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생산·소비 방식 전환은 사회정의와 민주주의의 문제"

  • 기자명 이고은 기자
  • 기사승인 2019.03.29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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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전문미디어 <뉴스톱>은 인공지능, 기후변화, 뇌과학, 자율주행 자동차 등 다양한 미래 4차 산업혁명 분야의 현재와 미래를 진단하는 기획 ‘미래 지식을 담다, 미래담론 <미담>’을 연재한다. 각 분야별 최고의 전문가들과 김준일·강양구 뉴스톱 팩트체커의 대담으로 구성된 <미담>은 지식콘텐츠 팟캐스트다. 대담의 풀 버전은 네이버 오디오클립에서 청취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의 탈핵, 탈원전 정책은 환경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관심을 드높이는 계기가 됐다. 원자력 발전이 더 이상 안전한 에너지 공급원이 될 수 없다는 인식이 높아졌지만, 동시에 경제성을 고려하면 아직 한국 사회에 원전이 필요하다고 역설하는 입장이 팽팽하게 맞선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탈원전 정책 기조는 ‘에너지 전환(Energy Transition)’이 우리 시대의 화두로 자리 잡는 데는 영향을 미쳤다.

에너지 전환의 아이디어는 1970년대 ‘오일쇼크’에서 기원한다. 한재각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장은 <뉴스톱>의 기획 <미래 지식을 담다, 미래담론 미담> 2회 ‘한국에서의 에너지 혁명, 에너지전환은 가능한가’에 출연해 “오일쇼크 이후 석유에 의존하는 방식이자 중앙 집중적인 ‘경성 에너지 시스템’이 위험하다는 인식이 나오기 시작했고, 재생에너지를 쓰면서 지역 분산적인 ‘연성 에너지 시스템’의 필요성이 제기됐다”고 지적한다. 한 소장은 한국 최초의 핵발전소 고리 1호기가 준공된 1978년의 담론 역시 대안 에너지를 찾으려는 흐름에서 연결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아이러니하게도 “핵발전이 태양광, 풍력 등과 같은 출발점”에 있던 대안 에너지였다는 것이다.

시대는 변했고, 원자력발전은 더 이상 대안에너지로서 각광받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잇따른 원전 사고를 경험한 인류는 이제 원전이 시한폭탄과도 같은 위험한 에너지원이라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한 소장은 원전 문제를 “사회 정의와 부정의의 문제로 봐야 한다”고 꼬집는다. 그는 “핵발전소 절반은 경상북도에 있고 석탄발전소의 절반은 충청남도에 있다”면서 “누군가는 전기를 생산하고 나르는 과정에서 사회 부정의가 나타난다”고 말했다. 특정 지역에 위험을 떠맡기는 방식은 불공정하다는 것이다. 때문에 한 소장은 “지역에서 생산하고 지역에서 소비하는 방식으로 최대한 가야 한다”면서 지역 분산적인 연성 에너지 시스템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최근 미세먼지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르면서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기조가 도마에 올랐다. 탈원전 정책 때문에 원전 대신 석탄화력발전을 늘렸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한 소장은 미세먼지 저감을 위해 화석 연료 사용을 줄여야 하는 이유를 다소 다른 각도에서 찾는다. 그는 “미세먼지의 이면에는 기후변화의 문제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요즘 미세먼지가 많아진, 심각해진 이유는 더 많이 배출해서이기도 하지만 (기후변화로 인한) 대기정체 때문이기도 합니다. 중국으로부터 한반도를 거쳐 빠져나가는 바람이 제때 안 불어서 서울 지역 내에 공기가 머물러있는 시간들이 과거에 비해 많아진다는 겁니다. 기후 변화 문제와 미세먼지 문제는 별개의 문제가 아니라 같은 문제입니다.”

기후변화는 사회 정의의 문제와도 연결된다. 기후변화하면 많은 사람들이 떠오르는 이미지가 ‘북극곰’을 떠올리지만, 한 소장은 기후변화를 실상의 문제로 맞닥뜨리고 있는 ‘기후난민’을 떠올리자고 제안한다. 기후변화로 해수면이 상승해 침수된 남태평양 투발루섬에는 더 이상 고향 땅에서 살 수 없는 기후난민들이 등장하고 있다. 온실가스를 발생시키는 주범인 잘 사는 나라는 화폐로 비용을 지불할 뿐이지만, 실질적인 피해는 못 사는 나라의 사람들이 고스란히 당하고 있다.

에너지 전환은 기후변화와 미세먼지 문제 등을 총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해법이다. 그런데 한 소장이 말하는 에너지 전환이란 에너지원의 변화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핵심은 “에너지원을 바꾸는 것 이전에 에너지 수요를 줄이는 것”이다. 그는 “조명 대신 자연채광을 이용하면 전기를 쓰지 않고도 조명이라는 에너지 서비스를 얻는다”면서 “에너지를 쓰는 방식, 효율성, 전략 등의 변화를 통해 에너지 수요를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결국 사회 전반의 에너지 소비 방식과 리듬, 사회 구조를 바꾸는 문제로 연결된다.

한 소장은 “신규로 지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던 원전이나 석탄발전소의 필요성을 없애는 것, 그리고 기존의 원전이나 석탄발전소를 전환해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원전, 화석연료를 줄이는 속도만큼 재생에너지가 빨리 올라가지 못하는 현실적인 이유가 있다”면서 “상대적으로 깨끗하고 안전한 천연가스를 이용하는 ‘브릿지 에너지’를 사용하는 방식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장애물도 있다. 에너지 전환이 사회 전반의 구조를 바꾸는 문제인만큼 분권과 자치 문제로도 연결이 된다. 한 소장은 “에너지 전환은 민주주의의 문제와 긴밀하게 상생된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에너지 전환의 문제에 지금까지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권한이나 기회가 없었다. 결국 시민들의 역량과 변화에 대한 의지가 중요한데, 선례나 다양한 실험들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시민들의 선의에만 기댈 수 없는 부분도 있다. 사회구성원들의 자발적인 동인을 자극하는 일도 중요한 변화의 힘으로 작용할 수 있다. 독일의 에너지 전환을 성공케 한 요인 중 하나로 ‘발전차액지원제도(FIT, Feed-in-Tariff)’가 꼽힌다. 화석에너지 발전원에서 신재생 에너지원으로 전환해 온실가스를 감축하고자 하는 시도로 설계된 정책인데, 높은 발전비용의 초과분을 정부가 지원해주는 방식이다. 한 소장은 “독일에서는 자동차 산업보다 재생에너지 산업에 고용된 인원이 더 많다”면서 “에너지 전환도 되면서 개인의 경제적 이익도 얻을 수 있는 변화가 에너지 전환을 밀어붙이는 가장 강력한 힘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 뉴스톱 기획 ‘미래를 담다’, 네이버 오디오 클립 채널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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