염병에 걸린 사람은 지하철이나 철도 직원의 허락없이 타면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인데요. 과연 사실일까요? 뉴스톱이 팩트체크 했습니다.

출처: 코래일 유튜브
2022년 11월 현재 지하철과 철도에 게시되고 있는 여객열차 금지행위 안내문. 출처: 코레일 유튜브

◈법정감염병이란?

법정감염병은 감염병예방법에서 감염병으로 정하는 질환입니다. 법조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감염병”이란 제1급감염병, 제2급감염병, 제3급감염병, 제4급감염병, 기생충감염병, 세계보건기구 감시대상 감염병, 생물테러감염병, 성매개감염병, 인수(人獸)공통감염병 및 의료관련감염병을 말한다. <감염병예방법 2조>

질환의 심각도, 전파력, 관리 방안 등을 고려해 위험도 중심으로 1~4급으로 감염병을 분류하고 있습니다. 1급 감염병은 생물테러감염병 또는 치명률이 높거나 집단 발생 우려가 커서 발생 또는 유행 즉시 신고하고 음압격리가 필요한 감염병을 말합니다. 에볼라바이러스병, 탄저, 두창 등 감염병 17종이 여기에 속합니다. 2급 감염병은 전파 가능성을 고려해 발생 또는 유행 시 24시간 안에 신고하고 격리가 필요한 감염병입니다. 결핵, 수두, 홍역, 콜레라 등 21종이 해당합니다. 3급 감염병은 발생 또는 유행 시 24시간 안에 신고하고 발생을 계속 감시할 필요가 있는 감염병으로 일본뇌염, B형간염, C형간염 등 26종을 포함합니다. 4급 감염병은 1~3급 감염병 외에 유행 여부를 조사하기 위해 표본감시 활동이 필요한 감염병을 말합니다. 인플루엔자, 매독, 수족구병 등 23종이 해당합니다.

 

◈법정감염병 환자는 지하철 탑승 금지?

그럼 앞서 언급한 87종의 법정감염병에 걸린 환자들은 지하철에 종사자 허락없이 탈 수 없을까요? 사실과 다릅니다. 지하철 및 철도 이용객의 금지행위는 철도안전법 47조에 규정돼 있습니다. 이 조항엔 운전실 등 여객 출입 금지 장소 무단출입, 정당한 사유없이 비상정지 버튼 누르기, 흡연 등 금지행위가 열거됩니다. 법정감염병 환자의 탑승 금지는 ‘그 밖에 공중이나 여객에게 위해를 끼치는 행위로서 국토교통부령으로 정하는 행위’에 해당됩니다.

국토교통부령인 철도안전법 시행규칙을 살펴봅니다.

80(여객열차에서의 금지행위) 법 제47조제1항제7호에서 국토교통부령으로 정하는 행위란 다음 각 호의 행위를 말한다.

 1. 여객에게 위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동식물을 안전조치 없이 여객열차에 동승하거나 휴대하는 행위

 2. 타인에게 전염의 우려가 있는 법정 감염병자가 철도종사자의 허락 없이 여객열차에 타는 행위

 3. 철도종사자의 허락 없이 여객에게 기부를 부탁하거나 물품을 판매배부하거나 연설권유 등을 하여 여객에게 불편을 끼치는 행위

 

◈’타인에게 전염의 우려가 있는’ 법정 감염병 환자에게만 해당

철도안전법 시행규칙은 ‘타인에게 전염의 우려가 있는 법정 감염병자가 철도 종사자의 허락 없이 여객열차에 타는 행위’를 금지합니다. 그럼 법정감염병 환자는 탑승을 금지하는 게 맞는 것 아니냐고 물을 분들이 계실 겁니다. 대답은 ‘아니오’ 입니다.

초점은 ‘타인에게 전염의 우려가 있는’ 입니다. 앞서 예를 들었던 법정감염병 87종을 살펴봅니다. 지하철에 탑승하는 행위 만으로 사람 간 전염이 가능한 질병이 있습니다. 사스, 메르스, 신종인플루엔자 등 호흡기 질환이 대표적입니다.

그러나 법정감염병으로 지정된 질병 중에 사람간 전파가 일어나지 않는 것들도 있습니다. 모기, 진드기 등에 물려서 발생하는 뎅기열, 일본뇌염,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 쯔쯔가무시병 등이 대표적입니다.

에이즈환자의 경우도 지하철에 탑승했다고 해서 다른 승객에게 감염을 전파시키지 않습니다. B형 간염, C형 간염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법정감염병이라고 해서 모두가 사람 간의 전파를 일으키지는 않는다는 걸 말씀드리는 겁니다. 특히 성적 접촉 등 체액을 통해 전파되는 감염병의 경우에는 지하철에 탑승하는 행위가 감염 가능성으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올바른 표기로 감염자 인권을 존중

에이즈예방법 19조의 위헌법률심판이 진행 중입니다. 핵심은 치료를 잘 받아 의학적으로 감염 전파 우려가 없는 감염인의 ‘콘돔 없는 성관계’를 처벌하는 현행법이 감염인의 행동자유권 등을 침해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HIV 전문가인 최재필 서울의료원 감염내과 과장은 "감염인이 치료를 잘 받는다면 '혹시 모를 전파의 가능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의학적으로 '감염 가능성이 없음'이 된다"며 "현 법제는 의과학적 사실에 비춰 정합적이지 않고 HIV 예방정책과 공중보건 지표 개선에 악영향을 준다"고 말했습니다.

열차 내에서의 금지 행위도 마찬가지입니다. 막연히 "‘법정감염병자’는 직원의 허락없이 탑승해서는 안된다"고 안내하면 전염 우려가 없는 법정감염병 환자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출처: 국토교통부 보도자료
2021년 6월 국토부가 제시한 여객열차에서 금지행위. 출처: 국토교통부 보도자료

2021년 6월21일 국토교통부 보도자료(윗 그림 참조)를 살펴보겠습니다. 여기엔 ‘타인에게 전염의 우려가 있는 법정 감염병자가 철도종사자의 허락없이 여객열차에 타는 행위 금지’라고 제대로 안내하고 있습니다.

이후 어떤 경로로 열차내 안내 방송에서 ‘타인에게 전염의 우려가 있는’ 이라는 문구가 삭제됐는지는 불명확합니다. 동영상 제작과정에서 글자수를 줄이기 위해 해당 문구가 삭제됐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타인에게 전염의 우려가 있는' 이라는 문구가 있고 없고에 따라서 철도와 지하철 이용에 제한을 받는 사람이 늘어나고 줄어드는 결과를 낳습니다.

국토부와 코레일, 지하철 운영주체들은 법령에 표기된 정확한 표현을 사용해 ‘전염 우려가 없는’ 감염병 환자들의 인권 침해를 막아야 합니다. '별 것 아닌 것 가지고 생트집 잡네'라고 지나칠 문제가 아니라는 걸 강조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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