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이 필요한 그녀들의 사랑, 세상과 대화하다

  • 기자명 홍상현
  • 기사승인 2019.03.25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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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무심한 얼굴로 다가오는 삶의 드라마틱한 순간은 2019년 3월 15일 금요일도 예외가 아니었다.

시계의 분침이 저녁 8시 정각을 지나 5분 지점을 가리킬 무렵, 와카사만의 어부들이 고등어를 지고, 고도(ancient city)를 찾아오던 그 길 끝 상점가 이층 건물의 미니시어터에서 <서북서>의 마지막 상영이 종료되었다.

제 아무리 덤덤하게 키보드를 두드려보려 해도 아쉬움에 '평소와 다름없는 주말 저녁' 같은 표현을 쓸 수 없다. 별세 직전 출연하거나 내레이션을 맡은 몇 개의 작품을 저마다 ‘유작’이라 선전하지만, 필자에게는 오다기리 조와 공연한 <도쿄 타워>의 기억이 가장 강렬하게 남아있는 키키 키린이 타계한 지난해 9월 15일, 도쿄 영상문화의 성지인 이미지포럼을 출발점으로, 독립영화의 거장 와카마쓰 코지가 나고야에 열었던 시네마 스콜레, 수십 년 간 관서지방의 예술영화 팬들에게 사랑받아온 오사카 제7예술극장 등을 거치는 대장정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영화제 출품 버전에서 20분 이상을 편집해 개봉하면서 드라마의 집중도가 높아지고, 메시지성 또한 강해졌다는 평을 듣는 <서북서>와 이어진 기억의 낭하 끝에는 <검은 말의 기억>(이란ㆍ터키), <라디오>(인도) 등과 함께 뉴 커런츠 부문에 이 작품을 초청했던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가 있다.

레즈비언 커플, 케이(한영혜)와 아이(야마우치 유카), 어느 날 이들과 조우하는 이란인 유학생 나이마(사헬 로즈)를 주인공으로, 고(故) 김지석 부산국제영화제 수석프로그래머가 ‘이해보다 공감이 더 소중한 이들의 깨지기 쉬운 유리그릇과도 같은 감정 상태를 섬세하게 기록했다’고 호평했던 이 작품은, 도제시스템을 경험한 적 없는 신인감독이 리스크 매니지먼트의 필수조건인 원작(문학작품이나 애니메이션)도 없이, 차별, 편견, 배제, 가치관, 동성애, 이문화, 종교, 전쟁 등 일본 사회의 온갖 금기를 다룬 자작 시나리오로 감행한 폭거였다.

하지만 단언컨대 필자는 결코 ‘논쟁적’이라는 이유로 <서북서>에 주목한 게 아니다. 그저 ‘찬성’ 혹은 ‘반대’로 재단할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뮌헨국제영화제)를 ‘특징적 시각의 미학’(돈 브라운)으로 묘사하는 무디(moody)한 로맨틱 멜로드라마(《버라이어티》)에 매료되었을 따름이다.

나카무라 타쿠로 감독은 피아영화제(PFF)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은 데뷔작과 뮌헨국제영화제 국제독립영화 부문,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 부문에 초청된 <서북서>의 시나리오를 직접 썼다. 그는 일상에서도 시종일관 겸허함이 묻어나는 한편으로, 지극히 정갈하며 아름다운 언어를 쓴다. ⓒ『西北西』

홍상현:

우선 “처음 뵙겠다”가 아니라, “오랜만이다”라고 인사를 드려야겠다. 2015년 6월 막 완성한 <서북서>가 뮌헨국제영화제에 이어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되었다. 하지만 정작 그 뒤 영화가 극장에서 공개되기까지 근 3년의 세월이 걸렸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

나카무라 타쿠로:

예,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웃음)

우선 이 작품은 아무런 뒷받침도 없는 소규모 독립영화다. 부산국제영화제 출품 이후 프로듀서인 시오타 카이헤이를 필두로 한 관계자들이 극장개봉을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좀처럼 기회를 얻지 못해 지금에 이르렀다. 하지만 개인적인 의견을 말씀드리자면, 요즘이어서 오히려 다행이었다고 생각한다. LGBTQ(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에 대한 사회적 관용도ㆍ관심이 날로 확대되어 2019년에 이르러서는 도쿄의 멀티플렉스에서도 LGBTQ 영화(굳이 범주화하면)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서북서>를 발표한 2015년에는 생각할 수 없던 일이다. 배급사인 온리 하츠의 오쿠다 심페이 씨도 만났고. 모든 일이 딱 짜놓은 것처럼 맞아떨어진 거다.

 

홍상현:

이 인터뷰는 지난 가을 개봉한 이래, 불과 며칠 전까지 상영이 이어진 <서북서>라는, 고 김지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가 발굴한 작품을 사람들이 기억해주십사 하는 필자의 바람 외에도, 당신의 한국에 대한 애착이 계기가 되었다.

나카무라 타쿠로:

지금도 부산국제영화제 상영 당일의 모습이 생생하다. 무명 감독의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객 분들께서 극장에 와주셨다. 젊은 관객 분들이 질문도 많이 해주셨고. 너무나 스릴 있는 월드프리미어였고, 한국 관객 분들의 높은 영화 리터러시(literacy)에도 감동했다.

 

홍상현:

‘나카무라 타쿠로’라는 감독 자체도 무척 화제성이 있지 않았나. 배우 출신으로 어느 날 갑자기 독립 장편영화 <TAITO>를 만들어 신인 대상 경쟁영화제(PFF)의 심사위원 특별상을 거머쥐었다. 두 번째 독립 장편영화로 국제영화제에 진출하는데 두 편 모두 시나리오를 직접 썼다. 본인이야 확신이 있었겠지만, 기획단계에서 주변의 우려도 많았을 텐데 이 모든 일들을 어떻게 해낼 수 있었나?

나카무라 타쿠로:

저는 <서북서>의 ‘아이’처럼 몰입도가 높은 타이프라 작품을 만들 것이라는 확신만 가질 뿐, 망설이지 않았다. 또한 이 작품의 공로자는 프로듀서진이기도 하다. 그들이 제가 하고자 하는 작업에 최대한의 이해를 보이며 제작을 강행해주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알고 있다. 기존의 틀에 갇혀있으면 세계를 바꿀 수 없다는 것을.

 

홍상현:

필자가 앞의 질문에서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언급한 데는 이유가 있다. 일본 영화의 경우, 영화를 기획할 때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소설이나 만화 등으로 한번 검증된 원작을 영화화 하는 사례가 많다. 하지만 당신의 경우 시나리오의 주인공이 당신인 데다, 내용도 직접 경험한 이야기다. 평소 일상의 사건을 남다른 감성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은데.

나카무라 타쿠로:

리스크 매니지먼트의 관점에서 보면 <서북서>의 제작은 ‘폭거’라고 밖에 말할 수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걸로 됐지 않나. 저는 제가 살아가는 사회의 범주 안에서 영화를 상상하며 느낀 감정을 영화 속 등장인물에 반영해왔다. 즉, 제 영화와 등장인물은 과거에 제가 보았던 사회이며, 저자신이기도 한 것이다. 여기엔 거짓이 없다. 모두 진실이다. 그렇게 복잡화되어있는 이 세상을 조금이나마 풀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살아간다.

나카무라 타쿠로 감독은 말한다. “저는 제 특별한 체험을 영화로 만들면서 등장인물을 여성으로 스위칭(switching)합니다. 바로 그 시점에 남성인 저는 외부자가 되어 장외로 밀려나지요. 그리고는 세 연기자, 세 사람의 여성이 영화 속에서 춤을 추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게 되는 겁니다.”ⓒ『西北西』

홍상현: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선택하는 제재도 매번 파격적이다. <TAITO>는 직장 내 갑질로 인한 어느 여성의 죽음이었고, <서북서>도 사랑에 대한 이야기지만 그 주축은 케이(한영혜)와 아이라는 동성애 커플의 관계, 여기에 또 한 명의 이란인 여성(사헬 로사)이 더해진다. 이와 유사한 본인의 경험이 모티브였다고 들었다.

나카무라 타쿠로:

<서북서>는 스무 살 무렵의 제 지극히 사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한다. 당시 저는 고등학교 졸업 후 전문학교에 다니며 혼자 살았다.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어하는 저를 보다 못한 친구가 매일 아침 등굣길에 아파트에 찾아와 주었는데, 둘 다 패션을 좋아하다 보니 잘 입지 않는 옷을 그에게 팔거나 혹은 그냥 나눠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내 옷을 입고 나타났고, 그 모습을 본 저는 사랑에 빠졌다. 동시에 스스로를 부끄러워했다.

결국 수치심에 패배해버린 저는 그에게 품었던 아련한 마음을 봉인해버린 채 삶을 이어갔다. 한편, 당시 제게는 교제하던 여성이 있었다. 감정의 기복이 심하고 속박을 강요했지만, 제게 처음으로 사랑을 가르쳐 준 사람이기도 했다. 그러나 저는 그 사랑에 보답하지 못하고, 그 사랑을 바라볼 수 없었다. 왜였을까. 지금도 알 수 없다. 언제부터인가 그 시절 느낀 카오틱(chaotic)한 감정을 영화로 그려내보고 싶어졌다. 이미 제 인생의 특별한 체험이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홍상현:

역시 그런 당신의 고민이 있었던 까닭에 주연을 맡은 세 사람도 배역에 몰입해 훌륭한 연기를 펼칠 수 있었겠지.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던 그들의 반응이 궁금하다.

나카무라 타쿠로:

3인 3색이었다.

우선 한영혜는 그동안 연기해 온 배역 때문이었을까, 자신 안의 나약함을 표현하기를 꺼려하며 작품에서 빠지겠다는 말까지 했었다. 하지만 케이를 연기할 사람이 그녀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힘겹게 설득했다. 사헬은 진심으로 나이마를 연기하고 싶다면서 자신이 느낀 것들을 말해주었다. 그리고 야마우치는 오디션에서 한 장면을 골라 연기했는데, 당시만 해도 촬영 때와 전혀 다른 연기를 보여줘서 저를 실망시켰다. (웃음)

 

홍상현:

<서북서>의 세계로 좀 더 깊숙이 들어가 보자. 영화의 도입부에 분명 도쿄이나, 그보다 무국적적인 현대의 어느 곳처럼 보이는 도시의 풍경이 보인다. 그리고 이른바 ‘외부자’의 공간인 출입국관리국이 등장한다. 이 부분은 영화에 일관된 시선과도 맞물린다는 점에서 무척 의미심장하다. 작가도 외부자의 시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인데, 대단히 진정성이 있다. 평소의 당신의 세계관과도 맞물리는가?

나카무라 타쿠로:

훌륭한 지적을 해주셨다. 저는 제 특별한 체험을 영화로 만들면서 등장인물을 여성으로 스위칭(switching)한다. 바로 그 시점에 남성인 저는 외부자가 되어 장외로 밀려난다. 그리고는 세 연기자, 세 사람의 여성이 영화 속에서 춤을 추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또한 “외부자의 시선”이라는 표현을 듣는 순간 떠오른 게 있는데, 저는 도쿄에 산 지 10년이 넘었음에도 아직 이 도시에 익숙해지지 못한 채 이방인의 감정을 떨치지 못한다. 그런 잠재의식이 영화에 반영되어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영화감독 외에 사진, 설치예술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나카무라 타쿠로 감독의 미의식은 캘리포니아 주립대에서 촬영을 전공하고 국제적으로 활약 중인 <서북서>의 촬영감독, 세키네 야스타카와 만나면서 시너지효과를 보여준다. ⓒ『西北西』

홍상현:

<서북서>라는 영화의 제목이 무엇을 상징하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이 많다.

나카무라 타쿠로:

저는 도쿄에 거주하는 무슬림들이 메카를 향하는 방향인 ‘서북서(west-north-west)’를 신념, 좀 더 쉬운 말로 ‘믿음’으로 정의한다. 아울러 이 작품은 케이의 ‘서북서’를 찾는 여행이자, 믿음을 향한 도전, 그리고 아픔을 상징한다.

 

홍상현:

당신 자신, 영화감독 이외에도 사진과 설치예술 작가로 활동하고 있어서인가, <서북서>도 조형미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나카무라 타쿠로:

저는 창작에 있어서 ‘아름다움’이라는 부분에 다른 작가들보다 집착하는 타입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이 작품의 조형미에는 촬영감독인 세키네 야스타카가 공헌한 바 크다. 특히 종반에서 케이와 나이마가 서로의 심정을 토로하는 롱쇼트는 조명까지 포함해 압권이라 할 수 있다. 프리프로덕션 당시에는 클로즈업까지 포함해 몇 가지 다른 각도에서 촬영을 진행할 예정이었는데, 이 하나의 쇼트가 모든 것을 표현해주는 바람에 클로즈업이 따로 필요 없게 되어버렸다.

 

홍상현:

<서북서>는 일본의 다른 감독들이 다가가기 조심스러워하는 재재를 과감하게 다룬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예컨대, 차별과 배제의 문제나 이문화에 대한 시선, 그리고 영화의 촬영이 이뤄지던 2015년 언저리의 가장 큰 이슈였던 전쟁법(안보법제)의 문제까지. 다만, 이른바 ‘사회파’ 화제들이 개인과 개인의 이야기라는 흐름을 무너뜨리지 않는 연출력에서 균형감이 느껴진다.

나카무라 타쿠로:

저는 사회의 최소단위인 개인을 깊이 있게 묘사함으로써 광대하고 애매한 '사회'와의 접속 또한 가능해진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은 지적하신대로 차별, 편견, 배제, 가치관, 동성애, 이문화, 종교, 전쟁 등을 취급하지만, 결코 그 테마를 최전면(forefront)에 내세우지 않는다. 반드시 케이, 나이마, 아이 세 사람의 필터를 통해 묘사함으로써 밸런스를 유지하도록 디자인되어 있는 까닭이다.

한영혜는 모든 신(scene)에 걸쳐 케이라는 인물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지에 대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지만, 막상 카메라가 돌기 시작하자 모든 아이디어를 다 내려놓고 눈앞의 상대에 집중했다고 한다. 나카무라 타쿠로 감독은 그 과정에서 몇 번이나 ‘연기의 케미스트리’를 목도했다. ⓒ『西北西』

홍상현:

주인공인 한영혜는 <국화와 단두대>처럼 강렬하지만 살짝 다른 컬러의 개성이 넘치는 캐릭터를 보여준다. 그녀와의 작업은 어땠나?

나카무라 타쿠로:

크리에이티브 그 자체였다. 그녀는 모든 신(scene)에 걸쳐 케이라는 인물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지에 대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카메라가 돌기 시작하자 모든 아이디어를 다 내려놓고 눈앞의 상대에 집중하더라. 저는 그 과정에서 몇 번이나 ‘연기의 케미스트리’를 목도했다. 예컨대 나이마에게 상처를 치료받는 신은 시나리오 상으로 “운다”, “오열한다” 같은 지문이 적혀있지 않았다. 한영혜가 케이의 아픔을 표현하기 위해 그 영역까지 들어간 것이다.

 

홍상현:

그밖에 프로덕션의 과정에서 무엇을 요구했나?

나카무라 타쿠로:

이 작품의 설정, 로케이션, 미술, 의상은 의도적으로 리얼리티가 배제되어 있다. 리얼리티를 담보하기 위해 여성 연기자들의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고 판단해서다. 진실의 감정을 뒤섞어 균형을 취할 필요가 있었다. 비록 시나리오의 흐름에서 벗어날지라도 그들 안에서 발생한 진실의 감정을 정성껏 헤아려 나가는 작업과 인내를 제 스스로에게도 요구한 것이다.

스테레오타입의 여성 연기자 이미지를 넘어서는 개성을 가진 ‘아이’역의 야마우치 유카는 <서북서>에 캐스팅되기 전까지 뮤지컬 장르를 중심으로 한 무대연기자로 활약했다. 나카무라 타쿠로 감독은 최근 준비 중인 차기작에서도 그녀를 캐스팅했다. ⓒ『西北西』

홍상현:

<서북서>의 케이와 아이는 정말 오래전부터 만나온 연인 같은 느낌이다. 두 배우의 연기 톤이 무척 다르기도 한데 어떻게 조화를 시킬 수 있었나?

나카무라 타쿠로:

둘은 촬영을 준비하면서 실제로 데이트를 했다. 함께 소품인 페어링을 사러 가거나 노래방에 가고, 같은 호텔에 묵기까지 했다. 제한된 시간 안에 최대한 서로 마음을 열고 ‘관계성’을 구축해 준 것이다. 또한 연기자들 간의 조화와 관련해서 저는 항상 연기 톤이 일정해지도록 노력한다. 예컨대 믿음에 대한 도전이나 아픔이라는 테마가 본격적으로 고개를 쳐드는 <서북서>의 후반부에서도 특히 세 연기자의 연기의 톤과 온도를 조율하는데 힘을 쏟았다.

나이마를 연기한 사헬 로즈의 고향 마을은 이란ㆍ이라크 전쟁이 한창이던 1989년 2월 하순, 이라크군의 공습으로 사라졌다. 13명의 가족들 가운데 살아남은 사람은 집안의 막내딸로 아직 만 네 살도 안 된 나이이던 그녀뿐이었다. <서북서>의 제작진은 이 사실을 그녀가 자서전인 『전장에서 배우로』를 통해 직접 털어놓기 전까지 단 한 마디도 홍보를 위해 언급하지 않았다. ⓒ『西北西』

홍상현:

사헬 로사의 경우, 단지 이란인의 이국적인 외모뿐만이 아니라 실로 발군의 연기력을 보여준다. 캐스팅 단계부터 당신이 그녀의 캐스팅을 강력하게 주장했다고 들었는데.

나카무라 타쿠로:

시나리오를 다 쓰고 나서도 나이마라는 캐릭터를 좀 더 깊이 파고들지 못해 고민했다. 그러다 마침 시나리오 집필과 함께 캐스팅이 진행되고 있어 사헬과 차를 마실 기회가 있었는데 그가 “나이마 역을 꼭 하고 싶지만, 만약 캐스팅이 되지 않더라도 영화가 성공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고 말하더라. 제가 마음속에 그리던 나이마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홍상현:

<서북서>의 미덕은 동성애나 LGBTQ, 이문화 등의 파격적인 주제를 흥미본위의 이미지로 소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정한 범주를 뛰어넘어 좀 더 넓은 의미에서 사랑에 관한 설득력 있는 이야기를 전개하니까. 이 부분과 관련해서 깊이 고민한 흔적이 보이는데.

나카무라 타쿠로:

사랑을 정의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한편으로 사랑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추구(追求)하며, 해석의 단초라도 제시하는 것이 작가의 책무라 생각한다. 바로 이 부분과 관련해서 무척 고민했고, 고통 또한 느꼈다.

저와 세 사람의 여성 연기자들은 <서북서>라는 작품을 통해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되, 명언하는 일을 피했다. 단정 짓지 않고 함께 힘겨운 가시밭길을 해쳐가는 길을 택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모습이 작품에 각인되어 강고한 사랑의 이야기로 승화되었다고 생각한다.

고(故) 김지석 부산국제영화제 수석프로그래머는 <서북서>를 뉴커런츠 부문에 초청하면서 ‘이해보다 공감이 더 소중한 이들의 깨지기 쉬운 유리그릇과도 같은 감정 상태를 섬세하게 기록했다’고 호평했다. ⓒ『西北西』

“4년 전보다 발전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며 부탁한 마지막 메시지에서 나라무라 감독은 특유의, 시인처럼 섬세하고, 소년처럼 수줍은 어조로 말했다.

“저는 사랑이 모든 장애를 초월한다고 믿는 동시에, 사랑으로 진정 모든 장애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자기모순은 카오스를 낳지요. 스무 살 시절의 저는 이 카오스에게 번롱(翻弄)당했지만, 이 작품을 만드는 동안 한영혜, 사헬 로즈, 야마우치 유카 세 사람이 답을 주었습니다. 부디 훌륭한 세 연기자들을 봐주십시오. 한국 관객 여러분께서 어떻게 받아들여 주실지 너무 기대됩니다. 아무쪼록 영화 <서북서>를 ‘체감’하는 날이, 한국 관객 여러분께 찾아오기를 기원합니다.”

최근 야마우치 유카와 함께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신작을 준비하느라 분주하다는 그와 헤어진 지 며칠 뒤, <서북서>의 DVD 발매 소식이 들려왔다. 극장 공개 당시에도 상영관 확대를 위해 배포될 홍보물 크라우드 펀딩까지 진행한 마니아들의 기쁨이 당분간 계속되리라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아무쪼록 ‘부산영화제 자막팀이 보증한 놓치면 후회할 영화’, <서북서>를 기억하는 한국관객들의 기다림도 부디 너무 길어지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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