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북한군과 '5.18 광수'는 다른 사람이다

  • 기자명 최민규
  • 기사승인 2019.02.18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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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 논객'으로 불리는 지만원(77)씨는 2월 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5·18 진상규명 대국민공청회'에서 자신의 오래된 주장을 되풀이했다.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에 북한이 개입했다는 이른바 ‘북한군 개입설’이다.

노컷뉴스 보도에 따르면 이날 지씨는 "5·18은 북한특수군 600명이 주도한 게릴라전이었다", "시위대를 조직한 사람도, 지휘한 사람도 한국에는 없다", "5·18 주역들은 북한인과 고정간첩, 적색 내국인으로 구성됐다", "작전의 목적은 전라도를 북한 부속지역으로 전환해 통일의 교두보로 이용하려는 것" 등 발언을 했다. 공청회를 공동 주최했던 이종명 당시 자유한국당 의원은 "5·18에 북한군이 개입됐다는 합리적 사실을 확인해가야 한다"고 했다.

이 의원이 언급한 ‘합리적 사실’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짐작은 된다. 지만원씨는 오래 전부터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촬영된 시민군 얼굴 사진이 북한의 주요 인사와 닮았다는 사실을 개입설의 근거로 들어왔다. 그가 운영하는 웹사이트 ‘시스템 클럽’에는 2017년 5월 14일 자로 <"5.18민주화운동" 지휘한 유일한 영웅은 북한 3성장군 리을설>이라는 제목의 제시물이 올라와 있다. 작성자는 지만원씨 자신으로 돼 있다.

지만원은 북한 인민군 원수 리을설이 여장을 하고 광주에 잠입했다고 주장했다. 출처: 시스템클럽

이 글에서 그는 “600명을 영웅적으로 지휘한 지휘자는 광주에 없다. 오로지 북한 인민군 원수로 2016년에 사망한 리을설만 우뚝 서 있을 뿐이다”라고 주장했다. 주장의 근거는 당시 전남도청 앞에서 찍혔다는 한 장의 사진이다. 시위진압복을 입고 카빈총을 든 시민군 사이에서 한 중년 여성이 서 있다. 그는 이 여성의 사진을 조선인민군 원수를 지냈던 리을설(1921~2015년)의 사진과 비교한 뒤 동일인이라고 단정한다. 그리고 이 여성을 ‘제62 광수’라고 명명했다.

“귀의 모습은 완벽하게 일치한다”
“습관적으로 약간 입을 벌리는 모습과 입술 두께 폭, 입체적 등고선과 등고각 등 모든 세밀한 곳과 면이 완벽하게 일치한다”
“얼굴점이나 기미 사마귀 등 리을설만의 특징적인 일치점들이 한 두 군데가 아니라 여러 군데에서 똑같은 위치에 일치점들이 확인된다”
“특이한 것은 리을설이 짓고 있는 표정이다. 리을설의 이러한 요상한 표정은 전남도청 내의 노파로 위장한 리을설의 표정과 완전하고도 완벽하게 일치한다”

 

얼굴에 대한 세부적인 설명을 시도하고 있지만 ‘완벽하게 일치’라는 결론을 뒷받침하는 수치나 분석 방법은 제시되지 않는다. 결국 ‘내 눈에는 닮은 것처럼 보인다’라는 주관적 믿음만 제시된다. 

영상 이미지를 바탕으로 동일인 여부를 가리는 기술은 이미 보편화돼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Face API는 빅데이터를 이용한 안면 인식 소프트웨어로 일반에 공개돼 있다. 지만원씨가 ‘완전하고도 완벽하게 일치’한다고 주장한 ‘제62 광수’와 리을설의 사진을 Face API에 입력했다. 그 결과 ‘서로 다른 사람의 두 얼굴’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신뢰도는 0.2221에 불과했다. 

<테스트1: 리을설> 결과=신뢰도 0.2221 / 다른 사람

뉴스톱 편집부에서 제공받은 이른바 ‘광수’ 사진 6장을 같은 방법으로 검증했다. 이 가운데 2장은 해상도와 장애물 등 이유로 프로그램이 제대로 인식을 하지 못했다. 4장 가운데 3장은 동일인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왔다.

<테스트2: 김달현> 결과=신뢰도 0.40629 / 다른 사람

 

<테스트3: 리주오> 결과=신뢰도 0.40975 / 다른 사람

 

<테스트4: 송석환> 결과=신뢰도 0.14945 / 다른 사람

 

동일인 판정을 받은 ‘광수’ 사진은 단 한 장이다. 하지만 신뢰도는 0.50261에 불과했다. 통상적인 의미로는 다른 사람일 확률이 50%다.

1980년 광주는 한국 현대사에서 거대한 의미가 있는 사건이다. 이른바 ‘87년 체제’의 성립에도 80년 광주가 끼친 영향은 지대했다. 공화당에서 민정당, 그 후신 격인 정당들은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호남을 고립시킴으로써 정치적 이득을 누렸다. 동시에 자국민을 학살한 정권의 후예라는 비판에 상시 노출됐으며 지역적으로 수도권, 이념적으로 중도층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한 지지 획득 경쟁에서 어느정도 불리하게 작용했다.

그래서 자유한국당 계열 정당은 광주민주화운동 의미 축소에 대한 유혹을 지속적으로 받아왔다. 이명박 정권 때인 2009년 임을위한 행진곡이 정부 주최 기념식에서 제창에서 합창으로 바뀐 건 상징적인 사건이다.

이른바 ‘아스팔트 우파’에서는 보다 노골적인 방식으로 폄훼가 이뤄져왔다. 지만원씨의 주장도 그 연장선에 있다. 하지만 제도정치권에서는 심정적인 지지는 몰라도 지난 자유한국당 의원 주최 공청회 같은 직접적인 연계는 드물었다. 이 점에서 지만원씨를 둘러싼 논란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지지율 하락에 허덕이는 보수 야당이 ‘아스팔트 우파’에 포섭되는 과정으로 해석할 수 있다. 2월 국회 토론회에 앞서 자유한국당은 이미 지만원씨의 5·18광주민주화운동 진상조사특별위원회 조사위원 추천 여부를 두고 내부 논란을 겪었다.

이종명 의원은 2월 12일 자신이 일으킨 논란에 대해 “매우 송구합니다”라고 한 뒤 “북한군 개입 여부 및 북한군 침투 조작 사건에 대한 검증과 다양한 의견 수렴은 국회의원으로서의 기본 임무”라고 강변했다.

하지만 북한군 침투설에 대한 대한민국 행정부와 법원의 판단은 명확하다. 2013년 국방부는 “2007년 7월24일 발표된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 결과 보고서 등을 면밀히 검토했으나 5·18 당시 북한군 특수부대가 개입했다는 내용은 확인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2012년 12월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지만원씨에 대해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죄 판결을 내렸지만 북한군 개입설에 대해서는 허위라고 판단했다.

이미 확립된 행정부와 법원의 판단에 이의를 제기하기 위해서는 충분히 합리적인 근거가 있어야 한다. 지만원씨의 근거는 자신과 지지자들 눈에 닮았다고 주장하는 사진뿐이다. 설령 매우 유사하게 보이는 사진이라도 동일인임을 판단하기 위해선 다른 근거들이 필요하다.

1년 전 평창올림픽 당시 ‘김일성 가면’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김영섭 자유한국당 상근부대변인은 국회 브리핑에서 양복 차림의 젊은 김일성의 사진과 문제의 가면을 비교하며 “누가 봐도 김일성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Face API로 테스트한 결과는 신뢰도 0.40847에 ‘다른 사람’이었다. (물론 페이스 API 자체가 완벽하지 않다. 연구에 따르면 100번 중 21번 꼴로 흑인여성을 정확히 인식하는데 실패했다. 자세한 내용은 위 링크 참조)

김영섭 자유한국당 상근부대변인은 평창올림픽 응원에 쓰인 남성 가면이 김일성이 틀림없다고 주장했다. 페이스 API 검증 결과 다른 사람이었다.

사람의 인지는 왜곡되기 쉽다. 사전에 ‘닮은 사람’이라는 정보가 입력돼 있다면 닮아 보일 수도 있다. 김일성 가면 논란은 객관화되기 어려운 주관적 인상이 정치적 사건으로 비화될 수 있다는 현실을 보여줬다. 그리고 지만원씨와 그를 앞세운 일부 국회의원들은 주관적 인상으로 역사에 대한 해석을 바꾸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안면인식 기술은 프라이버시 침해와 정부의 국민 통제라는 우려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2018년 2월과 올해 2월 여의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우스꽝스러운 논란에 대한 답은 줄 수 있다. 이 기술은 지만원씨의 주장을 지지하지 않는다. 물론 그가 발굴하고 있는 ‘광수’에 대한 전수 조사는 하지 않았다는 전제에서다. 그럴 가치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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