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12월, 한 해의 마지막 달, 겨울, 설국 이야기

  • 기자명 이승윤
  • 기사승인 2022.12.13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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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느덧 12월이다. 거리 곳곳마다 크리스마스를 알리는 캐럴송이 울리고, 며칠 전 서울에는 차갑게 떨어진 기운과 함께 제법 많은 눈도 내렸다. 2022년도 서서히 저물어 가고 있다.

어느 해라고 다사다난하지 않은 해가 있을까. 하지만 올해는 유난히 더 눈길을 끄는 복잡다난한 사건들이 이곳저곳에서 발생하여 매스컴의 1면을 장식하지 않았나 싶다. 여전히 수그러들 줄 모르고 오히려 맹위를 더욱 떨쳤던 코로나 바이러스, 느닷없이 터져버린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한국의 20대 대통령 선거, 미 연준의 연속된 금리 인상, 여소야대의 정국 속에서 하루도 잠잠한 날이 없는 한국 정치권의 다툼들 등……. 한국 축구팀의 월드컵 16강 진출 같은 기쁜 소식도 없지는 않았으나 역시나 전체적으로 바라본다면 2022년은 여러모로 험난하고 어려운 한 해였다고 말해야 옳을 것 같다.

순조롭게 흘러가지 않았던 한 해를 마감하는 시점에서, 이제는 단 며칠이라도 마음의 휴식이 필요한 시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신문에, 티비에, 월급봉투에……. 가수 최성원씨의 서정적인 노래 <제주도 푸른 밤>의 가사 그대로 우리 모두 너무 지쳤지 않는가. 더구나 요즘은 인터넷까지 가세하여 우리의 지친 신경을 더욱 자극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기에 이번 서평만큼은 그 어떤 시의성도 없는, 오직 하나 그저 겨울의 분위기에 참으로 어울리는, 소리 없이 내리는 밤눈처럼 결코 요란스럽지 않으나, 우리의 마음을 한없이 아름답고도 쓸쓸한 시공간 속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소설 한 편 <설국>으로 선택해 보았다.

12월, 한 해의 마지막 달, 어느 때 눈이 내린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겨울, 눈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기에 나름 알맞은 시기가 아닐까.

 

소설 설국은 너무도 유명한 첫 문장으로 시작된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雪國)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기차가 터널을 빠져 나와 도착한 세계는 현실 세계가 아닌, 설국의 저자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꿈꾸었던 아름답고 투명한  미(美)의 세계이다.
소설 [설국]은 너무도 유명한 첫 문장으로 시작된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雪國)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기차가 터널을 빠져 나와 도착한 세계는 현실 세계가 아닌, 소설의 저자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묘사하고 싶어했던 아름답고 몽환적인 미(美)의 세계이다. (이미치 출처: 픽사베이)

2.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은 몹시 유명한 첫 문장으로 시작된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雪國)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그저 실제 지도 상으로 본다면 국경의 긴 터널은 일본 군마현(群馬縣)과 니가타현(新潟県)의 접경의 터널을 의미한다. 하지만 소설 <설국> 의 미(美)적 상징, 미적 비유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국경의 긴 터널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세계와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그려낸 미(美)의 세계 사이의 경계를 나타낸다. 요컨대 터널에 들어서기 전의 세계는 우리들의 현실 세계이고 터널을 빠져나온 이후의 세계는 소설의 저자가 그려낸, 이 세상과는 동떨어진 환상과 같은 세계 곧 설국이 되는 셈이다.

나름 유복한 집안에서 자란 탓에 무위도식하며 일본 전통춤 혹은 직접 보지도 못한 서양 무용에 관심을 지니고 있던 주인공 시마무라(島村)는 게이샤인 고마코(駒子)와 재회하기 위해 설국행 열차를 탄다. 그리고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마자, 비로소 설국의 또 다른 여인인 요코(葉子)를 바라보게 된다. 그녀는 시마무라의 건너편 자리에 앉아서 그녀가 사랑하는 병든 한 남자 유키오를 간호하고 있었다.

사실 문학적인 상징의 관점에서 본다면, 주인공이 만나기 위해 찾아가는 고마코도, 요코도 모두 현실 세계 속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현실 세계의 사람인 시마무라에게 결코 가닿을 수 없는 저편의 존재들 마치 혼(魂)의 존재들과 같다. 그렇기에 시마무라는 터널을 빠져나오기 전, 다시 말해 현실 세계 속에서는 요코와 대면할 수 없었다. 터널을 빠져나와 설국에 이르렀을 때 시마무라의 눈에 비로소 요코가 들어온 것이다.

이 세상이 아닌 설국의 세계에 속하는 요코는 너무나 아름답다. 밤 기차의 실내 공간 속에서 거울이 되어버린 기차 차창에 비치는 요코의 모습을 묘사하는 장면은 그 미적인 표현으로 정평이 나 있다.

“거울 속에는 저녁 풍경이 흘렀다. 비쳐지는 것과 비추는 거울이 마치 영화의 이중노출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등장 인물과 배경은 아무 상관이 없었다. 게다가 인물은 투명한 허무로, 풍경은 땅거미의 어슴푸레한 흐름으로, 이 두 가지가 서로 어우러지면서 이 세상이 아닌 상징의 세계를 그려내고 있었다.”

“바로 그때, 그녀의 얼굴에 등불이 켜졌다. 이 겨울의 영상은 창밖의 등불을 끌 만큼 강하지는 않았다. 등불도 영상을 지우지는 못했다. 그렇게 등불은 그녀의 얼굴을 흘러 지나갔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을 빛으로 환히 밝혀주는 것은 아니었다. 차갑고 먼 불빛이었다. 작은 눈동자 둘레를 확 하고 밝히면서 바로 처녀의 눈과 불빛이 겹쳐진 순간, 그녀의 눈은 저녁 어스름의 물결에 떠 있는 신비스럽고 아름다운 야광충이었다.”

어느덧 목적지 온천 마을에 도착한 시마무라는 여관 안내인의 도움을 받아 도착한 여관에서 고마코와 재회한다. 둘은 서로의 공통 관심사인 일본 전통춤과 음악을 매개로 친해진 사이였다. 처음 만났을 때에는 아직 게이샤 신분이 아니었으나 다시 재회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그녀가 게이샤가 되었음을 시마무라는 알게 된다. 그러나 그녀의 신분이 어떻든 여전히 고마코는 다름이 없다.

“여자의 인상은 믿기 어려울 만큼 깨끗했다. 발가락 뒤 오목한 곳까지 깨끗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고마코의 이미지는 여전히 맑은 얼음 조각처럼 깨끗하다. 그것은 고마코 역시 이 세상의 여자가 아닌, 설국 속의 여자이기 때문이다. 둘은 서로 사랑하지만 가닿을 수 없다. 현실 세계의 남자와 저편 세계의 여자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시마무라도 고마코도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고마코는 그 어쩔 수 없는 간극을 수긍하면서도 끊임없이 앙탈을 부린다.

“그가 묻는 말에는 대답 않고 여자는 양팔을 빗장처럼 지른 채, 그가 요구하는 것 위를 눌렀는데 술 기운으로 힘이 모자랐는지,「뭐야, 이건, 짜증나게, 아, 나른해, 나른해, 이따윈」하고 돌연 자신의 팔꿈치를 덥석 물었다. 깜짝 놀란 그가 떼놓으니, 이빨 자국이 깊게 나 있었다. 그러나 여자는 이제 그의 손바닥에 몸을 맡기고 그대로 낙서를 하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사람의 이름을 쓰겠다며 연극이나 영화배우들의 이름을 이삼십 개 남짓 늘어놓고 나서, 이번에는 시마무라라고만 무수히 적어나갔다.”

“잠시 넋이 나간 듯 조용히 있다가 불쑥 생각나 내지르듯,「당신 비웃고 있죠. 절 비웃는 거죠」「그렇지 않아」「마음속으로 비웃겠죠. 지금 비웃지 않더라도 나중에 꼭 비웃을 거에요.」하고 여자는 푹 엎드려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그만 돌아가세요」「실은 내일 돌아갈까 생각중이야」「어머, 어째서 돌아가려는 거죠?」하고 고마코는 눈이 번쩍 뜨인 듯 얼굴을 들었다. 「내가 계속 있어봤자 당신을 어떻게 해줄 수도 없잖아」멍하니 시마무라를 쳐다보고 있다가 갑자기 격한 어조로,「그게 틀렸어요. 당신은 그게 틀렸다고요」하고 애타는 표정으로 일어나 느닷없이 시마무라의 목에 매달려 몸무림치다가, (중략) 그리고 나선 따스하게 젖은 눈을 떠,「내일은 정말로 돌아가세요」하고 나직이 말한 뒤, 머리카락을 주었다.”

그런 허무한 관계의 두 사람 사이에 묘하게도 끼어 들어오는 존재가 바로 시마무라가 기차 안에서 보았던 요코이다. 고마코는 그녀의 샤미센(일본 전통의 현악기) 스승의 집에 함께 살고 있었는데, 샤미센 스승에겐 불치의 병에 걸린 아들이 있었다. 그 남자가 시마무라가 기차 안에서 보았던, 요코가 돌보고 있던 유키오였다. 그런데 유키오가 도쿄에서 요양하고 있었을 때 그 병원비를 댄 존재가 뜻밖에도 고마코였다. 고마코와 유키오는 소꼽친구였다. 그러나 고마코는 자신과 샤미센 스승의 아들 유키오 사이에 아무런 일도 없었다고 말한다.

시마무라는 기묘하게 얽힌 두 여인과 한 병든 남자 사이의 삼각관계에 당혹하지만 정작 고마코는 시마무라에게는 그 어떤 내색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시마무라에게 유키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매우 꺼릴 뿐이다. 시마무라가 두 번째로 설국을 떠나며 배웅나온 고마코와 역에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을 때 요코가 황망한 표정을 하고 달려온다. 유키오가 죽음에 임박했다는 소식을 알리기 위함이었다. 요코는 고마코에게 유키오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당신을 찾고 있다고 말하지만 고마코는 끝끝내 요코를 따라가지 않는다.

두 번째 작별이 있은 후, 시마무라는 단풍이 물든 가을이 되어 다시 고마코가 있는 설국을 찾는다. 시마무라가 고마코에게 유키오에 대해 물었을 때 과연 유키오는 죽어 있었다. 유키오의 어머니인 춤선생 역시 세상을 떠난 후였다. 요코는 죽은 유키오를 위한 성묘만 다니고 있다고 고마코는 말한다.

시마무라와 고마코가 함께 유키오의 무덤을 방문하였을 때, 그곳은 주위에 하얀 메밀꽃이 피어 있는, 선로 주변의 허름한 묘지였다. 묘지 근처에서 둘은 요코와 마주친다. 요코는 고마코의 말마따나 묘지 주위를 늘 배회하고 있는 것이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요코와 고마코는 서로 미묘하게 차가운 분위기를 드러낸다.

“요코는 기차를 배웅하며,

「동생이 타고 있으니 역으로 나가볼까」

「하지만 기차는 역에서 기다려주지 않을걸」하고 고마코가 웃었다. 「그러네」 「난, 유키오씨의 성묘는 안할 거야」요코는 끄덕이고 무덤 앞에 쭈그리고 앉아 두 손을 모았다. 고마코는 우두커니 서 있기만 했다.”

시마무라가 설국의 온천장에 머무는 사이, 이전과 마찬가지로 고마코는 수도 없이 시마무라가 머물고 있는 객실로 찾아온다. 손님을 접대하는 게이샤의 신분이기에, 거의 언제나 술에 취한 상태이다. 고마코는 시마무라의 품에 안겼다가 밀쳐냈다가, 웃었다, 울었다 하는 불안한 모습을 반복한다. 시마무라는 그런 고마코의 모습을 무력한 심정으로 바라본다. 마치 밤의 차창 표면에 요염하도록 아름답게 그려졌던 요코의 모습을 우두커니 바라보듯이……. 그 바라봄 속에서 시마무라는 이곳 설국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고마코가 간절히 다가오면 올수록 시마무라는 자신이 과연 살아 있거나 한 건가 하는 가책이 깊어졌다. 이를테면 자신의 쓸쓸함을 지켜보며 그저 가만히 멈춰 서 있는 것뿐이었다. 고마코가 자신에게 빠져드는 것이 시마무라는 이해가 안 되었다. 고마코의 전부가 시마무라에게 전해져 오는데도 불구하고, 고마코에게는 시마무라의 그 무엇도 전해지는 것이 없어 보였다. 시마무라는 공허한 벽에 부딪는 메아리와도 같은 고마코의 소리를, 자신의 가슴 밑바닥에 눈이 내려 쌓이듯 듣고 있었다. 이러한 시마무라의 자기 본위의 행동이 언제까지나 계속될 수는 없었다.”

이윽고 단풍 끝자락 첫눈이 내리고 얼마 후 마침내 시마무라가 애써 뒤로 미루어왔으나 결국은 피할 수 없는 파국의 시간이 찾아온다. 시마무라가 온천장 부근의 여행지에 잠시 다녀온 후 고마코와 만나 저녁 산책을 하고 있을 때 마을 사람들을 위한 영화 상영을 하고 있던 고치 창고에서 불이 났다는 소식이 전해 온다. 영화 시네마 천국의 화재 장면처럼, 영사기에서 불이 난 것이었다. 두 사람이 고치 창고를 향해 달려갈 때 문득 올려다 본 차가운 밤하늘에는 하얀 은하수가 떠 있었다.

“은하수는 밤의 대지를 알몸으로 싸안으려는 양, 바로 지척에 내려와 있었다. 두렵도록 요염하다. 시마무라는 자신의 작은 그림자가 지상에서 거꾸로 은하수에 비춰지는 느낌이었다. 은하수에 가득한 별 하나하나가 뚜렷이 보일 뿐 아니라, 군데군데 광운(光雲)의 은가루조차 알알이 눈에 띌 만큼 청명한 하늘이었다. 끝을 알 수 없는 은하수의 깊이가 시선을 빨아들였다.”

두 사람이 이윽고 고치 창고에 도착했을 때, 그 아름다운 은하수가 끝간 데 없이 뻗어 있는 밤하늘 아래, 고치 창고가 불에 타고 있었고, 그리고 창고 2층에 요코가 서 있었다. 그녀는 불길을 못 이겨 창고 바닥 아래로 떨어진다. 고마코는 바닥에 떨어진 요코를 안으려 몸부림친다.

“마을 사람들이 저마다 소리를 지르며 우르르 달려나와, 두 사람을 에워쌌다. 「비켜요, 비켜주세요」그는 고마코의 외침을 들었다.「이애가 미쳐요. 미쳐요」 정신없이 울부짖는 고마코에게 다가가다가, 시마무라는 고마코로부터 요코를 받아 안으려는 사내들에 떼밀려 휘청거렸다. 발에 힘을 주며 올려다본 순간, 쏴아 하고 은하수가 시마무라 안으로 흘러드는 듯했다.”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옛 모습을 간직한 일본 유명 전통 마을 시라카와고((白川郷). 비록 [설국]의 본래 무대는 아니지만 우리는 이곳에서도 1930년대의 설국의 분위기를 떠올릴 수 있을 듯하다.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3. 고치 창고에서 떨어진 요코가 과연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지 못한 채 소설은 그렇게 마무리된다. 그러나 사실 요코의 죽음 여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요쿄의 죽음 여부와 상관없이 소설의 결말이 해피엔딩이 될 수는 없다. 그 이유는 물론 앞서 기술한 바처럼, 이 세상의 인간과 이 세상 밖의 인간과의 인연이 아름답게 맺어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저자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1930년대 연작 형태의 단편들을 모아서 소설 <설국>을 완성한다. 1930년대는 바로 중일전쟁이 발발한 시기였다. 그리고 곧 인류는 2차 세계대전의 광풍에 휩싸이게 될 터였다. 그 소용돌이의 한복판, 저자는 눈이 많이 내리는 고장 에치코 유자와 온천지대의 여관에서 이 아름다운 소설을 쓴다. 저자는 이 현실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공간과 그 공간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써 내려간 것이다. 실제로 소설 그 어디에도 전쟁의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먼 메아리 같은 흐릿한 징조조차 없다. 물론 설국의 공간에 아름다움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애조(哀調)의 흐름은 눈에 보이지 않은 투명한 공기처럼 설국의 공간을 휘감고 흐른다. 그리고 무엇보다 설국의 공간 속을 가득 감싸고 있는 것은 하얀빛으로 상징되는 죽음의 정조(情操)이다.

설국이라는 제목에서 나타나듯이 소설의 전체 이미지를 상징하는 눈 그 자체가 우선 죽음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눈의 색깔인 하얀 빛이 무엇보다 죽음을 상징하는 것이려니와, 눈은 결국 봄을 맞아 사라지게 되어 있다는 그 물질적 특성에서 역시 죽음의 정조를 피할 수 없다. 뿐만 아니다. 유키오의 무덤가에 피어 있는 메밀꽃도, 시마무라가 머물고 있는 여관방에서 죽어가는 나방들도,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밤하늘을 가로질러 흐르는 은하수 역시 모두 하얀빛이다. 그 모두 죽음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더구나 설국 속에 살아가는 주인공들, 고마코, 요코, 유키오, 춤선생 모두 죽거나 혹은 죽음의 공간(묘지)을 배회하며 살아가고 있다. 오직 한 사람 시마무라 만이 그 죽음을 한 발자국 비켜서 있다. 그는 우리 세상의 사람이지, 설국 속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설국>을 통해 드러나는 작가의 사상은 어둡고 염세적인 듯 보인다. 이 세상 일체의 아름다운 것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는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우리의 손끝이 가닿지 않는 저편 세상에 머물고 있을 뿐인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손끝이 가닿을 때 그 아름다운 것들은 늦겨울 아침의 잔설처럼 녹아 사라진다. 저자가 생전 일본을 대표한 작가로서 노벨문학상까지 수상하며 온갖 영예 속에 살았으나 결국 74세의 나이에 자살이라는 방식으로 삶을 마감한 이유에는 이와 같이 무겁고 슬픈 세계관이 영향을 끼쳤음이 틀림없다.

 

소설 속의 눈(雪)은 인간 세계에서는 도저히 가닿을 수 없는 이 세상 저편의 아름다움 그리고 끝끝내 돌이킬 수 없는 죽음 그 두 가지 의미를 모두 나타내고 있다.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소설 [설국] 속의 눈(雪)은 인간 세계에서는 도저히 가닿을 수 없는 이 세상 저편의 아름다움 그리고 끝끝내 돌이킬 수 없는 죽음 그 두 가지 의미를 모두 상징하고 있다.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4. TV, 인터넷, 영화, 유튜브, 게임 등 온갖 다채롭고 화려한 영상과 스토리들이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는 현대 세상에서 감각적인 느낌도, 기승전결이 분명한 스토리도 없는, 어찌 보면 한없이 쓸쓸하고 투명하게만 보이는 <설국>의 이야기가 과연 흡입력을 줄 수 있을까, 의문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설국> 속에는 인간의 근원적인 본성의 한 일부분을 흔드는 그 어떤 요소가 있다. 그것은 아마도 그리움이 아닐까. 우리는 늘 무엇인가를 그리워하지 않는가. 그 그리움은 대개 우리가 기어이 다시는 손에 쥘 수 없는 것들과 연관이 있다. 이를테면, 생애 첫 미팅을 앞두고 거울 앞에 섰을 때 느꼈던 설렘이거나, 비가 그친 후 무심코 창밖을 내다 보았을 때 맑게 갠 하늘에 그려진 무지개의 빛깔이거나 혹은 느닷없이 찾아와 주었던, 지금은 먼 곳에 사는 옛 친구의 환한 웃음 같은 것들……. 어쩌면 양털처럼 보드랍고 새하얀 첫눈이 세상 가득 덮여 있었던 어느 겨울 날 아침이 될 수도 있다.

백 오십여 쪽 가량의 그다지 길지 않은 한 권의 소설이 그 그리움의 공간으로 당신을 이끌어 갈 수 있다면……. 우리는 굳이 설국에 가닿기 위해 아득히 먼 고장으로 향하는 기차에 오를 필요는 없는 것이다. 당신은 그저 가만히 눈을 감고 그 그리움의 느낌 속으로 오롯이 빠져들면 족하다. 실로 그뿐일 것이다.


<설국>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 유숙자 옮김

/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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