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정부와 기업은 한 몸?

  • 기자명 선정수 기자
  • 기사승인 2023.01.03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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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은 2일 경제계 신년인사회에서 “정부와 기업이 한 몸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정권이 바뀌었다는 게 실감이 나는 장면이긴 하지만 왠지 낯설기도 하고, 정부가 왜 기업과 한 몸이 되어야 하는지 의구심도 생깁니다. 왜 대통령은 이런 발언을 했고, 이런 발언이 과연 타당한지 분석해봤습니다.

 

출처: KTV
출처: KTV 유튜브

일부 언론은 7년만에 대통령이 경제계 신년인사회에 참석했다며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가 탄핵 소추 당한 뒤 업무정지 상태에 놓이면서 대통령 참석이 중단됐고, 문재인 전 대통령은 재직 기간 동안 경제계 신년인사회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 윤대통령 "정부와 기업은 한몸이 되어야"

윤 대통령의 이날 발언의 핵심은 ‘정부와 기업이 힘을 모아 위기를 극복하고 성장하자’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수출과 해외 진출 하나하나를 제가 직접 점검하고 챙기겠다”, “낡은 제도와 규제를 혁파하고 세제와 금융으로 투자자원을 강화하겠다”고도 말했습니다. ‘노동개혁’을 거듭 약속하면서 ‘시장의 공정과 효율’, ‘대기업 중견 중소기업 상생’도 언급했습니다. 전문을 녹취해 풀어드립니다.

여러분 반갑습니다. 2023년 희망찬 새해가 밝았습니다. 여러분들 모두 계묘년 새해 건강하시고 복 많이 받으시길 바라겠습니다.

지난해 우리 경제가 복합 위기 속에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여러분들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기에 의미 있는 성과들을 만들어 냈습니다. 사상 최대 수출과 외국인 투자 유치를 달성했고 또 역대 최대의 벤처 투자를 이뤄냈습니다. 고용도 2000년대 이후 최대로 늘었습니다. 지난 한해 여러분들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경제인 여러분께 각별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올해도 세계 경기의 둔화가 본격화되면서 우리 경제 상황이 어려워질 것입니다. 그렇지만 정부와 기업이 함께 힘을 모은다면 이 위기를 성장의 기회로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경제인 여러분 WTO 체제의 약화는 국제사회에서 경제 블록화를 심화시키고 있고 안보통상 기술협력 등이 패키지로 운용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따라서 정부와 기업이 이제 한 몸이 되어야 합니다. 정부는 민간주도 시장 중심의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외교통상 과학기술 분야에 대한 뒷받침이 빈틈없이 이루어지도록 꼼꼼하게 챙기겠습니다. 모든 외교의 중심에 경제를 놓고 수출과 해외 진출 하나하나 제가 직접 점검하고 챙기겠습니다. 낡은 제도와 규제를 혁파하고 세제와 금융으로 투자 지원을 더욱 강화하겠습니다. 노사법치주의 확립을 시작으로 노동개혁도 확실하게 추진하겠습니다.

양질의 일자리는 기업에서 나옵니다. 정부는 시장이 보다 더 공정하고 보다 더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경제활동을 뒷받침하는 든든한 지원군이 되겠습니다. 우리 기업들이 세계의 시장에서 힘차게 경쟁할 수 있도록 정부도 함께 뛰겠습니다.

자랑스러운 경제인 여러분 오늘 신년 행사에는 처음으로 대기업과 중견기업 그리고 중소기업인들이 함께 자리하고 있습니다. 대기업과 중견 중소기업간의 상생을 통해 경쟁력 있는 산업 생태계를 만들어서 우리 경제의 재도약 기회를 만들어 내야 합니다. 97년 아시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또 최근에 코로나 대유행에 따른 경기침체까지 거의 10년마다 세계 경제는 또 우리 경제는 큰 격변기를 겪어 왔습니다. 

이러한 위기 때마다 우리는 국민과 함께 또 여기 계신 경제인 여러분들과 함께 늘 힘을 모아 위기를 극복하고 우리의 성장과 도전을 이어왔습니다 다시 한번 팀코리아의 저력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대한민국의 더 큰 성장을 우리 모두 함께 만들어 갑시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여러분들 모두 건승하시기를 기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3년 경제계 신년인사회 윤석열 대통령 발언 전문 녹취>

분석 대상인 ‘정부-기업 한몸론’은 어떤 맥락에서 나왔을까요? 우선 윤 대통령은 지난해 경제인들의 노고에 감사를 표했습니다. 이어 윤 대통령은 “올해도 세계 경기의 둔화가 본격화되면서 우리 경제 상황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전망하면서도 “정부와 기업이 함께 힘을 모은다면 이 위기를 성장의 기회로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곧이어 “WTO 체제의 약화는 국제사회에서 경제 블록화를 심화시키고 있고 안보통상 기술협력 등이 패키지로 운용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따라서 정부와 기업이 이제 한 몸이 되어야 합니다. 정부는 민간주도 시장 중심의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외교통상 과학기술 분야에 대한 뒷받침이 빈틈없이 이루어지도록 꼼꼼하게 챙기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경제블록화가 심화되고 안보통상과 기술협력이 패키지로 운용되는 게 “정부와 기업이 한 몸이 되어야 하는” 이유로 제시된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수출중심의 경제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기업의 수출경쟁에 정부가 달라붙어 도와주겠다는 의도로 읽힙니다.

앞서 2022년 6월 윤석열 대통령은 성남시 판교 제2테크노밸리에서 열린 '새정부 경제정책방향' 발표회 비공개 토론에서 "정부와 기업은 한몸이다. 같이 얘기 나누고 싶은 분들 계시면 언제든 용산에서 같이 시간을 보내겠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정부-기업 한몸론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 헌법 119조 "국가는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 남용을 방지해야"

윤석열 대통령의 '정부-기업 한몸론'은 취지는 이해하더라도 그 표현 수위가 과도하다는 지적을 안할 수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헌법의 '경제민주화' 조항(아래 참고) 때문입니다.

헌법 제119조 ①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대한민국 헌법>

우리 헌법은 경제분야에서 국가의 책무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 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해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헌법은 정부를 기업의 감시와 통제를 맡는 심판이자 감독관 역할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경제사를 보면 대기업들은 정경유착을 통해 시장지배력을 높이고 이를 기반으로 중소기업 사업분야를 독식하며 대기업-중소기업 공존관계를 파괴해왔습니다. 온갖 비리를 동원해 부를 축적하고 무리한 사업확장을 추진하다가 연쇄부도 위기에 몰리거나 자금압박을 통한 경영난에 처하게 되면 정부의 조세감면이나 구제금융을 요청했습니다. 우리나라 대기업 성장사는 이윤은 사유화하면서도 손실은 사회화시키는 손익귀속의 비대칭성을 통해 이뤄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1987년 헌법은 격론 속에 ‘경제민주화’ 조항을 도입하게 됐습니다.

윤 대통령이 경제계 신년인사회에서 내놓은 발언은 과도하게 기업편향적이라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습니다. 기업인 출신으로 친기업을 표방했던 이명박 대통령도 이렇게 노골적으로 '정부-기업 한몸론'을 주창하지는 않았습니다.

헌법 69조에 규정된 대통령 취임 선서는 이렇습니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헌법 66조②항은 “대통령은 국가의 독립ㆍ영토의 보전ㆍ국가의 계속성과 헌법을 수호할 책무를 진다.”고 정합니다. 

 

◈ 정경유착을 떠올리게 하는 윤대통령 발언

만약 윤 대통령이 '정부와 노동자는 한몸'이라고 했다면 경제신문과 보수언론에서는 대통령 발언의 편향성에 대해 강력하게 지적을 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정부-기업 한몸론에 대해서는 누구도 우려의 목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윤 대통령을 두고 ‘때려잡기 원 툴’이라는 말이 회자됩니다. 그러나 기업 정책에 있어선 ‘때려잡기’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노조를 ‘때려잡아’ 줄테니, 규제를 ‘때려잡아’ 줄테니, 성장을 만들어가자고 말합니다. 그나마 새겨 들을 만한 말은 ‘대기업-중견∙중소기업 상생’인데 ‘어떻게’가 빠졌습니다.

물론 정책을 발표하는 자리가 아니라 경제인들이 모인 ‘신년인사회’ 자리인 것은 분명합니다. 대통령과 그 관계자들은 자리에 어울리는 덕담을 한 것이라고 치부할 수 있을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대기업 오너 및 경영진 또는 그들과 이해관계가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 사람들의 시선에선 대통령의 ‘정부-기업 한몸론’은 위험해 보입니다. 대통령의 말은 신중해야 합니다. 

87년 헌법이 수명을 다했다. 그러니까 현재 시대 상황을 헌법이 반영하지 못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헌법을 바꾸자는 개헌논의를 진행하는 게 타당할 겁니다. 대통령의 발언은 참모진의 부연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로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부-기업 한몸론'이 과거 정경유착의 어두운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걸 넘어 '정경일체'로 진행되는 건 아닐지하는 두려움이 엄습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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