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논란된 문대통령 인도네시아 인사말, 큰 결례 아니다

  • 기자명 김정호
  • 기사승인 2019.03.21 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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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20일) 문재인 대통령의 말레이시아 국빈 방문 당시 인사말 실수와 그로 인한 외교적 결례를 지적하는 기사가 뉴스 포털을 장식했다. 비판의 요지는 문 대통령이 지난 13일에 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총리와 함께 가진 공동기자회견에서 인도네시아 인사말을 했고, 인도네시아와 불편한 관계에 있는 말레이시아에 대한 외교적 결례라는 것이다. 또한 당일 오후에 있었던 할랄 전시회, 저녁에 있었던 동포 간담회에서도 같은 인사말 실수를 했다는 것이다.

이 건에 대해서는 이미 KBS뉴스([팩트체크K] 문 대통령, 말레이 총리에 인니어 인사말..외교 결례?)가 팩트체크를 했다. 여기에 대한 보론으로 같은 방식의 팩트체크를 해보겠다. 필자는 인도네시아에 거주하며, 사업차 말레이시아를 종종 방문한다. 현지 언어와 문화에 대한 기본이해는 갖추고 있는 편이라 경험에 입각한 팩트체크가 되겠다.

한국 언론이 지적한 문 대통령의 실수는 다음과 같다.

1. 말레이시아 총리와의 정상회담 후 가진 공동기자회견에서 인도네시아식 인사 ‘슬라맛 소레 Selamat Sore’를 그것도 ‘슬라맛 소르’라고 영어식으로 발음했다는 점
2. 오후의 할랄 전시회에서는 저녁인사인 ‘슬라맛 말람 Selamat Malam’을 쓰고, 저녁 시간에 있었던 동포 간담회에서는 오후 인사인 ‘슬라맛 쁘땅 Selamat Petang’을 썼다는 점

후자는 사소한 실수로 치부될 수 있지만 전자의 실수는 외교적 문제의 소지가 다분하다니 우선 그 부분부터 짚어보겠다.  

 

두 나라 모두 오후 인사말로 '슬라맛 소레' 사용 

인도네시아어와 말레이시아어의 뿌리는 동일하고 서로 많은 문화를 공유한다. 두 나라 모두 점심 시간과 저녁 시간 사이의 어중간한 오후 시간에 하는 인사말이 있다. 인도네시아어로는 ‘슬라맛 소레 Selamat Sore’라 하고 말레이시아어로는 ‘슬라맛 쁘땅 Selamat Petang’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말레이시아에서 서로 사이가 껄끄러운 인도네시아어로 오후 인사를 하면 큰 결례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말레이시아어 사전에서 ‘sore 오후’를 검색해보면 해당 단어의 뜻이 나오고 ‘슬라맛 소레 

말레이시아 사전에서 sore(오후)를 검색하면 용례로 'Selamat Sore'가 나온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모두 이 말을 사용한다는 의미다.

라는 용례가 나온다(온라인 말레이시아어 사전 참고). 즉, 말레이시아에서도 버젓이 쓰는 인사말이라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인도네시아에서는 ‘슬라맛 소레’를 쓰고 말레이시아에서는 ‘슬라맛 쁘땅’을 많이 쓰는 것 뿐이지 말레이시아에서 ‘슬라맛 소레’라고 인사를 하면 결례라는 것은 억지다.

문 대통령의 또 다른 실수로 오후 인사말 ‘슬라맛 쁘땅’과 저녁 인사말 ‘슬라맛 말람’을 헷갈렸다는 것도 현지 문화를 잘 모르니까 나오는 지적이다. 동남아 특유의 느슨한 시간개념탓이겠지만 현지에서는 시간대를 정확히 구별해서 인사말을 하지 않는다. 이 오후 인사말은 대충 오후 2~5시경에 사용하는데 딱히 이 시간에 해야 한다는 법이 없다. 현지인들과 오후에 미팅을 하다보면 자주 경험하는데 어떤 사람은 낮 12시에 오후 인사를 하기도 하고 오후 5시에 저녁 인사를 하기도 한다. 매사 여유롭고 꼼꼼하게 시간 따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문화인데 인사말을 엄격하게 구분해서 사용할 리가 없다.

이상의 내용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친구들에서 왓츠앱 메신저로 다 확인한 것이다. 갑자기 이런 질문을 왜 하느냐고 묻길래 배경설명을 했더니 다들 피식 웃으며 어이없어했다. 자기들은 전혀 신경 쓰지도, 따지지도 않는 인사말 구분이 왜 그렇게 한국에서 문제가 되고 있냐고 오히려 반문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총리가 3월 13일 공동 기자회견을 앞두고 이야기 하고 있다. 출처: 야후뉴스

말레이시아 언론, 문 대통령 '외교결례' 다룬 곳 없어

그렇다면 말레이시아 언론 또한 한국 언론이 대서특필한 대로 이 건을 ‘외교적 결례’로 보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아니 그 전에 이 건이 이슈가 되었는지 말레이시아 언론을 검색해보았다.

주요 현지 신문(말레이시아어 2개, 영어 2개)의 관련 보도를 검토해보았다. 문제의 ‘외교적 결례’를 지적한 곳은 전혀 없었다.  

Malaysia-Korea Selatan sepakat tingkat kerjasama (Malaysia-South Korea agrees to cooperation level), <UTUSAN>
Malaysia-Korea Selatan sasar kesinambungan Dasar Pandang Ke Timur (Malaysia-South Korea targets the Continuity Policy Look East), <BERITA HARIAN>
Malaysia wants to learn from South Korea, says Dr Mahathir, <NEW STRAITS TIMES>

 

이 기사들이 다루고 있는 것은 양국 간의 FTA 체결, 4차 산업혁명 관련 산업 양국 협력에 대한 M.O.U 체결, 이슬람권 할랄 산업에 진출에 대한 양국 협력뿐이다. 한국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외교적 결례’는 에피소드로도 다뤄지지 않았다.  

문 대통령의 말레이시아 순방 기간에 나온 것보다 더 많은 기사를 한국 언론이 쏟아냈다고 한다. 미디어 다음에서 양국 정상회담과 관련하여 ‘문재인-마하티르’로 검색하니 모두 17건의 기사가 나왔다. 이번 말레이시아 국빈 방문은 외교적 성과가 결코 적지 않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한국 언론이 대대적으로 보도한 외교적 결례가 그런 외교적 성과를 가리고도 남을 만큼 큰 실수였는지, 아니 외교적 결례이기는 했는지 비판적으로 성찰할 필요가 있다.

김정호 팩트체커는 현재 인도네시아에 거주한다. 비즈니스 컨설팅을 하며 미디어를 운영 중이다. 인도네시아 언론에 한국 관련해 정기적으로 글을 기고하는 칼럼니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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