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빈곤 포르노'는 사전·논문·언론에 나온 용어다?

  • 기자명 김정은 기자
  • 기사승인 2022.11.18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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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장경태 최고위원이 김건희 여사가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심장질환 아동과 촬영한 사진에 대해 '빈곤 포르노'라고 비판한 것을 두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대통령실은 12일(현지시간) 윤석열 대통령의 동남아시아 순방에 동행한 김건희 여사가 선천성 심장질환을 앓고 있는 아동의 집을 찾아 건강 상태를 살피고 위로하는 사진을 공개했습니다. 장 의원은 14일 최고위원회에서 "김건희 여사의 빈곤 포르노 화보 촬영이 논란이 되고 있다"며 "외교행사 개최국의 공식 요청을 거절한 것도 외교적 결례이고, 의료취약 계층을 방문해 홍보 수단으로 삼은 것은 더욱 실례"라고 지적했습니다. 

장 의원의 발언에 국민의힘 양금희 대변인은 14일 "가난과 고통을 구경거리나 홍보수단으로 삼을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기막힐 따름"이라며 "망언참사이자 정치테러"라고 반박했습니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도 15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어떤 여성에 대해서 그것도 영부인에 대해서 '빈곤 포르노' 화보 촬영이라고 표현한 것 자체가 인격 모욕적이고 반여성적"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국민의힘은 16일 장경태 의원을 윤리특별위원회에 제소했습니다.

대통령실은 12일, 김건희 여사가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선천성 심장질환을 앓고 있는 아동의 집을 찾은 모습을 공개했다. 출처: 대통령실
대통령실은 12일, 김건희 여사가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선천성 심장질환을 앓고 있는 아동의 집을 찾은 모습을 공개했다. 출처: 대통령실

 

여권의 비판이 잇따르자 장경태 의원은 16일 최고위원회에서 "사전에 있는, 논문에 있는, 언론에도 쓰이는 용어인 'Poverty pornography'를 뭐로 번역합니까?라며 재차 반박했습니다. 같은 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도 출연해 "사전에도 나온 용어고요. 논문에도 나온 용어고요. 이미 수차례 언론에서 많이 언급이 됐는데 많은 분들이 그걸 처음 들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우리 국민의힘의 지도부 측에서는"이라고 말했습니다.

'빈곤 포르노'라는 단어는 사전과 논문에 나온 용어고, 언론에서도 많이 언급됐다는 장경태 의원의 발언을 <뉴스톱>이 검증했습니다. 

 

◈ '빈곤 포르노', 사전에 나온다? →사실

먼저 '빈곤 포르노'의 정의를 살펴보기 전에, '포르노'라는 단어의 의미를 정의하겠습니다. '포르노'는 영어 '포르노그래피(Pornography)'의 줄임말로, '성적 행위나 나체를 묘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대표적인 영어단어 사전에 검색해보면, 사전마다 '포르노그래피'에 대한 정의가 조금씩 다릅니다. 캠브리지 단어사전(Cambridge Dictionary)은 성적인 행위나 나체의 사람들을 묘사하는 예술적 가치가 없는 책ㆍ잡지 등을 일컫는다고 정의했습니다. 메리엄-웹스터 사전(Merriam-Webster)도 성적 흥분을 유도하는 행위를 묘사한 것이라고 규정했습니다. 브리태니카(Britannica)옥스퍼드 사전(Oxford Learner's Dictionaries) 등 자주 인용되는 영어 단어사전에도 비슷하게 정의됐습니다. 

그렇다면 장경태 의원이 언급한 '빈곤 포르노'도 사전에 나와 있을까요? 먼저 빈곤 포르노를 의미하는 영어단어는 '포버티 포르노그래피(Poverty pornography)' 혹은 '디벨롭먼트 포르노그래피(Development pornography)' 등으로 표현됩니다. 앞에서 언급한 네개의 사전에 빈곤 포르노를 의미하는 영단어를 검색하니, 결과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구글 검색창에 영단어를 검색하니, 두 단어사전 웹사이트에서 결과물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단어 사전 '유어 딕셔너리(YourDictionary)'에 빈곤 포르노라는 단어가 검색됐다. 출처: 유어 딕셔너리

 

먼저 '유어 딕셔너리(YourDictionary)' 사전에서는 'Poverty-porn'라는 단어가 검색됐습니다. 이 사전은 '동정심을 불러 일으키기 위해 가난한 사람들을 테레비전과 사진 등 미디어에 이용하는 것'이라고 규정했습니다. '맥밀란 사전(macmillan dictionary)'도 'Poverty porn'을 '빈곤의 이면을 다루지 않고, 오락 형태로 가난한 사람들을 다루는 기사와 프로그램'이라고 정의했습니다.

모든 사전에 통일된 형태로 단어가 검색된 것은 아니지만, 장경태 의원의 주장대로 '빈곤 포르노'라는 의미의 영어 단어가 사전에 나오는 것은 사실입니다. 

 

◈ '빈곤 포르노', 논문에 나온다? →사실

이번에는 '빈곤 포르노'라는 단어가 논문에서도 쓰인다는 장경태 의원의 발언을 검증했습니다. 논문을 검색할 수 있는 '구글 스칼라(Google Scholar)'에 'Poverty Pornography'를 검색했더니, 약 8만 개의 논문이 나왔습니다(아래 사진 참고). 

학술검색 사이트 '구글 스칼라'에 빈곤 포르노를 뜻하는 'Poverty Pornography'를 검색했다.

장 의원의 발언은 '사실'이지만, 해당 논문들이 장경태 의원의 주장대로 비판의 의미를 담고 있는지 알고 싶어 세세히 들여다봤습니다. 먼저 장 의원이 16일 최고위원회에서 언급한 논문을 찾아봤습니다. 장경태 의원은 "플르스와 스튜어트는 논문에서 선정적으로 비극과 빈곤을 부각한 글이나 사진, 영상을 통해 효과를 거두는 것을 '빈곤 포르노'라고 정의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플르스(Betty Plewes)'와 '스튜어트(Rieky Stuart)'가 2006년에 발표한 논문을 취합한 책 <Ethics In Action>이 검색됐습니다. 플르스와 스튜어트는 '빈곤 포르노(Pornography of Poverty)'는 '가난한 사람들을 관음증적 목적으로 착취하고, 사람을 무기력하고 수동적인 대상으로 묘사하는 최악의 이미지를 설명하는 단어'라고 정의(아래 사진 참고)했습니다. 

플르스와 스튜어트는 '빈곤 포르노'에 대한 논쟁의 쟁점도 논문에서 짚었습니다. 이들은 1989년 4월 "그림처럼 예쁜(Pretty as a Picture)"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빈곤 포르노'를 지적했다고 밝혔습니다. 

플르스와 스튜어트는 '빈곤 포르노'의 논쟁 역사를 다뤘다. 출처: Ethics In Action

이들이 언급한 기사를 찾아보니, 해당 기사는 영국 잡지 출판사인 '뉴 인터내셔널리스트(New Internationalist)'가 1989년 4월 5일 보도한 이었습니다. 저자는 "웃는 아이든 굶주린 아이든 눈을 크게 뜬 아이는 가장 강력한 기금 모금자"라며, "이미지가 효과적이라도 메시지는 파괴적일 수 있다"고 비판한 미디어 전문가 '패디 쿨터(Paddy Coulter)'의 발언을 인용했습니다.

학계에서 다수 인용된 다른 논문도 살펴봤습니다. '이안 스마일리(Ian Smillie)'의 책 <THE ALMS BAZAAR>은 학자들에 의해 629회 인용됐는데, '빈곤 포르노'의 의미 '굶주린 아기와 감정적인 이미지를 사용해, 죄책감을 느끼는 대중에게 기부를 유도하는 행위'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굶주린 아이들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해마다 반복되는 사진이 현실을 능가하는 공포와 무력의 이미지를 생산한다"고 지적했습니다.

 

◈ '빈곤 포르노', 언론에 나온다? →사실

마지막으로 '빈곤 포르노'가 언론에서도 다뤄졌다는 장경태 의원의 발언을 확인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역시 '사실'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미국 언론들은 '빈곤 포르노'의 위험성을 수차례 지적한 바 있습니다.

미국 뉴스 채널 CNN은 2016년, '빈곤 포르노의 위험(The dangers of poverty porn)'이라는 기사에서 "빈곤 포르노는 많은 이들이 불편함과 죄책감을 느끼게 한다"며 동의 없이 '빈곤 포르노'를 연출한 사례를 설명했습니다. 영국 신문사 '더 가디언(The Guardian)'도 2018년 "자선단체가 고정관념을 근절해야 한다"며, "아무도 자선단체의 광고나 캠페인에서 절망적으로 그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지적했습니다. 

노르웨이의 국제지원펀드(SAIH)는 2013년, '빈곤 포르노'를 비판하기 위해 영상을 제작했습니다. 영상은 자금단체가 빈곤한 이미지를 연출하기 위해 연기하는 아이의 모습을 해학적으로 비판합니다. 영상의 말미에는 "고정관념은 존엄성을 해친다"는 문구가 나오기도 합니다. 

한편 아동을 중심에 둔 국제 구호개발 NGO와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KCOC)는 2014년 '아동권리 보호를 위한 미디어 가이드라인'을 마련했습니다. 가이드라인에는 '빈곤 포르노'라는 단어가 등장하지는 않지만, "미디어 관계자는 아동과 보호자를 무기력한 수혜자가 아니라 삶의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능동적 주체로 묘사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영부인의 행보에 '빈곤 포르노'라고 평가한 장경태 의원의 발언은 여야의 정쟁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일부 언론은 '빈곤 포르노'라는 단어의 정확한 의미와 맥락을 설명하지 않고, 여야의 갈등만을 비추고 있습니다. '빈곤 포르노'라는 단어의 적절성을 따지기 위해서는, 단어의 의미와 예시를 함께 살펴야 합니다.

'빈곤 포르노'라는 단어는 사전과 논문에 나온 용어고, 언론에서도 많이 언급됐다는 장경태 의원의 발언을 '진실'로 판정합니다. 다만 '빈곤 포르노'가 시사용어로서 사전에도 있는 말인 것과는 별개로 이 단어가 이번 사안에서 정치적으로 바람직한 맥락에서 쓰였는지는 뉴스톱이 판단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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