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케어' 손보는 윤석열 정부...'포퓰리즘 폐기' vs '의료공공성 후퇴'

  • 기자명 김정은 기자
  • 기사승인 2022.12.15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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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은 13일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문재인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인 '문재인 케어'를 사실상 폐기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5년간 보장성 강화에 20조 원을 넘게 쏟아부었지만, 정부가 의료 남용과 건강보험 무임승차를 방치하면서 대다수 국민에게 그 부담이 전가됐다"며 "건보 급여와 자격 기준을 강화하고 건보 낭비와 누수를 방지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8일 <건강보험 지속가능성 제고 및 필수의료 지원 대책(안)>에 대한 공청회를 개최한 것에 이어, '문재인 케어' 폐기 수순에 속도를 낸 것입니다. 

더불어민주당 김성환 정책위원회 의장은 13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의료복지 정책의 후퇴는 민간보험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게 될 것이고, 의료의 공공성을 파괴해 의료 민영화를 부추길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뉴스톱>이 '문재인 케어'를 둘러싼 논란을 정리했습니다.

 

◈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범위는 다르지만 박근혜ㆍ문재인 정부 모두 시도

이른바 '문재인 케어'라고 불리는 건강보험(건보) 보장 강화 정책의 핵심은 국가가 대부분의 의료비에 건강보험을 적용해, 환자본인의 부담 비중을 낮추는 것입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집권 직후인 2017년 7월 <국정운영 5개년 계획 및 100대 국정과제>를 발표하며, '건강보험 보장 강화로 실질적 의료비 부담 경감'을 약속했습니다. 당해 8월에는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서울성모병원을 찾아 직접 '건강보험 보장 강화 정책'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문 전 대통령은 미용과 성형을 제외한 의료비에 건강보험을 적용해, 3800여개의 비급여 진료 항목을 폐기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지난 2017년 9월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을 방문해, 건강보험 보장 강화정책을 발표했다. (KBS 방송영상 갈무리)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지난 2017년 9월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을 방문해, 건강보험 보장 강화정책을 발표했다. (KBS 방송영상 갈무리)

특히 그동안 환자 본인의 부담수준이 크다고 알려진 3대 비급여(선택진료비ㆍ상급병실료ㆍ간병비) 문제를 해결하고, MRI(자기공명영상) 검사의 단계적 비급여 해소 등 다양한 제도를 시행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2022년까지 건강보험 보장률 70% 달성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건강보험 보장성을 높이는 시도는 박근혜 정부에서도 이뤄졌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제18대 대통령선거에서 '4대 중증질환 100% 국가책임'을 공약(아래 사진 참고)으로 내걸었습니다. 암ㆍ심장질환ㆍ뇌혈관질환ㆍ희귀난치성질환과 같이 고액의 진료비가 발생하는 중증질환을 중심으로 의료비 전액을 보장하겠다는 것이 골자였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선별적 급여화를 내세우자,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제18대 대선 토론에서 "심장질환은 국가가 책임지고 간 질환은 책임지지 않는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제18대 대통령 선거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새누리당 후보)은 '4대 중증질환 진료비 전액 국가부담'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사진=박근혜 후보 공약집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가 실시한 급여화 진료 항목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모두 건강보험 보장성을 높이려고 했다는 점에서 유사한 부분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두 정부는 보장성을 강화하는 이유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에 한참 못 미치는 우리나라의 건보 보장률을 제시했기 때문입니다. 

보건복지부가 작년에 발간한 <OECD 보건통계(Health Statistics) 2021 요약본>에 따르면, 국민이 보건의료 재화와 서비스를 구매하는 데 지출한 총 비용인 '경상의료비' 중에서 정부ㆍ의무가입제도가 차지하는 비중은 OECD 평균보다 훨씬 낮습니다.(아래 사진 참고)

 

http://repository.kihasa.re.kr/bitstream/201002/36663/6/2020.11.No.289.06.pdf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작년 9월 발간한 OECD 보건통계 요약본. 우리나라는 '건강보험 보장률'을 건보 보장성 강화 정책을 평가할 때 사용하지만, 의료정책 연구진들은 각국의 보장률을 정확하게 비교하기 위해 '경상의료비 중 정부ㆍ의무가입제도 비중' 통계를 활용한다. 사진=보건복지부 자료

보건복지부는 요약본을 발표하면서 "우리나라는 2000년대 중반 이후 계속적으로 보장성을 강화해왔으나, 정부ㆍ의무가입제도 비중이 아직 OECD 평균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두 정부 모두 환자 본인이 많은 금액을 부담하고 있는 건강보험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밝혀, "'문재인 케어'는 박근혜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을 확대ㆍ계승한 것"이라는 분석이 주를 이루기도 했습니다.

 

◈ 문재인 케어, "풍선효과 관리 못해 목표 보장률 달성 어려워"

문 정부는 작년 8월 박근혜 정부의 정책에 '보편성'을 더한 '문재인 케어'의 추진 4년 성과를 제시했습니다. 당시 보건복지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은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약 3700만 명의 국민이 9조 2000억 원의 의료비 경감 혜택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2019년을 기준으로 상급종합병원에서의 건강보험 보장률 69.5%, 종합병원 보장률 66.7%를 달성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 당시 내세웠던 목표 보장률에는 '현저히 뒤처진 수치'라는 비판이 나옵니다. 국민건강보험이 작년 말에 발간한 <건강보험환자 진료비 실태조사 통계정보보고서>에 의하면, 2020년 건강보험 보장률은 65.3%로 2018년 대비 1.5% 포인트 상승(아래 사진 참고)했습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조사를 시작한 2004년(61.3%) 이래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지만, 약속한 '2022년 보장률 70% 달성'은 어렵다는 관측이 제기됐습니다. 

김윤 서울대학교 의료관리학 교수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보장성을 강화하려면 보장 범위를 넓히는 것과 함께 불필요한 비급여 진료를 억제하기 위한 노력과 1차 의료기관 진료 확대 등이 필요한데 이런 노력이 병행되지 않아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급여 진료항목이 증가하자 병원이 비급여 항목을 추가하거나 기존의 비급여 진료 비용을 올리는 '풍선효과'와 대학병원 쏠림현상을 막지 못했다는 설명입니다.

 

2018년부터 2020년까지의 건강보험 보장률 추이. 건강보험 보장률은 비급여를 포함한 총진료비 중 건강보험에서 부담하는 부담 비율을 의미한다. 2020년 건강보험 보장률은 65.3%를 기록했다. 사진 출처=국민건강보험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도 작년 10월 평가서에서 "문재인 케어 시행 후 4년(18~21년)간 국민들의 의료비와 보험료 부담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상승하고 있다"며 "원칙적으로 비급여 관리를 강조했을 뿐 세부 방안을 마련하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비급여와 과잉진료의 관리 부재가 목표 보장률 달성 실패에 기여했다고 해석한 것입니다.

 

◈ 尹 "외국인 무임승차가 건보 재정 위기 초래해"...외국인 가입자 건보재정 수지는 '흑자' 

윤석열 대통령은 13일 재정 악화 등을 이유로 '문재인 케어' 전면 손질을 예고했습니다. 보건복지부가 8일 마련한 대책안은 '비급여의 급여화'ㆍ'느슨한 외국인 자격기준'ㆍ'도덕적 해이'를 '문재인 케어'의 문제점으로 규정하면서, 건강보험 가입자격을 정비하고 과다 의료이용자 관리를 강화해 문제 해결에 나서겠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윤석열 정부는 '외국인의 무임승차'를 막기 위해 수혜 자격에 제한을 두도록 초안을 설계했습니다. 외국인 피부양자와 장기간 해외 체류 중인 영주권자가 지역가입자로 입국한 경우, 6개월이 경과한 시점부터 건강 보험을 이용할 수 있도록 제도를 수정한다고 선포했습니다. 

 

윤석열 정부(보건복지부)가 8일 발표한 보도자료. 건강보험 지속가능성 제고를 통한 필수의료 지원 강화 과제를 담고 있다. 사진=보건복지부 보도자료

대통령실이 연일 "외국인 무임승차나 자격 도용도 막지 못했다"고 목소리를 내자, "복지 축소를 정당화하기 위해 '외국인 혐오'를 부추긴다"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은 14일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보장성 강화 정책을 공격한 사례는 최초"라며 "외국인은 내국인보다 의료 이용이 적고 보험료는 내국인보다 비싸 건강보험 재정에 흑자를 안기고 있다"고 반박했습니다. 그러면서 "보장성을 강화해도 모자를 판인데 그 반대 방향을 천명한 것"이라고도 지적했습니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의 주장대로 외국인 건강보험 가입자 재정 수지는 흑자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난 8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제출한 '외국인 건강보험 재정수지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전체 외국인이 낸 보험료는 1조5793억원이었습니다. 이 가운데 외국인이 납부한 보험료로 병의원ㆍ약국 등 요양기관에 방문해 보험급여로 받은 전체 금액은 1조668억원이었습니다. 외국인들이 납부한 금액보다 보험료를 덜 받으면서, 공단은 5125억원의 재정수지 흑자를 본 셈(아래 사진 참고)입니다.

 

2018년부터 2021년까지의 외국인 가입자 건강보험재정 수지 현황. 사진=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공단 관계자는 지난 8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전체 외국인 가입자 재정수지는 해마다 흑자로, 전반적으로 건보재정 안정에 이바지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윤석열 정부의 주장과 달리, '외국인 무임승차'가 건강보험 재정 악화의 원인이 될 수 없다는 의견이 제기된 겁니다. 

다만 서정숙 국민의힘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중국인 건보 가입자는 2017~2021년까지 2조5842억원의 보험료를 내고 2조9794억원의 급여 혜택을 받았습니다. 5년간 중국인이 받은 보험료가 낸 보험급여보다 3952억원, 연간 800억원 정도가 많은 셈입니다. 하지만 정부여당이 중국인을 꼭 집어서 건보재정 적자 원인으로 규정하는 것이 혐중정서를 강화하고 한중관계를 악화시켜 국익에 도움이 안된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습니다. 

보건복지부는 '문재인 케어'로 MRI(자기공명영상촬영)와 초음파 검사 등이 과잉 이용된 것이 적자의 원인 중 하나라고 지목했습니다. 하지만 한 해 100조원에 달하는 국민건강보험금 중 중국인 보험금 적자와 MRI 과잉 사용을 바로잡는다고 건보재정 악화문제가 다 해결될 수는 없습니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2023년 건강보험 재정 적자는 1조4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근본적으로 건강보험 적자는 고령화로 인한 의료비 지출, 생산인구감소에 따른 건강보험료 납부 인원 감소, 부정수급자 지속,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입니다. 전세계 최저 출생률을 기록중인 한국의 인구구조를 봤을때 획기적으로 건강보험료를 올리지 않는 이상 적자는 피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문재인 케어'가 놓친 비급여ㆍ과잉진료 관리 부재로 건강보험 보장률 목표치에 달성하지 못했다는 의견에는 시민단체와 윤석열 정부 모두 동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민단체가 제도를 일부 개선하고 전임 정부의 정책을 이어나가야 한다고 주장한 것에 반해, 윤석열 정부는 건보 자격 기준 강화를 시사하며 '문재인 케어' 대수술을 예고했습니다. 정부가 부작용이 발생한 제도를 수정할 수는 있습니다. 다만, 의료정책이 국민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문제의 원인을 정확하게 규명하고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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