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어느 늙은 사자의 깨달음이 불러온 나비효과

  • 기자명 박재용
  • 기사승인 2019.04.02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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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오후 사바나의 이글거리는 햇빛을 피해 잡목림의 작은 그늘에서 늘어지게 자고 있던 늙은 수사자는 불현 듯 깨달음을 얻었다.

그는 무리의 모든 사자를 불러 놓고 일장 연설을 한다.

“존경하는 사자들이여. 우리는 이 초원의 제왕이다. 우리 무리를 가리켜 사람들은 프라이드pride(사자의 무리를 지칭하는 영어 단어)라고 한다. 우리는 존재 자체가 자긍심인 것이다. 태어나길 제왕으로 태어난 우리, 하지만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2시간 정도 사냥을 하고 나면 그 뿐, 하루 내내 뒹굴거리고 자고 장난만 치고 있지 않은가? (수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짝짓기도 하는데.. 그러나 사자는 애써 그 목소리를 무시했다.) 제왕의 기상을 타고 났으면, 당연히 그에 걸 맞는 의무 또한 타고 난 것이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부로 사자 무리의 ‘유신’을 시작하겠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는 포효를 한 번 내지르는 것으로 입들을 막고, 자신의 주장을 관철했다.

그 날 이후, 이들 무리의 삶이 완전히 바뀌었다. 늙은 사자는 스스로를 총통으로 임명하고, 무리 중 가장 강한 사자 두 마리를 우두머리로 하여 사냥집단을 형성했다. 처음에는 하루 네 시간의 사냥을 요구했다. 그리고 짝짓기를 의무화하여 계속 새끼를 낳게 했다. 새끼가 늘어나자 네 시간의 사냥으로는 먹이가 부족했다. 총통은 사자들을 독려하여 사냥을 6시간으로 늘렸다. 그리고 모든 암사자가 임신하여 더 이상 짝짓기를 할 수 없자 다른 무리의 암사자를 납치해와 계속 새끼를 낳게 한다. 새끼는 더 늘어나고, 무리가 늘어나자 먹이가 다시 부족해졌다.

총통은 다시 사냥시간을 8시간으로 늘린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사자무리가 초원의 사냥감을 싹쓸이해서 사냥할 초식동물들이 모조리 사라져버린 것이다.

총통은 다시 무리를 모았다. 처음 열 댓 마리에 불과했던 사자들은 이제 마흔 마리가 넘어서고 있었다.

“사자제국의 기치를 내건지 2년, 우리는 눈부신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우리의 성과를 시기하는 악의 무리에 의해 새로운 위기가 닥쳐왔다. 치타와 하이에나가 우리의 소중한 먹이를 강탈하고 있다. 어찌할 것인가? 겁먹어 뒤로 물러날 것인가 아니면 백척간두 진일보의 각오로 나설 것인가! 나는 자랑스러운 제군들에게 감히 요구한다. 적들에게 우리의 위엄을 보이자. 저들을 초원에서 몰아내자!”

총통은 사자 무리 중 젊고 강한 이들을 모아 전투 집단을 만들었다. 그들은 하루 종일 전투 연습을 하고, 치타와 하이에나 무리와 싸우는 일에만 전념을 했다. 하이에나와 치타와의 전투는 격렬했으나 사자들의 승리로 끝났다. 그러나 전투사자 무리는 다시 사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이들은 다시 다른 사자 무리와의 전투에 투입되었다. 다른 무리의 수사자는 죽이고 암사자는 납치해서 데려왔다. 전투로 빠진 인원 때문에 먹이를 구할 사자가 줄어들자 나머지 사자들이 사냥하는 시간이 10시간으로 늘었다.

사자들 사이에 불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아니 하루 8시간 사냥으로도 힘든데 10시간이라니 이거 너무한 거 아냐” “그러게 말야, 거기다 사냥이 끝나면 또 짝짓기도 해야 해. 아니 새끼 낳는데 무슨 신성한 의무라도 되는 양 몰아치니 죽겠네.” 그러나 이들의 불만은 움츠려들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제압할 다른 사자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전투사자 무리는 해산하지 않았다. 대신 사자제국의 발전을 가로막는 심약하고 게으른 혹은 불만분자 사자들을 축출하는 작업에 투입되었다.

이제 초원에 해가 뜨면 기상나팔이 울려 퍼진다. 아기 사자들은 노래를 불러 사자들을 깨웠다.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어서 모두 일어나 새초원을 만드세.” 사자들은 자신들의 사냥으로 초식동물이 사라진, 그래서 풀들만 웃자란 초원을 가로질러 행진을 한다. 가까이는 먹잇감이 없으니 반나절을 가야 먹잇감이 있는 것이다. 사냥을 하고 다시 먹잇감을 물고 돌아오면 초원의 야속한 해는 이미 지고 난 다음이었다. 먹이를 나누고 나면 그저 빨리 잠을 청할 뿐이었다.

사자의 무리는 어느 듯 몇 백 마리로 늘어났고, 초원에선 감히 그들에 대항할 이들이 없었다. 늙은 사자는 구릉의 제일 높은 곳에 서서 초원을 내려다 봤다.

“보아라. 이제 이 초원은 모두 우리 사자 무리의 것이다. 하이에나도 치타도 열등한 다른 사자 무리도 없다. 오로지 우리의 영토다” 그는 자랑찬 포효를 내질렀다. 그의 포효를 들으며 사자의 무리들이 피곤에 지친 표정으로 초원을 가로질러 행진을 하고 있었다. 처음 열 댓 마리의 게으른 사자들로 시작된 무리는 이제 수 백 마리의 지치고 피곤한 프라이드로 바뀌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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